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의 무술

by bansan


과거 문화의 산물인 무술의 가치는 현대 문화 속에서 제대로 평가받기 어렵다. 가치가 퇴색되기도 했지만 그 가치 기준이 동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생명을 담보로 싸우던 시절의 무기는 도검류이지만 지금의 싸움은 총과 화포이다. 그러니 과거 무술을 오늘의 시각으로 재평가를 하는 건 무리다. 차라리 현대인들에게 무술이 어떤 의미가 있고 유용성이 있는지 살피는 게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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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치와 같은 현대 속의 무술은 이중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과거의 기준이 있는 듯 없는 듯해야 한다. 배울 때에는 당대의 사고방식을 이해할 필요가 있지만 그 운용이나 적용은 달라야 한다. 상대가 나를 도발하여도 함부로 주먹을 날리거나 검을 뽑으면 안 된다. 그래서 고작 스포츠의 한 형태로 존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스포츠도 지나친 경쟁의 수단이 되면 왜곡과 부작용이 있다.


스포츠로 활용되는 무술은 몸과 마음을 바르게 사용하고, 호연지기를 익히는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옛사람들은 이를 수신이나 수행이라고 하였고, 유가에서는 공부라고 불렀다. 하지만 문제는 맹자의 이 호연지기를 몸이 아닌 책으로 이해하는 것에 그치는 일이다. 입으로만 호연지기를 말하고 실제로 교육의 효과가 없으면 안 된다. 생각은 항상 망상을 낳을 뿐이다. 그래서 몸을 수단으로 호연지기를 익히고 넓히고 사용하게 하는 것이 현대 무술의 사용법이라고 할 수 있다.


IMG_0836.jpg 샹그릴라


타이치와 같은 무술의 현대적 활용은 무엇보다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는 수단으로써이다. 기계문명의 틀 속에서 인간의 몸은 파편화되기 쉽다. 이는 서구 철학이 낳은 환원주의의 산물이기도 하다. 한마디 말이나 간단한 정보는 제대로 된 건강을 위한 팁이 될 수 없다. 몸과 마음을 온전히 취급하지 않는 편의주의적 생활 태도는 정신의 황폐화와 몸의 경제화의 연장일 뿐 진정한 건강을 위한 수단은 될 수 없다.


지식산업시대를 거쳐 AI가 일하는 시대가 된다고 해도 결국 그 중심은 인간일 것이다. 인간이 중심이면 건강한 몸과 마음의 관계를 끊임없이 고민한 무술의 인문학이 가치를 갖는다. 태극권이란 진정한 무술의 진면목은 현시대에는 싸움의 기술이 아니라 바른 몸의 사용법과 심법이다. 바른 몸의 사용법은 건강을 보장하고 그 마음을 작용케 하는 심법은 호연지기와 과거 인문학을 관통하는 경계에 이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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