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방향은 열매가 아닌 가치(價値)

by 안흥준

열매 맺는 크리스천 삶. 이 삶의 원리는 제자화 훈련의 한 축으로 신앙의 성숙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중요한 원리로 강조 되어 왔다. 이는 크리스천의 삶은 단순히 신앙을 고백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삶을 통해 실천하고 열매를 맺는 과정이 되어야 함을 강조했던 원리였다. 우리네 신앙이 실제적인 삶의 변화로 나타나야 하며, 그 결과로서 열매가 맺히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열매는 우리의 내면 뿐만 아니라 외적인 행동과 태도에도 영향을 미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원리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5년전까지만 해도 이 원리는 내 마음에 각인 되어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였다.


지금 내 나이는 5살(?)이다. 정신연령? 신체적 연령? 내 나이가 5살인 이유는 큰 사고에 기인한다. 2019년 12월 19일, 이날도 여느 평범한 아침 출근길이었다. 평소와 다른 점이 있었다면 늘상 걸어서 출근했었던 것과는 달리 이 날은 왜 그런 생각을 했었는지 모르겠으나 휴일에도 타지 않았던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던 특이한 날이었다. 그런데 이 날, 신호를 기다리고 있던 나를 5톤 트럭이 뒤에서 덮쳐서 차바퀴에 2번이나 깔리는 대형사고가 발생했다. 이후 3번에 걸친 수술과 3개월여의 입원 후 퇴원을 했다. 3개월이라는 시간, 그것도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는 병실에서의 생활은 내 성격으로 견디기 어려운 시간들이었지만, 감사하게도 그 때처럼 평안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도 팔과 다리에 흉터와 함께 비 내리지 않는 날에도 저리는 후유증을 덤으로 얻게 되었다. 마치 바울에게 각인된 안질처럼 내 팔과 다리에 각인된 것이다.


치료를 위해 입원실 병상에 누워 몸을 뒤척이던 어느 한 순간, 한 동안 잊고 있었던 내 삶의 열매에 대한 생각이 났다. 만약 그 사고로 인해 생을 마감하게 되었더라면, 나는 하나님 앞에 내세울 만한 삶의 열매가 있었을까? 한참을 내 삶의 열매에 대해 생각을 해 보았으나 열매라고 내세울 만한 것이 도통 떠오르지 않았다. 그 이후 곰곰이 열매에 대해 생각해 보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내 삶이 이리도 엉터리였나 하고 자책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또 흘러 창밖의 맑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지금까지 살아 온 너의 삶의 흔적이 나(하나님)를 위해 아무런 가치(價値)가 없었니?”. 머리를 휑하니 스치고 지나가는 하나님의 음성 같았다. 열매가 아닌 가치(價値)?


내 삶의 열매는 스스로가 판단하거나 정의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왜냐면 열매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때에 나타나는 것이기에 스스로 재단하고 판단하는 것이 참 어리석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삶의 지향점은 열매 맺는 삶을 삼아야 하지만, 판단의 기준으로 열매를 삼는 것은 교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내가 결정하려는 교만함. 내가 정말 해야 할 일들은 삶의 순간 순간 이 일(행동)이 하나님 보시기에 가치(價値)가 있는 일인지를 숙고해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때론 내 능력에 넘치는 일일 수도 있고, 동기 부여가 안 될 수 도 있고, 하기 싫은 일일 수도 있는데, 그 모든 상황이 내 결정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가치 있는 일인지를 숙고하는 것이 바로 내가 해야 할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내 눈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두려움도 있고, 감당할 자신이 없다 할 지라도 해야 할 단 하나의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치 있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라는 것이다. 비록 아무런 열매가 보이지 않은 것 같아도 그 행한 일들이 하나님 안에서 가치 있는 일이라면 그 삶은 괜찮은 삶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나니 지난 내 삶의 여정이 새롭게 조명 되어 왔다. 내 삶의 공백기와 같이 느껴졌던 그 순간에도 감동과 감사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때 흘렸던 눈물, 당시 감당키 어려웠던 힘듬, 왜 내가 이 일을 해야하냐고 항변했던 불평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걸음 한 걸음 힘들게 내 디뎠던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엔 가치 있는 삶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바라 봐야 할 삶은, 열매를 지향하되 하나님 보시기에 가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함을 알게 된 것이다.


크리스천에게 있어 열매 맺는 삶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삶의 소중한 흔적이다. 하지만 이 흔적은 내가 판단할 수도 없고, 어쩌면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나타나지 않을 지도 모를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결정하실 일이었던 것이다. 나의 삶에서 열매 맺는 삶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깊은 관계를 통해 변화된 삶을 사는 것에 대한 증표이자, 영적 성장을 이루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예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여전히 내가 지향해야 할 삶의 경주이다. 하지만 내가 바라 봐야 할 방향은 지금 나의 판단과 행동이 하나님 보시기에 가치(價値)가 있냐는 것이다. 해서 내가 가야 할 방향은 열매가 아닌 가치였던 것이다. 그러한 사실을 5년전 병상에서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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