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1일의 글
글에는 <메멘토>, <인셉션>, <인터스텔라>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나가는 아무 사람이나 붙잡고 이런 질문을 해 본다고 가정해 보자. 당신이 알고 있는 영화감독을 한 명만 대보라고. 물론 봉준호일 테니 국내 감독을 제외한다면, 아마도 사람들의 입에서 가장 많이 나올 감독이 이 두 감독이지 않을까.
1971년에 개봉한 TV 영화 <듀얼>을 정식 입봉작이라 여긴다면 2022년 현재 데뷔한 지 50년이 넘은 스필버그와, 1998년 <미행>으로 장편 데뷔해 데뷔한 지 갓 20년을 넘긴 놀란을 같은 선상에서 바라본다는 것이나, 서로 우열을 가린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터 예술'로 불리는 영화라는 매체에서 대중들을 견인하는 능력의 정점에 있는 탁월한 두 감독을 살펴보는 것의 의의는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대중을 견인하고 있는 이 두 탁월한 감독은 모두 훌륭한 파트너들을 함께 하고 있으며, 영화라는 매체가 단순한 오락 영상물이 아닌 종합 예술의 위치를 차지하는 것임을 매 순간 증명해 내고 있다. 본 글을 통해 지난 수 십 년간 관객들을 사로잡았던 두 감독의 특징들을 가볍게 살펴보고 영화라는 매체가 가지는 종합 예술로서의 매력을 환기해 보려고 한다.
크리스토퍼 놀란과 스티븐 스필버그는 대중영화를 상징하는 인물들이다. 대중영화라는 단어의 기준을 명확히 정의한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겠지만, 현대에 이르러 대중영화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감독들을 줄 세워 볼 때 제임스 카메론 이외에는 이들에 대항할 감독이 과연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먼저 스티븐 스필버그는 패러다임을 제시한 개척자이다. 그는 영화라는 매체 아래서 끊임없이 새로운 영역을 시도했으며 그가 일궈낸 길들은 여전히 모두에게 훌륭한 교본이 되고 있다. 1975년, 그는 <죠스>의 기념비적인 흥행을 통해 블록버스터의 공식과 개념을 정립했다. 외계 생명체와의 우정과 사랑을 다룬 창작물이 등장했을 때 우리는 자연스레 스필버그가 만든 1982년작 <E.T>를 떠올리게 된다. 1993년 <쥬라기 공원>을 통해선 특수효과의 지경을 넓혀 우리가 꿈꿀 수 있는 영역을 확장시켰다. 2차 대전을 다룬 <라이언 일병 구하기>나 고고학자의 어드벤처 <인디아나 존스>는 해당 장르의 영원한 기준처럼 느껴진다. 연출적으론 내가 스필버그의 영화를 볼 때마다 놀라는 특정한 순간들이 있는데, 그의 롱테이크다. 스필버그의 롱테이크가 대단해 보이는 점은 롱테이크 촬영이 꽤나 긴 시간 동안 끊지 않고 이어짐에도 정작 이를 접할 때는 그것이 롱테이크인지 잘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에 있었다. 스필버그의 롱테이크는 관객을 압도하려 하지 않고, 관객을 한 숏 안에 영원히 붙잡아 두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 같다.
입이 떡 벌어지는 롱테이크는 역설적인 난점을 마주칠 수 있다. 일례로 <칠드런 오브 맨>이란 영화는 초반 자동차 안팎에서 벌어지는 놀라운 롱테이크 장면이 있는데, <칠드런 오브 맨>의 촬영감독인 임마누엘 루베즈키는 영화의 개봉 이후 많은 관객들이 "그 자동차 롱테이크 장면 좋았어요~"라며 해당 장면을 언급하자 자신이 해당 장면을 잘못 찍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일화가 있다. 관객이 롱테이크 속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롱테이크의 기술 그 자체에만 집중한다면 결과적으로 이는 성공적이지 못한 것이 아니겠느냐는 이유에서다. 그렇기에 스필버그의 영화들 중 '특정 장면'이 훌륭한 롱테이크 장면이라며 클립으로 떠돌아다니는 경우는 적을지 모르겠지만, 그의 영화 내에서 그의 롱테이크는 시간을 봉인하는 순간의 몰입감을 위해 매번 완벽히 복무한다.
물론 스필버그의 롱테이크가 탁월한 것에는 그의 단짝인 촬영감독 야누스 카민스키의 공로가 지대했을 것이다. 야누스 카민스키의 촬영은 마치 맹수가 광기를 머금은 채 목표를 향해 살금살금 움직이는 것만 같은, 화면에서 물성이 가득한 생생한 촬영들을 선보인다. 현시대 가장 유명한 촬영감독들인 임마누엘 루베즈키와 로저 디킨스와 비교한다면, 야누스 카민스키는 임마누엘 루베즈키보다 정적이고 로저 디킨스보다 동적인, 작품마다 알맞은 균형감을 가져가는 감독이라 할 수 있겠다.
당장 <쉰들러 리스트>, <라이언 일병 구하기>, <A.I.>, <우주전쟁>, <뮌헨> 같은 영화들의 촬영을 떠올려 보길 바란다. 스필버그의 비전은 최고의 파트너인 야누스 카민스키를 만나 완벽히 성취됐다. 매번 그의 영화에선 시각적 놀라움이 가득하다. 스필버그의 영화들을 떠올릴 때면 저마다 다른 분위기와 저마다 다른 질감들이 랜드마크처럼 내 무의식 속을 지배한다.
아주 거칠게 스필버그의 커리어를 20세기와 21세기로 나눈다면, 스필버그가 가지고 있는 지금의 명성을 만들어준 시기는 분명 기념비적인 흥행 영화들을 남겼던 20세기일 것이다. <죠스>, <E.T.>, <쥬라기 공원> 같은 영화들 말이다. 다만 이 시점 평론가들의 의견은 미묘했다. 심드렁하고 고루한 가족애인가, 뻔한 할리우드식 엔딩의 피로감인가, 망상에 가까운 이상주의인가. 20세기 스필버그가 만드는 장르 영화는 분명 정석적인 감이 있었다. 물론 이 부분을 무작정 욕할 수도, 무작정 비판할 수도 없다. 어떤 장르의 정도(正道)를 답습하는 것은 나 역시도 부정적이지만, 스스로가 그 장르를 개척한 선구자라면 이야기는 다르지 않을까.
이 무렵 스필버그는 평론가들의 이러한 비판을 의식했는지 다분히 '작가적인' 영화들을, '영화제용' 영화들을 만들어냈다. <태양의 제국>, <컬러 퍼플>, <쉰들러 리스트>가 그 예가 될 것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나는 위 영화들을 스필버그의 다른 영화들에 비해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훌륭하나 경직되어 있고 지나치게 감정적이었다. 그러나 스필버그는 진화했다. 21세기 들어선 비평적으로 존 포드에 비교될 정도의 성취를 이뤘다는 의견들이 힘을 얻고 있다. 그의 장점인 폭넓은 스펙트럼의 장르는 그대로 가져가면서도, 어두우며 염세적인 이전까진 쉽게 보여주지 않았던 작품들을 내놓았다. 욕심을 내려놓은 듯한 스필버그는 충격적일 정도로 놀랍고 다양한 영화들을 만들었다. 이 시점의 스필버그를 나는 좋아한다. 그리고 깨달았다. 스필버그는 대중의 기호에 맞춰 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닌, 자신이 진정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는 것을, 그리고 누구보다 영화를 사랑하는 감독이라는 것을 알았다.
위 문단 마지막 문장의 내용을 좀 더 확장시켜보고 싶다. 스필버그는 관객들을 속이려 하지 않는다. 그저 극장에서 그들이 가장 행복하고 풍성한 경험을 하기를 순수하게 바라는 사람처럼 보인다. 영화가 다루는 주제에서뿐만 아니라, 영화 안에서의 형식도 또한 그렇다. 이 지점에서 크리스토퍼 놀란은 사뭇 다르다. 그는 복잡한 플롯을 통해 만들어내는 혼란을 서사를 굴리는 동력으로 삼지만, 때로는 그 복잡한 형식이 비대해져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내 생각에서 2020년 개봉한 <테넷>은 놀란의 과욕처럼 보인다. <테넷>을 보고 영화 외적으로 여러 생각들을 했었다. 과연 영화의 폼(form)이 이 지경까지 와야 하는 것일까, "이해하지 말고 느껴라"라는 말은 관객에게 책임을 전가시키는 기만적인 행동이 아닐까.
모든 영화가 친절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예술가는 한 영화에서 자신이 펼쳐놓은 세계와 설정에 대해서 영화가 끝나기 전까지 책임을 온전히 지고 있어야 한다. 이건 예술가의 윤리다. 자신이 펼쳐놓은 세계를 온전히 책임지지 못한 채 관객에게 그 짐을 던진 채 영화와 떨어져 있는 예술가는 비겁한 인물이다. 그래서 나는 (적어도 내가 느낀) <테넷>에서 보여준 놀란의 미묘한 태도는 나에게 의문점을 남겼다.
자 그럼 이번엔 크리스토퍼 놀란의 이야기를 해 보자. 대중영화와 블록버스터를 상징하는 인물이 과거에 스티븐 스필버그였다면 (물론 여전히 그렇기도 하지만) 현시대 그의 바통을 넘겨받은 인물은 크리스토퍼 놀란처럼 느껴진다. 크리스토퍼 놀란이 특별한 점은, 분명히 작금의 시점에선 상업영화를 만드는 감독임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기호에 맞춰 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대중들을 자신의 취향에 맞추는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에 있다. 놀란은 확실한 그의 스타일을 고수하며, 흥행을 위한 어떤 툴에 편승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대중들은 그의 영화에 열광한다. 놀란은 자신의 개성으로 대중을 견인하는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스필버그의 롱테이크가 놀라움을 선사했다면,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에선 아이맥스 촬영의 박력을 느끼는 것이 즐겁다. 아이맥스를 가장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감독인 놀란은 극장에서 체험할 수 있는 가장 극적인 순간들을 우리에게 제공해 준다. <인터스텔라>, <다크 나이트>, <덩케르크>를 아이맥스의 거대한 스크린으로 감상했을 때의 충격을 기억해 보자. 놀란은 극장의 힘을 믿는다. 시네마의 시대는 죽어가고 있고, OTT나 스마트한 기기들의 진화로 인해 관객들은 '굳이' 극장까지 걸어갈 이유를 잃어가고 있다. 이제는 영화를 어디서나 너무나 쉽게 볼 수 있어졌다. 그럼에도 '크리스토퍼 놀란'의 신작 혹은 전작이 극장에 걸리게 된다면 관객들은 여전히 앞다투어 극장의 명당 좌석을 다툰다. 놀란의 영화는 극장에서 마주해야 오롯이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의 관객들을 극장으로 향하게 만드는 능력이 가장 뛰어난 감독은 현시점 크리스토퍼 놀란이다. 놀란은 우리에게 영화를 만나는 순수함을 가져다준다.
또한 놀란은 독창적인 플롯과 소재를 가지고 관객들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한다. 1시간/1일/1주일의 시간을 섞기도 하고, 시간 차를 두고 꿈과 꿈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플롯을 보여주기도 한다. 역순과 순행의 시점을 섞어가기도 한다. 겉만 비대한 단순한 개인기가 아닌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깊은 관련이 있는 플롯을 설치하는 과감함은 독보적이라 할 수 있다.
소재 역시 그렇다. 선행성 기억상실증이란 병증이 창작물에서 가장 극적으로 사용된 예시는 아마도 <메멘토> 일 것이다. 타인의 꿈속으로 들어가 생각을 주입한다는 <인셉션>의 아이디어는 <매트릭스> 이후 꿈을 다룬 가장 완벽한 예시가 아닐까. 시간을 거슬러 간다는 '인버전'이란 개념이 등장하는 <테넷>이나, 5차원의 세계 <인터스텔라>, 전장 속의 '생존' <덩케르크>, 마술사의 복수극 <프레스티지> 등. 놀란은 관객을 사로잡는 무기를 양손 가득 가지고 있다. 그 지적 호기심이 사뭇 다르게 전달돼 관객들의 지적 허영심을 만들어낸다 하더라도, 한 편의 영화에 가장 거대한 야심을 투입하는 감독이 크리스토퍼 놀란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을 테다.
두 감독에게는 시대를 대표하는 탁월한 음악 감독이 파트너로 있다. 스필버그에게는 존 윌리엄스가, 놀란에게는 한스 짐머가 바로 그렇다.
할리우드가 꿈꿨던 거의 모든 순간에는 존 윌리엄스가 있었다. <죠스>, <인디아나 존스>, <E.T.>와 같은 스필버그의 수많은 영화들뿐만 아니라 20세기 폭스사의 그 유명한 '팡파레', 스타워즈 시리즈의 음악들, 해리포터 시리즈의 그 유명한 테마곡, 그리고 범위를 확장해 여러 올림픽의 테마곡을 작곡하기까지. 클래식이 바탕이 된 웅장하면서도 순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그의 음악들은 영화만큼이나 많은 이에게 각인되어 있다. 스필버그가 그를 두고 한 말이 있다. "내 영화는 사람들의 눈에 눈물을 고이게 하지만, 그것을 흘러내리게 하는 것은 윌리엄스의 음악이다."
한스 짐머 역시 대단한 작품들을 남겼다. 크리스토퍼 놀란과 거의 모든 작품에서 함께 했으며, 특히 <인셉션>의 사운드트랙인 'Time'은 스스로의 공연 하이라이트로 연주되기도 한다. 이 밖에도 스스로에게 아카데미 음악상을 안겨준 <라이언 킹>의 주제곡이나,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의 테마곡, <더 록>의 음악들 등.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뛰어난 성취를 이룬 감독이다. 나에게 존 윌리엄스의 음악은 '설렘'이란 단어가 떠오르고 한스 짐머의 음악은 '박진감'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다재다능한 감독의 조건 중 '만드는 장르의 다양성'은 빼놓을 수 없는 항목일 테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만드는 영화의 스펙트럼은 경이적이다. 장르를 넘나들며 숱한 걸작들을 만들었던 과거의 감독들은 하워드 혹스나 스탠리 큐브릭 등이 떠오르지만, 영화의 장르뿐 아니라 영화가 다루는 소재, 영화가 가지고 있는 정서에 있어서까지 그 특정한 형태에 갇히지 않고 다양한 작품들을 만들어내는 능력은 스필버그가 단연 역대 최고가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크리스토퍼 놀란이 만드는 작품의 스펙트럼 역시 대단히 넓은 수준이다. 거의 모든 영화들의 톤이 스릴러적 형태를 띠곤 있지만, 사실상 사장된 장르인 서부극이나 일견 전문적인 장르인 뮤지컬을 제외한다면 놀란 역시 거의 모든 장르를 섭렵했으며 모두 준수한 성과들을 거두었다.
그럼에도 놀란이 만드는 영화의 정서가 분명 한쪽으로 치우쳐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의 영화는 유머가 없고 삭막하며, 영화의 장르가 상대적으로 범죄 혹은 스릴러에 치우쳐 있다는 것을 약점으로 꼽자면 꼽을 수 있는 부분이다. 만드는 영화의 스펙트럼을 스필버그와 비교한다면 과연 세상의 어떤 감독이 그와 대적할 수 있겠냐만은, "왜 그렇게 심각해?"라는 질문은 누구보다 그에게 하고 싶은 질문이다. 과연 놀란이 <쉰들러 리스트>나 <A.I>, 혹은 <터미널> 같은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만들려 하지도 않겠지만 그 결과물 또한 썩 기대되지는 않는다.
서열이나 위계적인 부분이 아닌, 두 감독이 극명하게 '대립'되는 지점이 있는데, 바로 '가족'이라는 소재를 다룰 때의 온도이다. 모두가 알듯 스필버그의 부모님은 그가 어렸을 시절 이혼했으며 이로 인해 스필버그의 영화에선 가족과 부모에 대한 '동화적인 사랑'의 시선이 느껴진다. 그의 영화가 지나치게 감상적인 것이 아니냐는 비판은 이 지점에서 주로 비롯된다. 그렇기에 다시 말하지만 나는 '어떤 시점까지의' 스필버그 영화들을 절대적으로 지지하지 않는다.
반면 놀란의 영화에서 가족의 형태는 불완전하다. <메멘토>의 주인공 레너드는 아내가 살해당해 복수를 꿈꾸는 인물이며 <인셉션>에서 주인공 코브는 죽은 아내로 인한 트라우마가 내내 따라다니는 인물이다. <다크 나이트>의 주인공 브루스 웨인의 개인사는 따로 언급할 필요도 없다. <인터스텔라>의 머피는 가족과의 이별로 인한 괴로움을 여실히 드러낸다. 놀란의 영화에서 이상적인 가족이 환하게 하하 호호 웃는 장면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첨언하자면 놀란은 인물들의 감정을 섬세히 표현하는 데는 우스울 정도의 어색함을 보여준다. 때문에 최근작인 <덩케르크>나 <테넷>에선 주인공을 사실상 'Anyone'으로 설정하고 그들의 개인사나 인간관계를 묘사하지 않는 방식을 사용하는데, 자신의 약점을 최소화하고 장점을 극대화하는 이 접근법은 굉장히 훌륭하다 생각한다.
상술했듯 나는 <테넷>을 마주한 이후 놀란에 대한 (이전까지의) 절대적인 지지에서 한발 물러난 상황이다. <테넷>으로 자신의 극단을 이미 가 본 입장에서 <오펜하이머>가 그 극단을 한 번 더 갱신하는 작품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동시에 현역으로 활동하는 감독 중 차기작이 가장 기대가 되는 감독이기도 하다. 매 순간 우리를 탐구하게 만드는 감독이며 시네마의 가치를 되새기게 해 주는 감독이기 때문이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2021년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내놓은 후 1년 만에 신작인 <더 페이블맨스>로 우리를 찾아온다. 현역 중에서 이렇게 왕성한 활동을 하는 감독은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며 그것도 여든이 넘은 노장이라는 사실에서 더욱 놀라울 따름이다.
50년도 훌쩍 넘게 현장을 지키며 열정을 잃지 않는 감독이 매번 훌륭한 결과물로 우리를 찾아온다는 것이 그저 감사하다. 그의 신작을 앞으로 몇 편이나 더 보게 될지 단언하기 힘들 정도의 고령인 스필버그이지만 여전히 열정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는 그를 볼 때마다 나는 영화를 사랑하는 한 소년의 순수함을 보게 되는 것 같다.
+ 브런치에 예전 글들을 옮기면서 다시금 읽어보는데 본 글은 유독 부끄러워진다. 공교롭게도 이 시점 이후 두 감독은 모두 각자의 필모그래피 중 최고작이라 칭해도 손색이 없을 만한 걸작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테넷>으로 실망을 가진 나의 감상을 휴짓조각으로 만들 만큼 대단했던 <오펜하이머>, 더 이상 무언가를 보여줄 수 있을까 싶었던 노장에게서 <파벨만스>를 보았기 때문이다. 글을 옮기는 이 시점 두 감독은 또다시 신작을 세상에 공개할 준비를 마쳤다. <오디세이>와 <디스클로저 데이>다. 꿈의 공장 할리우드를 지탱하는 거장은 여전히 스필버그와 놀란 그 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