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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와테현와규 Feb 07. 2024

세상의 모든 근로자들을 응원합니다.

그리고 묵묵하게 가족을 위해 희생하시는 부모님 감사합니다.

 평소와 달리 너무 평화로운 하루였다. 환자가 밀려서 바쁜 마음에 쫓겨서 초조하지도 않았고 그 덕에 몸이 불편한 분들이 느릿느릿 움직여도 재촉할 필요도 없었다. 혈관이 좋지 않아도 차분하게 채혈할 수 있었다. 단 한 번의 실패도 없었다. 생각해 보니 이번 주 내내 채혈실에는 별 일이 없었다.


 퇴근시간까지 1시간이 채 남지 않은 무렵 한 환자가 내 앞에 앉았다. 동료선생님은 뒤에서 실습생들에게 채혈에 대한 질문을 받고 있었고 다른 선생님은 접수대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앞에 앉은 환자는 채혈대 앞 의자에 앉아 거의 드러눕다시피 했고, 접수표를 달라는 말을 2-3번을 말한 뒤에 내 손을 때리듯이 건넸다.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보통 직원들에게 함부로 대하는 사람의 경우 목소리를 높이거나 짜증을 내는데 그 환자는 냅다 내 손을 쳤다. 너무 당황스러웠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우선 환자확인을 했다. 이 또한 조용히 비협조적이었다. 팔을 토니캣으로 묶고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할 때에도 촉지 할 수 없도록 과격하게 했다. 도저히 채혈을 할 수가 없어서 환자에게 채혈자를 바꿔주겠다 말을 하고 다른 직원에게 부탁했다. 태도가 바뀌었고 너무나도 협조적이었다. 내가 이전에 실패했던 환자였나 싶어 기록을 찾아봤지만 그건 아니었다. 보통 실패를 했던 경험이 있으면 채혈자를 바꿔달라고 하는데 그것도 아니었기에 여자라서 그런가라는 억측까지 해버렸다.


 동료직원들은 단 것을 사주며 나를 달래고 위로해 줬지만 도저히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 언젠가 저 사람을 또 만나야 한다는 생각에 걱정이 되었고 속이 울렁거렸다. 눈물이 났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나 스스로 달래 보려고 '지난 미국 여행 때를 기억해 보자'라고 생각했지만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검사실에서 막말을 일삼는 선배보단 나을 거야라고 생각했지만 그 또한 위로가 되지 않았다. 몇 백명의 좋은 사람들을 만나도 한 번의 상황이 나를 지치게 만들다니, 너무 메스껍다.

 

'부모님은 평생을 어떻게 견디신 거야.'

 부모님 생각에 눈물이 났다. 부모님은 나보다 더 힘든 시기를 살아오셨고 매일이 지옥이었던 시기도 있었을 텐데, 얼마나 힘드셨을까.

'다른 근로자들은 어떻게 힘듦을 견딜까.'

 이보다 더 부조리한 상황에 힘들어하는 근로자들도 많을 텐데.


 엄마가 밖에서 일하느라 고생했다고 차려주신 간식에 그저 죄송한 마음이 들어 계속 눈물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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