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유다 下

노인들이 사는 곳

by 박규동

핸드폰도 챙기지 못한 채 그의 등만 보며 교회로 걸어갔다. 시골의 어두운 침묵에 붉은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다. 왜인지 눈시울이 붉어지고 속이 안 좋았다. 이들은 절대 경찰에 신고할 마음이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뭘 어쩌려고….


교회의 문이 열렸다. 교회 안은 고요했다. 마을 사람들은 예배라도 드리듯 의자에 앉아 있었다. 강단에는 만수 할아버지가 서 있었다. 그는 오랜만에 기분이 좋아 보였다.


“자네 왔구먼. 그래. 자네도 공동체의 일원인데, 당연히 와야지.”


“뭡니까?”


핏기 없는 얼굴의 노인들이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나는 그들처럼 의자에 앉아야 할지, 강단으로 향해야 할지 의자 틈에서 주춤거렸다. 만수 할아버지는 나에게 다가오라는 손짓을 보냈다.


“고추밭 노인네들도 죽이고, 무당 노인네도 죽인 놈이 여기 있어.”


“여기요?”


“그래. 여기. 여기로 와봐.”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봤다. 철학관 노인이 문을 지키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바닥에 박혀 있었다.


강단을 향하는 느린 걸음, 의자에 앉은 노인들은 천천히 고개를 움직이며 나의 등을 훑었다. 그곳, 강단 아래에는 열려 있는 관이 하나 있었다. 낡고 오래된 목재. 그 안에는 익숙한 운동복을 입은 남자가 있었다. 하비브의 팔다리와 입이 밧줄에 묶인 채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나 역시 그를 내려다보았지만, 어떤 감정을 가져야 할지 몰랐다. 공허했다. 관을 내려다보며 만수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이게 뭡니까?”


“내가 산에 간다고 했지? 거기서 고무장화 하나를 발견했거든. 사람 발목이 들어 있더라. 흙도 묻은 것이 폭우에 떠내려왔나, 이상하더라고. 혹시 이놈이 발목을 다시 처리하러 돌아올까, 기다려봤지. 내가 월남에서 두 손으로 때려죽인 빨갱이 새끼들만 해도 열 손가락이 넘는데, 이 얘기는 이미 했지?”


“그게 하비브라고 확신하신다면 경찰을 부르시죠.”


‘경찰’이라는 단어에 노인들이 술렁거렸다. 잡음 속에서 또렷이 들려온 말이 있다.


“큰일 나려고.”


만수 할아버지는 목사처럼 단상 위에 서서 노인들을 내려다봤다.


“목사님이 그러지 말라 하셨는데. 우리끼리 돕고 살라고, 세상 때에 물들지 말라고.”


“장난합니까? 그럼 제가 할게요.”


나는 주머니를 뒤졌다. 비어있는 주머니에 문 앞에 서 있는 철학관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그는 내가 핸드폰을 챙길 새도 없이 나오도록 내 손목을 잡아끈 인간이었다. 만수 노인은 목소리를 높였다.


“자네는 우리 마을 사람이야, 아니야?”


“예?”


“우리 마을 방식대로 하려는데, 자네도 ‘우리’지?”


“그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입니까. 직접 죽이기라도 하실 겁니까? 정황 몇 개로?”


“기적을 본 뒤로 목사님이 하신 말씀이 있는데, 다 기억은 안 나네. 어쨌든, 목사님 말을 듣고 내가 우리 조상 묘에 십자가를 박아 버렸어. 그때 생각했지. 죄와 우상은 여기에 다 묻어야겠다, 하고.”


노인은 관 속에서 몸부림치는 하비브를 내려다봤다. 교회 밖 빗소리가 점점 거세졌다. 교회 벽을 때리는 빗방울, 으르렁거리는 천둥, 좋은 예감은 들지 않았다.


“당신들이 말하는 믿음이니, 기적이니 하는 것들도 정도가 있지. 사람을 죽이려고?”


“믿음? 우리는 믿는 게 아니야. 기적을 봤다니까. 자네는 우리가 아주 바보로 보이는가? 고작 말 몇 마디를 믿는다고 이렇게까지 하게? 아니지, 자네도 봤잖아? 기적을.”


땅 위로 떠 올랐던 무당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것보다 두려웠던 아버지의 목소리. 그 목소리가 만수 노인의 목젖으로부터 쏟아졌다.


“아들아, 이제 어떻게 할까?”


힘이 풀려가는 다리를 붙잡았다. 기도 아닌 기도를 내뱉었다.


‘하나님 아버지. 아버지 도대체 제게 무엇을 원하십니까.’


만수 노인은 강단에서 내려왔다. 그의 손에 흉기가 들려 있진 않은지 노인의 두 손을 바라보았다.


“자네 뜻은 대충 알 것 같네. 그래. 하비브가 자기 입으로 말했어. 고추밭 노인들을 자기가 그랬다고.”


“거짓말.”


“뭐가 또 거짓말이야.”


만족하는 미소를 짓던 만수 노인은 등 뒤 허리춤에서 낫을 꺼냈다. 그는 날로 머리를 긁으며 나를 노려봤다.


“그러면 자네가 도망가게 놔둔 이놈이 왜 여기서 산을 타고 있었겠어? 고추밭 노인네들은 이놈이 자기가 그랬다고 자백했고. 그러면 무당은? 그 노인네 시체는 나오지도 않았어. 이놈과 범행 방법이 다르다, 이 말이야. 근데 말이여, 이왕 이렇게 된 거, 이놈이 셋 다 죽여버렸다 하고,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가려는데, 어떻게 생각해?”


노인은 낫을 든 손을 뒷짐 진 채 천천히 다가왔다. 나는 뒷걸음질 치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의 목소리로 귓속말했다.


“마지막 기회야. 잘 생각해.”


그제야 교회 벽 창문 쪽으로 물러나며 노인들에게 물었다.


“당신들이 원하는 게 뭡니까. 눈감으라고요? 하비브가 안 죽였는데, 어떻게 그랬다고 거짓말을 해요.”


만수 할아버지는 짜증 섞인 한숨을 쉬며 다시 강단으로 올라섰다.


“자네 약 먹지? 정신이 오락가락하지? 몽유병처럼 걸어 다니기도 하고, 오늘이 내일인지, 내일이 오늘인지도 모르고?”


“정당하게 의사한테 처방받아서 먹는 약입니다.”


만수 할아버지는 웃으며 단상에 낫을 박았다. 노인을 올려다보며 침을 삼켰다.


“자네, 우리한테 술 안 마신다고 하지 않았어?”


그는 낫이 꽂힌 단상 아래에서 소주병 두 개를 꺼냈다. 할 말을 잃었다. 지하드와 말을 나눈 밤이 떠올랐다.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머릿속이 깜깜했다.


“보건소장한테 이미 물어봤어. 술이랑 같이 먹으면 죽을 수도 있다네? 그건 상관없고, 그 약을 술과 함께 먹으면 자기가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돌아다닐 수가 있다고 하더라고. 그게 꿈인지, 현실인지도 모르면서 말이야.”


“제가 안 마셨어요. 그건….”


‘지하드가 죽인 게 맞잖아. 그렇게 말하면 되잖아. 말하자. 사실만 말하면 되는 거야’


유다가 된 듯 나는 교회를 둘러보았다. 기다림에 지친 그는 단상의 낫을 뽑으며 소리쳤다.


“태풍 왔을 때, 교회에서 무당하고 말싸움했었지? 무당 뒤에서 마수 같은 손을 뻗었잖아. 내가 문 여니까 아무 일도 없는 척, 잘했어.”


“손을 뻗은 건…. 그게….”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때 만수 할아버지가 들어오지 않았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나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노인들의 눈빛은 경멸과 분노로 가득했다. 창문 틈으로 스며든 빗방울이 목덜미를 타고 흘렀다. 세 번의 천둥. 지하드가 죽였다는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


“그래. 증인만 있으면 되겠네.”


철학관 노인이 문을 열자. 밧줄에 묶인 지하드가 끌려 들어왔다. 철학관 노인이 얼른 말하라는 듯 줄을 당겼다.


“저분이, 저희 할머니 술에 약을 탔어요.”


“그리고?”


“기계에…. 넣었어요.”


지하드의 거짓말에 화가 나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게 될지 누가 알았겠나. 곡소리. 욕설. 분노. 노인들의 고함이 나를 덮쳤다. 만수 노인은 강단에서 내려와 나를 향해 천천히 걸어왔다. 그는 관에 있는 하비브를 고무장화로 짓밟으며 말했다. 나는 그 말이 나에게 하는 말인지, 하비브에게 하는 말인지 알 수 없었다.


“내가 사사로운 감정으로 그딴 짓 하지 말랬잖아.”


관속의 하비브는 묶인 두 손으로 만수 할아버지의 발목을 잡았다.


“이거 안 놔, 이 새끼야!”


팔꿈치로 창문을 깼다. 산산이 조각난 창을 넘어 교회 밖으로 기어 나왔다. 깨진 창의 유리는 다리 한쪽의 종아리를 찢어 놓았다. 흙탕물에 젖은 몸. 피가 흐르는 다리를 끌며 정문으로 향했다. 노인들은 마치 군인처럼 비를 맞으며 문을 막고 있었다. 낫을 든 만수 노인이 교회 문을 열고 나왔다. 그의 얼굴에 묻은 피를 보고 하비브가 어떻게 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지금 보니 자네 참 말랐구먼. 마음고생을 많이 했나 봐. 마지막으로 기회를 줄까?”


나는 폭우가 쏟아지는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첨탑 위의 십자가. 어쩐지 눈물이 났다. 공포도 고통도 나를 울리지 못했다. 첨탑 위의 십자가는 주님이 건네는 구원의 손과 같았다. 그 손을 잡기 위해 피 흘리며 교회 벽을 기어올랐다. 마을 사람들을 나를 올려다보며 웅성거렸다.


첨탑의 끝에 올라서 철 십자가를 부여잡고 균형을 잡았다. 그곳에서 나를 올려다보는 화가 난 노인들을 바라보았다. 십자가 옆에 서서 평화로운 시골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이런 벌을 받아야만 하는, 나의 죄는 무엇이지.’


철 십자가를 강하게 움켜쥔 채 노인들에게 소리쳤다.


“죄지은 자, 주님께서…!”


천국이 도래한 듯 마을이 밝게 빛났다. 세상이 하얀빛에 담기는 짧은 순간, 철 십자가를 쥔 내 손을 바라보았다. 온몸이 마비되는 느낌. 나는 벼락을 보았다. 죄인에게 떨어지는 벼락. 온몸의 피부가 짧은 순간에 타들어 가며 연기가 피어올랐다. 어떤 고통도 느낄 수 없었다. 뻣뻣하게 굳은 몸이 십자가를 놓았다. 교회 바닥을 향해 추락했다. 불타는 육체의 추락. 한 박자 늦는 천둥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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