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는 울타리. ep.1]
“울산으로 발령 났다고? 고향이 울산 이랬지? 잘 됐네. 가서는 집밥도 꼬박 챙겨 먹을 수 있고.”
현장의 20년 경력 보일러 기사님이 지나가시며 덕담해 주셨다. 애써 웃으며 그동안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생각했다.
‘집밥이라… 나쁘지 않지. 그런데 이제 맘껏 시켜 먹던 배달음식은 끝인데.’
아쉬운 마음이 컸다.
녹초가 되어 돌아가는 버스 한 켠의 나. 흔들리는 차창안에서 가까스로 배달 앱을 검지로 누르면 언제 그랬냐 듯이 눈이 초롱초롱 해진다.
‘오늘 점심 때 짬뽕 먹었으니까 저녁은…든든한 국밥으로 하자.’
집에 도착함과 동시에 문 앞에 놓여진 배달음식과 함께 집안으로 들어서는 그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한아름 싸여진 비닐봉지를 벗겨내자 뜨뜻한 플라스틱 사발그릇이 보였다. 내 얼굴보다 크다. 뚜껑을 열자 아직까지 뜨거운 김이 내 코 끝을 때렸고 그 뒤로 구수한 냄새가 올라온다. 단숨에 옆에 나란히 놓여진 공기밥을 넣어버린다. 밥이 적당히 말아졌다고 생각하고 한 입 떠보려는 찰나 포장 비닐에 덮여 미쳐 놓쳤던 새우젓과 다대기가 보인다. 아차 하고서는 적당히 덜어서 국물 속에 넣고서는 숟가락으로 휘젓는다.
-후릅.
간은 딱 맞다. 어서 한입 가득 한 숟갈 입으로 집어넣는다. 딸려온 돼지고기들과 찐한 국물의 묵직한 맛이 입안 가득 채워진다. 약간 느끼하려던 차에 자연스레 젓가락은 두툼한 깍두기로 간다. 크게 베어먹자 시큼하면서 시원한 김치 맛이 느끼함을 딱 잡아준다. 정신없이 먹다 보면 어느새 사발그릇을 통째로 들어올려 마무리하는 나의 모습이 보인다.
근데 왜 이렇게 허전할까?
정말 맛있게 한 그릇 뚝딱 마무리했지만 무언가 부족했다. 실은 혼자 먹는 식사는 항상 그래왔던 것 같다. 마음 한 구석 불편한 마음은 무엇일까? 그 답은 멀리도 아닌 나의 과거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었다.
때는 2012년 3월. 기나긴 추위 속에서 6주간의 훈련을 마치고 막 집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이미 사회인의 티는 온데간데없고 까까머리에 피부는 까무잡잡하고 눈만 빛나는 이상해 보이는 놈이 허겁지겁 밥숟갈에 쌀밥을 퍼먹고 있었다.
“와, 옛날에는 몰랐는데 엄마 밥이 이렇게 맛있네? 진짜 훈련소랑은 비교도 안 돼. 거기는…”
날이 날인 만큼 오랜 시간 양념에 재워 둔 LA갈비부터 잔칫상에는 빼놓을 수 없는 잡채까지 있었지만 중요한 것은 종류가 아니었다.
그냥 오롯이 나를 위해 차려진 그 밥상이 좋았다.
다음은 아마도 홀홀 단신으로 외국 물 좀 먹고 온다며 배낭 하나 달랑 매고 온나라를 헤매다 왔을 때였을 것이다. 그날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온다면 온다고 이야기를 하고 와야지, 어휴… 오늘은 이걸로 때우고 내일 뭐라고 먹으러 나가자.”
“아니, 이거면 충분한데? 있잖아요, 내가 외국에서 혼자 한식 많이 해먹었는데 그래도 엄마 솜씨는 못 따라간다. 맛있어.”
입국날을 제대로 말하지 못한 탓에 미쳐 밥상을 못 차렸다는 어머니의 말씀에 빈말이라도 해야지 생각했다. 그런데 사실 ‘맛있다’는 것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그저 그런 마른반찬에 빨간 소고기 무국이었지만, 늘 보던 국그릇, 밥그릇, 수저에 박힌 무늬는 묘하게 나를 안심시켰다.
실은 기대하고 있다. ‘집밥’ 말이다.
이렇게 말하고도 어쩌면 어릴 적 하던 버릇대로 고기 반찬은 왜 없냐며 슬며시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기대하는 것은 밥맛이 아니라 언제든 돌아가 앉을 나만의 식탁 의자 그리고 언제부터 쓴 것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나의 은수저와 젓가락이 놓인 밥상일지도.
그러니까, 그리웠다. 언제든 지겨울 만큼 반겨주는 따스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