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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SPAPA Jan 17. 2023

[번외편] 인연

도전하는 삶, 무한한 가능성을 함께해 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를.

인연.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단어 중 하나다. 그리고 이 단어를 적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학창 시절 무수히 접했던 피천득 선생님의 동명 수필. 개인적 추측이지만 왠지 나뿐만이 아니라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상당수가 그렇지 않을까 싶다.


'그리워하면서 한 번 만나고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 서로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사실 딸아이가 태어나고 몇 해 간 소중한 하루하루를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일기를 꾸준히 적었었다. 그런데  다시 보 초등학교 때  방학제로 쓴 일기와 별반 다를 바가 없다. 무엇을 했는지, 어디에 갔는지 위주로 일과 단편적으로 나열한 수준. 그나마 그 기록들마저 예전 일기장들과 함께 습한 창고 한 구석에서 잠들어가고 다. 

보관도 용이하고, 아주 먼 훗날에 딸아이에게 보여줄 수 있는 글을 모아놓고 싶었다. 그것이 이 공간에 글을 쓰게 된 계기, 미래에 나의 글을 읽을  제1 독자로 생각하며 글을 쓰고 있다.


모두가 볼 수 있는 공간을 빌려 글을 적는 것이 모르는 사람들도 내 글을 읽으리란 생각 또한 당연히 했다. 이왕이면 른 독자들에게도 조금이나마 공감되고 위안이 될 수 있는 글들이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아내 포함한 극소수를 제외하고 오프라인의 지인들에게는 라인 공간의 감성 아재로서의 나의 자아를 커밍아웃하지는 못했다. 명의 글쓰기가 아직은 마음이 편하다.


매번 어색하지만 설렘 반, 뻘쭘함 반으로 발행한 글들에 다행히 호응을 보내주시는 분들이 계신다. 어떤 경로로 인해 나의 글을 보시게 되는 건지 아직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건 공통점을 가진 소중한 인연이 각한다. 나 또한 내 글을 찾아와 주신 분들 일상 생각이 무척 궁금하기에 그분들의 글을 찾아보고, 소심한 답례를 남겨보고 있다.




이곳에 글쓰기를 시작하며 만나는 새로운 인연들에 대해 생각하다 잊고 지낸 오래 전의 한 인연이 문득 떠올랐다. 애초  에는 없었지만, 그 분과의 추억 한 페이지를 먼저 다뤄보고 싶었다. 창고를 뒤져 그때의 일기장을 찾아냈다. 그리고 2009년 가을의 지리산으로 여행을 떠나본다.


군대에 있을 때 틈틈이 독서와 서투른 습작을 하며 작가가 되고 싶다 꿈을 가졌다. 그때나 지금이나 상처와 고민이 많은 시기들에 글쓰기에 대한 욕구가 커지는 것 같다.

아무튼 그리하여 전역 후 대학에 바로 복학할 수 있었음에도, 글감도 모을 겸 넓은 세상도 겪어보고자 한 학기를 더 휴학하기로 했다.

현실 도피를 하는 거라는 아버지의 질타를 뒤로 하고 10월 초 등산복장으로 집을 나와 시작된 전국 유랑. 꽃동네에서 일주일 여 봉사활동을 마친 후, 음성에서 청주를 거쳐 진주로 향했다. 지리산 일주라는 버킷리스트 달성 하나 무모히 생각하고.


진주 터미널에서 간단히 점심을 해결하고, 진주 방면에서 지리산 등반을 시작하는 중산리에 도착하니 오후 3시 반. 일몰 전 미리 예약해 놓은 장터목 대피소에 도착해야 했기에 뛰다시피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잠시 목을 축이거나  고르는 시간만 빼고는 조난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쉴 수가 없었다. 간간이 산을 내려오시는 분들과 마주칠 때마다 모두들 해가 저물어 갈 시간에 제대로 된 장비도 없이 가방 하나만 메고 산을 오르는 나를 걱정해 주셨고, 서둘러 올라가라는 격려와 함께 길안내를 해주셨다.

다행히 해가 저물어 갈 무렵, 가까스로 장터목 대피소에 도착했다. 젊음의 혈기 하나로 대피소까지는 무사히 도착했지만... 터미널에서 사 온 비상식량 초코바와 이온음료를 빼고 먹을  없었다. 배가 너무나도 고팠다.


대피소에 먹을 것을 팔겠거니 하고 덜컥 대피소만 예약해 놨었는데, 식당은 커녕 매점이라 말하기도 애매한 매표소 같은 매점 하나 있었다. 가격 충격적이었다. 햇반과 참치캔 하나씩 샀는데 만원 가까이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본인들이 마지막 식사팀인 줄 알았던 취사장의 서너 명의 단체 분들이 궁상맞게 혼자 밥을 먹으려는 나를 보고 남은 게 없어 미안하다 하시며, 남은 김치라도 먹겠냐고 주셨던 기억도 난다. 도움을 받아 데운 햇반에 참치와 김치를 비벼서 허겁지겁 먹었다.




허기를 달래고 소등 전 잠자리에 들기 위해 부랴부랴 예약된 자리에 잠자리를 채비하고 있는데, 바로 옆자리에 계시던 께서 말을 걸어오셨다. 까부터 지켜봤는데, 준비를 거의 않고 올라온 것 같다고 일정이 어찌 되느냐고 물으셨다. 다음날 연하천 대피소에서 하루 더 숙박한 후 노고단을 갔다 화엄사로 내려갈 계획이라 말씀드리니, 본인도 연하천 대피소를 예약했으니 동행하는 것이 어떻냐 제안 하셨다.


다음 날, 5시 전에 장터목에서 그 과 동행을 시작하여 천왕봉에 올랐다. 좋은 인연과 함께한 덕택인지 지리산 쉬이 허락해주지는 않는다는 일출을 볼 수 있었다. 출을 보고서 세석, 벽소령, 형제봉, 연하천까지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이튿날의 종주를 마쳤다. 사실 무엇보다 감사했던 건 생존에 필수불가결인 식사. 대책 없이 지리산을 올라온 내게 매 끼를 챙겨 주셨다. 저녁에 머문 연하천 대피소에서는 든든히 먹으라며 매점에서 비싼 먹을거리를 잔뜩 사 오셨다. 연신 얻어먹는 것을 죄송해하는 내가 눈치 보지 않고 충분히 먹을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시는 것이었으리라.


연하천 대피소에서 잠을 청한 그날 밤 비가 꽤 내렸다. 다음날 제대로 된 산행이 가능할까 노심초사했는데 신기하게 산행을 시작할 때쯤 비 그쳐갔다. 새벽 4시 기상  아침 식사 후 재개된 여정. 저녁에 중요한 일정이 있어 늦지 않게 부산으로 복귀하셔야 한다고 하시어 오전 내내 이서 부지런히 걸었다. 삼도(三道)의 경계라는 삼도봉을 지나 목적지  노고단 부근에 이르렀다. 왜였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노고단 정상 가려면 통제시간까지 기다려야 했고, 아버님께서 본인은 일정상 먼저 하산해야겠노라며 급히 작별을 고하셨다. 2박 3일의 동행이었을 뿐인데, 헤어짐이 못내 아쉬워 내려가시는 뒷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인사를 드리며 서있던 기억이 난다.




얼마 후,  알려드렸던 내 메일 주소로 사진들과 함께 메일이 와 있었다.


000군. 지리산종주 자네가 아니었다면 외로운 싸움이 될뻔했지만,

자네와 같이한 덕택에 많은 힘이 되었네.

젊음이란 무한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지.

자네의 사회봉사활동과 지리산 종주라는 도전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는 바이네.

앞으로도 수많은 도전과 수없이 도전해야할 삶이 눈앞에 나타나리라 생각하네.

모쪼록 감내할수없는 어려움이 다가온다 하더라도 결코 물러서지 않는다면

이길수 있으리라 생각하네. 000 화이팅^*^


감사의 연락을 드리면서 나중에 돈을 벌게 되면 정말 맛있는 식사 한번 대접하겠노라 굳게 다짐했건만, 나중이란 대개 공염불에 불과하기 마련. 그 이후 나는 아버님의 유선 연락처도, 존재도 순차적으로 까맣게 잊고 말았다.




이번 기회로 잊고 있던 그분을 떠올리게 되어 예전 메일을 뒤져보았고, 다행히 수신했던 메일 찾다. 그때의 감사함을 뒤늦게나마 표하고 싶어 민망함을 무릅쓰고 용기를 냈다.


안녕하십니까.

아직 이 메일 주소를 사용하고 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오랜 시간을 거슬러 메일을 드려봅니다.

2009년 가을 2박 3일간의 지리산 산행을 같이 했던 000라고 합니다. 기억하실는지요?

오래된 메일함을 정리하다 생각나서 메일 드렸습니다.

아주 오래전 일이지만, 그때 베풀어 주셨던 호의가 늘 잊히지 않아 사회에서 자리 잡으면 맛있는 식사 한번 대접해 드리겠다 다짐했었는데 시간이 참 많이도 지났습니다.

저도 벌써 회사 생활도 10년 차가 되었고,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혹시 메일을 보시게 된다면, 답장이나 문자(010.XXXX.XXXX)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출장이나 휴가 때 계신 곳 근처 방문해서 좋아하시는 음식 꼭 한번 모시고 싶습니다.

이 메일을 확인하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답장 기다려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메일을 보내고 바로 답장이 왔다. 정말 바로 온 답장.

메일주소삭제, 휴면 등의 사유정상적으로 전송되지 못했다는 반송알림메일이었다.


아쉬운 마음에 아버님의 편지만 몇 번을 다시 읽었다. 그때 보내주신 마음이 30대 후반이 된 나에게 또 다른 위로와 격려가온다.

'삶은 도전의 연속이다. 감내할 수 없는 어려움이 다가온다 하더라도 물러서지 말아라. 아직 젊다고 생각한다면 무한한 가능성이 남아 있다.'




이 공간을 빌, 혹시나 이 글을 보시는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으시지 않을까 하는 마지막 미련 인사를 남겨봅니다.


2009년 10월 12일부터 14일까지 2박 3일간, 한 젊은이와 지리산 종주를 같이 하신 오** 아버님 그리워하고 습니다. 당시 부산 해운대에서 거주하시며 공인중개업을 하고 계셨고, 성균관대 사학과에 다니는 딸과 게임을 몹시나 좋아한다 중학생 아들을 사랑하시는 한 가정의 아버지셨습니다.

은 연락 죄합니다. 살면서 못 뵙게 되더라도 보내주셨던 따뜻한 마음 그리며, 끊임없이 도전하며 살겠습니다.

짧은 동행이었지만 소중한 인연으로 함께 해주신 것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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