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향한 느린 걸음,

천천히 걸으니 비로소 나에게 닿고 있다.

by 서쪽창가

한동안 나는
멈추면 무너질까 봐,
쉬면 뒤처질까 봐
그저 버티기만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걸음을 멈추고 싶다는 마음이 스쳤다.
아무 이유도 없는데
몸과 마음이 동시에
“이제 좀 쉬어도 돼”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너무 오랫동안
나를 잃어버린 채 살아왔다는 사실을.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버티기 위해
하루하루를 견디며 살고 있었다.

그래서 그날 이후
나는 아주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속도를 따라가는 걸음이 아니라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걸음도 아닌
오직 나를 향한 느린 걸음이었다.

천천히 걷기 시작하자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그동안 스쳐 지나갔던 풍경들,
제대로 느끼지 못했던 마음의 결,
그리고 외면했던 작은 상처들까지
조용히 모습을 드러냈다.

빨리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나에게 필요했던 것은
속도가 아니라 여유였다.
숨을 고를 수 있는 공간,
흩어진 마음을 다시 모을 수 있는 시간이
나에게 절실했다.

이제는 안다.
천천히 걷는다고 해서
늦은 사람이 되는 건 아니었다.
잠시 멈춘다고 해서
무너지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느린 걸음은
나를 다시 나에게 데려다주는
가장 확실한 길이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조급해하지 않고,
누구와 비교하지도 않고,
그저 나를 향해
천천히 걸어가고 있다.

그 느림 속에서
비로소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