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6. 기적이 사는 곳. 完

노인들이 사는 곳

by 박규동

666.


차가운 달빛. 가을. 시골. 02:00. 무덤, 십자가, 고요, 그리고 부활.


십자가가 꽂힌 무덤. 그의 오른손이 흙을 뚫고 무덤 밖으로 솟아올랐다. 검게 그을리고 붉게 드러난 피부에 흙이 달라붙었다. 곧 다른 팔도 흙을 뚫고 나왔다. 무덤에서 튀어나온 머리, 그는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지렁이들과 함께 기어나온 그는 헤쳐진 무덤 옆, 달빛 아래 드러누웠다. 사흘간의 죽음은 낮잠과 다름없었다.


굳은 몸을 천천히 일으킨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의 시체를 갉아먹는 벌레들은 개의치 않았다. 정면엔 고추밭, 오른편엔 자신이 칠한 철학관의 대문이 보였다. 그는 머리 위 나무를 올려다보았다. 천국과 눈을 맞대던 순간에 깨진 각막 때문에 세상엔 금이 가 있었다. 흐릿한 시야 너머, 나뭇가지에 매달린 이상한 열매 하나가 그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바람이 그것을 흔들었다. 그는 눈가의 흙을 닦아냈다.


열매의 온몸엔 밧줄이 묶여 있었다. 열매를 둘러싼 운동복엔 피와 흙먼지가 붙어있었다. 익숙한 열매였다. 그는 옆 무덤을 바라보았다. 아직 파헤쳐지지 않은 그곳에 하비브가 묻혀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곳엔 여전히 만수의 조상들이 누워 있을 것이다.


그는 천천히 일어나 나무 아래로 걸어갔다. 그는 하비브의 다리 부분 운동복을 붙잡았다. 피 묻은 옷으로 그의 얼굴에 묻은 흙을 닦았다. 어두운 하늘을 향해 허리를 펴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달빛이 먼지를 비췄다.


삐걱거리는 무릎 관절, 벼락에 녹은 근육이 만들어낸 건, 땅 위를 걷는 시체의 걸음걸이였다. 걸음마다 흙과 벌레가 쏟아졌다. 그는 철학관 대문 앞에 멈춰 섰다. 생각에 빠진 듯 고개를 돌린 그는 자신이 칠했던 그 문을 한참 바라보다가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몇몇 노인들의 집을 지나친 그는 푸른 지붕 아래 선 채 한동안 망설였다. 검게 탄 팔이 대문을 향했지만, 이내 팔을 접고 자기 집 마당 안으로 들어섰다. 교회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마당에 들어선 그는 평상을 내려다보았다. 살아있던 그가 앉아 시간을 보냈던 그 자리. 그 평상조차 무시한 채 거실문을 열고 들어섰다. 흙으로 가득한 기도 탓에 그의 숨은 날카로웠다. 그는 방의 핸드폰을 향해 손을 뻗었다. 불탄 장작 같은 손이 핸드폰에 닿기도 전에 그는 인기척을 느꼈다.


그곳엔 거울이 있었다. 그는 핸드폰 대신 거울을 바라보았다. 그는 거울 속의 남자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었다. 언젠가 잘라야지 하고 길렀던 머리는 두피와 함께 녹아내렸고, 코와 귀는 무덤에 두고 온 듯했다. 그래도 구멍은 있었기에 숨을 쉬고, 들을 수 있었다. 그것이면 족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양쪽 볼을 바라보았다. 피부가 모조리 사라져 뼈와 살이 드러난 얼굴. 그의 어금니를 이런 식으로 볼 줄은 꿈에도 몰랐다.

턱을 내리자, 끊어진 힘줄이 이를 다시 붙들지 못했다.


그는 웃음을 쏟아냈다. 웃음과 함께 흙과 살점, 무덤의 벌레들이 함께 쏟아졌다. 그의 폭소는 한순간에 사라졌다. 그는 허리를 숙여 핸드폰을 집었다. 지문은커녕 피부라 부를 수 있는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붉고 검은 세포 덩어리로 버튼을 눌렀으나, 작동하지 않았다. 그는 말라붙은 혀를 핸드폰에 갖다 대 전원을 켰다. 그렇게나 기다려온 메일이 마침내 그곳에 있었다.


돌아오셨나요?

먼저 늦은 답장에 사과드리고 싶습니다. 저희에게도 오늘을 기다리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노인들 사이에서 어찌나 고생이 많으셨나요. 보내주신 예문의 해석본을 읽고 감탄했습니다. 감히 아버지보다 뛰어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하십시오. 그는 성경 속 기적을 읽어낸 몇 안 되는 참된 예언자였습니다. 그의 순교에도 저희는 포기하지 않고 기적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가 말한 기적이 이렇게 돌아올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이제는 기적을 믿으시나요? 아니죠, 기적 그 자체가 되신 기분은 어떤가요? 계약서와 함께 짧은 메일을 마칩니다.

진정 돌아오셨다면, 부활을 축하드립니다. 죽은 자 가운데 첫 열매가 되셨음을 축복합니다.

전도사 이삭 드림.

P.S. 목사님이 만수 형님에게 안부 전해달라고 하십니다.


아래턱이 사라진 얼굴에서, 웃음 같은 게 새어 나왔다. 미소라고 부르기엔 너무 터무니없는 표정이었다. 그는 핸드폰을 바닥에 던졌다. 바닥에 떨어진 그것은, 그를 죽음까지 따라온 목격자였다. 그는 거실문을 열어 문턱에 앉았다. 내려다본 발에 사라진 몇 개의 발가락에 그는 신의 분노를 떠올렸다. 그는 버릇처럼 코를 긁으려 했지만, 그곳엔 숨구멍만 있을 뿐이었다.


그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시골 마을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서울에선 볼 수 없던 수많은 별이 그를 반겼다. 문틈에 앉은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가 농경시대의 평화에 있다는 증거가 필요했다. 먼발치 떨어져 있는 낫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낫을 줍기 위해 허리를 굽혔다 펴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그는 옆을 돌아봤다. 교회에서는 설교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가 살아생전 교회에 관하여 궁금한 게 많았다. 그는 손에 들린 낫을 강하게 부여잡았다. 호기심을 수확할 시간이 왔다. 그는 자신이 교회의 문 앞까지 걸어온 길을 돌아보았다. 그곳에 떨어진 흙과 벌레들, 주님의 집에 이런 차림으로 들어가는 것이 실례임이 분명했다.


그는 다시 한번 별들을 올려다보았다. 그 많은 별이 흘리는 눈물은 그의 온몸에 묻은 흙을 씻어냈다. 죽은 피부와 타버린 옷들, 모든 더러움이 씻겨져 내려갔다. 그는 교회 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무겁고 느린 목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영생을 원하십니까? 여러분은 분명히 기적을 보았습니다. 지옥에도, 천국에도 가지 않아도 됩니다. 영생의 기적은 존재합니다. 주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말뜻을 아는 자는 절대 죽음을 맛보지 아니할 것이다.’ 그것이 제가 될지, 여기 계신 어르신들이 될지 누가 알겠습니까. 그러나 여러분은 분명 기적을 보셨습니다. 아니, 이제 여러분은 모두 기적을 행하십니다. 더욱 큰 기적은 결국 이곳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는 교회의 문을 열었다. 익숙한 습한 나무의 냄새. 자리에 앉아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는 노인들보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강단 위의 거대한 십자가. 그곳엔 말라비틀어진 미라가 십자가에 걸려 있었다. 몇 가닥의 머리털이 남은 채 노랗게 말라 십자가에 고정된 미라.


‘아버지.’


오랜만에 만나는 아버지였다. 신은 상관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목소리는 십자가 발밑에서 계속해서 재생되고 있었다. 테이프를 얼마나 반복해서 재생했는지 아버지의 목소리는 느리고 무거웠다. 익숙하거나 친숙한 기억 같은 건 없지만 아버지는 항상 그의 옆집에 계셨다. 마당 축복이 넘치는 집 앞 교회에. 어떤 살점도 남지 않은 아버지의 모습이 영생이나 기적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철학관 노인은 그의 앞에 선 채 그의 온몸을 만지고 관찰하며 놀라움을 자아냈다. 그의 얼굴에는 기쁨과 놀람이 공존했다.


“자네 맞나? 진짜 자네 돌아온 거 맞나? 그렇지. 자네가 죽은 게 3일 전이니까. 자네 맞는구먼. 기적의 주인공이 진짜 자네가 맞는구먼. 나는 알았어. 항상 알았다니까. 자네 사주에 흙이 많더니. 자네 아버지가 아니라, 자네였어. 진짜 메시아는 목사님이 아니고 그 아들이었구먼. 나는 알고 있었어. 믿어주게 마을 사람들이 다 아니라고 할 때도 나는 알았어.”


십자가의 미라와 땅에서 돌아온 아들, 두 부자는 말라비틀어져 있었다. 그는 지하드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목사가 누구냐는 질문에 대한 답.


‘굉장히 마른 사람.’


그는 아직 그의 신체를 만지며 냄새를 맡고 상하좌우로 관찰하는 철학관 노인을 내려다보았다. 어떠한 망설임도 없이 철학관 노인의 목에 낫을 내려찍었다. 낫을 뽑자 피는 분수처럼 쏟아졌다. 그는 피가 솟아나는 철학관 노인 앞에 앉았다. 그는 분수 같은 피를 이용해 얼굴에 남았던 흙과 때를 씻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앞을 보았을 때 마을 노인들은 모두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노인들을 대변하듯 만수 노인은 가장 앞에 무릎 꿇고 앉아 그의 발목을 잡았다.


“우리는 다 준비됐구먼.”


만수 노인은 아직 영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무릎 꿇고 엎드려 있는 노인의 목에 낫을 찍어 눌렀다. 그는 눈에 보이는 모든 육체에 낫을 휘둘러 삶을 수확했다. 서울과 달리 역시 시골은 조용했다. 누구 하나 비명을 지르고 뛰어다니지 않는 고요함에 그의 마음은 언제보다 차분했다.


창문 틈으로 새어든 달빛이 낫 끝에 비쳤다. 눈을 부시게 하는 섬광이 아닌, 은은한 달빛. 기적을 흉내 내며 매달려 있던 아버지는 더 이상의 부패를 견디지 못하고 십자가에서 떨어져 내려왔다. 마을의 노인들은 영광과 영생을 기대하듯 엎드려 기적의 손길을 기다렸다.


교회의 닫히지 못한 문틈으로 눈빛이 흘러들어왔다. 지하드는 광인의 수확을 목격하고 있었다. 그가 팔아넘긴 광인은 노인들의 목을 베고 있었다. 걸어 움직이는 죽음의 모습은 살인자에게 악몽보다 두려웠다. 침묵을 지키려고 입을 막던 지하드의 눈에선 눈물이 흘러내렸다.


교회 안의 광인은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빗물이 지하드의 눈물을 가려 주려 했지만, 광인의 눈빛은 지하드의 발을 붙잡았다. 그는 도망갈 수 없었다. 공포에 시야는 흔들리고 다리의 근육은 말을 듣지 않았다.


뒤를 돌아본 광인은 지하드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광인은 교회 바닥의 핏물을 밟으며 썩어가는 다리로 지하드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지하드를 향해 걷는 길에 그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무너진 턱과 쏟아져 내려온 혀에 알아보긴 힘들지만 자애로운 미소였다. 지하드는 그림자처럼 자리를 지켰다.


광인은 교회의 문을 활짝 열어 지하드를 반겼다. 교회는 그 누구도 빠짐없이 모두를 환영하는 곳이다. 지하드는 그의 손에 들린 피 묻은 낫을 바라보며 공포에 떨었다. 숨소리도 내지 않고 눈물을 흘리며 서 있었다. 모든 게 자기 탓인 듯 느껴지기도 했다. 코앞까지 다가온 광인은 지하드를 지나치려는 듯 어깨를 맞대었다.


광인은 그의 귀에 속삭였다.


광인은 외지인을 지나쳤고, 교회의 문은 닫히지 않았다.





Always prosper,

Be yourself and free yourself my passionfruit.

Truly Yours, Fore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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