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로 왕래하는 고관대작들을 피하려고 다니던 뒷길에 붙여진 이름, 피마(避馬)길이 있던 근처를 통칭하여 피맛골이라 불렀다. 지금은 재개발로 디타워 같은 현대식 건물이 들어서고 옛 정서를 간직한 피맛길은 흉물스럽게 변한 지 오래다. 피맛골 골목마다 노포들이 즐비했었고 그 중의 몇은 나의 단골집이기도 하였다.
피맛길을 없앤 재개발로 오래된 식당들은 형편에 따라 문을 닫거나 이리저리 흩어졌다. 경복궁 근처로 이사갔다가 나중에 없어진 경원족발과 르미에르 빌딩 구석으로 옮긴 장원족발, 지금도 성업 중인 메밀국수 맛집인 광화문 미진 그리고 낙지볶음의 대명사 같았던 이강순 실비집, 빈대떡으로 지금도 유명한 열차집 등이 근처에 새로 둥지를 틀었다. 술꾼들의 쓰린 속을 달래주던 청진동의 해장국집들도 같은 운명을 맞았다. 그중에 청진옥과 홍진옥은 원래 자리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여전히 술꾼들을 반기고 있다.
교보빌딩 뒤편에서 종로구청 들어가는 길로 이어지는 좁다란 골목길 끝에 의정부 부대찌개집이 있었다. 골목길 만큼이나 협소한 식당은 노부부가 운영을 하셨는데 할머니의 넘치는 카리스마로 처음간 사람도 금방 그녀가 그곳의 실세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교보빌딩에 위치한 회사를 다니던 때라 함께 일하던 동료들과 이 집을 적지않이 들르곤 했다. 지금은 쉽게 보기 어려운, 쑥갓을 듬뿍 올린 부대찌개가 주메뉴였던 집이었는데 엄청나게 특별할 건 없는 부대찌개에 쑥갓이 풍미를 더한 탓인지 점심 때면 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이 카리스마 넘치는 안주인께서는 매번 함께 간 여성들의 원성을 불러 일으키곤 했는데 그 이유는 남성과 여성의 밥그릇 크기 때문이었다. 여자들은 밥을 남긴다는 그럴듯한 이유로 남자들의 밥주발은 눈에 띄게 컸다. 그녀의 남녀차별(?)은 밥그릇 크기에만 그치지는 않았는데 남자 손님에게는 뚜렷하게 친절하게 대하는 바람에 여성들의 뒷담화에 늘 오르곤 했다. 밥그릇 때문에 몇번의 소심한 항의가 있었지만 '주는 거나 다 먹고 더 먹으라'는 말에 더 이상 대꾸하는 이는 없었다. 그렇게 여장부처럼 일하시던 할머니가 건강 때문에 나오지 못하는 날이 잦아지다 재개발로 없어지기도 전에 문을 닫았다. 늘 부드러운 눈빛으로 대해 주시고 밥까지 차별적으로 많이 주시던 할머니의 모습에 한여름에도 포대기를 씌워서 업고 다니셨던 친할머니의 모습이 투영되서 집에서는 결코 먹지 못했던 부대찌개를 먹으면서도 집밥을 먹는 기분이 들곤했다.
이런 저런 내 청년시절의 추억과 정서가 구석구석 남아있던 피맛길은 그저 여느 상가빌딩 사이의 개성없는 길로 변해서 이제는 오히려 피하고 싶은 길이 되었다.
커버 사진 출처: https://www.siksinhot.com/P/1504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