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는 울타리. ep.2]
“아버지는요?”
“저녁 약속 있으셔서 나가셨다. 술 드시고 오시는 거지, 뭐.”
회사 전근으로 본가인 울산으로 돌아온 지 이틀째이지만, 아버지의 얼굴을 아직 보지 못하였다. 첫날은 농사일로 할머니 댁에서 가신다는 이유로.
오늘은 술 때문에.
어릴 적 아버지께서 회식으로 밤늦게 들어오신다는 말을 들으면 온몸이 굳으며 장기들이 털썩 주저앉는 느낌이었다.
'언제 오실까. 그전에 잠들 수 있을까.'
'방문을 잠그는 것이 좋겠지?'
'아냐, 그러면 문고리를 가만두지 않으실 거야.'
'그냥 침대 밑으로 숨을까. 없어진 척하는 거지.'
'아니, 그러면 더 화만 돋우는 일 인걸.'
온갖 생각들이 머릿속을 휘젓기 시작하는데 결국 아버지가 문을 두드리는 그 순간까지 이어진다.
쾅, 쾅. 철컥, 철컥.
다행히 내 방은 아니었다. 이윽고, 누나의 짜증 섞인 외침이 이어진다.
“쫌, 제발! 잠 좀 자게 해 줘! 제발!!”
심장이 터질 것만 같다. 문을 닫고 있었지만 마치 내 귓가 바로 옆에서 윙윙 울려댄다. 계속되는 실랑이 속에서 고성과 비명, 그리고 울음소리도 섞여 있었다.
갑자기 고요해진다. 아니, 듣다 지쳐 잠이 들었던 걸까?
그 순간 문이 열린다.
끼익-
“아이고, 우리 아들. 자나?”
눈을 찔끔 감고 만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 까. 어머니가 아버지를 내 방에서 끌고 나가신다. 곧이어 안방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나 홀로 남겨진 방안에 메아리치며 내 귓등을 끊임없이 때린다.
잠에 드는 건 결국 아버지의 코 골이 소리를 듣고 나서이다.
그 시절 아버지는 나에게 불편한 존재였다.
오늘은 그날과는 달랐다.
집에 돌아오셔도 그 누구의 방도 아닌 큰방으로 곧장 들어가셨다. 어머니와 짧은 대화를 나누신 뒤에는 곧바로 잠자리에 드셨다.
그날 밤, 목이 말라 자기 전에 물을 많이 먹어서였을까 화장실에 가고 싶었고, 방문을 열고 나왔다. 아무도 없어야 할 화장실 문 사이로 불빛이 비쳤다. 누가 불을 안 끄고 나갔지 하는 생각과 함께 문을 열었다.
그리고 닫힌 변기 위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한 사람.
아직도 눈에 선하다.
모래먼지 날리는 옛 운동장처럼 휑하니 비어 있는 정수리.
축 쳐지다 못해 누군가 누르고 있는 마냥 쪼그라든 어깨.
그리고 깊이를 알 수 없는 긴 한숨까지.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는 조심스레 다시 문을 닫았다.
성인이 되어버린 지금, 더 이상 그토록 드세던 거인은 온데간데없었다.
작고 초라한 당신뿐이었다.
돌아와 침대에 다시 누웠을 때도 고개 숙인 모습이 눈에 아른거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눈에 밟힌다는 말이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일까?
그래서 여전히 아버지는 나에게 불편한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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