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불법 아니야?
"가끔 집에서 주사를 맞는데..."
채혈실에서 근무하는 임상병리사는 평균적으로 하루에 200명의 환자를 만나게 된다. '검사'라는 과정에 분석 전-분석-분석 후 단계가 있고 채혈은 분석 전 단계에 해당하다 보니 한국에서는 이것이 임상병리사의 일로 간주된다.(미국의 경우는 채혈사가 따로 있다.) 아무튼 이렇게 많은 환자를 만나다 보면 불필요한 이야기가 오간다. 굳이 궁금하지 않은 이야기도 많이 듣게 된다. 가령 본인이 소위 말하는 빅 5 병원에서 수술하고 지방의 병원으로 전원을 왔다거나, 자신의 손주가 의사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사실 여기까지는 굉장히 흔한 이야기다. 이런 내용이 뒤로 어떻게 이어지는지는 채혈을 하는 병리상의 재량에 따라 다르다. 그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 하는 병리사는 이것저것 질문을 던진다. 그렇지 않으면 '아 그래요? 그러시구나.'정도이다. 사실 혈관이 심각하게 좋은 경우가 아니고서야 다음 대기환자를 위해 업무와 관련되지 않은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것이 그렇게 좋은 것은 아니다.
하루는 어떤 할머니가 내 앞에 앉았다. 혈관이 마냥 나쁜 분은 아니었지만, 피부의 탄력이 떨어지면 혈관이 좋다 한들 혈관이 잘 고정되지 않아 혈관이 바늘을 잘 피한다. 그렇게 되면 통증이 느껴질 수 있기 때문에 집중을 해야 한다.
'어르신,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해보시겠어요?'
토니캣으로 팔꿈치 위를 묶은 다음 안전하게 채혈하기 위해 환자에게 요청했다.
'내 혈관이 잘 안 나오지? 가끔 집에서 주사를 맞기는 하는데...'
잘못 들었나 싶었고, 딱히 당장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라 무시하려 했다.
'혈관이 보이기는 잘 보여요. 다만 좀 더 확실하게 잡히면 덜 아프실 거라서요.'
'내가 가끔 집에서 주사를 맞는데'
또 같은 말을 하신다 . 왜 자꾸 이 말을 반복하시는 거지? 요즘 굉장히 문제가 되고 있는 무면허 주사에 대한 연예인 기사가 떠올랐다.
'집에서 주사를 맞는다고요? 어떻게요?'
사실 궁금하기도 했다. 병원에서 오래 시간 근무했던 나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것이다. 물론 임상병리사라 라인을 잡고 수액을 연결하는 것을 배운 적이 없다. 업무 밖의 일이다. 하지만 그게 가능하다 한들 그 수액은 어디서 구하고, 의료기관 밖에서 가능한 건가?
'아, 아들이 의사인데 우리 아들이...'
문득 몇 년 전 알고 지내던 한 사람의 말이 생각났다.
'엄마랑 외할머니가 가끔 주사이모 불러서 집에서 링거를 맞으시거든?'
그 당시 나는 어렸는데, 분명히 내가 배운 바로는 정해진 의료기관 외에서 의료행위는 불법이라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가정방문간호'도 있고, '의사의 지도 하에'라는 상황도 있으니 집안이 유복해서 가능한 상황 중 하나가 아닐까 하고만 생각했었다.
'그게 가능해?'
이후 알게 된 사실이 가정방문간호의 경우는 혼자 사는 거동이 불편한 독거노인의 경우가 대다수라 들었다. 물론 이것도 정확하지는 않다. 확실한 것은 그의 엄마와 외할머니가 정기적으로 주사이모를 집에 불러 링거를 맞는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불법인지 몰랐으니 아무렇지 않게 말했겠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법은 최소한의 선의이고, 그것은 인간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리랬는데, 그것을 잘 이용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적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법조인이 될 거라며 누구보다 청렴결백을 주장하는 사람도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를 정확히 판단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니면 알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거나. 아님 자녀의 덕으로 호사를 누린다 생각하는 어르신들도 있을 수 있다. 생각보다 불법의료행위는 주변에서 적잖이 이 발생하고 있다. 주사를 놓는 행위와는 아예 관련이 없는 나로써는 사실 그저 그 명확한 업무범위가 궁금할 뿐이다.
만약 이러한 의료기관 밖 의료행위로 인해 부작용이 발생한다면 이의 경우 누구의 잘못이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