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이 사는 곳
“형이 그런 거 맞죠?”
심장이 뛰었다. 나는 떨리는 이를 깨물며 되물었다.
“뭘요?”
그는 다른 한병의 뚜껑을 열었다.
“하비브 도망간 거요.”
“…맞아요.”
이대로 입을 닫아주길 바랐다. 그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공범이 될 것 같았다. 그가 할머니를 아예 언급하지 않았으면 했다.
“할머니 눈만 마주쳐도 무서워요. 그 눈은 속을 들여다봐요. 뭘 생각하는지, 공포에 떨고 있는지, 떨고 있지 않다면 떨게 만들어요. 나도, 하비브도, 고추밭 할머니들도.”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외지인들끼리, 약자들끼리 전부를 드러낼 수 없는 마을이었다.
“그게 다 교회 때문이에요.”
“…교회? 교회랑 할머니가 무슨 상관이에요?”
“설교도 듣고, 성경도 읽고… 그 뒤로 이상해졌어요. 작두 타는 것도, 원래는 다 가짜였는데.”
뭘 먼저 물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망가는 살인자를 붙잡을 수는 없었지만, 지금이 아니면 진실은 영원히 폭우에 잠길 것만 같았다.
“형, 나중에 봐요.”
“지하드, 마지막으로 하나만. 교회에 목사는 누구예요? 만수 할아버지예요? 철학관 할아버지?”
지하드는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말했다.
“마른 사람이요. 굉장히 마른 사람.”
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남겨진 것은 평상 위의 소주병과 의문뿐이었다. 우산을 마당에 대충 던진 후 집으로 돌아와 거실문을 잠갔다.
마른 사람…
그게 누구일까. 아무 단서도 없었다. 진정제를 두 알 삼켰다. 약이 나를 위로했다.
‘누가 누굴 죽였든, 누가 무슨 기적을 부렸든 무슨 상관이야.’
오늘은 왠지, 악몽을 꾸지 않을 것 같았다.
아침이 스며듦과 동시에 교회로 향했다. 나의 마음은 어서 신발을 신고 나가라며 몸을 다그쳤다. 예수님은 금요일에 돌아가시고 일요일에 부활했으니, 월요일 아침의 교회는 조용할 걸 알고 있었다. 교회의 문을 여니 습한 나무 냄새가 나를 맞이했다. 창을 뚫고 쏟아진 햇빛은 교회 안의 먼지를 밝혔다. 마치 예배가 한창인 듯 상상하며 의자에 앉았다. 강단을 올려다보았다.
‘목사의 목소리가 울리던 곳.’
무거운 걸음을 담아 강단으로 향했다. 계단을 밟고 올라선 강단 위에서 텅 빈 교회를 내려다보았다. 목사가 된 기분이 들었다. 만수 할아버지가 그랬듯 단상을 손바닥으로 부드럽게 내리쳤다. 먼지가 날린 후 낡은 서랍이 살짝 열렸다. 그곳에 있던 종잇조각 하나가 바닥으로 흘러나왔다.
찢긴 성경의 한 페이지.
무당 할머니가 굿판에서 성경을 찢어 날리던 장면이 떠올랐다. 나는 그 종이를 집어 들고 읽었다.
너희는 썩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고,
주의 기적 안에 새로 태어난 자들이니라.
기적은 너희에게 나뉘어 주어진 것이며,
기적은 형제를 위해 쓰일 때 완전하여지느니라.
스스로 구별하고, 거룩한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라.
그곳에는 굶주림도, 병도, 외로움도 없으리니.
익숙한 구절이었다. 마지막으로 성경을 완독한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요한복음이었나, 로마서였나. 기억을 더듬고 있는데 교회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본능적으로 숨으려던 나는 멈추어 섰다.
‘왜 내가 숨어야 하지.’
문을 열고 들어선 사람은 만수 할아버지였다.
“자네, 거기서 뭐 하나?”
찢긴 성경 종이를 슬쩍 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
“들어오면 안 되나요? 요새 일어나는 일도 있고, 답답해서 와봤어요.”
“뭐 찾는 게 있나?”
“뭘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아나. 찾는 사람이 알지.”
나는 강단에서 내려와 의자에 앉았다. 대화의 주제를 돌려야 했다. 의자에 앉아 그를 향해 고개를 돌린 나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얘기를 꺼냈다.
“어르신, 월남전에 참전하셨다고 했죠? 저번에 산 타시는 거 보니까, 그래서구나 싶었어요.”
만수 노인은 앓는 소리를 내며 문가에 가까운 의자에 앉았다.
“그렇지. 내가 동생 대신 입대해서 두 손으로 때려죽인 베트콩만 해도… 내가 이 얘기 했었나?”
“네. 하셨어요.”
“안 그래도 산에 또 올라가 보려고.”
“산에요? 왜요?”
나는 주머니에 넣은 손으로 떨리는 다리를 눌렀다. 노인은 잠시 말을 멈추고 바닥을 바라봤다.
“지하드가 집에 없더라고.”
“잠깐 어디 나간 거 아닐까요?”
“그래.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산엔 왜요?”
햇빛이 먼지를 머금고 교회 안으로 스며들었다. 나무 냄새와 침묵 속에서, 노인의 낮은 목소리가 교회를 채웠다.
“내가… 산에서 뭘 봤거든.”
꽃뱀이 앉아 있던 고무장화가 떠올랐다. 발목의 형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흔들리는 눈빛을 숨겨야 했다. 고개를 돌린 나는 강단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내 등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주인이 찾으러 올 거 같아서. 기다려보려고.”
관심이 없는 척, 이곳에선 감정을 숨겨야 했다. 핸드폰을 꺼내 긴 문자라도 보내는 척 화면을 두드렸다.
“그래요. 산 올라가실 때 조심하시고요. 저는 먼저 가볼게요.”
의자에서 일어나며 주머니 속 성경 조각이 구겨지는 소리를 냈다. 문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 문손잡이를 잡은 순간, 노인은 혼잣말하듯 낮게 말했다.
“만약에 말이지… 지하드가 내일도, 모레도 안 보인다면.”
“예.”
“그럼 실종된 노인네들… 지하드가 그렇게 했다고 봐도 되겠지?”
침을 삼켰다. 평소보다 목젖은 강하게 움직였다. 어젯밤 대화를 그가 엿들었을 가능성도 떠올렸다. 그는 무엇을 알고 있는 걸까. 그가 원하는 답은 무엇일까.
‘예. 지하드가 어젯밤 저한테 다 말했어요.’
나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말했다.
“그렇게 단정할 순 없죠.”
노인은 나를 올려다보며 뼈가 섞인 농담을 던졌다.
“자네 오기 전까지는 이런 일 없었거든.”
거짓된 미소와 함께 쓴웃음을 삼켰다.
“방금 그 말은 좀 그렇네요. 저를 의심하시는 것 같아서요.”
“아니지. 말했잖아. 우리는 자네를 절대 의심하지 않는다니까.”
그가 원하는 대답이 있었던 건 분명했다. 공손히 고개 숙여 인사하고 교회를 나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마당의 평상을 바라봤다. 어젯밤 지하드와 마주 앉아 있던 그 자리. 담배꽁초도, 어떤 흔적도 없었다. 이 마을을 이끄는 노인들이 나에게 허락을 구하는 것만 같았다.
지하드에게 모든 죄를 덮어씌워도 되는지. 그가 자신을 학대하던 무당 할머니를 죽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실종된 노인들까지 모두 그의 탓으로 돌릴 순 없다.
집으로 돌아와 거실에 누운 채 주머니에서 성경 종이를 꺼냈다. 거실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에 비춰보니, 글자마다 크기가 조금씩 달랐다. 잉크가 번진 곳도 있었다. 인쇄된 종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자마자 그 필체가 역겹게 느껴졌다. 이 종이를 적어낸 인간의 숨이 닿는 느낌이었다. 종이를 짓궂게 구겨 성경이 있는 장롱에 던졌다. 핸드폰을 꺼내 통장 잔액을 확인했다. 메일함은 비어 있었고, 번역 일도 끊긴 지 오래였다.
‘일주일만 더 기다려보자.’
통장에 적힌 숫자만 봐도 가슴이 조여오고 불안했다. 약통을 열어 진정제 한 알을 꺼냈다. 이왕 먹는 김에, 몇 알을 더 삼켰다.
‘이거 한 통만 다 먹고 끊자. 어차피 없으면 못 먹으니까.’
약을 사탕처럼 입에서 굴리며 눈을 감으려는 순간, 거실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밖은 벌써 어두웠고, 시계는 해가 저문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3초밖에 안 지났는데…’
시계가 약에 취했거나, 내가 약에 취했거나. 시골의 시간은 다르게 흘러갔다. 문밖의 남자는 다시 한번 문을 두드렸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문을 열었다. 철학관 어르신이 서 있었다.
“뭐 도와드릴까요?”
“아니. 범인 잡았구먼.”
온몸에 피가 빠지는 기분이었다.
“빨리 가보자고.”
손목을 움켜쥔 노인의 손이, 내 심장을 틀어쥔 듯했다.
“어디를요?”
“교회. 지금 범인이 거기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