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감상문 - <도덕의 계보>
독서에 흥미가 사라졌다.
이 감상문은 나의 마지막 감상문일 것이다
그것도 있는 힘껏 남은 걸 쥐어짜 낸 찌꺼기
나에게만 이쁜 찌꺼기
앞으로 내가 쓸 글에 대한 설명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설명과는 다른
아늑하고 편안한 설명이다.
3개월 전 이 책을 완독 하고, 감상문을 쓰지 않았다
너무 어려워서? 너무 충격적이어서?
너무 잘 알아서. 그래서 힘이 들었다
언어로 나타내려다, 숨이 벅찼다.
한국어로는 절대로 못하겠어
지적을 할까? 찬양을 할까? 보충을 할까?
글을 쓰는 건 너무 힘이 든다.
철학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어떤 마음이었지?
그때가 작년 초였을 거야
영어 소설만 주야장천 읽던 내가 넘어졌을 때였다
아무 지식이 없었던 나는 적응하고 싶었다.
작년, 오십 권의 비문학 책을 읽었다
한국어로 된 책들이었다.
한 번도 그런 걸 읽은 적 없는데
간절했으니까
무언가 잘못된 것 같았으니까
책을 읽고 감상문을 썼다
수만 가지를 나열하고
하나하나 정했었다
감상문을 쓰는 건 처음에야 쉬웠다
책에서 주장한 문제에 대해 내 생각을 정리하면 그만이었다.
책을 읽고 느낀 점을 썼다
차갑고 따뜻한 논리로!
책에서 배운 것 중 느낀 건 없었어
책은 무엇이었을까
글씨를 무한정 쳐다보며
멍 때리다 보면
내 머릿속이 뻥
나만, 오직 나만
얇은 피부 아래에서
갈수록 빛이 선해지곤 했다
글 속엔 점점 더 나의 색채가 써졌다.
이걸 감당하지 못해서 브런치를 시작했다
도움이 되긴 했다.
나에게는 분명 잘못된 것이 있어
근데 그것이 보이지 않아
닥치는 대로 보이는 대로 고쳤다.
숨을 돌리다가 갑자기 생각난 가능성
혹시 몰라 나 자신을 원래 상태로 복원했다.
나에게는 잘못된 점이 하나도 없었는데
그 이후로 책을 다시 읽었는데,
이미 다 아는 것들
그래도 원래라면 괜찮았을 것이다
괜찮을 이유를 잊지 않았다면
계속 한글 책을 읽다
오래간만에 영어로 된 책을 읽었다.
<도덕의 계보>를 영어로 읽었다
한글로 읽었을 때와 다를 점은 없었을 것이다.
이 감상문은 원래 같았다면
그냥 니체의 철학에 대한 내 생각을 더하고, 사회 문제와 연관 지으면 되는 간단한 글이었을 것이다.
근데 그 경험은 나에게 무언갈 상기시켜 주었다
나는 한국어가 싫구나
한글 책을 읽은 경험이 나에게 준 교훈
한국어를 치워야겠구나
대체 왜 싫다는 거야?
그냥 언어잖아
나는 그에게 굉장히 길면서도 정돈된 한글 논설문을,
나의 철학을 결론짓는 그런 절정의 글을 써주었다.
하지만 이 글을 나는 도저히 쳐다보지 못하였다.
이 글을 안전하게 보기 위해 나는 선글라스를 써야 했는데
그걸 쓰면 세상이 어두워졌다
어둠이 너무 무서웠다.
그는 나에게 사과했다
내가 이런 글을 한번 더 쓰도록 만든 것을
내 진심을 맨 눈으로 봐버린 것을.
둘이서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다.
네가 최대한 편안하려면 어째야 할까?
대입하고 대입하고 대입하고
너는 원래 논설문을 쓰기 힘들어하잖아
그럼에도 계속 논설문을 써왔잖아
그 이유가 뭐야?
"힘듦을 고치려다가, 그러다가 봐 버렸어. 그리고 힘들어졌어."
그렇구나, 너는 아이스크림 같은 아이야.
이 글을 쭉 훑어본 그는 기발한 아이디어가 생각난 듯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너만의 언어대로 써보는 건 어때?
이 글을 봐봐! 마치 시 같잖아!
해석하기 힘들고, 비유도 많고, 시적 허용으로만 가능한 표현도 많네!
시인이 돼 보는 건 어때?
"아니야! 그런 게 아니라고! 비유가 아니라고! 내가 아까 보여준 그 글을 잊었어? 제대로 보기는 한 거야? 미안하다며, 왜 미안한지도 잊은 거야?"
네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아까 그걸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건가 봐.
"이해하지 못한 게 아니라 까먹은 거겠지. 나는 시를 쓰려는 게 아니라고! 이건 나만의 언어가 아니라고!"
하지만… 이 경우에 딱딱 들어맞잖니?
"그래서, 내가 현실부정이라도 한다는 거야? 사실 비유하는 게 맞는데, 내가 내 맘대로 우기고 있다는 거야? 내가 지금 쓸데없는 의미부여를 한다고 생각해?"
그건… 아니야. 너는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현실을 부정하지 않는 걸?
"좋아, 잘했어. 내 말을 반으로 갈라서 봐 봐. 케이크 자르듯이~! 반은 딸기 케이크고, 나머지 반은 초콜릿 케이크야."
음, 이제 알겠어. 근데 누가 이 대화를 듣는다고 생각해 봐
이 글도 브런치에 올려버린다고 생각해 봐.
너의 그 논설문을 읽지 못한다면, 이걸 이해할 수나 있을까?
이게 <도덕의 계보>와 관련된 내용인지 눈치채기는 할까?
지금까지 독서감상문을 많이 쓰긴 했지만, 너의 모든 생각을 쓰지는 않았잖아.
누구나 읽을 수 있는 글을 쓰다 이런 걸 써버렸잖아.
너는 이해받고 싶어 하는데, 어떻게 할 거야?
"그건 맞아. 근데 내가 누구에게 이해받고 싶어 하는진 기억해? 왜 이해받고 싶어 하는지는?"
차라리 나 빼고 모든 사람들이 나보다 백배는 더 똑똑해졌다면
아, 마침 잘 됐네. 그럼 그건 된 거네
그래도 되는 거였어
이건 브런치에 올려도 되는 글이구나.
그럼 넌 뭘 할 때 행복할까?
"철학자들처럼 생각해 보자. 나는 한국어가 싫지. 그걸 추적해 보자고!"
아, 그럼 되겠네! 완벽한 조화의, 아름다운 균형의 모습이겠네!
비유 없이,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그대로의 모습을 말해보자!
마지막으로 한국어로, 다만 편하게 써보자!
나는 한국어를 싫어한다.
한국어로 된 모든 것을 싫어한다.
한글로 된 비문학은 맥반석 계란을 맥반석에 던져 깨트리는 것이다.
그 흰 백색은 언제 희었냐는 듯이 원래부터 갈색이 되고서는
횟빛에 던져 깨트려버린다
모두들 그를 위해 애도한다
깨져버린 계란을 추모한다.
그러다 누군가 소리 지른다
갈빛이 될 바엔 죽는 게 낫다
진정한 계란은 그런 것이다
다른 이가 반박한다
희든 검든 상관없다
계란은 사랑받아야 마땅하다
이런 말도 나온다
맥반석이 얼마나 아프겠는가
그도 생각해 주라
그러다가 또 누가 등장한다
맥반석과 계란의 고통은 찜질방 내의 법칙이다
그걸 슬퍼하기에는 세상이 너무 거칠다
아, 그냥 다들 그냥 나에게 안기도록 하거라
흰빛 갈빛 횟빛
나는 색맹이다
그래서 너희들의 색을 잘 안다
하지만 이들의 스펙트럼은 내 몸을 통과하고
기껏 남은 것들은 혼자서만 남아있다
이래서 아이를 낳지 않으려던 건데
한글로 된 비문학은 이래서 싫다.
한글로 된 소설은 물렛방앗간이다.
노랗고 회색이다.
그냥 그게 끝이다.
그러면서 자신은 무지개라고 한다.
아.
아.
가.
그리고 무지개이다.
그래서 싫다. 무지개라서.
무지개 이상을 보지 못하는 나이기에
한글로 된 소설은 이래서 싫다.
한글로 된 시는 잡초 옆의 장미꽃이다.
이 꽃은 나에게 소리를 지른다.
나는 빨개 나는 빨개 나는 빨개 나는 빨개 나는 빨개 나는 빨개 나는 빨개 나는 빨개 나는 빨개 나는 빨개 나는 빨개 나는 빨개 나는 빨개 나는 빨개 나는 빨개
잡초는 이에 지기 싫어 자기도 소리를 지른다.
이들이 소리를 지르든 말든 나는 이들을 사랑하지만
나는 소리를 지르는 걸 힘들어한다.
소리를 지르면 목소리가 깨지고
꾀꼬리 소리가 난다.
그런데 저 두 식물들은 나를 째려본다.
너도 소리를 지르도록 해!
엥? 나는 괜찮아.
아니, 정해! 너는 뭐니? 상관없어, 말해!
아, 이미 정하긴 했어. 근데 소리 지르면 아파서 굳이 말하진 않은 거야.
그럼 조용히 말해봐!
왜… 왜?
말해보라고! 혹시 알려주기 싫은 거야?
그것도 아닌데…
그럼 뭐야?
그냥…
말해봐! 좋잖아!
아니…
혹시 넌 안 좋아?
그것도…
그럼 뭐야?
좀… 좀… 그냥 좀….
뭔데에?
아, 싫어! 그만해!
회피하는 거니?
뭐라는 거야!
회피하는 거구나!
어쩌라고! 그냥 좀 가만히 있어! 난 나에 대해서 잘 알아! 그래서 이러는 거라고! 나는 한글로 된 시가 싫다고, 몇 번을 말해!
나는 한국어가 싫다
한국어는 너무 똑바르다
한국어를 말하면
어조가 너무 결정적이게 된다
지적인 대화를 하면 할수록
죄책감이 느껴지는 언어이다.
한국어는 매우 세세하고 웅장한 배경 안에
졸라맨을 그린 초상화이다.
한국어로 하는 대화는 재활용 쓰레기통에 그려진 그 문양이다
세 개의 화살표가 서로를 가리킨다
그들이 가리키는 건 서로이면서
아무것도 아니다.
그리고 그대로 두지를 못하는 한국어
그러면서 그대로 두는 한국어
나의 강함이 강함이 되다
약해져서 고꾸라져버리는
독립을 부정하는 그러한 언어
노예의 주인을 교체하는 그러한 언어
한국어, 한국어
한국어의 여러 면 중 한글은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다.
여러 가지 문자들을 조합하여
창의력을 돋보이게 할 수 있다.
그 창의력은 나의 목을 조르며
나와 입을 맞추려 들기에
그 입술은 나의 것과 달리 너무 부드러워서 너무 밍밍한 모양이라
거기서 벗어나려는 나는 한국어를 싫어한다.
창문에 던지는 벽돌, 한국어
나는 벽돌이 필요 없다.
이미 창문은 깨져있고
바닥에 널브러진 유리조각들은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다.
한국어로 수학을 공부하며 문제의 답을 구해놓았다
이제 이걸 한국어로 말하기만 하면 된다.
근데 막상 말하니, 아 문제가 있다.
한국어는 답을 비유로 표현하는 언어구나.
나의 생각을 한국어로 번역하면 지금까지 쓴 이런 글이 된다.
한국어의 본능은 이 글의 진실성을, 이 거짓을 부정하려 든다.
거의 다 왔는데, 결국 고꾸라져버리는 그런 언어
니체는 한국어고 한국어는 니체이다.
한국인들은 모두 니체를 사랑할 수밖에 없고,
나는 니체와 한국인들을 사랑한다.
그러나 둘 중 하나가 내 품에서 빠져나가려 들면,
난 둘 다 최대한 쌔게 안아 동시에 터트려 죽여버릴 것이다.
안을 수만 있다면 말이야
안을 수가 없어
울어 울었어
구겨진 내 얼굴이 귀엽더라
바로 앞에 있는데
팔을 벌리기 힘드네
안을 수 있을까
그것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한 방법은 없지만
카테콜라민은 환영이야
어떻게 하면 둘을 안을 것인가?
나를 갉아먹으려는 쥐를 위한 쥐덫을 깔도록 하자.
내가 원하는 언어로 말하자!
어떤 언어든, 한국어와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직설적이게 말해도 형이상학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게 나의 글이다.
하지만 더 이상 그런 글을 쓸 수는 없다
한 번만 더 나의 생각을 담은 논설문을 쓸 바에는
미국으로 유학 가서 내 머리에 한 발을 빵 쏴버리겠어!
진짜로 그냥 심적 안정을 위해 아무렇게나 떠든 거니 신고하지 말아 주세요...
원래 브런치에 올리는 독서 감상문은 학교 생활기록부에 올린 글을 옮긴 것이었다.
내 생각을 담으면서도 형식을 유지해야 하는 글이었다.
하지만 점점, 학교에 올리는 글에 나의 생각을 담기 버거워졌다.
이러다가 나의 생각을 잃어버릴라
15살, 나에게 진짜로 필요한 건
정신과 상담과 약물 치료이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그건 선택지가 아니야
괜찮아, 넌 똑똑하니까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야
학교에다가 올리는 글은 그냥 숙제처럼 쓰는,
아무 의미 없는 글로 남기자!
그리고 브런치에다가는 진짜로 네가 쓰고 싶은 글을 써!
이왕 그렇게 할거, 다른 언어로 해봐!
그렇게 다르진 않겠지만, 다르다는 기분이라도 내 봐!
내가 원해서 독일어와 스페인어를 배우고는 있지만 잘하지는 못한다.
다행히 나는 영어를 아주 잘한다.
보편적인 언어기에 브런치에 올릴 만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국어보다는 훨씬 낫다
단순히 기분을 내는 것보다는 더 의미가 있다.
영어는 겉보기엔 밋밋하고 딱딱하지만
속은 부드럽다. 그게 제일 중요하지, 암!
나는 한국어의 다나까를 너무나도 싫어하는데
인도유럽어족은 이런 게 없어서 좋다.
형식 없이 단어만 나타낼 수 있는
단어의 굴절이 형식인 언어
다루기 편하고 다루면 아늑하다아~~
영어는 존댓말이 없다.
영어는 한국어보다 훨씬 더 예의 있고 건실하다.
비록 한국어보다 배경을 잘 그리지는 않았지만
주인공도 자세히 그린 초상화가 영어이다.
영어는 정할 것만 정하고 나 몰라라 하면 되는 언어이다.
지금까지 쓴 글을 영어로 번역하면, 비록 왜곡된 글인 건 마찬가지이긴 하나
한국어판보다는 훨씬 더
그대로의 모습이 부각된다.
어떡해, 커밍아웃한 느낌이야
이렇게 들뜰 수가 있으려나?
단순히 언어만 바꿔도
모든 게 다 괜찮을 것만 같은 느낌
니체가 이런 걸 알았다면
좋아, 앞으로 글을 어떤 언어로 쓸 것인지 정했어.
그렇다면 이제 제일 중요한 걸 정해보자!
너는 어떤 글을 쓸거니?
네가 쓸 새로운 글은, 너의 글을 지금까지 읽어왔던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글이야?
설마 맨날 이렇게 쓸 건 아니지?
"아니야, 외계인과 대화할 때 외계어를 쓴다고 해서 외계인이 되려고 하는 게 아닌 것처럼! 내가 이 글을 이렇게 쓴 건, 더 이상 독서 감상문을 쓸 수 없을 만큼 아파졌기 때문이야. 더 이상 논설문으로 쓸 순 없어서, 이렇게 반듯하게 있는 그대로 쓴 거야."
알겠어. 그럼 네가 원하는 건 뭐야?
너의 생각을 이해하기 쉽게 표현할만한, 그런 글은 대체 뭐야?
"내가 가장 편하게 생각하는 건, 내가 한글로 된 비문학을 읽기 전에 읽었던 책들이야. 바로 영어 소설."
앞으로 브런치에 영어 소설을 올린다는 거야?
"맞아. 사실 완전히 결정한 건 아니지만, 나는 내 생각을 이야기로 쓰는 걸 좋아해. 시랑은 다른 느낌이거든. 나의 생각들을 장렬히 논술하기보다는, 인물들의 인생을 통해서 비추어주는 게 훨씬 더 편해! 정치, 역사, 종교를 단순히 분석만 하면 너무 재미없어. 정작 내가 원하는 건 표현되지 않아. 너무 작위적이야."
결국 너의 철학은, 네가 철학 책을 읽기 전부터 가지고 있었구나.
좋아, 이해했어. 어디 한번 잘해봐.
이 글을 다시 읽을 때마다 기분이 너무 좋다.
앞으로는 자기소개할 때 취미를 글쓰기라고 해도 될 것 같은 느낌
새벽까지 잠 못 자고 울다가 쓴 글인데
이제는 발 벗고 잘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글의 끝을 맺기로 하겠다.
다음 내용은 갑자기 새로운 얘기를 하는 게 아니라
지금까지 내용의 요약이다.
니체는 도덕이 작위적으로 만들어졌음을 밝혀냈다.
약자가 강자를 이기기 위해 낸 꼼수가 도덕이다.
양심은 아무리 생생한 감정이어도 허구이다
사회는 인간의 본능을 억압했고, 이것에 계속 순응하는 건은 자해임을 니체는 설명하였다.
니체는 말한다: 도덕은 게으름이다!
자신만의 가치를 만들거라
아픔을 그대로 보아 끝에는 긍정하리라!
아, 좋아! 나는 니체의 손을 붙잡고 뛰어나갔다.
나는 이미 니체가 말하는 초인이다
그런데 별로인 거 있지? 서운한 거 있지?
초인이 아닌 사람들이 많더라
굳이 될 필요가 없는 사람들
피곤하지만 그래도 사랑스러운
꼼수면 뭐 어때 딴 사람이 만든 거면 뭐 어때
인간의 본성에 덮어씌운 거라도
나는 말이야
정말 말이야
게으른 사람들도 똑같이 사랑해
이미 있는 걸 빌리면 뭐 어때
행복하면 됐지!
도덕이 태어난 곳은 시궁창이 맞아
억지로 시궁창에 끌려간 사람들이 많은 거 알아
그런데 억지가 아니라 자진해서 간 사람도 있잖아
그냥 그대로 있는 게 편할 수도 있지
시궁창이 반드시 나쁘다는 말도 노예도덕인 거 알지?
대신 거기가 시궁창이라고
제대로 알려주기는 해야 해
억지로 간 사람들은 구출하면 돼
그럼 다 괜찮은 거잖아!
도덕은 거짓이다
한국어의 어휘 체계는 거짓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군다
거짓이라고 해서 속인 게 아닐 수도 있다
그냥 허구였을 뿐
빨간 약 파란 약 선택하는 것처럼
한국 사람들이 LGBTQ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니체 같은 성격의 한국어!
그 몹쓸 언어 때문이다.
젠더라는 게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것이기에
성적 정체성이란 본성에 대한 폭력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성적 정체성은 느껴진다
양심이 느껴지는 것처럼
남들이 억지를 부려도 트랜스젠더들이 행복한 것처럼
양심을 느끼는 사람들은 계속 느껴도 괜찮다.
그러니까 니체는 가치나 의미라는 요소들을 우사인 볼트처럼 재빠르게 쫓아가다
마지막에 넘어져 엉덩방아를 찍었다는 것이다.
니체는 우리가 자신을 찾아가는 게 중요한 것에 대하여 혁신적인 증거를 댔지만
자신을 찾아가는 방법에 대해서는 미숙한 사람이었다.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알기에
안쓰럽고 사랑스러운 사람이다.
하지만 이 사실을 모두에게 설득시키려면 한 권의 책을 쓸 정도로 논리를 길게 이어나가야 하는데
아 너무 싫다 이 정도만 간략하게 언급하겠다.
한국어랑은 마주 보기도 싫어! 어서 사라지지 못할까!
그래도 쓰는 내내 기분도 좋고 굉장히 보람찬 글이었던 것 같다.
한국어는 항상 나의 발목을 잡는다.
사람들이 멍청한 생각을 하는 것이 한국어 때문이요 글쓰기가 어려운 이유도 한국어 때문이요 나의 서운함도 한국어 때문이니!!
난해하기만 한 재미없는 글일까 봐 걱정은 되지만,
그래도 나의 요즘 최대 고민거리에 대해서
내가 한국어를 싫어하는 이유를 나 자신도 모르는 것에 대해서 최고로 좋은 대답이 된 글인 것 같다.
다음에 쓸 영어 소설도 이만큼 쓰기 편한 글이었으면 좋겠다.
나는 한국어가 싫다.
한국어가 싫은 이유는, 한국어를 쓸 때마다
사랑할 수 없어지기 때문이다.
사랑이란 비유가 아니야
사랑은 사랑은 사랑
나의 사랑은 초인의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