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후유증
큰 아이는 초등학교에 갓입학했고, 작은 아이는 유치원에 다닐 때였습니다. 전 남편은 또 한 번 사업에 실패했고 이전의 무직 상태로 돌아갔으며, 그가 운영하던 회사 직원들의 임금까지 체납되어 내 빚으로 남아 경제적으로 곤란해진 상황에 나의 건강까지 최악의 상태로 치달아 입퇴원을 반복하던 시기에 여러 가지 이유로 너무 지쳤던 나는 그에게 이혼을 요구했습니다. 당시에는 전 시어머니를 모셨었는데 큰소리가 오가는 것을 들으셨는지 방문을 열고 들어오셔서는 " 갈라서라! 우리 애 사주에 여자가 많으니 너 아니어도 잘 살 거다." 라하시더군요. 그날 그 순간이 30년 가까이 잊히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내 돈으로 얻은 내 집이고 모든 생활비와 시부모님 병원비까지 결혼 직후부터 나 혼자 부담했음에도 두 사람이 한 편이고 나만 보호자 없이 떨어져 있는 듯 외톨이처럼 느껴져서였습니다. 가뜩이나 서러운데 그래도 남편이라는 사람이 말하기를 " 맘대로 해! 근데 너 애들 얼굴 볼 생각 하지 마! 재판을 해도 병원에 살다시피 하는 네가 이길 리없으니 하고 싶음 해보든지! " 라더군요. 불과 1년 전, 건강하던 내가 사업자금을 대주었을 때만 해도 당신이 없으면 세상에 나 혼자뿐이라며 건강하라던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기에는 너무나 험하고 씁쓸했습니다. 하지만 더 답답했던 것은, 누가 들어도 말 안 되는 그의 악담에 '결혼 후 한 번도 경제 활동을 하지 않고는 무슨 소리냐?' 등등 단 한 번의 반박도 못하고 어이없게 주저앉아버렸던 제 자신이었습니다. 퇴원직후여서인지 도저히 싸울 기력이 없는 상태인 데다 서러워 터져 버린 눈물에 와주십사 전화로 부탁드리니, 그 새벽에 바로 달려오신 친정 부모님께서는 도와줄 테니 걱정 말고 아이들과 함께 본가로 가자셨지만, 정말 아이들을 빼앗길지 모른다는 말도 안 되는 걱정이 되면서 망설이다 흔들리는 제 눈빛을 읽고는 한숨을 쉬며 댁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제 첫 번째 이혼 결심은 그리 허무하게 끝나 버렸고 그 뒤 15년 동안을 그래도 아이들 아빠인데 길에서 먹고살게 할 수는 없지 않나 싶어 다시 그를 먹여 살리며 살다가 그가 후배의 소개로 취직하여 30년 가까운 무직상태를 청산한 다음 해가 되어서야 이혼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그 사이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 양육비의 책임으로부터 벗어났고 내가 벌어 분납하던 그의 세금과 빚을 청산한 다음 달, 그는 마치 이 날을 기다렸다는 듯 이혼에 동의했던 거죠. 위자료도, 무엇도 없이 말 그대로 아무 조건 없는 상태로 25년 가까이 지속되었던 결혼 생활이 끝나버렸습니다.
처음에는 홀가분하기도, 이제부터는 모든 일이 잘 될 것 같은 희망에 부풀기도 했는데, 상상치도 못했던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혼 후 3년이 지났을 무렵 갑재스레 극심한 우울증이 찾아온 거죠. 중간중간 전남편인 그에게 실망할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 계기가 될만한 일이 생긴 것도 아닌데 말이죠. 스물넷 어린 나이에 아홉 살 많은 그를 만나 사랑하고, 극심한 반대에도 그를 책임질 수 있다는 오만함으로 감히 결혼에 이르고, 오랫동안 시어머니 늘 포함한 다섯 가족의 가장으로 살다 이혼에 이르기까지의 긴 세월이 스치듯 지나고, 그가 던진 유리잔에 맞아 피 흘리던 밤, 그가 밀쳐 화장실 문에 맞고 떨어져 다쳤던 일 그런 나를 끌어안고 외할아버지에게 가자며 울던 아이들의 모습 등등 갑자기 화가 나고 이유 없이 슬퍼졌다가 실없이 웃기를 반복했습니다. 긴 세월, 사랑했고, 그만큼의 시간을 사랑한다 최면 걸어왔던 그를 증오하기도 했으나 그런 사람을 사랑하고 처참했던 결혼 생활을 미련하게도 이십 년 넘게 끌고 온 나 자신이 더 밉고 원망스러웠습니다.
나조차 어찌할 수 없는, 표현하기 힘든 감정에 휘말려 고통스러웠던 후유증은 이혼 후 모든 짐을 벗어내고 아이들과 함께 가벼이 살았던 시간들을 훌쩍 뛰어넘을 만큼 오래도록 지속되었고 그 후로도 괜찮아졌다 믿으며 일상을 살아가던 내게 괜찮지 않다며 브레이크를 걸어 멈춰 세웠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고통받고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외면해 왔던 아픔을 늦게나마 직시하고 인정하며, 스스로를 사랑하고 위로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전남편인 그 사람과 헤어진 뒤 그리고 희귀 난치질환을 진단받은 뒤 가장 많이 들었던 "괜찮아?"라는 질문에 그간은 애써 웃음 지으며 아무렇지 않은 듯 고개 끄덕였으나 이제는 솔직히 답할 수 있습니다. "괜찮치않아! "라고 말이죠.
이혼은 만병통치약이 아니기에 아마도 앞으로도 오랫동안, 어쩌면 그와 함께했던 세월 속 상처만큼이나 깊이 그리고 많이 아프고 힘들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감춰왔던 내 감정에 솔직해졌으니 두려움 없이 당당하고 용감하게 나아갈 것을 믿습니다. 더 이상 나 자신을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않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