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람에서 무덤까지.....

by 안흥준

90년대 중반에 결혼과 함께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 때의 막연한 미래에 대한 생각은, 사회생활 연차가 쌓여갈수록 삶의 여유와 수준이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와 희망이 있었습니다. 그런 기대로 시작한 사회 생활이 어느덧 정년퇴직을 눈앞에 두고 있게 되었습니다. 지나온 삶의 순간 순간을 뒤돌아 볼 여유 없이 쫓기듯 살다 보니 시간이 벌써 이렇게 흘러 버린 듯 싶었습니다. 다행히 최근에 들어 약간의 여유가 생겨서 지나온 여정을 뒤돌아 보고, 남은 미래를 그려 볼 수 있는 시간이 생겼습니다. 곰곰이 지나온 흔적을 뒤돌아 보고, 앞으로 펼쳐질 미래를 계획하다 보니 마주한 현실은 지난 날 기대했었던 것과는 너무나 많은 차이가 있는 낯선 모습이었습니다.


이 나이 때쯤이면 그래도 삶의 여러 환경에서 어느 정도 준비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해 왔던 사람중의 한 사람으로서 마주한 현실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사회 모든 분야에서 예기치 못한 변화가 있었고, 이러한 변화는 사회 한 분야에 머문 것이 아니라 가정, 교회, 회사, 사회를 막론하고 모든 분야에서 일어났습니다. 해서 30여년전 기대했었던 것과 마주한 현실의 이질감은 클 수 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지나온 시간들이야 어찌 되돌릴 수 없다지만, 앞으로 펼쳐질 미래를 생각해 보니 사회 생활에서 보다는 오히려 영적인 부분에서 더 우려스러운 부분이 많았습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사회생활이야 자신의 준비나 노력 여하에 따라 나이에 상관없이 그나마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갈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교회내에서의 나이듬은 고립과 단절을 의미하는 듯 했습니다. 고령자가 교회내에서 활동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나마 있는 기회라는 것도 매우 제한적이거나 소수에 국한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교회내에서 대다수의 고령자가 공감하거나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없기 때문에 여전히 교회내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가거나 활동을 하는데는 매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 정도 디지털 문화에 익숙하다고 생각하는 저 마저도 다음 세대와의 문화적, 정서적 차이로 인한 거리감으로 그 동안의 경험과 신앙의 선배로서의 마음을 다음 세대와 나누기에도 어렵게 느껴 지는데, 아날로그 문화와 오프라인 모임에 익숙한 시니어 세대에겐 다음 세대에 선한 영향력을 끼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일 것 같습니다. 또한 교회내에 노년 세대가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이나 프로그램이 없기 때문에 어쩌면 교회는 사회 보다 더 큰 단절이 있는 것처럼 느껴 질 수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행정안전부 발표 자료에 의하면 2024년 7월 기준으로 우리나라 65세 이상의 인구는 이미 천만명을 넘어서, 전체 인구의 19.5%를 차지하여 조만간 초고령 사회(65세 이상 인구 비중 20% 이상)로 접어 든다고 합니다. 우리 교회는 지리적인 입지상 아직은 그나마 젊은 교회로 인식이 되고 있으나 각종 조사 자료에 의하면 한국 교회의 연령 비중은 한국 사회의 노령화 대비 5년 정도 선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 말의 의미는 한국교회는 이미 초고령 사회로 접어 들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교회내의 고령 성도들을 위한 프로그램은 전반적으로 부족한 상황입니다. 우리가 다음 세대에 대해 투자하고, 관심을 쏟는 사이에 그 보다 더 급속히 진행된 교회의 노령화에는 상대적으로 준비를 하지 못한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나마 진행 되고 있는 고령자들을 위한 교회 프로그램도 경노대학 등과 같은 기존의 돌봄 중심의 프로그램 일색으로, 변화된 고령자들의 삶과 괴리감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평균수명 증가로 인한 고령자들의 의식 수준 변화와 노년 활동에 대한 필요를 감안할 때 교회의 고령자들을 위한 사역은 기존의 성경공부, 영성 교육 등의 영적 돌봄의 접근법은 변화가 불가피 할 것 같습니다. 기존의 틀을 깨고 고령자 스스로가 활동의 주체가 되는 활동 중심의 사역으로 전환하여 자존감 회복과 주체성을 찾아 가면서 각자의 가치를 더 할 수 있는 적극적인 노년 플랫폼이 제공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한 환경이 조성 되면 자연스럽게 노년 세대가 가지고 있는 경험과 에너지를 지역사회로 확대하여 지역의 노년층 선교와 지역 노년 세대의 동일한 문제를 해결해 가면서 노년의 무기력함과 고립에서 벗어 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는 영국의 자유주의 경제학자 ‘윌리엄 베버리지’의 사회복지 보고서에 나오는 관용적 표현입니다. 이는 2차 세계대전으로 대영제국의 자존감이 무너져 실의에 빠져 있던 국민들에게 ‘윈스턴 처칠’이 복지국가라는 희망의 메세지를 주기 위한 계획의 일환에서 나온 것입니다. 한국 교회는 지난 100여년간 놀라운 양적 성장을 하였고,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와 문화 가운데 청소년들의 바른 신앙 교육와 인성 함양을 위해 다음 세대에 대한 투자와 노력을 많이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교회의 변화는 이젠 어느 정도 한국 교회내에 정착 된 듯한 느낌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고령자들을 위한 연구나 투자는 미흡해 보입니다. 한때 교회의 주축이 되셨던 고령자들이 노년의 시기도 아름답게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이제는 교회 내에서도 성도의 삶 전반에 대해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실행할 수 있는 시스템과 인프라가 필요한 시기인 듯 합니다. 단순히 영적 관리를 위한 성경 공부 스타일의 획일화 된 프로그램이 아닌 고령자 분들이 자존감(존재감)을 가지고, 각자의 역량을 교회내 혹은 지역 사회에서 사용할 수 있는 폭넓은 교회의 전략과 투자가 필요한 때 입니다. 사회에서의 단절이 교회내에서의 단절까지 확대 되지 않도록 노년 세대가 자유롭게 교회 공간을 활용하여 모이거나 여가 생활을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도 마련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현 세대의 노년은 단순한 돌봄의 대상이 아닌 새로운 사회 주체로서 인생 후반을 가치 있게 보내고, 행복한 삶을 마무리할 수 있는 주체적인 세대가 될 수 있도록 교회는 다양한 플랫폼을 갖춰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러한 부분들이 하나씩 갖춰져 간다면 어쩌면 제가 가졌던 낯설고 막연한 노년의 미래가 좀 더 밝고 긍정적인 모습으로 달라지지 않을 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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