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는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이 그 어느때보다도 중요한 사회이다. 얼굴을 가꾸고 몸매를 만들고 본인에게 맞는 옷을 스타일링한다. 심지어 내 피부톤이 어떤 색과 어울리는지 알기 위해 10-20만원 쯤은 쉽게 지불한다. 그래도 안되면 성형수술을 해서라도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자 애쓴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틱톡 등에서 보여지는 전세계 사람들은 모두 슈퍼스타 저리가라 할정도로 섹시하고 멋있다. 외모의 기준이 높아지고 거기에 맞게 사람들의 외모는 상향평준화 되고 있다. 나쁠 이유는 없다.
이 시점에서 고리타분하게 "외면보다 내면이 더 중요한 거야' 라는 식의 훈장님 말씀은 하고 싶지 않다. 세상이 변하면 페러다임도 변하고 변화된 페러다임은 그 사회의 준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면과 외면을 상반시켜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아닌가를 논하는건 어쩌면 시대착오적 발상이 될 수도 있다. 또한 내면이 아름다워야 더 행복해진다는 식의 철학적인 말도 하고 싶지 않다. 외면의 아름다움으로 얻는 도파민이 더 크다면 그럴수도 있을 수 있으니까. 오히려 수많은 성찰과 훈련을 겪어야지만 조금 반듯해 질까 말까한 내면의 아름다움보다 외면을 가꾸는 것이 반대로 자신감과 존재감이라는 내면의 중요한 덕목에 효율성을 더해 줄수도 있다. 나는 그래서 내면만큼이나 외형을 열심히 가다듬고 가꾸는 것에도 아주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놓치고 있는 점이 있다는 것을 살면서 꺠닫게 됐다. 바로 외형의 '범위'이다.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타인과 교류를 하며 산다는 뜻이고 그 말은 우리는 끊임없이 타인과 대화를 주고 받고 살아간다는 의미이다. 반평생 가까이를 살아보니 대화의 내용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말의 내용을 담는 외형, 즉 '말투'가 정말로 중요하다는걸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어떤 사람과 가깝게 관계를 이어가고 싶고 함께 무언가를 이루어 가고 싶다는 욕구는 그 사람이 나에게 보여주는 말투가 의외로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걸 꺠달았다. 어떤 주어진 상황에서 이 사람이 어떤 식으로 말을 하는지가 결국은 상대방이 나에게서 보는 '나'의 모습이다. 물론 그 뒤에 따르는 행동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1차 관문인 말투에서 빈정이 상해버리면 그 다음은 쉽게 진행되기가 어려울 수 있다.
외모가 잘 가꾸어진 사람이 사회에서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성공한 삶을 살아갈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실제로 우리는 주변에서 그런 사람들을 직간접적으로 많이 접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외모를 잘 가꾸었다는것은 그만큼 자신의 삶에 성실했다는 증거이고 관리를 철저히 하면서 살았다는 눈에 보이는 확실한 증거이다. 그러나 그것이 주는 세상의 선물은 딱 1번 - 시작점에서의 우위이다. 인생은 점이 아닌 선이다. 그리고 면이며 구이다. 이 모든 것들은 결국 인간관계라는 것들로 얽히고 설켜있다. 그 관계속에서 상대방이 나에게서 느끼는 나라는 존재의 팔할은 나의 '말투'이다. 말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 말을 담아내는 그릇인 말투가 더욱더 직접적으로 나를 보여주는 도구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하는 그 좋은 말들은 다 그 나쁜 말투 때문에 싸움의 소재가 된다. 80억 인구중에 오직 이사람이 내가 평생을 같이 할 사람이야라고 믿고 연애를 하거나 결혼을 한 커플은 결국 그 놈의 말투 때문에 철천지 원수가 되어 서로를 찌른다. 우리는 우리의 외형을 가꾸고 심지어 성형이라도 해서 아름답게 만들고자 하는 노력만큼 말투를 가다듬고 성형하려는 의지를 지니고 살아야 한다." '아' 다르고 '어'다르다"는 옛 조상들의 말은 정말 틀린 말이 아니었다.
내 주변에는 말을 참 예쁘게 하는 사람이 몇몇 있다. 똑같은 내용을 전달해도, 똑같은 감사를 표현해도, 똑같은 사과를 하더라도 그 말하는 방식때문에 더욱더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되고 신뢰하게 된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말투만 예쁘게 하면서 속은 응큼할 수 있다고. 우리가 어떤 사람의 의도까지 생각하면서 살아갈 수는 없다. 그 의도가 나쁜 의도건 아니건은 그 사람만 신경쓸 뿐 상대방은 전혀 무관한 일이다. 그리고 여기서 내가 말하는 대상은 말로 사기치는 그런 사람들 얘기가 아니다. 정상적인 사회생활 속에서 함께 삶을 영위해 가는 사람들 사이에서의 문제를 말하는 것이다.
외모를 가꾸는 것이 성실과 노력의 잣대가 된 세상을 살고 있다. 시간관 틈이 주어진다면 능력은 물론이고 외모도 열심히 가다듬어야한다. 그러나 그와 더불어 외모의 범위를 말투'까지 넓히자. 그래서 말의 외형도 가꾸고 성형하자. 그러면 훨씬 더 좋은 시너지를 본인의 삶에 불러일으킬거라 확신한다.
오늘도 고민해 본다. 노력이 부족한 내 학생들에게 "열심히 공부해야 성공을 하지" 라는 말을 어떻게 예쁘게 성형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