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예술의 나라가 기술의 방패를 만들다

by 김장렬

1. 르네상스의 기억, 무기로 깨어나다


피렌체의 아침 공기는 묘한 느낌이 있다. 오래된 석조 건물 사이로 흙먼지와 올리브 향, 그리고 쇳내가 함께 섞인다. 이탈리아의 기술은 늘 그런 느낌을 품고 있었다. 예술과 금속이 함께 녹아 있던 나라, 바로 이곳에서 전쟁의 도구는 아름다움의 연장선에서 태어났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손끝을 떠올려보라. 그는 그림을 그리다가도 날개를 설계했고, 천사의 모습을 연구하다가 인간이 하늘을 나는 방식을 고민했다. 그의 노트 속에는 회전익 헬리콥터, 전차, 다단포의 설계도가 그려져 있었다. 그가 만든 것은 단순한 무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이 세상을 통제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의 답이었다. 이탈리아 방위산업의 뿌리는 바로 거기서 시작되었다.

54005750-패러-글라이더-나무-그림.jpg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설계한 날개 (출처 : https://kr.123rf.com/photo)

르네상스의 장인정신은 예술을 넘어 기술이 되었고, 기술은 곧 생존의 수단이 되었다. 다빈치의 스케치 한 장이 훗날 피아트의 엔진, 핀칸티에리의 조선소, 레오나르도의 전투기 설계로 이어질 줄 그 누구도 몰랐다.


2. 분열의 땅에서 통일로, 산업의 씨앗이 되다


19세기 중엽, 이탈리아는 아직 하나의 나라가 아니었다. 도시국가와 왕국, 교황령이 뒤섞여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땅을 지키려는 의지”는 곳곳에서 자라나고 있었다. 토리노의 사보이 왕국은 무기 생산 공장을 세우고, 피아트(FIAT)는 마차 대신 엔진을 단 강철차를 만들기 시작했다. 피아트는 처음엔 농기계를 만들었으나 곧 군용 트럭과 장갑차를 생산했다. 자동차는 이동의 수단이 아니라 전략의 도구가 되었다.

Fiat3000.jpg 피아트 3000(Fiat 3000) 피아트 사가 1921년 생산한 전차 (출처 : https://ko.wikipedia.org/wiki)

그리고 이탈리아의 북부 산악지대에서는 포병이 특수한 무기를 개발했다. 가파른 알프스의 눈 위에서 사용할 수 있는 경량포였다. 무거운 대포를 끌고 오를 수 없었던 병사들을 위해, 장인들은 포신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조립하는 방식을 고안했다. 이런 창의성은 이탈리아 특유의 실용적 기술정신이었다. 이 시기 베네치아의 조선소들은 여전히 분주했다. 수백 년 전, 이곳에서 갈레아스(galleass)라 불리는 거대한 노선 전함이 유럽의 바다를 지배했듯, 이탈리아의 조선업은 이미 군사적 DNA를 지니고 있었다.


3. 전쟁의 그림자, 패전 속의 기술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이탈리아는 패전국이었다. 하지만 그 패전은 모든 것을 무너뜨리진 않았다. 피아트의 공장은 폭격을 맞고도 다시 돌아갔다. 군용 항공기를 만들던 마키(Macchi), 카프로니(Caproni) 같은 회사들은 전투기를 민항기로 바꿔 생산했다. 그들이 만든 마키 C.202 폴고레(Folgore)는 이탈리아 기술의 정수를 보여줬다. 전면 라디에이터를 감춘 곡선형 동체, 높은 기동성과 안정성. 비록 전황은 불리했지만, 이탈리아 기술자들은 여전히 “아름다운 비행기”를 만들고 있었다.

mc.202-naljava69.jpg 마키 C.202 폴고레(Folgore) (출처 : https://m.blog.naver.com/naljava69)

전쟁이 끝난 뒤, 폐허 위에서 다시 산업이 피었다. 흥미로운 점은 군수산업이 곧 민간산업의 기반이 되었다는 것이다. 피아트의 엔진 기술은 민간 자동차 산업으로 이어졌고, 조선소의 용접 기술은 민간 선박에 쓰였다. 이탈리아의 기술자들은 무기 대신 기계를 만들었고, 기계는 다시 나라를 일으켰다.


4. 냉전의 바람 속에서 실용적 자주국방의 길


1950년대, 이탈리아는 미국의 원조로 군비를 재건했다. 그러나 그들은 미국의 무기만을 그대로 쓰지 않았다. “받되, 흡수하라.” 그것이 이탈리아식 방식이었다. 그 중심에는 핀칸티에리(Fincantieri)와 핀메카니카(Finmeccanica), 그리고 오늘날의 레오나르도(Leonardo)가 있었다. 핀칸티에리는 베네치아 조선소의 전통을 이어받아 유럽 최대의 군함 제작소가 되었고, 핀메카니카는 헬리콥터와 전자장비를 만들어내며 이탈리아 기술의 자존심이 되었다.

restmb_allidxmake.jfif 현재 이탈리아 핀칸티에리 조선소 군함 건조 (출처 : https://www.g-enews.com/view.php?ud)

냉전 시기, 이탈리아는 NATO의 중요한 기술기지였다. 지중해의 중앙에 위치한 이 나라는 해상 감시망과 항공 교두보를 제공했다. 미군의 레이더망이 시칠리아에 설치된 것도, 프랑스와 독일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려는 전략의 일부였다. 이탈리아는 ‘가장 미국적인 유럽국가’로 불렸지만, 동시에 ‘가장 유럽적인 미국 동맹국’이기도 했다. 그 미묘한 균형이 이탈리아 방위산업의 생존방식이었다.


5. 기술과 미학, 예술이 만든 무기


이탈리아의 방위산업은 다른 나라와 다르다. 그들은 기능만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들의 무기에는 미학이 깃든다. 곡선은 유선형으로 다듬어지고, 조종석은 인간의 손과 눈에 맞춰 설계된다. 레오나르도社의 AW-101, AW-139 헬리콥터는 공기역학과 디자인의 완벽한 균형을 보여준다. 조종석 내부는 자동차 인테리어처럼 세련됐고, 외형은 매끈하다. 그러나 성능은 냉정하다. 극지방과 사막, 해상에서도 작동한다.

aw101.png 레오나르도社의 AW-101 (출처 : https://namu.wiki/w/AW101)

M-346 고등훈련기는 이탈리아 기술력의 결정체다. 전투기 조종사 훈련을 위해 만들어졌지만, 그 비행 안정성과 가속 능력은 실제 전투기에 가깝다. 이 기체는 지금도 전 세계 공군의 훈련학교에서 사용되고 있다. 한국의 공군 조종사들도 이 기체와 유사한 훈련 체계를 쓰고 있다.

m346.png M-346 마스터, 알레니아 아에르마키사 제작, 초음속 고등훈련기 (출처 : https://namu.wiki/w/M-346)

핀칸티에리의 조선소에서는 매년 새로운 군함이 탄생한다. 프리깃함, 잠수함, 항모까지, 이탈리아식 설계는 우아하면서도 치밀하다. 심지어 미국 해군의 최신형 호위함도 이탈리아의 설계를 기반으로 만들어진다. “예술의 나라에서 태어난 군함”이라는 표현이 괜히 생긴 것이 아니다.

U.S._Navy_guided-missile_frigate_FFG(X)_artist_rendering,_30_April_2020_(200430-N-NO101-150).JPG 미군 컨스텔레이션급, 이탈리아 FREMM 호위함 설계를 기반 제작 (출처 : https://ko.wikipedia.org/wiki)


6. 유럽 협력의 기술 강국


이탈리아는 혼자 서지 않는다. 그들은 언제나 협력 속에서 경쟁한다. 유로파이터 타이푼의 개발에는 영국, 독일, 스페인과 함께 참여했고, A400M 수송기, MBDA 미사일 시스템에도 이탈리아 기술이 들어갔다. MBDA는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세 나라가 합작해 만든 유럽 최대의 미사일 회사다. 이름의 약자는 Matra, BAE Systems, Dassault, Alenia의 머리글자다. 그 안에서 이탈리아의 알레니아(Alenia)는 유도제어, 전자전, 추진체 설계 분야에서 핵심 역할을 맡고 있다.

ILA_2008_PD_446 (1).JPG MBDA는 유럽 미사일 제조 회사 (프랑스 에어버스, 이탈리아 레오나르도 S.p.A., 영국 BAE 시스템 합병) (출처 : https://ko.wikipedia.org/wiki)

이탈리아의 방산협력은 단순한 기술 분담이 아니라, 유럽 통합의 한 축이다. 이들은 항상 “하나의 유럽, 하나의 방위산업”을 외친다. 하지만 동시에, 자국의 설계 철학만큼은 결코 양보하지 않는다.


7. 미래 드론, 사이버, 우주의 르네상스


이탈리아는 지금 새로운 르네상스를 준비하고 있다. 이번엔 그림이나 조각이 아니라, 인공지능과 드론, 우주가 주제다. 레오나르도사는 2030년을 목표로 AI 기반의 자율 드론 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이 드론은 전투뿐 아니라 재난구조, 해양 감시에도 쓰인다. 그들은 드론을 ‘무기’가 아니라 ‘인간의 눈’으로 정의한다.

Signing Ceremony_Le Bourget_16062025.jpeg 이탈리아 레오나르도, 튀르키예 드론 제조업체 베이카르와 합작 AI 기반의 자율 드론 시스템을 개발(출처 : https://www.leonardo.com/en)

사이버 방위 분야에서도 이탈리아는 조용히 강하다. 나폴리 근처에 위치한 Global Cybersecurity Center에서는 NATO와 공동으로 해킹 대응 실험을 수행한다. 우주산업에서는 Telespazio와 Avio가 주역이다. 위성 발사체 베가(Vega)는 유럽 우주 프로그램의 핵심이며, 그 추진 엔진은 이탈리아 기술자들의 손에서 만들어졌다. 지구를 떠난 그 궤적 속에도, 피렌체의 장인정신이 흐르고 있다.

image04.png 베가(Vega), 유럽우주국과 이탈리아 우주국이 개발하고 이탈리아의 Avio가 제작, 4단 고체연료 우주 발사체 (출처 : https://namu.wiki/w)


8. 한국과의 협력, 기술과 감성의 만남


이탈리아는 한국을 새로운 파트너로 바라보고 있다. 2023년 서울 ADEX(국제 항공우주방산 전시회)에서 레오나르도와 한국 방산기업 간 협력 논의가 공식화되었다. 레오나르도는 한국의 FA-50 훈련기 시스템과 M-346 플랫폼 간 상호 운용성 연구를 제안했고, 핀칸티에리는 2022년부터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에 잠수함 설계 기술 세미나를 제공했다.

1023835_787144_4734.jpg 한화시스템, 이탈리아 레오나르도와 '경공격기 AESA 레이다 수출 주요 합의서 체결 (출처 : https://www.m-i.kr/news)

2024년 유로사토리(Eurosatory) 방산 전시회에서는 한국의 LIG넥스원과 레오나르도가 항공전자·AI 센서 융합 기술 MOU를 체결했다. 이탈리아 언론 Il Sole 24 Ore는 이를 “디자인의 나라와 기술의 나라의 결합”이라 평가했다. 한국과 이탈리아의 협력은 단순한 무기 거래를 넘는다. 한국은 속도와 효율의 나라이고, 이탈리아는 감성과 형태의 나라다. 둘이 만나면, 기술은 인간적인 얼굴을 가지게 된다.


9. 예술이 만든 무기, 인간이 설계한 평화


다빈치의 설계도는 종이 위의 상상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의 상상은 500년을 건너 오늘날의 방위산업이 되었다. 이탈리아는 전쟁의 상처 속에서도 언제나 아름다움을 놓지 않았다. 그들의 무기에는 냉정함보다 균형이, 파괴보다 조화가 있다. 독일이 강철로 제국을 세웠다면, 이탈리아는 디자인과 기술로 자존을 지켰다. 그들의 전차는 곡선이었고, 군함은 미학이었으며, 항공기는 날개보다 우아했다. 방위산업은 이탈리아에게 단순한 산업이 아니다.

8467fc52b8b042bdb7b9e3a0043c4121.jpg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비행의 원리 스케치 (출처: Wikimedia Commons)

그것은 인간의 창의성이 만들어낸 가장 역설적인 예술이다. “아름답게 만들어야 오래간다.” 그 말은 이탈리아의 예술가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군수공장의 기술자가 한 말이었다. 예술과 기술은 언제나 같은 뿌리에서 자랐다. 그리고 그 뿌리 위에서 이탈리아는 지금도 새로운 무기를 설계하고 있다. 그것은 단지 전쟁의 도구가 아니라, 자신들의 철학과 문화, 그리고 인간에 대한 믿음을 담은 하나의 작품이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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