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개: 백구 이야기(missing)

괜한 산책을 시켜준 걸까?

by 초린

개오지라퍼의 사명은 나날이 커졌다. 처음에는 간식만 챙기다 이제는 간식을 주면서도 목이 마를까 물을 퍼 나르기도 하니 말이다. (물론 주인들이 물은 주긴 하지만, 이끼가 가득 껴있는 집도 있고 괜히 '새 물로 좀 갈아주세요.' 하는 말이 거슬리기라도 해서 어디로 팔아버릴까 하는 조바심에 굳이 굳이 왕복 30분 정도를 걸어 물을 길어준다.) 먹을거리로 먼저 케어를 해주다 지금은 빗질도 가끔, 산책도 해주려니 할머니댁만 가면 자연 속에서 개들을 보살피느라 바쁘기만 하다.


https://youtu.be/lgpm6p_xvMA

백구의 첫산책


백구는 밑에 집 할아버지의 개였다. 과거형인 이유는, 뒤에서 설명하겠다.

백구를 키우시는 할아버지는 나름 개를 좋아하는 반려인이다. 물론 내 기준에서는 한참 모자랄지라도 시골에서, 이런 깡촌에서는 나름 모범적(?)이라 할 수 있겠다. 왜냐하면 벅구라는 10년 된 개를 아직도 팔지 않고 키우시기 때문이다! 야호! 물론 그렇게 된 이유는 벅구가 문제견? 이 아니기 때문이다. 목줄을 하지 않아도 말썽을 피우지 않고 산책 후 다시 집으로 온다. 또, 멀리서 할아버지의 부름이 있으면 바로 어떤 일을 하다가도 달려 나간다. 이 얼마나 똑똑한 개인가!


하지만 벅구를 제외하고선, 할아버지 기준에서 똑똑하지 않은 개들은 무참히 팔려 나가는걸 많이 보았다.

백구도 그중 하나이다. 근데 그 방아쇠는 왠지 내가 당겨버린 것 같다. 벅구를 제외하고서 다른 개들은 산책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목줄을 풀기라도 하면, 돌아오지 않거나 닭을 물어 죽이거나 하는 일 때문에 시골에서 노인들이 직접 목줄을 하고 산책하는 일은 없으니 (여태 본 적이 없다. 적어도 이 동네에선) 꼭 묶여 평생을 지내는 개들이 많다.


그래서 알아서 돌아오는 개가 최고의 개일수밖에 없는 것인데, 그 집에 묶여 있는 백구가 너무 안타까웠던 이 개오지라퍼는 할아버지의 허락하에 준비해 온 목줄을 바꿔 끼고 백구의 산책을 도왔다. 잘도 생긴 이 백구는 좋은 주인을 만났다면 팔자를 폈을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백구는 이 전에 한 번도 산책을 해보지 않은 것이 티가 났다. 목줄을 누가 잡고 있다는 걸 굉장히 어색해하는 게 느껴졌고 내 발걸음에 놀래기도 했으니까. 나는 짧지만 백구에게 좋은 경험을 해주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다시 도시로 돌아갔고 몇 개월 만에 다시 찾은 시골에서 다시는 백구를 볼 수가 없었다.


이야기를 듣자 하니, 백구는 그 이후 목줄을 끊고 나가 윗집 개를 물었다나..(개를 문 것은 당연히 문제이다.) 그래서 당장 팔라는 동네 사람들의 의견에 따라 바로 팔아버렸다는 것이 할아버지의 이야기였다. 그렇게 또 정을 준 하나의 백구가, 시골 내려갈 때마다 보고 싶었던 백구가 사라졌다. 내가 괜한 산책을 시켜줘서 호기심을 주었던 걸까? 그때의 짧은 산책이 백구에게 목줄을 끊을 만큼 큰 계기는 아니었을까? 하는 정답 없는 원인을 들추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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