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이 방위산업을 다시 만든 나라

by 김장렬

우크라이나의 겨울은 길고, 눅눅하다. 얼어붙은 흙과 낮게 깔린 구름 사이로 검은 점 하나가 천천히 움직인다.

처음에는 새인 줄 알지만, 곧 그것이 새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다. 작은 모터 소리, 위로 떠 있는 카메라, 어디선가 조용히 날아와 전차를 내려다보는 드론이다.

드론 전차.jpg 우크라이나 드론이 러시아 전차 공격 (출처 : https://www.ai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144565)

이 나라에서 전쟁은 더 이상 전차와 대포만의 싸움이 아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눈, 그 눈에 연결된 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리는 병사의 손, 그리고 멀리 떨어진 공장에서 찍혀 나온 작은 프로펠러와 배터리의 싸움이다. 우크라이나의 방위산업 이야기는 그 작은 점 하나에서 시작해 소련 시대의 거대한 공장과, 지금 이 순간에도 증가하고 있는 드론 생산 라인까지 이어진다.


1. 독립과 함께 손에 쥔 것은 폐허만이 아니었다


1991년, 소련이 무너졌을 때 우크라이나는 단순히 국기를 바꾼 나라가 아니었다. 소련은 거대한 군수 공업국이었다. 그 공장의 상당수가 우크라이나 땅에 있었다. 키이우 근처의 항공기 공장, 하르키우의 전차 공장, 드니프로의 미사일·우주 산업, 지상 레이더와 대공 체계를 만들던 공장들.

하르키우 전차공장.png 하르키우 말리셰프 공장의 T-84 생산 라인 (출처 : https://www.reddit.com/r/TankPorn)

독립과 함께 우크라이나는 이 공장들과 기술자들을 한꺼번에 물려받았다. 문제는 이 유산이 너무 크고, 새로운 국가는 너무 가난했다는 점이었다. 거대한 공장은 겨우 일부 주문을 따내 눈치를 보며 돌아갔다. 러시아와의 기술·부품 의존은 끊지 못한 채 이어졌다. 표면적으로 보면 “동유럽 최대의 군수 기반”을 가진 나라였지만,

실제로는 기술은 낡아가고, 투자는 부족하고, 부패와 정치 불안이 겹쳐 서서히 힘이 빠져가고 있었다.


2. 잃어버린 시간들, 그리고 서서히 다가오던 그림자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우크라이나는 경제 위기와 정치 혼란 속에서 군수공업에 충분한 돈을 쓰지 못했다. 소련에서 물려받은 무기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많았지만, 정비가 부족했고, 부품은 러시아에서 가져와야 했다. 방산기업들은 민수용 제품을 만들거나 해외에 재고 무기를 싸게 파는 식으로 겨우 생존했다. 그러는 동안 러시아는 서서히 힘을 키웠다. 우크라이나의 동쪽 국경 너머에서 군사력과 정치적 압박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나 이 나라는 그 그림자를 충분히 막을 만큼 방위산업을 재정비하지 못했다. 그것이 훗날 큰 대가로 돌아온다.


3. 2014년, 크림과 돈바스가 알려준 것


2014년, 러시아는 크림 반도를 병합했다.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는 분쟁이 터졌다. 이 사건은 우크라이나군이 어떤 상태였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낸 계기였다. 낡은 장비, 부족한 탄약, 부실한 통신, 심지어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차량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방위산업의 구조 그 자체였다.

2014년_우크라이나_친러시아_분쟁.png 2014년 러시아 크림 반도 병합 (출처 : https://ko.wikipedia.org/wiki/2014)

많은 무기 부품이 여전히 러시아와의 협력 관계에 의존하고 있었다. 크림 사태 이후, 이 공급망은 한순간에 끊어졌다. 우크라이나는 그제야 비로소 질문을 던지게 된다. “우리는 무엇을 스스로 만들 수 있는가?” “우리가 진짜 가진 것은 무엇인가?” 그때부터 우크라이나 방위산업은 천천히, 그러나 방향을 완전히 바꾼다. 러시아와의 연결을 끊고, 서방식 규격과 협력을 향해 조용히 몸을 돌린 것이다.


4. 2022년, 전면 침공과 함께 공장이 깨어난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전면 침공이 시작됐다. 탱크가 국경을 넘고, 미사일이 도시를 때리고, 포격이 들판을 뒤덮었다. 세계의 눈은 전장에서 벌어지는 전투를 보았지만, 우크라이나 안에서는 또 다른 전쟁이 시작되고 있었다. 바로 공장의 전쟁이었다. 멈춰 있던 생산 라인이 돌아가기 시작했고, 오래된 군수공장에 다시 인력이 채워졌다. 정부는 방산 예산을 대폭 늘리고, 국민은 모금으로 드론과 장비를 샀다.

우크라이나내 무기공장.jpg 독일 라인메탈, 우크라이나 현지 무기 생산 시작 (출처 : https://www.yna.co.kr/view/AKR20241029161700082)

전쟁은 잔인했지만, 그 잔인함 때문에 우크라이나 방위산업은 단기간에 깨어날 수밖에 없었다. 총과 포, 탄약과 방탄복, 그리고 무엇보다 드론. 우크라이나는 “지금 당장 필요한 것”부터 만들었다. 그리고 그 필요는 하루도 쉬지 않고 늘어났다.


5. 싸게, 빨리, 많이, 그리고 똑똑하게 진화하는 드론


우크라이나 전쟁을 설명할 때 드론을 빼고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처음에는 터키의 바이락타르 TB2가 전세를 뒤흔든 아이콘이었다. 넓은 평원 위에서 TB2는 러시아 장갑차와 포대를 파괴했고, 그 영상은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하지만 전쟁이 길어지면서 TB2 같은 고가 플랫폼만으로는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래서 우크라이나는 전혀 다른 길을 택한다.

bayraktar.png T2B 드론 (출처 : https://militaeraktuell.at/en/baykar-turkey-takes-first-bayraktar-tb2)

민수용 드론을 개조해 정찰에 쓰고, 소형 폭발물을 달아 자폭 드론으로 바꾸었다. FPV(1인칭 시점) 드론이 등장했고, 일반 상점에서 팔리던 부품이 야전에서 적 전차를 노리는 무기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민간 스타트업과 자원봉사자들이 전쟁에 뛰어들었다.

1인칭 드론.png FPV(1인칭 시점) 드론 (출처 : https://news.nate.com/view/20250813n05097)

차고와 작은 공방에서 새로운 드론 설계가 나왔다. 프레임과 모터, 배터리와 안테나가 순식간에 조립되어 전선으로 향했다. 정부와 군은 이 움직임을 뒤따라가며 공식적인 조달 시스템에 편입했다. 우크라이나는 이제

연간 수백만 대의 드론 생산 능력을 논의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이 나라에서 드론은 단지 하늘을 나는 도구가 아니라, 전쟁과 산업, 시민사회가 한꺼번에 맞물려 돌아가는 새로운 군수 생태계의 중심이 되었다.


6. 전선과 공장 사이의 거리가 짧은 나라


우크라이나 방위산업의 특징은 전선과 공장 사이의 거리가 정신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매우 짧다는 점이다.

야전에서 드론을 쓰던 부대는 “이 부분은 너무 잘 부서진다” “이 각도에서는 카메라가 잘 안 보인다” “이런 전파 방해에는 이렇게 우회해야 한다”라는 피드백을 바로 보내온다. 그 피드백은 하루나 이틀 뒤 설계 도면과 부품 주문으로 바뀐다. 어떤 드론 설계는 한 달 안에 완전히 새로운 버전으로 교체된다. 서랍 속에 쌓인 개발 보고서보다 전선에서 올라온 10초짜리 영상이 더 중요한 설계 자료가 되는 경우도 있다. 어떤 공장은 3D 프린터를 이용해 부품을 즉석에서 찍어낸다. 야전 정비팀은 부서진 장갑판을 보강하고, 불발탄에서 건진 부품으로

새로운 장비를 만들어낸다. 이 나라는 지금 “연구개발–생산–운용–개량”이라는 군수 체계의 고전적인 순환을

거의 실시간으로 돌리고 있다. 전쟁이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 것이다.


7. 서방의 무기와 소련식 유산이 뒤섞인 전장


우크라이나 전장을 보면 낯선 장면이 펼쳐진다. 소련식 T-64 전차 옆에 독일제 레오파르트 2가 서 있고, 옛 소련 자주포 뒤에서 미국의 HIMARS가 불을 뿜는다. 하늘에서는 옛 미그 전투기가 날고, 땅에서는 서방제 대공미사일이 러시아의 드론과 미사일을 요격한다. 이 복잡한 혼합 구조는 우크라이나 방위산업에 또 다른 숙제를 던진다.

우크라이나 무기.jpg 우크라이나 지원 서방 국가 주요 무기 (출처 : 연합뉴스 반종빈 기자 bjbin@yna.co.kr)

서방제 무기를 제대로 사용하려면 탄약·부품·정비·교육까지 모두 새로운 기준에 맞춰야 한다. 그래서 우크라이나는 자국 공장에서 서방 규격 탄약을 찍어내기 시작했고, 서방제 장비의 유지보수 기술을 빠르게 배워야 했다. 이 과정은 힘들지만, 전후 우크라이나가 NATO형 군대와 방위산업으로 완전히 편입되는 발판이 된다.


8. 국영에서 민간, 폐쇄에서 개방으로 우크라이나 방위산업의 재편


전쟁 이전, 우크라이나 방위산업은 국영 기업 중심 구조였다. 가장 대표적인 이름이 우크로보론프롬(Ukroboronprom)이다.

image05.png 우크로보론프롬 공장 T-84 전차 생산 (출처 : https://blog.naver.com/ds1jxm/223338837666?photoView=1)

전쟁이 길어지면서 이 구조도 변하고 있다. 국영기업은 여전히 중대형 무기와 탄약, 전차·자주포·미사일 등 전통적 무기 생산의 허리를 맡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민간 기업과 스타트업, 심지어 비영리 단체까지 드론과 소형 무기, 전자장비, 소프트웨어, 교범 제작에 대거 뛰어들었다.

우크라이나 드론 제작 업체.jpg 우크라이나 드론 제작 업체 와일드호넷츠, 요격 드론 대량 생산 (출처 : https://www.theguru.co.kr/news)

2020년대 중반에 이르러 우크라이나에는 수백 개의 방위 관련 기업이 생겨났다. 이들 중 상당수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신흥 방산기업으로 남을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방위산업은 “국가가 설계하고 지시하는 산업”에서

“국가·기업·시민이 함께 움직이는 생태계”로 모양을 바꾸고 있다.


9. 숫자가 말해주는 드론


우크라이나 정부는 전쟁 와중에도 “드론 생산 확대”를 공식적인 국가 목표로 내세웠다. 드론 생산량은 전쟁 초기 몇 천 대 수준에서 출발해 곧 수십만 단위를 넘어섰고, 이제는 연간 수백만 대 수준의 생산 능력을 이야기하고 있다. FPV 자폭 드론, 장거리 공격용 드론, 정찰·관측용 드론, 방공·요격 드론까지 종류도 빠르게 다양해졌다.

표지.jpg 우크라이나 공수여단에 제공된 드론 검사 (출처 : https://tongsangnews.kr/webzine/202403/2024031380059.html)

우크라이나 군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한다. “과거에는 포탄이 전쟁의 언어였다면, 지금은 드론이 그 역할을 절반은 맡고 있다.” 이 말은 과장이 아니다. 우크라이나 평원 위에서 드론은 이미 포병과 보병, 기갑을 연결하는 가장 중요한 매개가 되었다.


10. 전쟁터에서 열리는 방산 포럼


전쟁 중에도 키이우에서는 방산 포럼이 열린다. 세계 각국의 방산업체 대표들이 우크라이나 수도에 모여 협력·합작·공동생산을 논의한다.

표지.png 국제방위산업포럼에서 연설하는 젤렌스키 대통령 (출처 : https://www.yna.co.kr/view/AKR20231001004900009)

과거라면 상상하기 힘든 장면이다. 우크라이나는 지금 단순한 무기 수입국이 아니라, 실전 데이터와 전장을 제공하는 “시험장”이자 드론과 사이버, 장거리 타격 무기 분야에서 새로운 기술 파트너로 떠오르고 있다. 서방 기업들은 우크라이나 기업과 합작법인을 세우고, 앞으로의 전쟁 양상을 바꿀 공동 솔루션을 개발하려 한다. 우크라이나는 전쟁의 고통 속에서도 미래의 산업 기반을 함께 쌓고 있는 셈이다.



11. 전후(戰後) 우크라이나의 방위산업 방향

언젠가 이 전쟁은 끝날 것이다. 언제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이미 전후를 생각하고 있다. 전후 우크라이나 방위산업의 그림에는 몇 가지 굵은 선이 있다. 첫째, 드론과 AI, 자율무기가 국가 전략 산업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둘째, 포탄과 탄약, 장거리 타격체계는 유럽 방산 공급망의 한 축을 맡게 될 가능성이 크다. 셋째, 사이버·전자전 능력은 우크라이나가 가진 실전 경험을 바탕으로 유럽 전체 안보에 기여할 수 있는 분야가 된다. 넷째, 소련 유산이었던 우주·미사일 기술은 언젠가 다시 정비되어 민간·군사 양면에서 쓰일 수 있다. 우크라이나가 이 모든 길을 다 갈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전쟁이 이 나라 방위산업을 강제로 “현대”로 끌어올렸다는 사실이다.

13. 생존을 위해 기술을 만들 때 생기는 것들


우크라이나의 방위산업은 선택이 아니라 필요에서 시작되었다. 언젠가 국경이 평온해지고 도시의 사이렌이 멈추면, 우리는 이 나라를 두고 “드론 강국”이라거나 “새로운 방산 수출국”이라고 부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우크라이나에게 방위산업은 그런 이름보다 훨씬 더 단순하고, 무겁고, 절실한 의미를 가진다. 살아남기 위해 만든 기술. 집을 지키기 위해 만든 무기. 다음 세대가 나라를 잃지 않게 하기 위해 밤새 설계도를 고치는 기술자들의 손. 우크라이나의 공장과 전선 사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선이 하나 있다. 어디선가 드론을 조립하는 손, 어디선가 포탄을 쏘는 손, 어디선가 전선 상황을 분석하는 손이 한 줄기로 이어져 있다. 그 손들이 놓지 않으려 하는 것은 단지 영토나 도시가 아니다. “우리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문장, 그 문장을 지키려는 의지다. 우크라이나 방위산업을 바라본다는 것은 한 나라가 사라지지 않기 위해 기술과 산업을 어떻게 끌어올리는지를 보는 일이다. 그 과정은 피로 물들어 있고, 눈물로 얼룩져 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인간이 가진 가장 강한 욕망, “살아남겠다”는 의지가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흐르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겨울 들판 위를 한 대의 드론이 지나간다.

미래전쟁.jpeg 미래 드론 전쟁 (출처 : https://www.asiae.co.kr/visual-news/article/2024102213514993353)

작은 점 하나가 하늘을 가로지른다. 그 점 안에는 소련의 오래된 공장, 크림의 상처, 2022년의 폭격, 그리고 오늘 공장에서 일한 사람들의 굳은 손이 함께 들어 있다. 그것이 지금, 우크라이나라는 나라가 방위산업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보내는 신호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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