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무장된 중립, 기술로 평화를 설계하다.

by 김장렬

1. 강철의 신념을 가진 얼음의 나라

스웨덴의 겨울은 길고 고요하다. 해는 짧고, 눈은 깊다. 그러나 그 침묵의 대지 아래에는 단단한 신념이 숨 쉬고 있다. 그 신념은 “평화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준비로 얻어진다.” 19세기 이후 스웨덴은 단 한 번도 전쟁을 치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나라는 누구보다 강력한 방위산업을 갖고 있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그들은 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싸우지 않기 위해 준비했다.


2. 늘 준비된 하면서 전쟁을 피한 나라

스웨덴은 본래 전쟁의 역사를 가진 나라였다. 17세기, 구스타프 2세 아돌프가 이끄는 스웨덴 군대는 발트해의 패권을 쥐었다. 그는 “북방의 사자”라 불렸고, 한때 유럽을 뒤흔들었다. 그러나 나폴레옹 전쟁의 상처 이후, 스웨덴은 결심했다. “다시는 피를 흘리지 않겠다. 하지만 무장은 버리지 않겠다.” 그날 이후 스웨덴은 무장된 중립(armed neutrality)이라는 독특한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들은 어떤 동맹에도 속하지 않았지만,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준비했다. 군사적 고립 대신 기술적 독립을 선택한 것이다. “평화는 약속이 아니라, 능력에서 온다.” 이 말은 스웨덴 방위산업의 철학을 압축한 문장이다.

스웨덴 무장된 중립 (출처 : https://www.reddit.com/r/MilitaryPorn/)

3. 강철의 땅에서 자립의 산업이 태어나다


스웨덴의 북쪽에는 키루나(Kiruna)의 철광산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순도가 높은 철광석이 매일같이 그곳에서 캐어진다. 그 철이 총과 포, 전차의 재료가 되었고, 결국 스웨덴 방위산업의 피가 되었다. 1930년대, 스웨덴 정부는 자립형 방위산업 체계를 세웠다. 하늘은 사브(SAAB)가, 지상은 보포스(BOFORS)가, 궤도차량과 장갑차는 하겐(Hägglunds)이 맡았다. 이 세 축이 지금의 스웨덴을 만든 것이다.

키루나 철광산 (출처 : https://kirunalapland.se/en/activities/lkabs-visitor-centre/)


4. 하늘의 눈 SAAB의 비상

1937년 설립된 SAAB는 처음엔 민간 항공기 제작 회사였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유럽을 삼킬 때, 스웨덴은 그 기술을 하늘로 돌렸다. 전쟁에 참여하지 않으면서도, 스스로의 영공을 지킬 수 있는 기술이 필요했다. 1950년대 SAAB는 SAAB 35 드라켄(Draken)을 선보였다. 쌍삼각 익을 채택한 이 전투기는 마치 북유럽의 눈을 가르는 새처럼 날았다. 그리하여 세계는 작고 중립적인 나라가 하늘을 통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SAAB 35 드라켄 (출처 : https://namu.wiki/w)


1970년대엔 SAAB 37 비겐(Viggen), 1990년대엔 JAS 39 그리펜(Gripen)으로 발전했다. 그리펜은 “작지만 완벽한 전투기”로 불린다. 조종사 한 명이 인공지능 보조 시스템과 함께 임무를 수행하며, 5대의 드론을 동시에 지휘할 수 있다. 정비시간은 1시간 미만, 유지비는 F-16의 절반. 그러나 실전 효율은 그 이상이다. 스웨덴은 이 전투기를 자국에서 설계·제작·운용했고, 헝가리·체코·남아공·브라질 등에 수출했다. 그리펜은 단순한 무기가 아니라, “작은 나라의 자존심이 만든 하늘의 방패”였다.

JAS 39 그리펜 (출처 : https://namu.wiki/w/JAS)


5. 대포의 전설 BOFORS의 유산


보포스(BOFORS)는 스웨덴 방위산업의 전설이다. 19세기말부터 철강을 다루던 회사였으나, 1930년대에 이르러 세계적인 명품 대공포를 만들어냈다. 보포스 40mm 대공포. 이 포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이 애용한 무기였다. 노르망디 해안, 런던의 하늘, 태평양의 함선 어디에나 보포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심지어 한국전쟁에서도 이 포가 사용됐다. 오늘날 보포스는 BAE Systems Hägglunds와 합병되어 Archer 자주포와 CV90 장갑차를 생산한다. 그 기술은 세대를 넘어 살아남았다. 하나의 볼트, 하나의 포신, 하나의 궤도가 모두 정밀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산업의 예술이다.

Archer 155mm 자주포 (출처 : https://v.daum.net/v/cERQvx5Hz9?f=p)


6. 눈 위의 강철, 하겐(Hägglunds)의 장갑차 이야기


하겐(Hägglunds)은 1899년 스웨덴 북부 외른셸드스비크(Örnsköldsvik)에서 태어났다. 눈과 얼음, 늪지와 산악지대 혹독한 환경 속에서 군용 차량은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생존의 수단이었다. 그들이 만든 BvS10 궤도차량은 눈밭을 가르고, 늪을 건넜다. 극지방에서 작동하도록 설계된 이 차량은 NATO 극한지 환경의 표준 모델이 되었다. 그리고 CV90 보병전투장갑차는 스웨덴 방위산업의 또 다른 자존심이 되었다. CV90은 세계에서 가장 ‘스마트한’ 궤도차량으로 불린다. 엔진과 포탑이 AI 시스템과 연결되어 있고, 정비·탄약관리·적 탐지가 모두 디지털화되어 있다. 핀란드·노르웨이·네덜란드·덴마크·스위스 등 북유럽과 중부 유럽 국가들이 CV90을 운용 중이다. 하겐은 2004년 BAE Systems에 인수되었지만, 스웨덴 엔지니어링의 정체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들의 설계 철학은 간단하다. “혹한의 환경에서도 멈추지 않는 기계.” 이 철학은 지금도 북극에서, 발트해에서, 우크라이나 평원에서 살아 숨 쉰다.

CV90 보병전투장갑차 (출처 : https://meta-defense.fr/ko/2023/05/11/cv90)


7. 기술의 나라, 효율의 산업


스웨덴의 방위산업은 규모보다 정밀함과 효율성으로 알려져 있다. 그들은 거대한 군수복합체를 만들지 않았다. 대신, 작지만 자율적인 기업 생태계를 조성했다. 그 중심에는 FOI(국방연구소)가 있다. FOI는 단순한 군사연구소가 아니다. AI, 사이버보안, 신소재, 에너지 효율, 데이터 전장체계까지 연구한다. 그들은 전투기를 만드는 것보다, 정보를 싸우게 하는 방법을 연구한다. 스웨덴의 공장들은 청결하다. 로봇이 부품을 조립하고, AI가 결함을 찾는다. 심지어 3D 프린터로 총열을 출력한다. 이 모든 과정은 탄소배출을 최소화하고, 환경과 산업의 조화를 추구한다. “지속 가능한 방위산업.” 스웨덴은 그것을 슬로건이 아니라 현실로 만들었다.

스웨덴 FOI(국방연구소) (출처 : https://www.foi.se/en/foi/about-foi/organization)


8. 중립의 역설에서 동맹으로


스웨덴은 오랫동안 “중립국”이었다. 그러나 그 중립은 완전한 고립이 아니었다. 냉전기 동안 스웨덴은 미국과 은밀히 기술 협력을 이어갔다. 레이더 탐지, 잠수함 소나, 암호 통신에서 양국의 연구진은 비공식적으로 협력했다. 동시에 스웨덴은 소련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며 북유럽 방위망의 일원으로 기능했다. 이 ‘조용한 협력’은 스웨덴 특유의 실용주의였다. 그들은 어느 편에도 서지 않되, 어느 편에도 뒤처지지 않았다. 하지만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그 방식을 바꾸었다. 2023년, 스웨덴은 200년의 중립을 접고 NATO에 가입했다. 중립의 철학은 끝났지만, 자립의 기술은 남았다. 스웨덴은 “함께 지키되, 스스로 만든 무기로 지킨다”는 새로운 노선을 세웠다. 이제 그리펜은 NATO 공군의 하늘에서, CV90은 동맹군의 전선에서 함께 움직인다. 그러나 그 이름의 각인, “Made in Sweden”은 그대로다.

2023년 스웨덴은 200년의 중립을 접고 NATO에 가입 (출처 : https://www.goodnews1.com/news)

9. 한국과의 협력, 기술이 만난 신뢰


스웨덴과 한국의 방산 협력은 최근 빠르게 깊어지고 있다. 2022년 9월, 스웨덴의 항공우주기업 SAAB과 한국의 한화시스템이 AESA 레이더 및 전자전 기술 협력 MOU를 체결했다. (출처: 연합뉴스, 2022.9.22.) 2023년 5월, BAE Systems Hägglunds는 한국의 한화디펜스(K-9)와 CV90 장갑차–K9 자주포 통합 플랫폼 공동개발 연구 협정을 발표했다. (출처: 조선비즈, 2023.5.18.) 이 프로젝트는 북유럽형 지상전력에 한국의 자주포 기술을 접목하는 첫 시도였다. 또한 한국과 스웨덴은 9월 9일(화) ‘2025 서울안보대화(Seoul Defense Dialogue 2025)’를 계기로 요한 베르그렌(Johan Berggren) 스웨덴 국방부 차관과 이두희 대한민국 국방부 차관 간 양자 회담을 통해 국방협력 양해각서(MOU)를 갱신했다. 이 모든 협력의 핵심에는 공통된 가치가 있다. 두 나라는 모두 자립형 방위산업을 추구하고, 기술의 정밀함과 산업의 신뢰성을 중시한다. 스웨덴의 정밀한 엔지니어링, 한국의 빠른 생산력, 이 두 축이 만나면, 새로운 방위산업의 모델이 탄생할 것이다.

한·스웨덴, 국방협력 양해각서 갱신 (출처 : https://www.newswire.co.kr/newsRead.php?no=1018419)


10. 조용한 나라의 강한 기술


스웨덴은 전쟁을 거부했지만, 언제나 전쟁을 준비했다. 그들의 방위산업은 총과 포보다 깊은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평화를 지키는 기술의 언어다. 보포스의 포는 정확했고, 하겐의 장갑은 단단했으며, 사브의 전투기는 조용히 하늘을 지배했다. 이 모든 기술의 뒤에는 “자립”이라는 단어가 있었다. 전쟁 없는 나라. 그러나 누구보다 강한 나라. 그것이 스웨덴이다. 그들의 무기는 차갑지만, 그 철학은 따뜻하다. 그리펜의 날개는 단순한 금속이 아니라, “자신의 길을 가는 한 나라의 의지”였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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