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맘속 깊은 곳에서는
유일신 하나님을 믿는다.
성령 하나님도 믿고
항상 임재하심을 믿고 느낀다.
재림 하나님 예수님도 알고 있다.
심판이 있을 거라는 것도 믿고
천국도 믿는다.
성경말씀과 십계 주기도문도
전혀 거부감이 없고 매일매일
찾아서 읽고 쓰고 외운다.
다만 니체 철학 쇼펜하우어
철학으로서의 불교 티베트불교
노자 장자 공자의 철학도 거부감이 없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흥미를 느낀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이유가 있고
최상위 존재 하나님 외
또 하위 세계와 그 세계에서의 주재자들
이 존재할 수도 있고
그 주재자들이 영향을 미치고
관장하는 영역이 있다고 느낀다.
여러 신비한 힘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삶을 살아가는 지혜가 여러 철학사상에
골고루 있다고 믿는다.
마치 우리가 근력 운동을 열심히 하면
근육이 생기고 잠도 잘 오듯이
명상을 하면 뇌세포가 가소성이 활발해지고
머리를 쓰면 쓸수록
외우는 문자의 양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많은 문자를 쉽게 외울 수 있는 초능력이
생기는 것처럼
도구로서의 여러 철학사상 및 명상을
거부하고 외면할 이유가 없다.
백 년도 살지 못하는 우리가
수십억 년 혹은 이 우주가 생기기
전부터 존재했을 그 어떤 존재들에
대해 왈가 왈부 한다는 것 자체가
유치한 행동이라 생각한다.
한정된 인생
누구는 열 살도 안되어
몹쓸 병에 걸려 가기도 하고
누구는 서른몇에 심장 마비로 가기도 하고
암질환으로 뇌졸중으로 반신불수가
되기도 한다.
또 교통사고 혹은 천재지변으로 한순간에
삶이 마감되기도 한다.
지구에서 육신을 갖고 사는 삶이
가끔은 게임속 가상현실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어떤 역할이 맡겨질지는 누구도 알수가 없다.
정확한 판단이 혹은 현명해 보이는 판단으로
인해 수명을 단축 혹은 마감 혹은 더 안 좋은 불운으로 빠지기도
하고
福祸相依相伴 복과 화는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다닐수도 있고
무작위로 펼쳐지는 로또 번호 같은게 운명일수도
있다.
다만 최근 점점 흡인력 법칙의 효과를 체험하고 실감하게 된다.
낮에 우연히 동생애랑 티베트 천장에 대해서
얘기를 나눴는데 저녁에 천장에 관련된 내용의
유튜브 내용이 추천되어 오는 현상
천장이란 서장 일부 지역에서 전통으로 내려오는
장례 방식을 얘기 한다.
사람이 사망한후 천장을 담당하는 장의사가
천장대에서 죽은 사람의 시신을 분해해서 펼쳐 놓으면
독수리들이 그 살점을 쪼아 먹는 방식이다.
영혼의 부활 및 내세를 믿는 티베트인 들에게 있어서
천장은 그야말로 최고의 적선 행위라 생각한다.
독수리는 신과 땅을 이어주는 매개체이고
사후 자신의 살점을 그 독수리에게 공양 함으로서
독수리가 다른 동물들을 잡아 먹는 양을 줄임으로서
공덕을 쌓는 행동이라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사망한 사람이라 해도
유골을 온전히 장례지내고 땅에 묻어서 안식을
기원하는 유교 문화권에서는 이해 안되는 장례 방식이고 끔찍하게 느껴질수도 있다.
다만 그 사람들 신앙에서는 더없이 큰 공덕을 쌓는 일이며 가족들이 천장사에게 사례로 털소 양 등을 공양하며 고마움을 표한다.
삶의 방식과 죽음후의 장례장식 시체를 처리 하는 방식 그 마감방식이 똑같을 이유는 없다.
그런 천편일율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야
삶과 죽음의 경계에 연연하지 않고
진짜 참된 삶을 살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우리의 육신조차 우리 것이 아니고
대자연의 일부이고 죽어서는 돌려줘야 하는 도구인데
살면서 얻은 온갖 명성 허명 재부가
온전히 우리것이라고 집착할 이유가 있을까.
티베트 인들을 보면 두려움이 들기도 하고
한없이 선해보이기도 하는 이유가
그들의 신앙과 삶의 방식때문일 것이다.
경외롭고 경원하게 되는것
존경심과 무서움은 한끗 차이다. 동의어 일수도 있다.
존경하지만 멀리한다는 한자 성구가 있다.
敬而远之네 글자다.
존경 혹은 경의를 표하지만 거리를 두고 싶다는
표시다.
인간대 인간이 모두 각자에게 경의심을 갖고
살아 간다면 이 세상은 더할나위도 없이
평화롭고 자연스러울 것이다.
서로 속이고 사기치는 일들도 없을 것이고
인과보응을 믿는다면 각자의 한계를 인정하고
더욱더 참된 지혜 현세와 내세에 대한
탐구에 몰두 할수 있을 것이다.
너와 나 구별하고 편견을 갖고
경각심을 두고 항상 걱정하면서 사는 삶
모든것을 내려 놓고 분별심 없이 자연스럽게
삶이 가져올 모든 복과 화를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삶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각자의 몫이고
그것 역시 각자의 운명이다.
반면 신앙 철학과 문학예술 의학은 항상
상부상조하며 수천 년 수만 년을
전수되어 내려오면서 발전하기도 하고 실전되기도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켰다.
철학을 즐기고 탐구한 사람들이
보통 오래 살았다.
물론 귀족 계층이니 물질적 토대가
좋았을 가능성도 있지만
공자 노자 장자를 보면 72세 100세 83세
70세가 희귀하던 시절 그들은
일반인들에 비해서 훨씬 천수를 누렸다.
특히 유유자적한 삶을 원하고 살았던
노자 장자는
80세 이상을 살았다.
오래 사는 것 자체가 삶의 목적이 아니라
진리를 깨우치는 것
자신을 잊을 정도로 철학과 각종 문헌에
홀릭되어 무아지경에 빠져
근심걱정을 잊은 것이
그들의 노화와 악성 세포들이 증식하는 것을
줄여주고 늦춰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중국의 신의 화타 63세 조조한테 피살
(145~208)
장중경 69세 (150~219)
본초강목을 쓴 리시진 75세(1518~1593)
티베트 의학자宇妥·宁玛云丹贡布위퉈 닝마윈단꿍뿌 125세(708~833)
대부분 의학자들이 오래 사는 것이
우연히 아닐 것이다.
음식과 약재 우리 몸에 좋은 것과 안 좋은 것을 가릴 줄 아는 지혜를 깨우쳤기 때문이
아닐까.
그때 시대 상황은 오직 귀족들만
최상의 의료서비스 및 최상급 약재를 공급받았고
하층민은 문자를 깨칠 기회조차 없었으니
그런 지식을 얻을 기회조차 없었을 것이다.
지금은 원하면 검색 몇 번이면
모든 서적 자료가 검색되어 나온다.
지식의 결핍보다
의지의 결핍이 더 문제인 시대라
생각한다.
각자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가꾸는 것만으로도 의료보험비용지출을 줄일 수 있고
국가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격이라
생각된다.
허무맹랑한 나라 사랑 구호보다.
자기 사랑 가족사랑이 곧 나라사랑임을
더 많은 이들이 깨닫는 날이 올 수 있을까.
불치 병으로 시한부 생명을 선고받은
이에게 그의 국적 그의 재부
그의 신분 지위 큰 의미가 없다.
아마 후회만 있을 것이다.
아니면 깨우쳤다면 담담히
최후를 준비하고 받아 들일 것이다.
그의 행적에 따라 좋은 것으로 갈거라
믿는 사람도 있고 마지막 순간까지
근심걱정 불안에 떠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것 역시 그들의 업보이고 운명이리라.
그동안 얼마나 많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담백하게 깨끗하게 살았는지
베풀며 살았는지가 그가
갈 곳을 결정짓게 될 것이다.
십계를 지키며 주기도문을 외우며
철학책을 탐독하며 티베트 의학
중의학 한의학 약재 명상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재작년에 한번
심하게 아팠던 심장 관상경맥협소증으로
인해서다.
2개월간 아스피린을 먹다가
그것 역시 부작용이 있음을 깨닫고
복용을 멈췄다.
그리고 운동을 시작하고
음식식단 조절. 주기적 단식
명상을 시작했더니
그리고 쉽게 화를 내는 성격을 바꿨더니
2년 가까이 심장이 조여드는 느낌이 더이상 없었다.
일체유심조가 맘에 한정되는 것이 아닌것 같다.
맘이 곧 육체 육신에 영향을 미치고
육체의 근력 또한 맘에 영향을 미치고 수면에
영향을 미침을 최근 사년간 몸소 겪어봤다.
며칠 전 라싸에서 백팩 메고 부다라궁에 올르며 무리한 것 외에는
전혀 증상이 없었다. 그때는 심장이 조금
압박감을 느꼈다.
미숙하지만 자신의 몸을 알아가고
세상을 알아가고 인간을 알아가고
그 소감을 공유하는 일 역시
적선이라 생각한다.
인연이 닿는 이에겐 분명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다
별일 아닌 일들을 체험하고
그것을 문자로 정리하고 공유하는 일
그 과정이 내겐 기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