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야 빼먹고 쓴 글이래요
25/12/26
금요일.
상대방의 말이 내 귀에서 부드럽게 넘어가지 않았다. 걸리고 막혀 머릿속을 복잡하게 했다.
내가 요즘 말씀을 읽지 않고, 수요예배나 금요예배에 참석하지 않는 모습에 진심 어린 조언을 한 것 같다. 알지만 듣고 싶지 않았던 말이어서인지, 내 마음 중심을 모르면서 날 정죄하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인지 많은 생각에 복잡했다.
습관과 행동이 많은 사람에게는, 구원은 아무런 노력 없어도 이루어지는 전적인 은혜의 과정임을 인정해야 한다. 반대로, 나같이 습관과 루틴이 잡혀있지 않은 사람에게는, 구원은 행위로 받는 것이 아님에도, 그 은혜를 받은 자로서의 행위는 마땅히 우리에게 필요한 것임을 인정하며 노력해야 한다.
이게 서로 반대가 된다면 곤란한 것이다. 각자의 잣대로 상대를 정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마치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라는 말씀을 아내에게 들이 내미는 남편의 모습과 다를 게 없는 것이지. 사실, 이 말씀은 아내가 말해야 성경을 알맞게 해석하는 것일 테다.
성경 자체를 많이 읽고 알아야 하는 만큼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떠한 관점으로 바라보고 해석하려는가 하는 점이다.
술을 마시기 위해 “‘성경에 술 먹지 말라’는 구절은 없어”를 인용하는 게 아니라, 술 마시는 사람을 품기 위한 용도로 이 문장을 읊어야 하는 것이다. 모든 말씀을 주신 목적이, 사랑의 자리에 나아가도록 우리를 응원하시는 사랑의 명령과 격려인 것이다.
말씀과 행위로 상대방을 정죄하지 말아야 한다. 사실, 이렇게 말하는 내 자신이 어쩌면 가장 심하게 상대를 정죄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기도하지 않으면서도 그분의 뜻을 알며 소통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게 나의 가장 착각이자 교만일 수 있겠다. 습관과 행위로서가 아닌, 그 사랑에 감격하는 마음으로 기도의 자리로 뛰어가는 내가 되기를, 회복하고 싶다. 다음 주 이 시간은 기도의 자리에 있기를 스스로 응원해본다.
율법과 자유함. 이 밸런스를 아름답게 잘 유지하여, 빈틈없이 벽돌로 채워진 튼튼한 집에서 맘껏 뛰어놀 수 있는 나의 삶이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