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감정 상자, 혼란
신앙의 모습은 여러 가지 다양하지만 굳이 드러나는 신앙의 결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로 구분해 보자면, 비와이처럼 굳건하고 대범한 사역자 같은 모습이 있고, 악동뮤지션처럼 은은한 신앙의 강인함이 개성으로 솟아나는 모습도 있고, 혁오처럼 길 잃은 어린양 같은 탕자의 모습이 있는 것 같다.
이들 모두를 존경하지만 굳이 나의 결에 가까운 사람을 꼽으라면 혁오에 가까운 것 같은데, 절대적 존재라 함은 나에게 삶의 결말을 알려주는(천국, 지옥, 구원..) 존재라기보다는 늘 죄악 안에 흠뻑 담긴 나를 직면하며 무수한 물음표들 안에서 만나게 되는 존재이기 때문인 듯하다.
그래서 나에게 하나님은 질문하시는 하나님이다.
그 앞에서 답을 할 때도 있고
답을 하지 못할 때는 더 많고
되물을 때는 더 더 많다.
솔직히 우주의 먼지만도 못한 내가 대체 무슨 답다운 답을 할 수 있을까 싶지만, 또 나의 되도 않는(...) 대답이 무슨 가치가 있을까 허탈할 때 또한 많지만, 굳이 구태여 나의 연약함을 깨닫게 하시려는 것인지. 정말 내 더럽고 추잡한 이 모습을 축복 맞다고 동의시키시려는 건지.
정말이지 인생은 도망치고만 싶은 순간들의 연속이다.
그래서 내 주변 사람들에게조차도 제발 내 신앙에 대해 관심 가지지 말아줬으면 하던 시기가 있었다. 어차피 다 무너지고 무너짐의 연속인데, 내 폐허가 타인에게 은혜가 된다는 사실이 별로 반갑지도 않았고, 자꾸 이리저리 아닌 체하며 떠들고 있는 내 모습은 더 싫었달까.
질문하시는 하나님은 하나이지만
답을 하는 나는 둘로 존재했다.
이성적인 나, 감정적인 나.
꽤 똑똑한 목사님의 딸(아빠가 똑똑하다는 말입니다)로서 태어나 글을 완전히 익히기도 전에 성경을 매일 펼쳤고, 늘 이성적이고 논리가 깊은 아빠의 딸답게 야무지고 제법 모범적인 아이로 자랐다. 10대에 무려 성경 20독을 완파했던 나는 2차 예선을 걸쳐 전국 성경공부대회 은상을 차지했을 정도로 말씀에 관심도, 흥미도, 지식도 많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때 당시 대부분의 인생의 크고 작은 질문을 성경으로 근거하여 답할 정도의 탄탄한 이성을 갖출 수 있었다. 거기에 모든 사람에게, 정확히 모든 어른들에게 이쁨을 받고 싶다는 인정욕구가 결합해서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랍비 같은 '대단히 정답스러운 답들'을 뽐내고 싶어 했는데, 이때의 내 상태는 이성이 곧 감정이고, 옳은 것이 곧 나의 선택인, 어쩌면 지극히 단순하고 올곧은 상태였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다 이 이성적인 나가 완전히 바닥 치는 순간이 있었으니, 삶의 중요한 선택의 순간 앞에서 외면해 왔던 내 감정을 직면했을 때였다. 예를 들어 죽었다 깨어나도 하기 싫은 사역의 형태가 있다던가, 진로를 선택해야 하는 시점에서 왠지 이대로의 내 인생이 뻔하다고 느껴지는 순간들. 분명히 나는 교회에서 많은 어른들의 이쁨을 받고 있는 것 같았는데, 애를 쓰면 쓸수록 해결되기는커녕 철저하게 더 외로웠던 교회에서의 시간들이 그러했다.
옳고 그름을 판단할 줄 아는 능력과 별개로 하고 싶은 것과 하기 싫은 것이 내 안에 존재한다는 것을 아는 순간 내가 알고 있고, 믿어왔던 나의 모습이 완전히 붕괴되는 장면을 바라보아야 했다.
그리고 마침 대학에 가게 되어 교회에서부터 어느 정도 몸이 멀어지고(그래봤자 포항이지만) 교회 바깥에서의 신앙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자(한동에는 정말 많은 종류별 예배들이 있다) 나는 인생에서 눌러왔던 모든 감정들을 터뜨릴 장소를 예배로 선택했다. 이때 당시 나는 매일 하루 한 번은 끝시간이나 새벽기도를 찾아갈 정도로 예배를 좋아했는데, 마침 크리스천들이 가득한 이 학교에서 예배 열심히 드리는 것에 대해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고, 거기 가서 매일 종일 묵혀왔던 눈물만 열심히 흘리며 모든 감정을 소모하는 것에 집중했다. 거기다가 호기심으로 이런저런 공동체에 들어가고, 듣고 싶은 과목도 많아서 잔뜩 수강신청을 해두었으니 학점도 망하고, 실제 대인관계에서는 절대 감정을 내비치지 않다가 한순간 터뜨리기를 반복하다 되려 이전보다 더 정신건강이 악화되었던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겠다.
그렇게 그냥 울면서 감정소모하는 것이 결코 건강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 순간이 찾아왔고, 삐뚤고 다친 나의 상태로 예배를 올바르지 않게 소화시켜 왔다는 충격을 이성적인 나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대놓고 어디가서 말은 못했지만, 진심으로 드린 예배는 모두 기뻐받으시는 거 아니였냐는 원망이 내 안에 가득했을 무렵, 코로나가 터지고 예배의 문이 닫히게 되면서 나는 아무도 모르는 내면의 세계에서 감정을 적당히 추스르는 법을 익혔다. 코로나가 거의 끝난 지금, 예배의 장소에서 다시금 나의 감정을 꺼내어보고 또 새로운 감정을 깊이 있게 느끼기에는 너무나 많은 자기 방어기제들이 내 안에 깊숙이 세워졌음을 느낀다.
여전히 나의 일상 속에 찾아와서
질문을 던지는 하나님을 만나며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채로
이성과 논리도 마비시키며
방황하는 생각의 필터를 돌리고 돌려
작은 한 문장을 적어내고 도망치듯 신앙생활을 한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교회에서 맡은 일이 많고, 그곳에서는 끊임없이 신앙의 교류들이 존재한다. 결국 내가 가는 곳, 아니 자꾸만 보내시는 곳은 누군가를 채우고 누군가를 세우는 곳인데 당최 나 자체로도 충만함이 모르겠으니, 나의 파편은 아직도 미궁에 조각 나 있고, 앞으로 나아갈수록 역설적으로 걸어갈 걸음과 깨어있음이 어려워지는 것이었다.
사랑은 역시 너무나 어색하고 낯설다. 간절하고 바라지만, 편안하게 찾을 대상이 되지 못한다. 어쩌면 중언부언 목놓아 부르짖는 것이 더 간편하다.
혼자 태어나서 혼자 죽는 삶.
이 가운데 왜 우리는 끊임없이 서로를 원하고 필요로 해야 하는가.
그리하여 완성될 그날에서
우리는 우리일까 나일까.
순종하되, 깨어있고, 행복하면서, 평안하며, 사랑이 가득한 신앙생활
나한테는 아담과 하와보다 더 먼 이야기 같은데.
아무래도 나는 아직 갈 길이 너무나 멀고
이번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그저 있는 그대로를
최대한 꾸미지 않고서 꺼내 보이는 것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