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개가 아니라 인간이며 인간적 존중을 원합니다.
목공소에서 성실하게 일하면 지내온 '다니엘 블레이크'는 일터에서 갑자기 쓰러져 의사에게 심장병이 있으니 무리하지 말고 몸이 회복될 때까지 일하지 말고 쉬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다니던 목공소에 의사 소견을 말하고 쉬게 되지만 수중의 돈이 없던 그는 질병수당을 받기 위해 관공서에 신청을 하게 된다. 담당 공무원은 그에게 질병수당을 탈 정도로 몸이 나쁘지 않은 것 같으니 그 수당을 줄 수 없다는 통보를 하자 다니엘은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정부 수당을 받기 위하여 노력한다. 다시 한번 찾아간 관공서에서 우연히 비슷한 처지에 놓인 싱글맘 케이티를 만나 그녀를 돕게 된다. 그녀에게는 남편이 다른 두 아이를 양육하고 있는데 푸드뱅크에서 주는 통조림으로 연명하고 있다. 그녀의 삶은 실업급여조차 받지 못하자 더욱 힘들어져 몸을 파는 일까지 하게 되는데 그 모습에 다니엘은 그녀의 주변에서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며 버팀목이 되어 준다. 시간이 흘러 항고일 주변 사람들의 응원을 받으며 심의위원과 이사와의 면담을 기다리며 화장실에 갔다가 갑자기 재발한 심장병으로 인하여 쓰러지고 만다. 그리고 그는 다시 눈을 뜨지 못한 채 세상과 작별을 나눴다.
주인공인 다니엘 블레이크의 눈으로 현실의 부조리를 비판하고 있다. 소신민을 위한 정책은 모순되게도 그들을 더욱 괴롭히고 삶을 힘들게 한다. 다니엘은 단지 의사의 진료에 따라 일을 하기 위해 잠시의 후실이 필요했을 뿐 의도적으로 국가 수당을 타려는 사람이 아님에도 정부 공무원의 주관적인 평가로 질병수단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 그는 심장병으로 휴식이 필요했지만 생활 여력이 없던 그는 오랜 기간 수당을 받기 위해 휴식도 취하지 못한 채 오랜 투쟁을 벌여야 했다.
그와 알게 된 케이티의 생활은 더욱 비참하다. 시간에 늦었다는 이유로 실업 급여를 받지 못하는 케이티는 아이 둘을 양육해야만 한다. 취약층 계층에게 배급되는 통조림으로 아이들의 끼니를 때우고 있지만 삶의 절벽까지 몰린 그녀는 매춘으로 돈을 벌기 시작한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다니엘에게 케이티는 벌써 300 파운드난 벌게 되었다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절벽 끝까지 몰린 사람들의 비참한 현실을 보여준다
다니엘 : 굳이 이렇게 까지 할 필요는 없어..
케이티 : 벌써 300파운드나 벌었어요.. 이 돈이면 아이들에게 싱싱한 과일을 먹일 수 있어요..
그들은 주권을 가진 국민으로서 당연히 받아야 할 복지를 받지 못하고 잘 못된 행정 절차로 끊임없이 투쟁해야 하고 더욱더 삶은 비참해질 뿐이다. 사회는 그들을 신경 쓰지 않는다. 다만 힘든 처지에 놓인 그들끼리 서로의 받침목이 되어 주고 서로를 돌봐준다.
우리가 아는 '신사의 나라' ' 해가지지 않는 나라' '복지 무덤에서 요람까지'라는 거창한 수식어로 알려진 영국이란 나라의 노동자 계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수작이다. 다른 나라의 이야기라고 하기엔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도 그리 녹록지 않은 것 같다. 주변에서 많이 들려오는 이야기는 우리가 알고 있는 대기업이 50대 이상 전원 희망퇴직을 받고 있으며 20대의 취업의 문은 점점 좁아져 실업률이 역대 최고 라느니 시골에 홀로 사시는 할머니는 고독사로 죽은 지 1개월이 지나서야 주변에 알려졌다는 등에 씁쓸한 내용뿐이다. 가족과 함께 장을 보러 마트에 갔는데 과일값이 너무 올라 사려던 사과 봉지를 다시 내려놓은 일이 있었다. 물가가 많이 올라 꼭 필요한 것만 사자고 하는 와이프의 푸념을 듣는 순간 나 스스로도 외식도 줄이고 모임도 줄여야지 하는 생각이 드는데 일 을 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어서 또는 개인적인 아픔으로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장을 보고 싶어도 할 수가 없을 터인데 나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다.
우리 주변에서도 '다니엘 블레이크'처럼 우리가 너무 당연시해서 신경을 쓰지 않은 문제들로 인생을 걸고 투쟁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점점 각박해지고 있는 우리의 인생이지만 우리 이웃에게 조금의 관심을 갖는 다면 그들의 권리를 찾기 위한 길이 조금은 덜 외로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