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김훈 '칼의 노래')
살다보면 누구나 좌절하고 쓰러지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잘 되던 일도 어느순간 막다른 골목에 이르게 되고,
영원할 것 같던 우상향 곡선도 절벽아래로 추락하는 돌덩이 처럼 무력 할때가 있다.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지만 당연한 말이 당연하게 받아들여 지지 않는것이 문제인 것이다.
우리의 나르시시스틱(narcissistic)한 성향이 문제일 수도 있다.
세상의 인과 법칙과 물리현상이 나에게로 동화되려는 순간 우리 내부는 강력한 거부반응을 일으킨다.
인과가 아닌 '모함', 물리현상이 아닌 '불운'으로 내게 닥친 자연스러움에 꼬리표를 붙인다.
타인의 아픔과 좌절은 그럴 수 있다 여기면서도 그것이 내것이 되었을 때 세상이 비정하게 느껴진다.
4년전에 건강검진에서 폐에 이상증상을 발견했다. 과도한 염증이 폐를 덮고 있다고 했다. 일명 '사르코이드증' 이라는 자가면역 질환이었다.
자가 면역질환이 다 그렇듯 왜 이런 병이 생겼는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그래서 3개월 동안 그 독한 스테로이드제를 하루에 12알씩 먹으면서 염증을 치료했다.
강력한 스테로이드는 폐의 염증을 제거해주는 대신 그 이외의 모든 신체를 아프게 했다.
문페이스(moon face) 현상과 근육소실, 복부비만, 관절통증, 치아통증, 우울증 등등...
3개월 뒤 완치판정을 받은 기쁨도 잠시, 그 후 몇 개월동안 스테로이드 후유증으로 뼈마디마디의 통증을 견디느라 고군분투 했어야 했다.
처음 그 진단을 받았을 때의 감정은 고스란히 4년이 지난 지금도 남아 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긴거지?" "내가 뭘 잘못했나?"
"나름 열심히 살았는데 이제 좀 뭔가 해보려고 하니.... "
그러나 나름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보고자 성찰과 독서의 시간을 보내면서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이런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기게 되었다.
'나면 안돼나?'
'내가 이 병에 걸리면 안돼나? 내가 실패하면 안돼나? 내가 좌절할 일을 겪으면 안돼나?'
해가 뜨면 해가 지고, 밀물이 있으면 썰물이 있고, 가을이 가면 겨울이 오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면,
나는 그 이치에 포함된 일부일 뿐이다.
모든건 그럴만 하니 그런것이다. 설사 그것이 우연이라 할지라도.
회의주의에 대해 옹호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삶에 치열함이라는 선물을 늘 주고싶다.
그러나 그 치열함이 늘 우상향 곡선을 약속하지 않는다는 이치를 옹호할 뿐이다.
김훈의 '칼의노래'에서 이순신 장군은 곧 있을 적군과의 전투에 앞서 이런 독백을 한다.
"어쩔 수 없는 일은 결국 어쩔 수 없다. 그러므로 내가 지는 어느 날, 내 몸이 적의 창검에 베어지더라도 나의 죽음은 결국은 자연사일 것이었다.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어 나뭇잎이 지는 풍경처럼,, 애도될 일이 아닐 것이었다."
나라를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구해낼 유일한 장수였던 본인의 죽음은,
위대한 것도, 애도될 것도 아닌, 그저 자연만사의 풍경처럼 그런 정도의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그 용심에 나는 글을 읽다가 고꾸라지고 말았다.
거기에는 "왜 하필 나에게"라는 말은 없다. 그렇게 말한 들 누가 시비를 걸 수 있으랴.
하지만 이순신 장군은 알았던 것이다.
그렇게 말한 들 뭐가 달라지는게 있을까를.
한 인간이 강건하게 살아도 80년 인생이건만, 우주의 138억년에 비하면 티끌의 순간도 아닌 찰나이건만, 그 한 인간에게 생이란 우주 전체보다 더 큰 무게를 지닌다.
그래서 때로는 '내'가 너무 중요해서 '내'가 너무 특별해서 내가 티끌도 아님을 잊고 산다.
어쩔 수 없는 일은 결국 어쩔 수 없다. 원망할 일도, 애도할 일도 아니다. 그저 자연현상에 불과한 것이다.
노력은 노력이고 결과는 결과인 것이다. 삶은 삶이고 죽음은 죽음인 것이다.
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찾아온 하루에 감사하고 그 하루를 치열하게 살고 그리고 그 치열함을 뒤로하고 또 내일을 기다릴 것이다.
그 속에서 일어나는 무수한 일들은 그저 자연현상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