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속에서 살고 싶어

독서 감상문-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by 오또쭈

저는 사람이 며칠 만에 질립니다

매일 같은 걸 보기 때문이에요.

이 책의 이야기도… 그저 그랬어요.



변화가 성장이라면

차라리 그대로 남아있기를 바라요

하지만 흐름이란 너무나도 단순하고 축축한 것이라서 엮이기 싫어져요

하지만 나를 보면 꼭 침을 흘려요

항상 있었던 불쾌감이었어요.





<벌허스 프레더릭 스키너>



-원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



사람들은 상과 벌을 사랑해요

신을 사랑하는 아이에게 물어보았어요.



“상은 무엇일까요?”



주고받은 것이에요

좋은 것이에요.



“무엇이 좋은데요?”



기분이요.



“기분이 안 좋으면, 그래도 상인가요?”



아니에요…



“벌은 어떤 건데요?”



싫고 아픈 거죠.



“벌은 어떨 때 받나요?”



죄악을 범했을 때요.



“죄악은 왜 범하나요?”



유혹을 받아서요.



“유혹은 어떻게 하는데요?”



기분을 좋게 해 준다고 약속해요.



‘그래서, 죄악을 저지르면 기분이 좋나요?’



네. 하지만 처음에만 그렇지 곧 벌을 받을 테니 결국엔 기분이 나쁘겠죠.



“유일하게 기분이 좋은 것들이 죄악인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평생 좋지 못하나요?”



기분이 좋지 않은 채로 살아야 해요. 그래야 벌을 받지 않죠.



“그럼 나쁘지도 않고 좋지도 않은 채로 평생 사는 거예요?”



아니요. 언젠간 유혹도 고통도 느끼지 않는 선택된 백성이 될 거예요. 그런 희망을 하니 좋은 거죠.



“그게 뭐가 좋아요?”



벌을 받지도, 받을 행동을 할 일이 있지도 않을 테니까요.



“그게 상이예요?”



아니겠어요? 잘 봐봐요!

나를 아프게 하지 않잖아요

나를 때리지 않잖아요

그게 얼마나 큰 상인 데요!



“아, 그런가요.”



그분은 부모님과 같으신 분이에요.

엄하게 가르쳐주시죠.

설마 부모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없겠죠?

그런 사람은 이미 제가 죽여놨으니 여러분은 안전해요.

그분은 저의 아버지이고

정말 사랑해요.



아파

아파

아파

아파

이제야 보아요

나는 어른이 되었어요

사랑해



‘상’은 대명사가 아니라 명사임을 기억해요.

사랑한다고 행복한 게 아닌 것처럼

사람들은 상과 벌을 사랑해요.





<레온 페스팅거>



-인지부조화를 추구하는 사람들-



나치즘이 승승장구한 데에는 많은 사람들의 지지가 있어요.

분노로 인해 동조한 사람과

권위에 굴복한 사람 말고 다른 유형이 또 있어요.



나치즘은 신앙이자 도덕이에요.

선악을 정하고 행동할 원칙을 양심에 따라 정해요.

적응하려는 본능은 때로는 이성과 감정에 통틀어 존재하기도 하고

이성과 감정을 굴복시키기도 해요.



인간이 생장하는 데에는

완벽한 아름다움이 필요하지 않아요

사람들이 자꾸 그러잖아요, 진리는 없다고

남의 속은 알 수 없다, 어떤 사회든 결함은 있다…

그 정도에서 만족하는 사람들은

아름다움에 적다~앙히 취해요.

이상보다 더 좋은 게 많기 때문이겠죠

‘난 관심이 있었고 노력했다’ 하고 넘어가요.



선악은 확실하게 정해지지 않은 거니까요

또한 양심은 사람에 따라 형태도, 크기도 다르니까요

도덕은 그 어떤 형태로도 등장할 수 있어요.

도덕은 완벽하지 않아도 상관없거든요.

도덕은 정당화와 쇼맨십이에요.



실용적인 것은 돈을 많이 버는 것이라고 해요.

요즘 20대 남자애들은 실용주의에 빠졌대요.

“성공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게 있을까요? ‘성공’이라잖아요!” 이런 생각들은 이제 정당화의 도구예요.

돈을 버는 건 어떻게든 행복이 되니 우선시 되어야 한다,라는 생각으로 시작되어

그 생각을 방해하는 다른 원리들을 무시하는 작업을 거쳐요 (아브라힘계 종교, 불교, 차별 금지법 등)

방해요소가 아닌 것들을 바꾸는 것은 딱히 고려 사항이 아니에요. 완벽할 필요는 없지요! (유교, 애국심, 표현의 자유 등)

자연스레 우익 극단주의로 연결되고 혐오 표현도 정당화가 되는 거예요.



기존 윤리를 대체하는 새로운 윤리예요

다양한 경우의 수는 고려하지 않아요.

원리는 사회의 구심점이어서

대부분이 그걸 따르고 편하게 살아요

베베 꼬인 저만이 그걸 싫어해요.



실용주의는 좋은 거거든요.

행복하기에 좋고, 딱히 걸리는 점도 없고...



난 좋은 거에 알레르기가 있나 봐





<빕 라타네 & 존 달리>



-책임감을 느껴-



이번 반장 선거 공약이 '칭찬 우체국'이라는 거였어요.

어제 제 이만 삼천 원을 써서 갈색 원목 우체통을 샀고요

포스트잇과 파스텔 펜으로 진짜 이쁘게 꾸며봤어요

가장 편지를 많이 받은 아이는 제가 대신 두 번 청소해 주기로 했어요.



어떤 아이에게 톡으로 물어봤어요

너라면 이걸 쓰겠냐고...

이걸 누가 하겠냐고 하더라고요

실용적인걸 하라고

차라리 간식을 주라고요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맨날 뭘 하면

보상으로 간식을 주시는데요

저는 그게 너무너무 싫었어요

제 집에 있는 간식을 줄 테니 제발 주지 말라고

협상이라도 하고 싶었어요.



뭘 먹는 건 너무 혐오스러운 개념이에요.

내가 생명이라는 게 떠올라서


내가 오또쭈라는 게 떠올라서

내가 민족이 있고 인종이 있고 성별이 있고 생각이 있고

그럼 할게 너무 많아지거든요

그래서 지쳐요

제가 갖고 뭘 하고 싶은 것들이 아니거든요

근데 뭐 안 하면 죽을 거잖아요

죽으면 아프잖아요

그냥 잊으며 살까?

어쩌면 급식을 먹으면 속이 안 좋은 이유도

인간이 많은 그곳에서 나도 인간임을 인지하느라 힘들어서 일수도요



잘했으면 뭘 주는 게

그게 그렇게 당연한 거예요?

저한테 너무 외계의 개념이라서

뭘 더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냥 선물로 주고 가면 모를까

아 그냥 싫어요.

왜 그렇게 사냐고 그만 좀 따졌으면

그게 왜 그렇게 이해하기 어려운데

나는 너네가 이해된단 말이야



우체통에 새로운 포스트잇을 붙였어요

편지를 하나라도 써넣으면 하리보를 주겠다고

그런데 어머니가 오셔서는

왜 이렇게 비굴하냐고

뽑아달라고 구걸하냐고

차라리 청소해 주겠다는 걸 빼라고


니가 왜 남의 청소를 하냐고



저는 제가 그런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청소를 대신하는 건 제가 할 필요 없는 일이에요

그런데 저는 상관없이 그러고 싶었어요.

제가 반장 공약으로 한 모든 것들은 다 핑계예요

공약 때문에 한다고 속이는, 사실은 진짜 하고 싶었던 것들



청소 같은 잡일을 할 때면 생각을 비울 수가 있어요.

내가 사람이 아니라 기계인 느낌

앞에서 제가 생명인 게 싫다고 했는데

그래도 인간보단 짐승이 나은 것 같아요.

짐승보단 기계가 낫고요

다 같은 거긴 하지만요.



반장의 업무란

보살피고 들어주는 것.

그걸 하고 싶어 하는 친구가

얼마나 있을까요

처음엔 선의를 품어도

언젠간 지치겠죠.



그럼 정작 진짜 그런 걸 하고 싶은 사람은

질책에 시달려요

왜 그렇게 사냐

자기를 우선시해야지

어쩌구 저쩌구 멍청하고 사려 없는 말들



그런 소리 듣는 게 너무 지겨워서

반장이 되려던 거였어요

봉사를 하고 잡일을 하는 거는

저에게 있어 희생도 아니고 벌도 아니에요.

딱히 누군가를 위해서 한다는 마음도 없는 게

보람도 안 느끼고 측은함도 안 느껴요.



감정적 유대를 위해 봉사를 해요.

사람을 스무 명 죽인 싸이코패스든 스님이든

모두가 자기가 느끼는 것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놨으면

그걸 계속 서로 평생 동안 대화했으면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애들이 즐기는

동화 속의 이야기에 불과하겠죠.

하지만 저에겐 이상주의가 소중해요.



저는 책임감을 느끼면서 살지 않아요.

제 일이든 제 일이 아니든

아무런 심리적 영향이 안 느껴지더라고요

아마 좋은 거는 아닌 것 같지만

저는 무심해 보이기 위해, 이입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책임감 있는 척을 하며 살아왔어요.





<해리 할로우>



-너를 편애하고 싶어-



지금까지 친구를 열명 정도 사귀어봤어요.

대부분 며칠 만에 정이 팍 식고 손절하고 싶어 지더라고요.

같이 놀 때마다 숨이 턱턱 막히고 불편하고…



친구들은 정당화를 너무 오래 하다 보니

부주의하게 말하고 허세를 부리기도 해요

저와 관심사가 다른 건 괜찮지만

저와의 대화를 말싸움과 논쟁으로 바꾸고

감정 이야기를 오글거린다고 무시하는 건 흔하고 싫은 행동이었어요.



그럼 진짜로 좋아한 사람은 있었을까요?

인생을 살면서 항상 어떤 아이들에게 엄청 애틋한 감정이 느껴지는 거예요.

그 애들의 공통점은 두 가지가 있었는데요,



첫 번째: 승부욕이 없고 자존감이 있다.

이는 도덕을 통한 정당화에 그리 메이지 않게 되게 해주는 특성이에요.



두 번째: 개방적이다.

설령 저와 가치관이 다르더라도 제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고 또 고려해 줘요.



하지만 그렇다고 깊은 관계였던 건 아니었어요.

게다가 느껴지는 감정도 정이 아니라 밥을 먹거나 울거나 포옹을 하듯이 무언가 응어리를 해소하려는 느낌이었어요.



이런 아이들과 제가 대체 어떤 관계를 원하는 건지는 아직은 모르겠어요.

이 아이들과 실제로 친구를 해본 적은 없으니 더더욱 그러해요.



딱히 감정이 억압된 적도 없고

누가 뭐라던 항상 솔직했었는데

그냥 좋게 느끼는 게 적게 태어났나 봐요.

싫어하는 건 많고

좋아하는 건 없어요.



저는 마르크스주의에 관심이 있어요

모두가 행복하기 위한

모두가 해당되는 규칙 같은 거니까요.

저는 사람을 개인으로 보면

관심이 안 생겨요.

사람을 인류 전체로 볼 때

국제 사회를 통틀어 묶어 볼 때만 관심이 생겨요.



누군가를 편애하지 못해서 그런 듯해요.

모두에게 일정 수준의 호감이 있어요.

아무리 노력해도 그 선을 넘지 못해요.

예수님이든 이순신 장군님이든 히틀러든 제프리 앱스틴이든

똑같이 좋아해요.

앞에서 말한 모든 것들이

저를 이렇게 만들었나 봐요.

지금까지 알게 된 것 중에 원하는 게 없으니

추구하는 것도 없지요.

그냥 모든 사람들이 솔직하게 살면 편할 것 같아요.

더 바라는 게 없으니 허무해요.



애착을 가져본 적 없는 제가 언젠가는 무언가를 원할 수 있을까요?

그게 아니라면 그냥 삶의 목적 없이 뇌를 비우고 살아야겠지요.

그저 고통을 피해 다니며 살 수밖에 없을 거예요.





<엘리자베스 로프터스>



-내가 누구던-



흔히 사람들은 자신의 정체성이 자신의 기억이라고 해요

하지만 제 기억은 항상 속임수였어요.

무언가를 어렸을 때부터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별로 흥미도 없었던 것들이었어요.



기억 속의 나 자신은 전혀 다른 사람이에요.

그게 ‘나’라는 인식이 안 돼요.

어렸을 때 보았던 사람들과 옛날이야기를 하는 건

연극놀이처럼 느껴져요

변장한 후 타인인 척하는 사기극이에요.



아이는 개구쟁이고

청소년은 철이 들고

어른은 성숙하다

이런 성장의 흐름은 너무 무서운 개념이에요

고정된 흐름이니까요.



저의 불확실한 기억 속에서 한 가지 확실한 건

제가 느끼던 감정은 항상 똑같았다는 거예요.

단지 그걸 해석하고 반영하는 방법이 달랐을 뿐

제가 설령 지금 당장 이전의 기억을 모두 잃더라도

제가 사는 방식은 똑같을 것 같아요

뇌의 용량과 느끼는 것들의 질감은 항상 같으니까요



그래서 제 정체성이나 기억에 딱히 연연하지 않아요.

그냥 이 순간 최대한 덜 아프게 살고 사라지는 게 최선이겠죠.

물론 언젠가 저에게 행복을 주는 정체성을 찾는다면

그걸 유지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할 거예요.

하지만 그때까지 저는

'나'라는 의식을 못할 것 같아요.

제 기억을 소중히 여기지 않아요.



지금은 더 필요한 게 있기 때문이겠죠.

지금은 내가 누구던 어떤 상황이던

감정을 느끼는 것에 집중해야 정체성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이성은 감정을 조금 더 완전하게 진단해 주는

도구로 사용하면 좋을 것 같아요.

사람의 몸은 한 방향으로 성장하는데

그 방향에는 반드시 더 큰 행복이 있는 게 아니에요.

행복을 찾으려면 다른 방향을 찾아보아야겠죠.



도덕이 그래서 싫은 거예요

규범이고 신념이기에

바뀌지 않고 대립만 해요.

가변성 있는 기억과 정체성을

하나의 축으로만 모아서 봐요.

사회 질서와 안전 보장에 필요하다기엔 대체할 것도 많아요

대체하고 싶은 사람이 나뿐인 거지

쓸 때 없이 고집을 부리는 것은

정당화를 하며 사는 게 너무나도 소중하기 때문일까요?



제 모습이 지금은 겉보기에 다른 학우들보다 성숙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어른이 되면 제가 어린애 같을 거예요.

다른 사람들은 그냥 흐름을 받아들이고

기억을 오려내고 이어 붙이며 철이 들 거예요.

저는 그러지 않고 빽빽 불평불만만 내비치며

짜증 나고 우울하다고 신경질을 내며 평생을 보낼 거예요.

다음 감상문에서는 부디 더 긍정적인 결론을 쓸 수 있었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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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토론과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주장하고 설득하는 무거운 글이 되는 걸 굉장히 싫어하게 됐어요.

요즘 저는 유해지는 것을 즐기는 것 같아요.

한국어로 쓴 글은 너무 싫어서 영어만 쓰려했는데


이 정도 글이면 괜찮을 듯해요.

이 책에서 제가 새롭게 느끼거나 읽고 충격을 받은 점은 없었던 것 같아요.

내용은 밋밋했지만 그래도 즐겼던 독서 경험이었어요.

저에게 책 읽기는 지식 얻기나 교양 쌓기의 목적으로 다가오진 않아요.

책은 제가 생각을 오래 하도록 유지해 주는 길잡이 같은 느낌이에요

머릿속에서 오래 사유할수록 생각이 미치는 범위가 넓혀져요.

뚫어뻥 같이



각자의 심리학자들의 이야기를 읽고 생각난 것을 따로따로 표현했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어쩌면 저는 문과 쪽에서도 그렇게 잘하진 않는다고 생각하게 되어요

다양한 생각을 해야 하는 분야임에도 불구 저의 생각만 쫓아다니고 싶으니 말이에요.

저만의 이야기를 쓰는 게 아니라면 어떻게 쓸지 모르겠어요

뭘 쓰든 저만 해당되는 일기를 쓰게 되어요

계속 이렇게만 쓰고 싶어요.



사실 다른 내용의 동화책들도 세상엔 많겠지만…

제가 어렸을 때 읽었던 동화책들의 메시지는 사랑이었어요.

정(情), 애(愛), 권(眷) 같은 가치들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이쁜 것들이었어요.

동화책에서는 중학생들이 읽는 교양서적처럼 도덕을 강조하고 옳고 그름을 주장하지 않아요.

아이를 아프게 하지 않고 동심을 지켜주어요.

어렸을 땐 이야기와 현실을 구분하지 않았어요

모두 저의 세상이었어요.

아이가 아닌 사람들이 읽는 책도 동화같이 환상적이었으면 좋겠어요



이 책에서 저는 다양한 윤리적 딜레마를 배웠어요.

눈살이 찌푸려지는 내용이었어요

공감이 안되어요.... 왜 저게 문젤까....

언젠간 깨닫게 될 거예요, 지금도 거의 다 온 느낌이에요.

하지만 그런 걸 알게 되든 말든 중요한 건 저의 행복이에요.

아직 많이 어려운, 답이 없을 수도 있는 문제지만, 갈피는 있어요.



동화 속 세계는 도덕이 필요 없는 세계예요

그래서 저는 직접 이야기를 지으면서 살래요!

동화 속에서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