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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병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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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보 Nov 10. 2022

세 가지 약과 부작용에 대하여

내게 맞는 뇌전증 약을 찾아서


자신에게 맞는 약을 찾는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더라. 나의 경우 총 세 가지 종류의 뇌전증 약을 먹어보았다. 처음 뇌전증을 진단받았을 적에 먹었던 자론틴, 아주 잠깐 먹었던 케프라정, 지금 꾸준히 먹고 있는 트리렙탈이 있다. 그런데 이 중 스파이가 하나 있다. 뇌전증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라면 이미 알겠지만 정답은 조금 뒤에 밝히도록 하겠다.


처음 뇌전증을 진단받고 먹었던 자론틴은 내가 가장 심하게 부작용을 겪었던 약으로 약 2주 동안 복용했던 걸로 기억한다. 괜찮아 지길 바라며 먹었던 약이지만 곧 그게 아니란 걸 온몸으로 느껴야만 했다. 약을 먹고 2주를 구토와 설사로 고생했기 때문이다. 뭘 먹어도 속에서 받아들이지 못해 김밥 3개 먹는 것조차도 힘겨웠다. 그때를 생각하면 정말 끔찍하다. 식욕은 없었지만 아예 안 먹을 수도 없어 억지로 먹었는데 먹으면 먹는 대로 토하는 일의 반복이었다. 그렇게 시름시름 앓다 보니 몸무게도 훌쩍 빠졌더랬다. 그때 약 10kg이 빠졌다.


이 증상의 원인이 약 때문일 것이라고는 생각 못했기에 바보같이 버티며 낫기 만을 기다렸다. 그때까진 정말 체한 줄로만 알았으니까. 그러던 중 이 증상이 시작된 때가 약을 먹고서부터라는 걸 깨닫고 다시 병원을 찾았다. 처음 갔던 병원이 아닌 다른 지역의 큰 대학병원으로 갔다.


의사 선생님 말에 의하면 내가 먹고 있던 자론틴이 보통은 소발작의 경우에 처방하는 약이라 나와는 안 맞는다는 것이 아닌가. 그뿐만이 아니었다, 분류하자면 난 부분 발작이라 그 약이 맞지 않았던 것도 있지만 용량도 맞지 않게 많았다. 그러니 구토와 설사 같은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여기서 눈치챘겠지만 자론틴이 바로 스파이의 정체다. 케프라정과 트리렙탈은 부분 발작 등의 경우에 쓰이지만 자론틴은 소발작에 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이후 새로 처방받은 약이 바로 트리렙탈이다. 처음에 언급했듯 현재 내가 먹고 있는 약이기도 하다.


정확한 이름은 트리렙탈필름코팅정이다. 노란 타원형의 트리렙탈 300mg을 아침에 한 알, 저녁에 한 알 총 두 번 먹는다. 신기하게도 이 약을 먹으면서는 기존에 겪었던 부작용도 없고 다른 부작용도 일어나지 않았다. 처음에는 조금 졸리나 싶었지만 나중엔 졸린 증상도 없어졌다. 그제야 나에게 맞는 약을 찾았다는 사실에 안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한 번의 부작용을 겪고 난 뒤인지라 한동안은 불안을 가진 채로 학교를 다녀야 했다.


신체적으로 드러나는 부작용이 없더라도 언제 또 부작용이 생길지 모른다는 생각은 사람을 피로하게 만든다. 원래 뭐든 적응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한 법. 나의 불안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실제론 효과가 없는 약을 환자에게 먹이고 그걸 긍정적으로 믿고 먹은 환자의 병세가 호전되었다는 ‘플라시보 효과’가 있듯 약이 효과가 있을 거라 믿는 것도 어느 정도는 필요한 것 같다. 불안이 지속되면 스트레스가 되어 오히려 몸에 독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잘 맞는 약을 찾았는데 케프라정은 왜 먹었냐고? 딱히 부작용이 있어 바꾼 것은 아니었다. 트리렙탈만 몇 년 먹던 중, 의사 선생님이 케프라정을 추천해주셨다. 케프라정은 탁월한 효과와 적은 부작용으로 뇌전증 환자의 3분의 1이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기억하기로 당시 내가 약을 바꾼 가장 큰 이유는 하루에 한 알만 먹으면 되기 때문이었다. 트리렙탈은 하루에 두 번 나눠 먹어야 하다 보니 어쩌다가 한 번씩 깜빡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하루에 한 알만 먹어도 된다면? 더 이상 깜빡하고 약을 먹지 않는 일은 없어지지 않을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더니,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잘 먹고 있던 트리렙탈에서 케프라정으로 환승했다. 다행히 별다른 부작용은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나 보다. 어느 날 부모님이 내게 말하길 최근 들어 예민해진 것 같다고 했다. 사람이 살다 보면 가끔 예민해질 때도 있지 않나? 그런데 생각해보니 정말 유별나게 짜증 내긴 했다. 딱히 예민하게 굴 이유가 없는데도 갑자기 팍 짜증이 났다. 그건 뭐라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느낌이었다. 분명 짜증이라는 감정이 들었는데 왜 그런지는 모르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스스로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생각에는 그게 케프라정을 먹은 후로 생긴 부작용인 것 같다고 하셨다. 약 때문에 그럴 수도 있는 건가 의문이 들었지만 그것 말고는 별다른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결국 다시 병원을 찾아가 원래 먹던 트리렙탈을 먹기로 했다. 내가 예민해진 것이 약 때문이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다시 약을 바꾼 후로 더 이상 예민하게 구는 일은 없었다.


많은 사람이 먹는 약이라 해서 모두가 같을 효과를 볼 수는 없다. 내가 겪었듯이 말이다. 내게 잘 맞는다던 트리렙탈도 다른 누군가에게는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한다. 맞는 약을 찾는다는 건 어쩌면 긴 여정이 될지도 모른다. 나도 세 가지 종류를 먹어 봤지만 이 중 내게 맞는 약은 한 개 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과학은 계속해서 발전하고 그와 함께 새로운 신약들도 개발되어 나오니 시간이 조금 걸릴지라도 분명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암환자를 대상으로 웃음 치료를 하는 건 웃음이 뇌기능과 면역력을 향상시켜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울이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주 천천히 나를 좀먹는다. 그러니 힘들더라도 긍정의 마음을 가지고 웃어보자. 웃음도 치료제가 될 수 있다. 비싼 값을 지불하지 않아도 효과 있는 치료제가 말이다. 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웃으면 복이 온다고 어쩌면 정말 좋은 일이 생길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그 말의 힘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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