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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ice Five Oct 14. 2022

프롤로그: 나는 왜 덕통 사고가 나길 기대하는가

요즘 내 앞에 해결해야 하는 일들이 사라지면서 이성과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몸의 감각과 맘이 이끄는 데로 흘러가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 시간은 십여 년 전 모스크바에 살던 시기의 그 기분과 비슷하며

그때의 나는 들을 수 있는 귀가 있고 말할 수 있는 입이 있으며

볼 수 있는 눈이 있지만

수십 년 간 배운 학습이 쓸모없어

오히려 감각들은 더 예민해지고

어린아이처럼 본성에 충실했다.


관성이 비워지는 시간이었는지

텅 비니 오히려 더 많이 오감으로 느껴지는 것들을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고

정신과 신체에 쑥쑥 각인시켰다.


그 무렵 나는 덕통 사고가 났다. 모스크바라는 도시와.

아이돌 팬 문화를 떠오르는 이 단어를

흥미로운 것에 눈길이 가고 왜 이런 감정이 생기는지 열심히 집중력을 발휘하다 보니 어느덧 나의 일상에 그것이 떡 하니 한가운데 자리 잡은 그 감정.


꽤 오랫동안 지속되어 책도 한 권 썼고, 잡지에 기고도 몇 군데 하고 관련 사업 컨설팅도 해 보고

모스크바로 인해 지속적으로 연락하는 친구들도 생겼다.

상관없던 단어가 내 일상과 일의 하나로 자리 잡은 그 감정을 소중하게 생각했고, 힘들 때마다 그때의 순수한 호기심과 적극적인 열정을 떠올리려 했다.


그 감정에 권태기를 느낄 무렵 또 다른 덕통 사고가 일어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느닷없다는 표현 보단 가랑비에 옷 젖듯 내 삶의 스무 해 이상 스며들어 이젠 나의 중요한 아이디어 소스가 되고 있는 그것.


일본 드라마, 간단하게 일드.


일본 문화가 정식 수입되기 전부터 어둠의 경로와 일드를 좋아하는 무리들 간의 끼리끼리 공유 시스템으로 인해 벌써 수십 년째 일드는 어쩌면 한국 드라마보다 더 ‘잘 알’ 지도 모른다.

참고로 텔레비전이 내 집에서 사라진 지는 몇 년이 되었고 주로 아이맥과 맥북, 아이폰을 통해 OTT 서비스와 콘텐츠 플랫폼, 유튜브 등을 통해 콘텐츠를 즐긴다. 고로 레거시 미디어는 더 이상 나의 사고와 감성의 중심이 아님이 분명하다.

디지털 미디어나 플랫폼을 통해 접하게 되는 일본 콘텐츠들의 주제나 캐릭터, 이야기들은 늘 그렇듯 내게 교육적 그리고 마케팅적 측면의 메시지를 던져 놓는다.

지금은 딱히 그렇다고 보긴 어렵지만 몇 년 전만 해도 ‘일본 10년 전이 지금 우리나라 상황’이라는 것을 나의 일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일드 속의 캐릭터들로 연기하는 소비자 세그멘테이션과 메시지는 우리의 가까운 미래 소비 상황을 그려볼 수 있고 곧 등장할지 모르는 소비자를 이해하는 가이드북으로서 훌륭했다.



최근 에너지 드링크나 커피를 마시지 않아도 뜨거운 에너지를 내게 했던 사업에서 손을 떼고 일상이 느긋한, 게으름의 정점에 있다.

그렇기에 평소 잘 보지 않던, 업무의 효율을 위해 관심을 두지 않던 콘텐츠나 신체적 활동을 하고 있다. 의도적으로 중력의 법칙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나를 이 시기에 종종 발견하곤 하는데,

어쩌면 평소와는 다른 나의 모습이 나와 주길 기대하는 것 같다.

숨겨둔 욕망이 이성을 압도해 누가 봐도 비 효율적인 시간 속에서 새로운 시각과 감각의 보물들을 찾고 싶은 순진한 기대감 같은 것이랄까.


천성이 게으르기에 오히려 효율의 극대화할 수 있는 선택과 집중을 하는 성향이 강하고 이런 패턴은 일과 상관없는 것 같아도 본능적으로 일로 연결되는 ‘무엇’의 흐름을 잡아내려 애쓴다. 숨겨져 있지만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욕망하는 그 본질의 공통적인 팩트들.

이런 걸 비즈니스 업계에선 쉽게 ‘트렌드 분석’이라 부른다. 글로벌 광고대행사에서 플래너로 ‘트렌드 리포트’를 몇 년 간 업무로 진행했고, 사업 기획 비중이 높은 요즘에도 일련의 거대 트렌드나 핵심 타깃 군의 니즈나 욕망, 관심사의 흐름은 여전히 놓치지 않는다.

일시적인 유행과는 다른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인식의 흐름, 의사 결정과 태도에 직,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본질적이고 사회를 이끄는 법적, 사회적, 정, 경제적, 기술적 측면’에서의 흐름. 그 트렌드의 역할과 영향력을 알기에 그쪽엔 감각을 열어 두고 살았다.

업무에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이런저런 이슈와 문제 상황에 대응하고 해결하기 위한 차별화된 질문들은 결국 ‘비즈니스는 의사결정’이라는 나의 일에 대한 기본을 유지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질문들은 트렌드를 파악하는 가장 첫 번째 단계이다.

개인적으론 세상을  너무 잘 파악하는 것도 피곤한 일이다. 늘 촉이 서 있어야 하니 말이다.

나이가 들면 적당히 무덤덤 해져야 하는 데 욕심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을 괴롭힌다.

트렌드와 일정 거리를 유지해도 되는 업무 포지션과 개인적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로 인해 애써 감추려 하고 외면하려 했지만 두렵게 하는 게  있다.


요즘 MZ 세대들의 욕망


함께 일하는 친구들이 MZ 세대들이어서 관찰과 수많은 질문들을 통해 대략의 그들의 행동 패턴이나 심리적 동인들은 추측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정도는 업계에서 일 좀 해 본 선수들은 나 정도의 감각과 정보 접근성을 통해 우리의 가장 소중한 젊은 소비자들의 관심사와 지갑이 어디로 가는지 정도는 파악할 수 있다.


질문들은 현실을 만족하면 나타나지 않는다. 적어도 나에겐 그렇다.

‘나는 지금 어디인가, 이 일이 만족스러운가? 내 인생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죽기 전까지 고민할 것 같은 나로선 질문이 없다는 것은 안정적인 일상에 꽤나 만족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렇게 만족했으면 좋을 것을 늘 그렇듯 억지로라도 질문을 만들어 내고 싶어서 내 마음을 흔들어댄다. 그리고 나를 괴롭히고 무기력하게 하는 그것과 직면하는 선택을 하는 게 어쩔 수 없는 나라는 사람인 것 같다. 요즘 그런 나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아는 그들에 대한 이야기에서 질문이 꼬물 꼬물댄다.

잉여로운 시간이 생기니 그들이 돈을 쓰고 시간을 아낌없이 쓰고 있는 것에 나 역시 그들처럼 행동해본다. 일종의 ‘내가 이 소비자라면~에서 시작하는 시뮬레이션’ 라이프스타일을 특정 시간과 기간, 돈을 투자하는 소비와 관계, 관찰을 해 보는 것.

오랜 시간 플래너와 컨설턴트여서 일반적인 정량, 정성 조사뿐만 아니라 미스터리 쇼퍼 같은 전문 스킬이 필요한 일들이 머릿속에 개념화되면 곧 자연스레 업무적 루틴으로 돌아 몸에 달라붙어 있는 그 감각이라 자연스레 나타난 것일 수도 있다.



그들이 이런 행동과 소비 패턴을 보이는 근원적 욕망은 무엇일까?

이런 욕망은 꽤 오랫동안 그들의 머리와 가슴속을 지배하는 그 무엇이 있을 텐데,

그들이 밥 먹고, 잠자는 시간 외에 늘 함께 하는 게임에 취미가 없는 나로선 게임의 논리와 스토리가 그들에게 어떤 욕망을 자극하고 그것이 일상의 다른 분야에선 어떻게 발현되는지, 막연히 안갯속을 걷는 기분이다.

신 사업, 신제품 개발을 꽤 잘한다는 자부심도 있지만 그럼에도 ‘이제 나도 뒷방 어르신이 되는 건가’ 나의 비즈니스 감각이 쓸모 없어지는 것 같아 패배감에 업무적 슬럼프로 이어지곤 한다.


무력감.

이 기분이 들면 아무리 애를 써도 질문들도 떠오르지 않는다. 날카로운 질문은 기대도 안 한다.

이런 기분이 과거에도 몇 번 들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 나의 결정은 업종을 바꾸거나, 일을 잠깐 그만두거나, 회사를 바꾸거나 했던 것 같다.

‘환기’ 전략.

대충 내 능력의 한계를 느낄 때 그런 결정을 했던 것 같다.

또는 문제의 본질로부터 회피? 도망쳤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 경험이 꽤나 불편하고 이런 상황을 뛰어넘지 못하면 영영 다시 기회가 오지 못할 것 같아 다시 붙잡게 된 잉여로운 시간은 의도적으로 덕통 사고가 제대로 나길 소원하며 나의 시간과 돈, 노력, 부지런함을 ‘맘 가는 대로’ 쏟아붓고 있다.


트레킹, 볼더링, 비건에 가까운 식단, 그리고 매일 만보 걷기가 그러하고 관련 책들과 콘텐츠들을 소비했다.

몇 달 재밌었지만, 또한 새롭지 않았다. 사실 이들은 늘 하던 것들이고 좀 더 집중하여 전문적인 지식과 장비들을 추가하는 정도? 그리고 내가 알고 싶은 ‘사람들’을 좀 더 이해해 보겠다는 일상의 루틴의 강화 정도이다.


7월이 되면서 나의 마음은 게으름이 주는 긍정의 에너지인 느긋함이 불러일으키는 행동으로 그동안 선택해 본 적 없던 새로운 서비스에 클릭하고 카드를 긁기 시작했다.

슬슬, 덕통 사고 조짐이 보인다.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일 것 같은 설렘이 느껴지고, 가슴속에 열정이 꿈틀댄다.

곧 무엇인가 ‘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길 것 같다.


외면하기엔 너무 매력적인,

그로 인해 눈을 반짝거리게 할 질문들이 떠오르면 좋겠다.


일상의 관심으로 만들어진 질문들이 어떤 식으로 내 일의 역량을 향상시킬 수 있을 지, 어디까지 생각의 여행을 떠날 지 궁금하다.





Episode 1. 내게 입덕 부정기는 없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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