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내 운명이라면
악인들은 네 나약함과 우유부단을
약점으로
잘못된 시그널로 받아들이고
네 몸에 빨대 꽂으려 덤벼들고
네 벌레보듯 싸늘한 그 눈빛에
그 빨대를 거두고 줄행랑을 친다.
물론 그 눈빛뒤에 감춰진
모든것을 부숴버릴수 있는
결기와 감춰진 실력이 진짜 이유 일것이다.
한 없는 부드러움과
한 없는 무자비함을 동시에
갖추어야 남아라 부를수 있다.
진리는 주먹에서 나오지 않지만
평화는 왕왕 주먹에서 나온다.
살기를 머금지 않은
사내는 사내라 부를수 없다.
좇 떼고 귀 뗀 당마귀에 불과하다.
대등하지는 못해도
불가피한 상태서 전쟁 발발시
상대에게 치명적 파괴력을 보유하지
못한 나라가
왕왕 각종 말도 안되는 이유로
침략당하고 파괴당하고 불평등 조약을
억지로 체결하는거나 같은 이치다.
서슬퍼런 칼을 항상 차고 있어라
그 칼로 회를 떠 친구를 대접하든
악귀를 처단하든 그건 네 몫이이다.
운명이라면 피하지 말라.
적에게 해서는 안되는 말은
친구에게도 하지 말아라.
친구를 적으로 만들수도 있다.
누구든지 자신의 불행시 희생양을 찾으려는 원시시대부터 DNA에 전해져 내려온 본능과
8400가지의 번뇌와 욕망이 생겼다
사라지곤 한다.
인간성은 테스트 대상이 아니다.
누구나 성불하고 천당에 갈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부처님도 인연이 닿는 이들에게까지 불법을 전수했고
예수님도 아무나 붙잡고 설법하고
아무때나 기적을 행하시지는 않았다.
우리의 육신은 먼지같은 존재로 부터
시작하여 결국엔 먼지로 돌아가고
유리의 영혼은 육도윤회하거나
천상계에 입성할것으로 믿는다.
두려워 할것이 있다면 영혼의 느낌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영을
이곳에 보낼때
심어준
약속이자 계율일것이다.
두려워 할것이 있다면
그 계율을 어기는 일 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환상에 불과하다.
네가 그 환상에 힘을 실어줄때 그 환상들이
네게 영향을 미치고
모든것을 걸고 외면하고 거부하면 그 것들은
그 어떤 힘도 발휘하지 못한다.
호랑이는 들개들처럼 떼를 지어 다니지 않는다.
부처님도 홀로 깨달음을 깨우치셨고
예수님도 수년간 홀연히 사라져서
스스로 깨우치고 신통을 회복하시고 수많은
기적을 행하시고 이룰것을 다 이루고
언젠가 재림할것을 약속하시고 천국에 돌아 가셨다.
그 기적과 천국을 믿고 안 믿고는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그것을 운명이라 부르기도 하는것 같다.
각자의 운명속에서 우리는 궁극적으로
자신의 길을 찾아 그 길을 살아가고
영생의 그 곳에 들수 있을지
지옥 혹은 축생도에 떨아질지는 각자의 조화이다.
금덩어리들이 만들어 지려면 금모래들이 화산을 만나 녹임당해 금덩어리로
모이는 기적이 일어나야 가능하지만
우리는 자신을 순금처럼 제련해낼수 있다.
누구든지 성불할수도 있고 천국에 입성할수도
있다고 믿는다.
그것은 의념만으로 이루어지진 않는다고 생각 한다.
끝없는 공부와 수행이 필요한 분야라 생각 된다.
그 길을 모색하면서 조금씩 깨닫는 느낌을
그때 그때 공유 해보려 한다.
여기까지 꺼낸 김에 노자의 도덕경을
내가 느낀 느낌을 공유해 본다면
모든 철학과 종교는 서로 통하는것이 있다.
니체의 철학에서도 불교 사상 심지어는 도덕경의
일부 그림자를 볼수 있었고 예수님 설교에서도 일부 불교 교리와 통하는 부분이 있음을 느꼈다.
노자가 말한 도
무릇 도라고 말하는것은 일상적으로 말하는 도가 아니요.
이름을 붙일수 있는 것은 그것이 영원한 것은 없다
아무것도 없음이 태초의 그 상태였고 있다 고 하는 것은 만물의 근원이고 무에서 도 의 오묘함을 관찰하고
유 에서 도룰 찾아내고 무와 유는 근원은 같으나 다른 이름이 붙여진 것일 뿐이고 둘다 극히 오래되고 깊은 것이라 생각할수 있다. 모든 변화하는 것의 총체적 문이라 할수 있다.
복잡하고 어려워 보이지만
자기 삶의 목적과 가치는 스스로 알아차릴수밖에 없고
그 본질은 말로서 글로서 형용하여 가르칠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으로 이해한다.
몸과 영혼
운명과 의지
의지로 운명을 바꾸고 몸을 바꾸고 영혼의 안식을 얻고
가야 할곳을 느끼고 찾고 그 길로 가는 과정을
우리는 인생이라 부르고 도를 찾고 알아차리는 과정이라 하는것 같다.
내 표현은 나만이 온전히 느낄수 있고
누구나 스스로 그 진리를 알아차릴수 있다.
그 길에 몸과 영혼의 조화가 이루어져야 하고
각족 인연과 우리가 먹는 음식 약재들이 그것을
더욱 조화롭게 하거나 조화를 이루지 못하게
막을수도 있다는 것으로 난 이해를 했다.
그것을 깨닫지 못한 영혼이 창창한 미래와
미인송과 같은 몸을 포기하고 사라져 가는 모습을
봐왔고 본인이 원치 않았음에도
한정된 지식밖에 이해할수 없는 몸과 영혼으로
이 땅에 왔다가 난데없는 벼락에 맞아 쓰러진
순록처럼 사라져 가는 생명도 보았다.
그런 인연들이 내게 이런 깨달음과 계기를 주어
철학과 기독교와 불교를 다시 통찰하게 만들고
두서없는 글들을 이렇게 공유하게끔 만든다.
내게 생긴 일들 내가 자초 했던 일들
모두 발생가능한 일들이었고
내 미래는 나도 온전히 알수 없다.
다만 움츠려 들어 내가 가야할 길을 포기하고
해야 할 일들을 더이상 미루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갈수 있는 곳곳에 가서 보고 느끼고
그 소감 풍경 절경을 인연이 닿는 이들에게
공유할 것이다.
그게 내 운명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