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관계는 대화의 질로 규정되어 왔습니다
<대화의 밀도>, 류재언
Intro.
너무 당연해서 일상에서 생각해보지 못한 것이 있다면 대화가 아닐까. 사회에 살아가면서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땐 대화가 필요하다. 말을 주고받는 것. 말은 어렸을 적부터 커가면서 자연스레 습득한 것이라 내가 쓰는 말을 의식하기 어렵다. 식당에서 하는 주문, 지인들과의 모임, 직장에서 오가는 사무적인 소통 모두 대화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대화가 하면 할수록 어려워진다. 내 생각이 제대로 전달이 됐을지, 혹시나 오해한 것은 아닐지 두렵다. 내 말투가 공격적이어서 상대가 방어적으로 나올까봐, 너무 무거운 주제는 아닌지,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말하기를 했는지 돌아보게 된다. 잦은 모임을 갖지만 모임을 가질수록 공허함만 남는 상황이 반복된다.
만족스러운 대화를 한 날에는 건강한 음식을 먹은 것처럼 맑은 정신이 깃든 느낌이 든다. 그들과의 대화를 곱씹게 되고 기록하고 싶어진다. 이 책은 저자가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서 느낀 점들을 써 내려간 에세이다. 진실된 관계는 무엇인지, 행복은 어떤 것인지 고민한 흔적이 있다.
1. 좋은 말
"말은 한 사람의 생각과 태도와 삶의 숨결이 묻어나는 인생의 지문이다."
밖에 나가려면 옷을 입어야한다. 사람들이 옷 입고 돌아다니는 것에 놀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옷은 언제나 사람과 함께하지만, 모두 같은 질과 스타일의 옷을 입는 것은 아니다. 재질이 좋은 옷이 있고, 튀는 스타일을 돋보이게 해 줄 심플하지만 감각적인 옷도 있는 반면, 툭 튀어 개성을 확실히 보여줄 수 있는 옷도 있다. 그 사람이 입은 옷이 전체적인 사람의 성격을 말해줄 수 없지만, 단면적으로 취향이나 평소 입는 옷 스타일을 알 수 있다.
말도 마찬가지다. 사회에 살아가면서 반드시 대화가 필요하다. 너무 당연해서 놓치기 쉽지만 말은 나를 나타내는 하나의 수단이고 말을 통한 대화는 내가 살아가는 태도를 나타낸다. 말투가 매력적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공간을 편안하게 해주는 사람도 있고, 자신의 이야기만 하거나 자신의 의견이 옳다고 고집하는 사람도 있다.
내 말에는 평소 생각이 그대로 드러난다. 내 말투에는 내 태도와 내 삶의 결이 그대로 묻어난다. 평소 좋은 생각을 해야 좋은 말이 나온다. 일상에서 정리된 사고를 해야, 정제된 말이 나올 수 있다.
말은 한 사람의 생각과 태도와 삶의 숨결이 묻어나는 인생의 지문이다. 우리는 그 사람의 말로 그 사람을 판단하고 규정한다. 그렇게 내가 뱉은 말은 내 운명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말은 글처럼 생각을 정제할 시간을 주지 못한다. 평소에 보고 들은 것이 무의식 속에 저장되어 내뱉어진다. 말투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말끝을 흐리거나 공격적인 투는 불편하게 만든다. 자연스러운 템포로 조리있게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보면 매력적이다. 자신의 고유한 의견을 가지기까지 어떤 것들을 담았으며, 중간에 길을 잃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끝까지 해내기 위해 정제하는 시간을 얼마나 들였을지 궁금해진다. 말은 어렸을 때부터 커오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습득한 것이라, 좋은 말을 하려면 좋은 생각과 삶을 들이는 연습이 필요하다.
2. 대화의 태도
관계를 맺기 위해선 대화가 필요하고, 진실된 관계를 위해선 진심을 나눈 대화가 필요하다. 나에 대해 많은 것을 과시하지 않아도 되는 대화, 상대의 이야기를 끝까지 경청하고 질문을 통해 깊어지는 대화.
“교수님, 성공한 인생이란 무엇인가요?” (…)
"재언아, 내가 생각하기에 성공한 인생은 진심을 많이 나눈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정보를 주고받는 것 이상의 대화를 하지 않는 모임 후에 더 공허해진다. 분명 대화를 했는데도 대화에 대한 갈증이 물밀듯 들어찬다. 심한 갈증을 겪고 난 뒤엔 그 이유를 분석해 보았다. 질문을 받고 대답을 했음에도 며칠 뒤면 나이만 기억하고 이름은 가물가물한 관계가 되어있을 것이 뻔한 관계이거나, 서로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아닌 자기 이야기를 할 타이밍만을 봐서 시도 때도 없이 주제가 넘어가고 그 주제들마저 유쾌함만을 쫓는 모임이었다. 알맹이 없는 대화만이 오간 것이다.
가벼움이 주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심도 깊은 대화를 할 수 있는 모임들을 찾아다녔다. 경험으로부터 얻은 교훈과 고통의 시간에서 알아낸 진실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그들도 나에게 시련 속에서 생겨난 단단한 가치관을 공유해주길 바랐다.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고 이해하길 원했다. 진지함이 주는 무거움이 대화에 대한 갈증을 해결해줬으면 했다. 그러나 어떤 틈도 없이 조밀한 내면으로 꽉 차 있는 개인들의 대화는 철저히 타자가 되도록 만들었다. 다양한 이야기들이 한 공간에 있었지만 섞여있을 수 없었다.
대화주제의 경중이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대화의 태도였다. 자신이 이 세상에서 주인공인듯한 태도, 눈과 귀를 닫고 입만 여는 태도. 타인을 들이기 위해선 어느 정도 내 안이 비어야 한다. ‘나’의 시각으로만 바라보는 세계만 들어차있으면 편협한 시각을 갖게 된다. 상대의 이야기를 듣지 못하게 되고 발설하려는 욕구를 풀어야하는 상태가 된다. 발설하는 욕구는 인정욕구와도 같다. 인정욕구를 없앨 순 없다. 욕구를 해결하는 방법은 유연한 사고를 갖고 상대를 경청하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다. 내 안에 타인을 들일 틈을 마련하기 위해 유연한 사고를 가지고, 상대를 인정하기 위해 경청하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다. 상대가 그와 다른 나의 생각에 열린 사고를 가지고 경청하는 자세를 가진다면, 나의 존재가 인정받는 기분이 든다. 그런 태도로 대화에 임한다면 정서적 교감이 가능한 시간이 오고 대화의 질이 올라가고 대화할 수 있는 폭도 넓어진다.
고래식 대화는 단단한 자존감과 절제된 에고가 전제되어 있기에, 이들은 상대를 위협하거나 무시하거나 비교하지 않으면서도 얼마든지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고 상대와 정서를 나눈다. (…) 그들의 대화법에는 상대도 곧 방어기제를 누그러뜨리고 가면을 벗고 자기 안의 솔직한 모습을 드러내도록 이끄는 힘이 있다. 자연히 더 깊은 교감이 가능해진다. (…) 누구도 누구를 지배하지 않고, 누구도 타자가 되지 않는, 나를 지키면서도 상대를 인정하는 연결의 대화가 바로 고래식 대화법이다.
3. 친절하자
짧은 발화의 쾌감, 그리고 긴 후회
“당신이 만나는 사람은 누구든 당신이 예상할 수 없는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어요. 언제나, 친절하세요.”
-로빈 윌리엄스
어떤 고민으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이유없이 기분이 좋지 않은 하루가 있다. 그 기분으로 좋은 말이 나가지 못할 것이 뻔하다. 또한 ‘심리적 면역력’이 떨어진 상태라면 같은 말도 왜곡해서 받아들일 확률이 높고 관계자체에 피곤함을 느낄 수 있다. 기분이 태도가 되면 안된다는 조언은 출처가 불분명하지만 지금은 거의 당연한 도덕으로 자리 잡았다. 안타깝게도 기분이 태도가 될 수밖에 없다. 쇄약해진 상태는 상황을 안 좋은 방향으로 해석하게 하며, 부정적인 시각은 말과 말투를 바꾼다.
감정은 시시각각 변한다. 당장 몇 분 뒤에 어떻게 변할지 예측하지 못하는 것이 감정이다. 즉, 지금 기분이 안 좋더라도 평생 그런 기분이 유지되진 않는다는 뜻이다. 기분이 태도가 될 수밖에 없지만 감추는 방법은 있다. 안 좋은 감정이 생겼을 때 침묵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불상사를 막을 수 있다.
친절하자는 말이 단순히 모르는 타인에게 싱글생글 웃고 좋은 말만 하자는 뜻이 아니다. 기분이 안 좋다면 말을 아끼고, 최소한의 인사와 감사는 표현하는 것도 친절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힘든 하루를 보냈지만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힘든 하루를 보내고 있을 것이다. 삶을 살아가며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의 속사정을 다 들을 수 없다. 그렇게 각자의 힘든 사정을 안고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베푼 친절은 뜻밖의 위로가 될 수 있다.
Outro.
항상 관계에 대한 고민을 한다. 정서적 교감을 계속해서 원했다. 나의 말이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고민한 흔적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상한 투로 끝나버리는 습관이 되었다. 다정한 것도, 공격적인 것도 아닌 그 어중간한 무언가. 그래서 끊임없이 고민한다. 대화를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편안하게 연속적인 대화를 할 수 있을지. 내 안에 가득 차 있는 자의식을 어떻게 비워낼 수 있을지.
화려한 말솜씨로 대단한 재주를 부리지 못하더라도, 약간의 정적을 즐기며 여유롭게 교감했으면 좋겠다. 잠깐 몇 마디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도 친절을 베풀며 느슨한 연대를 체험했으면 좋겠다.
Q. 인상 깊었던 대화가 있나요?
Q. 평소에 어떤 말을 하시나요? 자주 반복하는 단어가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Q. 진실된 관계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여러분은 진실된 관계를 맺고 계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