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떤 순간에도 이방인이 될 수 있다.
어쩌면 엄마가 죽었을 때 슬퍼하지 않을 수 있다. 이방인을 읽고 난 후 떠오른 생각이다.
소설 이방인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그게 어제였나. 잘 모르겠다.” 주인공 메르소는 어머니가 죽었는데도 불구하고 담배를 피우고, 상중에 졸기도 한다. 관 속에 누워있는 어머니를 보지도 않고, 딱히 울지 않는다. 심지어 상 다음 날, 새로운 여인을 만나기도 한다. 주변 사람들은 그에게 어머니의 죽음을 위로하지만, 메르소는 특별한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가 도대체 어떤 인물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머니가 죽었는데, 메르소라는 인간은 슬픔조차 표현하지 않았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인간다운’ 행동을 전혀 보이지 않는 그는, 인간이라기보다는 무기물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책을 다 읽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회는 인간이라면 지켜야 할 관습들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오로지 관습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은 과연 인간다운 것일까? 나는 오히려 이런 사람들이 NPC(게임 속에서 미리 입력된 명령에 따라서만 행동하는 캐릭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나는 언제나 사회적 관습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며 살아왔는가? 이 질문이 스스로에게 던져졌다. 한 번은 친구의 장례식에 갔었다. 가는 길에는 울었지만, 막상 장례식장에서는 이상하게 눈물이 나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과 농담을 주고받기도 했다. 어렸을 때 처음 가본 장례식의 어색함 때문이었을 수도 있지만, 그때 왜 그랬는지는 지금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친구가 화장을 마친 후 빈소를 찾았을 때도 나는 슬프지 않았다. 오히려 나 자신이 그 상황에서 어색하게 느껴졌다.
죽음이라는 주제뿐만 아니라, 길가에 앉아 있는 부랑자에게 전혀 연민을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 배고픈 아이를 위해 빵을 훔친 장발장에게 동정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인간은 자기 내면에 충실할 때 사회적 관습과 매우 어긋난 감정을 가질 수 있다. 만약 인간다움을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에 충실한 것이라 한다면, 어쩌면 메르소는 매우 인간적인 인물일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메르소를 인간답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우리는 때때로 사회에서 이방인처럼 느끼고 행동하지만, 항상 그렇지는 않다. 그러나 메르소는 거의 모든 순간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그저 흘러가는 대로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심지어 자신이 살인을 저질렀음에도, 그는 그 사건을 단순한 '사건'으로 받아들인다.
메르소의 인간다움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인간이 본질적으로 의미를 창조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메르소는 자신의 내면에 충실했지만, 그 어떤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사회적 규범으로 정의된 인간다움은 어느 정도는 생득적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후천적이다. 우리는 자신이 속한 사회와 관계를 맺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창조하며 살아간다. 메르소가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것은 단순히 내면에 충실한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사회적 관계와 자신의 삶에서 적극적으로 의미를 만들어내려는 노력을 거부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우리가 메르소를 인간답지 않다고 느끼는 중요한 이유다.
인간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의미를 통해 자신의 삶을 재구성하는 존재다. 예를 들어, 슬픔이란 감정은 단순히 일시적인 감정이 아니라, 관계와 그 관계의 상실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에서 생겨난다. 슬픔은 그저 감정이 아니라, 우리가 상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것을 우리 삶의 일부분으로 만들어가는 의미 창조의 과정이다. 하지만 메르소는 어머니의 죽음, 자신의 살인 행위 등 중요한 사건들에조차 아무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에게 모든 일은 그저 흘러가는 사건일 뿐이며, 이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느끼는 인간다움과 큰 차이를 보인다.
우리가 메르소와 다른 이유는, 우리에게는 의미를 창조하려는 의지가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삶의 매 순간에서 상황에 맞는 의미를 만들어내고, 그 의미를 통해 자신을 성장시키며, 사회적 맥락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다. 반면 메르소는 이러한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역할을 거부하며, 그로 인해 스스로를 인간답지 않은 존재로 만들고 있다.
이방인은 두 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너도 어느 부분에서는 이방인이 아니냐?" 그리고 "그렇다면 메르소와 너는 무엇이 다른가?" 우리는 어느 부분에서는 이방인처럼 느끼고 살아간다. 그러나 메르소와 다른 점은, 우리가 세상에 가치를 부여하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우리가 창조하는 의미는 우리의 인간다움의 본질적인 부분이며, 메르소의 인간다움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가 의미를 창조하려는 시도를 포기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