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정처 없음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리추얼의 종말>, 한병철

by 공백



Intro.



'리추얼(Ritual)'하면 무엇이 생각나는가? 현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겐 '루틴'이 더 친숙한 단어일 것 같다. 올해를 지나며 나에 대해 깨달은 사실이 있는데, 바로 루틴을 지독하게 사랑하는 사람이란 것이다. 루틴은 끝없이 무너지지 않도록 지탱해 주는 삶의 기반이자, 하루를 질서 있게 살 수 있도록 북돋는 발판이다. 일정한 시간에 기상한 이후, 혹은 하루의 마무리에 이어진 일련의 반복된 행위들이 잡음과 같은 생각을 비워내고 의식에 집중하도록 도와준다.


그러나 성과주의에선 계속 똑같은 행위는 도태의 전조가 될 수 있다. 어제보다 더 나은 나를 만들어가기 위해선 어제와 같은 행위는 미래가치가 생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 인간의 짧은 여생에서 반복은 결국 허무주의에 이르게 될까? 철학자 한병철은 허무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리추얼에 있다고 보았다. 그가 생각한 리추얼은 무엇인지, 그 리추얼이 인간의 삶에서 어떤 기능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는 노력이 24년을 지나는 시점에서 올해를 되돌아보며 되려 위로를 받는 시간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성과주체 비판



리추얼, 지속, 집약적, 탈내면화, 형식 ↔ 자아 리비도, 연쇄, 외연적, 나르시시즘, 기의




나르시시즘적인 자존감이 내면 깊숙이 파고드는 것이라면 리추얼은 자아 바깥에 서는 행위이다. 자아중심적이고 성과중심적인 사회에서 리추얼은 반갑지 않은 단어다. 저자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만연한 자아 리비도를 비판하며 리추얼을 나르시시즘적 내면화 과정의 반대개념으로 제시하는 1장을 통해 제목의 '리추얼'의 개념과 '종말'의 원인을 소개한다.


p.14
신자유주의는 다양한 방식으로 도덕을 착취한다. 도덕적 가치들이 특색으로 소비된다. 그것들은 자아 계좌에 기입되고, 그러면 자기 가치가 높아진다. 그것들은 나르시시즘적 자존감을 높인다. 사람들은 가치들을 통하여 공동체와 관련 맺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자아와 관련 맺는다. (…) 나르시시즘적 내면화 과정은 형식에 대한 적개심을 일으킨다. (…) 자아 리비도는 리추얼과 결합할 수 없다. 리추얼에 몰두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려야한다. 리추얼은 자기거리를, 자기초월을 만들어낸다. 리추얼은 행위자를 탈심리화하고 탈내면화한다.



p.25
자아 리비도가 성과주체를 지배한다. 더 많은 성과를 낼수록 성과주체는 더 많은 자아를 획득한다. (…) 나르시시즘적 성과주체는 자아 리비도의 치명적 축적으로 인해 파열한다. 그 주체는 자유의지와 열정으로 자기를 착취하여 결국 붕괴한다. 그 주체는 자기를 죽음에 최적화한다. 그 주체의 좌절을 일컬어 우울 혹은 ‘번아웃’이라고 한다.



계속해서 리추얼과 자아 리비도를 대조시킨다. 위 문단에선 노동과 성과를 구분하여 신자유시대에 과잉된 성과주체를 비판한다. 개인은 끝없는 성과를 내며 자신을 사회에 상품으로써 드러내야 한다. 사회에 드러내는 모습은 SNS의 계정, 성적, 학력, 경험 등 다양하다. 자신을 벼랑 끝에 내몰리게 하거나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환경에 처하게 해서, 더 성숙하고 경험 많은 자아로 포장해야 한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자아가 곧 상품이기에 포장된 자아는 그 자체로 만족하거나 만족되지 않고 경쟁을 하며 더 향상해야 한다. 자신을 끝없이 고양시키다 필연적으로 불꽃이 꺼지게 되고 자기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저자는 이를 번아웃이라 지칭한다.



또한 이 문단에서 연쇄적 지각과 상징적 지각의 대비도 확인할 수 있다. 끝없이 자신을 상품 가치로 포장해야 하는 주체는 머무르지 못하고 목표를 단계적으로 뚫고 나갈 뿐이다. 반면 리추얼을 행하는 자는 현재의 순간에 머무르며 그 순간을 상징적으로 지각한다. 상징적 지각은 의미보단 형식, 정신보단 몸을 통해 발생한다. 이 책에선 예법에 맞는 몸짓, 일본식 다도를 예로 든다.











형식의 중요성




p.34
리추얼적 전환은 내면과 외면의 관계, 정신과 몸의 관계를 뒤집는다. 몸이 정신을 움직인다. (…) 외적 형식이 내적 변화를 가져온다. 예컨대 예법에 맞는 공손한 몸짓은 정신적 효과를 낸다.(…) ” 공손한 몸짓은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는 힘이 크다. 상냥함, 호의적임, 기쁨을 몸짓으로 흉내 내면, 나쁜 기분과 복통을 완화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그 흉내에 필요한 운동들-허리 굽히기와 미소짓기-은 거기에 반대되는 분노, 불신, 슬픔의 운동들을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장점이 있다. 사교 모임이 이토록 사랑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교 모임은 행복을 흉내낼 기회를 제공한다. 이 희극은 우리를 비극으로부터 확실히 멀어지게 하는데, 이것은 결코 사소한 효과가 아니다.“



생각해 보면 생각이 많아지거나 우울할 때 잠시 수면 위로 나오게 해준 것은 사교모임 나가기, 밖에 산책하기였다. 사교모임 속, 혹은 타인과 같이 존재해야 하는 밖은 나를 드러내야 한다. 자신의 바깥을 드러내려면 혼자 있으며 깊이 잠겼던 우울을 잠시 내려놓고 일상생활에서 보이는 여느 사람의 모습과 같이 위장해야 한다. 이는 자신의 표정과 몸을 흉내 냄으로써 잠시나마 우울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p.18
반복은 리추얼의 본질적 특징이다. (…) 따라서 다시 알아보기로서의 반복은 맺음형식을 띤다. 즉, 과거와 미래가 생동하는 현재에 통합된 형식이다. 맺음형식으로서의 다시 알아보기가 지속과 집약성을 창출한다. 다시 알아보기는 시간을 정주하게 만든다. (…) 옛것은 행복을 준다. “반복이 무언가 새로운 것이리라 상상하며 자신을 속이지 않는 사람만이 정말로 행복해진다. 그렇게 상상으로 자신을 속이면, 반복에 싫증이 나기 때문이다.”



정신자체를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형식을 통해 정신을 재정비하는 것이 쉽다. 침체되어있는 사람에게 주어진 잠깐의 산책은 잠식되어있던 시간들이 무색할 정도로 정신을 맑게 해줄 수 있다. 이 점에서 루틴의 중요성이 조명된다. 반복되어 쌓인 내공은 외부의 시련에 휘청거릴 순 있어도 처참히 무너지게 두지 않는다. 그 시간들이 다시 나를 일으켜 줄 것이다.











긍정성의 과잉



p.90
오늘날에는 끊임없이 떳떳하게 도덕화가 이루어진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사회는 난폭해진다. 공손함이 사라진다. 진전성 숭배는 공손함을 경멸한다. 아름다운 교제 형식들은 점점 더 드물어진다. 이런 면에서도 우리는 형식에 적대적이다. 도덕은 사회의 야만화를 배제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도덕은 형식이 없다. 도덕적 내면성은 형식 없이 작동한다.


p.116
금지나 박탈의 부정성이 아니라 과잉생산의 긍정성이 도덕성을 없앤다. 현재 사회가 앓는 병의 본질적 원인은 긍정성의 과잉이다. 과소가 아니라 과다가 현대 사회를 병들게 한다.



자유주의 관점에선 도덕도 선택의 자유다. 도덕의 형식은 어디에도 없기에 개인이 정의 내리고 행하는 도덕의 형태는 다를 것이고 그 도덕을 어떤 상황에서 행할지 선택하는 것은 자유다. 따라서 개인이 모인 사회는 난폭해질 수밖에 없다.



사회에선 형식이 어떻게 기능해야 하나. 도덕과 배려를 형식 속에 갖추어야한다. 하고싶을 때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점원에게 인사하는 것, 솔직함을 포장할 줄 아는 것, 웃음에 웃음으로 보답하는 것, 호의에 감사할 줄 아는 것. 리추얼은 타인으로 배척하지 않고 공동체 속에 살고 있음을 상기시켜줄 수 있다.













Outro.


이 책은 매번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들을 비판하며 빠르게 흘러가는 사회 속에서 자신의 고유함을 뿌리내리게 해주는 방식을 제시한다. 반복된 행위, 맺음 형식, 침묵을 통해 삶에 리추얼을 들일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재미있었던 포인트는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부정성이 담긴 단어에 담고, 비판하고자 하는 의미를 긍정성이 담긴 단어에 담았다는 점이다. 부정적인 단어의 의미를 전환해서 독자에게 1차원적 의미와 전환된 의미를 동시에 전달함으로써 단어에 부피감을 더해주었다. 그렇기에 아무 생각 없이 줄글만 읽으면 무슨 소리인지 감이 잡히지 않고 맥락이 없는 다른 비유들을 늘어놓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나열된 비유의 상위 의미를 생각해 보면 결국 리추얼로 귀결된다. 당신의 리추얼은 무엇인가?








Q. 당신이 현재 행하고 있는 루틴이 있나요? 그 루틴이 당신에게 어떤 의미를 가져다 주나요?



Q. 성과주의에 대한 당신의 생각을 이야기해주세요. 자기자신이 상품가치가 되어 소비하는 사회에서 과잉소비되어 번아웃에 이르게 하는 현상을 어떻게 멈출 수 있을까요?



Q. '긍정성의 과잉'편에서 도덕의 개인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솔직함과 예의를 갖추는 것 중 어느 것이 중시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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