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長城)에서

by 시숨

길이가 궁금하진 않았다

다만 성을 거쳐간

가을바람 같은 자취들이

이야기를 담고

언덕을 넘어가고 있었다


길 없는 길로 흙과 나무,

벽돌을 이고 온 옛사람아

아침은 자셨는가

성벽을 마주한 지 몇 해나 되었는가

가족들은 어느 땅에 머무는가


성마다 흔적 없이 남겨진 발자국,

손바닥에 굳은살이 성곽처럼

두터워진 나그네여


그대들은 보이지 않고

성벽만 남았으니

그대들의 주름은 어떤 모양인지

그대들도 웃음 지을 때가 있었는지

성벽 곁에 뼈를 묻어준 이들은

얼마나 되었는지


천리든 만리든

언젠가 이곳에 머물렀던 그대

험준한 산맥 위로

하늘과 마주한 들판 위로

어디가 끝인지 모르게 이어진 성벽,

지금은 마주하는 적도 없는 곳


먼 능선 굽이치며 사라지는

성벽 바라보는데

태어나는 것이

바닥에 깔린 첫 돌 같은

슬픔이던가


나와 마주한 그대 모습

성벽 사이에 겹쳐 보이는 것 같아

벽돌 사이 손길 따라

마른 흙과 풀들

더듬어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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