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나이에 처음 교사가 되었을 때, 나는 '만고땡'이라는 말을 주변 어른들에게서 종종 듣곤 했다.
만고땡: 온갖 괴로움을 뜻하는 '만고'와 끝이라는 은어 '땡'의 합성어로, 자신을 괴롭게 하던 괴로움이 끝났을 때 쓰이는 말이다. -네이버 국어사전
"O월 O일부터 방학이에요."
"만고땡이네."
"O월 O일은 시험 기간이라 일찍 마쳐요."
"만고땡이네~ 만고땡!"
"칼퇴하면 4시 30분이에요."
"아이고~ 우리 OO이가 제일 만고땡이다!"
그러면 나도 똑같이 "네~ 만고땡이예요. 제가 최고 만고땡이죠!"라고 웃으면서 말하곤 했다. 그렇게 대답하면서 가슴 한편이 답답하고 마음이 불편했다.
사회에서 보는 교사란 어떤 직업인가? 방학 동안 쉴 수 있고, 퇴근이 빠르며, 육아휴직과 복직이 자유로운 직업이다. 자주 쓰이는 표현 중 좀 더 노골적인 것들을 가져오자면 '아이 키우기 좋은 직업, ' '여자가 하기 괜찮은 직업, ' '철밥통' 정도가 되겠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하여 가장 잘 나타내는 말이 사실 '만고땡'인 것이다.
이 만고땡인 직업을 가지고서 수업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열심히 자료를 만드는 것이 왠지 민망하게 느껴졌다.마음만 먹으면 푹 쉬고 해외여행도 실컷 다녀올 수 있는 방학 때, 굳이 수업 관련 연수를 찾아 듣는다고? 마음만 먹으면칼퇴 후 여유를 즐길 수 있는데, 굳이 집에 와서까지 교재 연구를 한다고? 왜? 수업을 열심히 한다고 해서 월급이 오르는 것도 아니고, 누구나 인정할 만한 커리어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열심히 준비한 수업이 무조건 잘 될 것이라고 보장할 수도 없다. 이렇게나 '전문성'이라는 게 모호할 수밖에 없는 직업에 헌신하는 내 모습이 남들에게는 바보처럼 보이지 않을까? 소위 말하는 '진지충'으로 보이는 게 아닐까?
나는 남의 눈치를 정말 많이 보는 사람이었다. 나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를 다른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고민하는 데 엄청난 에너지를 썼다. 끊임없이 나 스스로가 다른 사람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칠지 생각하고 신경을 곤두세웠다. 속으로는 오만가지 걱정을 품고 살아도 남들에게는 심정적으로 평온한 사람, 튀지 않고 무던한 성향인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는 대체로 남의 이야기를 들으며 맞장구만 치는 경우가 많았고, 그 자리에서 어쩌다가 주목받는 상황이 생기면 심장이 쿵쾅거리면서 가장 무난한 말을 해내려고 노력했다.
이런 나에게 있어 '수업'을 고민하는 교사는 굉장히 튀는 사람이었다. 첫 발령을 받고 출근했을 때 모든 선생님이 신규 교사인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업무에 대해 알려주었지만, 그 누구도 내가 어떤 수업을 준비했는지, 어떤 철학을 바탕으로 학생들을 가르칠 건지에 대해서는 물어보지 않았다. 학교 현장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바쁜 곳이었고, 각자 맡은 업무를 정신없이 쳐내다 보면 서로 얼굴 한 번 보기 어려운 날도 많았다. 어쩌다 여유가 생겨 대화를 나누게 되어도 수업이 주제가 되는 경우는 없었다. 모든 선생님이 1년에 한 번 하는 '공개수업'은 눈치껏 참관하지 않는 게 예의였다. 다른 사람의 수업은 건드리면 안 되는 성역 같았고, 각자의 수업은 알아서 잘 해내야 하는 것이었다.
그 사이 나는 내 수업에 전혀 확신을 갖지 못한 채로 계속해서 교단에 섰다. 다행히 하면 할수록 요령이 생겨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수업을 해나갈 수 있었지만, 내가 과연 제대로 된 수업을 하고 있는 게 맞는지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답답함을 참을 수 없었던 나는 각종 수업 관련 연수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시간표를 바꾸고 버스를 갈아타면서 대외 공개 수업을 하는 학교로 찾아갔고, 아무 연고도 없는 학교의 수업 모임에 대뜸 찾아가 서로 민망해하기도 했다. 대외적으로 수업을 공개하거나 연수의 강사로 오는 선생님들은 마치 다른 세상 사람 같았다. 낯선 자리에서는 더욱 튀는 걸 두려워했던 나는 언제나 조용히 듣고 메모한 뒤 집에 돌아와 혼자서 고민했고, 내 수업에 이렇게도 저렇게도 적용해 보았다. 그런 식으로 나만의 수업 방식과 철학을 그야말로골방에서 조금씩 만들어갔다.
그렇게 홀로 고군분투하던 첫 학교를 떠나, 두 번째로 발령받은 학교에서 한 선생님을 만났다. 그새 일머리가 조금 생긴 나는 점심시간마다 담소를 나눌 여유가 생겼고, 선생님과 둘이서 대화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선생님은 항상 겸손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는 편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나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선생님이 꺼내는 대화의 주제가 '수업'이었던 것이다. 어떤 수업을 하고 싶은지, 어떤 교사가 되고 싶은지, 그러기 위해서 어떤 공부를 하고 싶은지 선생님은 자주 얘기하곤 했다. 속으로는 놀랍고 반가우면서도 여전히 낯섦과 주목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던 나는 늘 하던 대로 적당히 호응하며 진심을 다 드러내지 않는 화법을 썼다. 선생님과의 대화는 항상 신선하고 즐거웠지만, 대화가 끝나면 가슴 한편이 답답했다. 마치 "만고땡이예요."라고 말할 때와 같은 기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은 학교 메신저로 학교의 모든 선생님에게 같은 내용의 메시지를 보냈다. 진심이 가득 담긴 긴 메시지의 내용을 전부 외우지는 못하지만, 아직까지도 잊히지 않는 것은 메시지의 첫인사이다.
안녕하세요. 수업과 커피를 좋아하는 교사 OOO입니다.
처음이었다. 이렇게수업을 좋아한다고 분명하게 말하는 선생님을 처음 보았다. 그것도 사적인 자리에서 말한 것도 아니고, 모두가 읽는 메시지로 보내다니. 튀는 걸 이렇게 두려워하지 않다니.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평소 내가 봐온 선생님은 자기주장을 강하게 펼치기보다는 언제나 겸손한 모습으로 남을 경청하는 사람이었다. 어쩌면 이런 메시지를 보내기까지 선생님도두려웠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메시지를 읽으면 읽을수록한 문장 한 문장 엄청난 정성과 용기가 느껴졌다. 그리고 '나도 저런 교사가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문득 생겨났다. 선생님이 보낸 메시지의 내용은 수업 모임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나는 용기를 내 떨리는 손으로 함께 하고 싶다고 답장을 보냈다.
그 뒤 선생님과 함께 한 2년은 놀라운 시간이었다. 선생님은 누구보다 솔직하게 자신이 걸어온 길과 지금의 고민을 모임에서 털어놓았다. 그리고 모임이 끝날 때마다 몇 날 며칠이 걸려 정성스레 적은 후기를 모두에게 나눠주었다. 모임에 참석한 모든 선생님들은 덩달아 진지해졌고, 자신의 수업과 고민을 있는 그대로 내보였다. 우리는 바쁜 와중에도 매달 퇴근 후 시간을 비워 꼭 만났고, 대화의 주제는 언제나 수업이었다. 잘 되었던 수업, 잘 되지 않았던 수업, 하고 싶은 수업에 대해 얘기했다. 수업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교사는 더 이상 튀는 사람이 아니었다. 모두가 솔직했다. 잘 되었던 수업을 즐겁게 자랑했고, 잘 되지 않았던 수업을 애써 포장하지 않았다. 너무 힘들었던 날은 대뜸 우는 선생님도 있었고, 모임이 끝나면 "선생님과 함께 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해요."라고 카톡을 보내는 선생님도 있었다. 나는 여전히 말할 때보다 들을 때가 많았지만, 나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하기 시작했고, 감정을 드러내는 법을 배워갔다.
그동안 만나온 많은 선생님들이 떠올랐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선생님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항상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한 학기 학습지를 모두 미리 만들어 일찌감치 인쇄를 맡겼던 선생님, 학생들의 요청으로 매번 칼퇴를 포기하고 방과후교실을 열었던 선생님, 애써 만든 수업 자료를 함께 쓰자며 보내주던 선생님, 수업이 끝날 때마다 학습지를 한 아름 가져와서 도장을 찍던 선생님, 조는 학생을 깨우던 선생님. 사실은 모두가 정성을 다해 자신의 수업을 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저 그 누구도 먼저 말로 표현하지 않았던 것뿐이었다. 수업을 좋아하는 교사들이 많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나 자신이 얼마나 오만했는지 깨달았다.
마지막 모임이 끝났을 때, 나는 후기에 나의 진심을 적었다.
혼자서만 안고 있던 수업 고민을 동료 교사에게 털어놓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했다. 이 모임을 열어준 OOO 선생님, 참여한 모든 선생님들이 용기를 냈고, 나도 덕분에 내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수업 모임이 끝나고 세 번째 학교에 발령받은 어느 날, 나는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다. 휴직을 앞두고 아쉬워하는 나에게 친구들은 이유를 물었고, 나는 비로소 이렇게 대답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