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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와테현와규 Jun 10. 2024

한 달간 직장 탈출하기

시드니 : 나의 좁은 생각

"외국인들은 뭐든 다 읽는 거 같아요."

블루마운틴 투어 중에 새롭게 친해진 친구와 서로 사진을 찍어주다가 주변에 있는 외국인들이 어떤 돌에 새겨진 안내문을 유심히 읽고 분석하는 모습에 나온 말이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다. 박물관에서 제공하는 안내서든, 어떤 기념비나 조형물에 있는 설명이든 일단 다 읽는다. 뭐 우리나라 사람들이 안 읽는다는 것이 아니라 외국인들은 정말 거의 대부분이 집중해서 읽는다. 아, 여기서 말하는 외국인은 영어권의 사람들이다. 그런 이유일까? 그들은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과 쉽게 서로의 생각을 공유한다.

예를 들어 비 오는 바깥을 바라보며 혼자 밥 먹는 나에게 다가와 뜬금없이 어디서 왔냐 뭘 하는 사람이냐를 묻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나의 허접한 영어실력에도 집중하며 '흥미롭군' 혹은 '좋은데?'를 반복한다.

시드니 달링하버에 가면 2차 세계대전 또는 영국이 오세아니아 대륙 정복 때 사용된 배들이 있는 해양박물관이 있다. 그곳에는 설명을 위한 어르신 봉사자들이 꽤 많다. 그들은 자신들이 설명하는 배의 역사와 구조, 기능에 상당히 진심인데 그런 설명 또한 열심히 듣고 역으로 질문하고 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러운 대화가 오간다. 게다가 나눠준 안내서를 또 집중해서 읽는다.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러 가면 비치된 안내서에는 공연자들에 대한 안내와 연주할 음악의 역사, 그리고 시간표가 적혀 있는데 그것 또한 열심히 읽으며 조합해서 음악을 감상한다. 이런 것들은 나중에 전부 가벼운 대화의 주제가 된다.


그들의 대화를 들어보면 그냥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모든 순간과 기억과 경험들이 그들에게든 소통의 주제가 된다. 그들은 모든 부분에서 항상 받아들일 준비 그리고 생각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다음은 바라보며 소통하고 유쾌하게 웃는다. 그냥 나의 생각이지만 그들이 뭐든 열심히 읽는 이유가 그런 걸까 싶다.


처음에는 '진짜 궁금한 걸까?'라는 생각을 했다. 사실 나 같은 경우도 굉장히 수다스러운 편인데, 아무래도 불필요한 말을 삼가야 하는 환경에 자랐고 살다 보니 말을 안 하려 하고, 그러기 위해 생각을 안 하려 하다 보니 굳이 알 필요 없는 것에는 관심을 갖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전시회나 박물관등의 문화생활에 돈을 지불하고 방문하는 사람들을 쉽게 이해하지도 못했다. '전공도 아닌데 저게 삶에 도움이 되는 건가?'

하지만 이런 편협한 나의 생각이 소통능력의 성장에는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짧은 여행기간 동안 운이 좋게도 나에게는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여러 질문을 하며 소통의 기회를 제공하는 그들의 호의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기회를 잡을 준비가 하나도 되어있지 않았던 것이다. 스스로 너무 답답했고 속상했다. 질문을 이해하지도 못했고 이해한다 하더라도 아무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많은 것을 받아들이기 위해 나에게 필요한 것은 나의 '굳이?' 혹은 '왜?'라는 방어적인 의문을 조금 버릴 필요가 있다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Is it better to have had a good things and lost it, or never to have had it?


-Our mutual frie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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