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靈的) 동면(冬眠)이 필요한 때

by 안흥준

지난 2021년, 국내 대학 연구팀은 차세대 초소형 위성을 우주로 보냈다. 이 위성에는 특이한 생명체 100마리가 함께 실려 있었는데, 물곰(Water Bear)이라고도 불리는 곰벌레였다. 곰벌레는 1mm도 안되는 생명체로 현미경으로 봐야 할 정도로 아주 작은 생물인데, 정식 이름은 완보동물(Tardigrade)이라 불린다고 한다. 이러한 작은 생명체가 우주로 보내진 이유는 곰벌레의 놀라운 생존 능력 때문이다. 곰벌레는 150℃가 넘는 고온이나 영하 200℃ 이하의 혹한에서도 생존할 수 있다. 또한 방사선이나 진공 상태를 견디며, 심지어는 물 없이도 수 년간을 버틸 수 있다고 한다. 곰벌레가 극한의 환경을 견딜 수 있는 이유는 몸의 활동을 거의 완전히 멈춘 채로 스스로를 보호하는 특별한 능력 때문이다. ‘크립토비오시스(Cryptobiosis)’라는 과정을 통해 혹독한 환경을 극복하고 생존하는데, 이때 곰벌레는 신진대사 활동을 거의 멈춘 상태(생물학적 동면)를 유지하다가 환경이 다시 좋아지면 활동을 재개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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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 개월 동안 나 역시도 혹독한 내면의 시간을 보냈었다. 그 원인의 핵심은 분노였다. 분노의 요인들이 다양한 삶의 영역에서 복합적으로 쌓이다 보니 내면의 평안함이 깨어지고, 심지어는 일상이 무너져 버리는 일까지 일어나게 되었다. 이러한 일들의 반복과 누적으로 인해 사소한 일에도 쉽게 화가 났고, 감정의 변화들이 내 일상과 영적인 부분을 조금씩 허물어뜨림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다. 급기야 내 개인적인 평안 뿐만 아니라 가족과의 대화, 사회 생활에서의 대인관계,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점차적으로 짜증과 불만이 쌓여갔다.


처음에는 잘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스스로를 다독여 갔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분노가 내 삶을 지배하는 듯 했고, 심지어는 분노와 증오를 넘어 저주의 말과 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때로는 스스로의 생각을 합리화 해 보기도 하였으나 내가 아는 신앙의 상식선에서 더 이상 나가거나 이대로 머물러 있는 것은 옳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삶 가운데 나타나는 분노가 모두 잘 못 된 것은 아니다. 여러가지 객관적인 사실들로 인해 분노해야 할 때, 정작 침묵으로 일관한다면 더불어 사는 생활에서는 무책임한 행동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노가 내 삶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이성을 마비시켜 일상적인 삶의 테두리를 벗어나게 한다면 그 때는 분노가 나를 삼키는 시기가 아닌가 싶다. 비단 우리의 영성과 일상을 위협하는 요인은 분노만이 아니라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 올 수 있다. 지난 몇 개월 동안 내 삶 속에서도 그 위기가 찾아왔던 것이다.


바로 그 시기에 내게도 ‘크립토비오시스(Cryptobiosis)’의 과정이 필요했다. 이때야 말로 생활에서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침묵하며, 영적 동면 상태에 들어가야 하는 때였던 것이다. 다만, 영적 동면이 크립토비오시스와 다른 점이 있다면 말과 행동의 동면은 유지하지만 내적으로 말씀과 기도를 통한 영성을 강화해야 하는 것이 아닐 까 싶다. 영적 동면이 단순히 현실을 피하고, 잠시 비껴 나 있는 시간이 아니라, 더 큰 영적 싸움과 사회 환경 그리고 내 주변의 다양한 일들에 대한 크리스챤다움을 유지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리트릿(Retreat)! 대학시절, 기독교 동아리 활동을 할 때 매주 금요일 철야기도 모임을 우리는 이렇게 불렀다. 리트릿은 ‘후퇴'라는 군사적 의미 혹은 ‘일상에서 벗어 날 수 있는 공간에 머무르며 쉼'을 뜻한다. 이보(移步) 전진을 위한 일보(一步) 후퇴의 의미로 영적 재충전을 위해 매주 리트릿이란 철야기도회를 가졌다. 생각해 보니 그 당시의 리트릿이 바로 크립토비오시스가 아니었나 싶다. 보다 성숙한 크리스챤 삶으로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 더 견고한 크리스챤다움을 유지하기 위한 영적 동면이었던 것이다.


내 자신의 삶이 무미건조해 질 때, 누군가를 향한 분노가 불일 듯 일어날 때, 자신에 대한 실망과 무기력한 일상이 반복될 때, 잠시 멈춰 서는 것도 괜챦치 않을까? 멈춤이야말로 다시 걸어가기 위한 준비이기 때문이다. ‘크립토비오시스'는 현실 도피가 아니다. 더 많은 영적 싸움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자 나를 더 단단히 만들어 갈 수 있는 시간이다. 해서 우리는 간혹 곰벌레처럼 살아도 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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