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다는 것을 생각하기
브런치에 두번째 글을 발행하고, 노트북 옆엔 내가 마신 요구르트가 놓여져있었다. 요구르트를 자세히 살펴보니 '스트레스 케어, 쉼'이라고 써져있었다. 이런걸 마시고 어떻게 스트레스가 해소되나 싶어 성분들을 살펴보니 스트레스를 완화시켜주는 성분이 함유되어있다고 한다. 별안간 나는 이 자그만한 요구르트를 보며 화가 났다. "이런 음료 마시고 풀릴 스트레스였으면 스트레스가 왜 스트레스겠냐!" 동시에 우리 사회에 스트레스가 얼마나 만연하면 이런 음료가 나올까 싶어 한편으론 마음이 씁쓸해졌다.
이 음료병의 쉼이라는 글자를 보며 얼마전 다녀왔던 호주의 풍경이 생각났다.
올해 초 학교에서 어학연수 프로그램 차 다녀온 호주는 나에게 신세계 그 자체였다. 호주에서 가장 놀랐던 것은 쉼의 문화였다. 우선 호주는 해가 지는 저녁 시간이 되면 가게들이 대부분 문을 닫는다. 그래서 어두운 저녁쯤에는 밥을 먹을 수 있을만한 식당이 많이 남아있지 않다. 식당을 비롯해 호주의 카페들도 대부분 점심 장사까지만 하고 문을 닫는 가게들이 많다. 설령 늦게까지 연다고 해도 오후 3시 전에는 대부분 문들을 다 닫는다.
늦게까지 전광판이 켜져있는 가게들이 많고, 손만 뻗으면 24시간 앱을 켜서 배달 주문을 할 수 있는 우리나라 문화에 익숙해져있는 나에게는 호주의 문화가 처음엔 상당히 낯설었다. 그리고 또 한가지 놀라웠던 점은 어학연수 기간 중 평일에 수업을 마치고 근처 해변에 놀러갈일이 생겼다. 버스를 타고 해변에 도착하니 이게 웬 걸? 주말도 아닌 평일 오후에 사람들이 빽빽했다. 그것도 관광객이 아닌 현지인들이.
다들 휴가를 내거나 자영업자들의 경우에는 가게 문을 닫고 일광욕과 태닝을 즐기러온 사람들이 많았다. 가족 단위로 온 사람들도 꽤 보였다. 한국인인 나를 포함한 다른 친구들은 그 풍경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우리나라에서 해변은 휴가철에 가는 곳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호주의 문화는 이런가보다'라며 부럽다는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이 난다.
다시 한국에 돌아와서 호주의 그 바닷가의 풍경을 생각해보니 각자만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것이 부러웠다.내가 본 호주는 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라였다. 저녁 시간 전에 문을 닫거나 휴가를 쓰는 모습들은 자신만의 여유를 즐기고, 쉰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보이는 모습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주변에 내가 호주에서 이런 풍경들이 너무 신기했다는 이야기를 꺼내니 '호주라는 나라가 잘살아서 그래', '거기랑 우리나라는 사정이 다르잖아' 라는 자조적인 반응이 돌아왔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나라에서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힘겨운 톱니바퀴같은 삶을 살아야 하는걸까? '순응하고 살아야지 뭐'라는 말을 들으며 괜시리 마음속에서는 억울한 마음이 든다. 우리가 스트레스라는 것을 달고 사는 이유는 물론 환경과 우리나라의 어쩔 수 없는 문화의 탓이 클 것이다. 그렇지만 별거 아닌 요구르트를 보면서 세이프 존처럼 각자만의 쉼의 공간들이 지켜진다면 스트레스라는 단어를 마케팅으로 한 상품들이 안나오게 되지 않을까 곰곰히 생각해보게 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