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경력으로 다져진 주니어 마케터의 물경력과 제너럴리스트에 대한 고찰
물경력 마케터라고 말하지만, 사실 나는 마케팅 제너럴리스트이다.
물경력을 그럴싸하게 포장한 것이 제너럴리스트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제너럴리스트가 곧 물경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한 분야의 깊은 전문성보다는 대체로 얕고 넓은 지식을 가진 직업인이라는 점에서는 같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물경력과 제너럴리스트는 약간 다르다. 업무를 대하는 태도에서 큰 차이가 나타난다.
대학생 인턴으로 처음 회사에 발을 내디뎠을 때도, 신입으로서 정규직 첫 발을 내디뎠을 때도, 나는 물경력 업무를 견제했다. 속된 말로 짜치는 업무라고도 한다. 단순히 반복하거나 15분만 배우면 바로 할 수 있는 업무였다. 처음에는 너무나 하기가 싫었다. 내 커리어에 도움 안 되고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아서 너무 싫었다. 더 의미 있는 업무, 더 마케팅다운 업무를 하고 싶었다.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그 의미 있는 업무, 더 마케팅다운 업무가 무엇인지 정의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창의적인 광고로 세상을 바꾼다거나, 내 아이디어를 통해 우리 브랜드의 충성고객을 만든다던지.. 내가 생각했던 마케터의 이상향은 이런 거였다.
내가 선택한 업이 갖다 붙이면 마케팅이라고 할 수 있는 업무들이 넘쳐나는 직업이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아마 나는 마케터가 되면 '광고천재 이제석' 같은 역할을 맡게 될 줄 알았던 것 같다. 조금 올드한가? 지금으로 따지자면 '마케터 숭'으로 유명한 전 배달의 민족 마케터 이승희 님, 획기적인 마케팅으로 유퀴즈온더블록 등 다양한 방송에 나온 마케터들 같은 역할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물경력스러운 업무들이 무척 하기 싫었다. 매스컴에서 보던, 내 기준의 '불경력' 마케팅 전문가처럼 일하고 싶었던 것 같다. 참고로 그때는 마케터와 AE의 차이점도 몰랐다.
죽기보다 하기 싫었던 물경력 업무의 비율이 어느 정도 줄었을 때, 이 업무를 인수인계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난 이 물경력 업무에서 너무 많은 것을 배웠다는 걸 깨달았다. 처음에는 이 단순 업무에 대한 동기부여를 위해 의미를 가져다 붙였다. 그런데 웬걸, 내 손에서 이 업무를 떠나보내며 이 업무에 대해 생각해 보니 이 업무는 무척 중요했다. 고객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고객의 행동 패턴을 발견하고, 특이사항을 공유할 수 있었다. 마케팅 성과에 굉장히 유의미하고 중요한 데이터였다.
그렇다고 이 업무가 물경력 업무가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 물론 더 중요한 업무도 많았고 핵심업무라고 하기 어려웠다.단순하고 반복적으로 진행하는 방식으로, 대부분 인턴이나 아르바이트에게 맡겨지곤 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때 깨달았다. "이 업무에서도 실무 지식이든, 업무 태도든, 효율적인 업무 방법이든 배울 점이 분명 있다는 것을."
그 깨달음을 얻었을 즈음에 나는 물경력 마케터보다는 마케팅 제너럴리스트에 한 발짝 다가갔다고 생각한다.
네이버 사전에서는 제너럴리스트를 아래와 같이 정의한다.
물경력 업무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내 커리어 경험과 인사이트에 큰 도움이 된다. '물경력 업무라 하기 싫어'보다는 '이 물경력 업무에서 내가 뽑아낼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라고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 그때 우리는 어떤 분야에서 하나의 지식을 습득하고 경험을 가질 수 있다. 그 업무가 쌓이고 쌓여 우리는 마케팅 제너럴리스트에 가까워진다. 다양한 마케팅 업무를 경험하며 거기서 나만의 인사이트를 찾고 지식을 쌓는 것.
그것을 활용할 때 우리는 물경력이라는 프레임을 깨게 된다.
지금 하고 있는 그 업무가 물경력으로 판단되어하기가 싫다면, 그 업무를 왜 하는지? 내가 그 업무에서 뭘 얻을 수 있는지 아등바등 살펴보자. 나는 물경력 업무를 어떻게든 개선된 방법으로 실행하고자 했고, 이 업무의 의미를 찾아내고자 했다. (물론 진짜 하기 싫었다.)
그렇게 물경력 업무 하나하나가 쌓여 '일을 효율적으로 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생기기도 했고 '사소한 업무에서 인사이트를 찾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해온 업무들이 시장에서 엄청나게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몇억 대의 메타 광고를 집행해 본 적도 없고, 장기 플랜을 세워 진득하게 콘텐츠 마케팅을 해본 적도 없다. 내가 주로 맡았던 업무는 IT 플랫폼 운영과 마케팅이 혼재되어 호흡이 빠르게 진행되는 업무였다.
하지만 나를 선택해 준 회사나 나를 인정해 주는 사람들은 "너의 실무 경험치, 능력보다 태도를 좋게 보았어."라고 말한다. 나는 이 긍정적인 시선이 내 물경력 업무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그 덕분에 물경력이라는 틀을 깨고, 지금은 마케팅 제너럴리스트 어쩌면 스페셜리스트가 되기 위한 성장통을 겪고 있다.
모든 직업인이 그렇지만, 마케터는 특히나 계속 성장하고 배우는 직업임을 문득 느낀다. 그런 의미에서 세상의 모든 마케팅 제너럴리스트를 꿈꾸는 물경력 마케터들에게 소소한 응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