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이 사는 곳
아침부터 평상 모서리에 앉아 다리를 떨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골 풍경에 나의 두 다리만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멍하게 다리만 떨며 털지 못한 담뱃재는 길게 늘어졌다. 지난 사흘을 그렇게 보냈다. 떨리던 무릎 위로 담뱃재가 떨어지는 사뿐함에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푸른 우비를 입은 지하드를 본 그날 이후, 마당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내딛지 않았다. 담벼락이 좀 더 높았으면, 마당을 지키는 개 한 마리라도 있었다면. 무릎에 떨어진 재를 털어낸 그때, 집 앞 교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평상 위에 놓인 핸드폰으로 달력을 확인했다. 일요일과 교회, 그곳엔 내가 만나야 할 사람이 있다.
자리에서 일어나 교회 앞으로 빠르게 걸었다. 주님의 집은 안전하니까. 교회 문 앞엔 철학관 할아버지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불쾌하면서도 친절했던 그였지만, 고추밭 할머니에게 손찌검하는 것을 본 이후 그는 그저 또 다른 불편한 존재로 그곳에 서 있었다.
“안녕하세요.”
그는 공상에서 깨어나듯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받아주었다. 문을 등지고 서 있는 그에게 비켜달라는 말을 꺼낼 수 없었다. 대화해야 한다면, 묻고 싶은 게 있었다.
“어르신, 철학관 운영하신 지 오래되셨죠?”
“응. 왜?”
“그럼 무속신앙이나 도교 같은 종교도 많이 연구하신 거죠?”
“그런 셈이지.”
“그리고… 교회도 다니시고요?”
“아, 이 사람이 아침부터 뭘 잘못 먹었나. 궁금한 거 있으면 얼른 물어봐.”
그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무엇이든 물어보라는 태도를 보였다. 나는 신비주의나 기적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지만, 철학관 어르신이라면 뭔가 다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게요, 제가 지난번에 지하드랑 같이 일하고 있었는데, 무당 할머니가 문틈으로 절 쳐다보시는 거예요.”
“나도 문틈으로 자네 본 적이 있는데, 그게 왜? 문제가 되나?”
그의 말투에 묘한 적대감이 묻어났다. 그는 무엇을 알고 있을까?
“문제가 아니라, 그… 초자연적인 부분이 있어서요. 어르신 혹시 최면 같은 것도 잘 아세요? 할머니가 저를 쳐다보는데 갑자기 어지럽고, 꿈인지 악몽인지 구분이 안 되는 거예요. 그런 현상에 대해 들어보신 적 있으세요?”
“뭐, 저주 같은 얘기를 하는 거야?”
“딱히 저주라고 하긴 뭐하지만, 그런 거요.”
“자네가 손 다치고 마취했을 때, 굿하다가 쓰러졌을 때. 나랑 만수 할배가 자네를 집으로 옮겼어. 방바닥에 약이 한가득 떨어져 있더만.”
신비로운 답을 기대한 나에게 노인은 오히려 논리적이고 현실적인 말을 꺼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내가 듣고 싶은 대답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아, 약 때문은 아닌 것 같은데요.”
“자네, 그 무당이 쳐다봤을 때 뭐 하고 있었다고?”
“지하드랑 일하고 있었어요.”
“그래? 흠...”
그는 담배 연기를 내뿜은 후, 교회 마당에 꽁초를 던져 밟았다. 그는 기계적인 미소를 지으며 문을 열었다.
“들어가자고.”
문이 열린 교회 안에는 마을의 노인들이 모두 모여있었다. 비바람 없는 아침에 교회 문을 통해 당당히 들어가는 것은 처음이었다. 주님의 집은 모두를 환영한다지만, 여기에 들어오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강단 위를 바라보았다. 그곳엔 내가 기대한 목사가 아니라, 만수 할아버지가 서 있었다. 그는 나를 보자 말을 건넸다.
“어, 그래. 자네도 왔구먼. 그래서 다들 그 노인네를 본 적이 없다 이거지?”
노인들은 사라진 무당 할머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는 교회 의자에 앉아 다시 다리를 떨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들키지 않기 위해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 목사가 어디에 있는지, 예배는 언제 시작하는지를 묻기에 좋은 때가 아니었다.
만수 할아버지는 조용히 나를 바라보다가 물었다.
“자네는 지난 사흘 동안 무당 노인네 본 적 있는가?”
“아… 아니요. 전 집에만 있었어요.”
그가 산에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사사로운 감정으로 남을 다치게 하면 안 되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지?’
혹시 그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 말을 했을까. 나는 떨리는 다리를 멈출 수 없었다. 죄를 짓지도 않은 내가 당당한 척 연기를 해야 했다. 만수 할아버지가 철학관 어르신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나는 누군지 짐작이 가긴 해.”
“이 사람아, 우리끼리 지레짐작하고 그러면 안 되지.”
만수 할아버지가 말리듯 웃었다.
“근데 다들 지난 3일간 지하드는 본겨?”
노인들은 그가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이 마당에서 일하고 있다는 말을 하나씩 보탰다. 이어지는 증언들은 곧 의심으로 변해갔다.
“노인네가 사라졌는데도 똑같이 일만 하는 게 참 희한해.”
“그래도 자식 같은 존재였는데, 아무 일 없다는 듯 가만히 있네.”
“자식까진 아니고, 일만 했지. 같이 일하던 그놈도 도망갔잖아.”
“지하드한테는 원래 심하게 굴었잖아. 그 여자가 뭐 보통 여자는 아니었지…”
만수 할아버지는 그들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눌린 듯, 노인들은 하나둘 말끝을 흐리며 시선을 돌렸다. 교회 안엔 다시 정적이 감돌았고, 내 머릿속엔 또 그 말이 맴돌았다.
‘사사로운 감정으로 남을 다치게 하면 안 되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지?’
가시방석 위 나는 다리를 떨며 손끝만 바라보고 있었다. 지하드를 향한 노인들의 의심이 커질수록 나를 향한 의심은 멀어질 것이다. 고추밭 할머니는 몰라도, 그가 무당 할머니를 죽인 것은 사실이었다. 마음 한구석은 속삭이고 있었다.
‘지하드가 죽일 만했어. 그 할머니는 당해도 싸.’
그 누구도 죽지 않고, 그 누구도 죽이지 않았다는 환상을 품었을까?
“지하드가 그런 것 같진 않은데요.”
나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학대받던 외지인을 고발할 순 없었다. 그러나 나에게 의심이 몰리게 둘 마음도 없었다. 내 목소리가 교회에 울리고, 노인들의 웅성거림이 그 뒤를 따랐다. 만수 할아버지는 단상을 가볍게 내리치며 말했다.
“우선 오늘은 다들 집에 돌아가자고. 뭐, 읍내에 잠시 나간 걸지도 모르지.”
그의 말에 노인들은 일사불란하게 교회 문을 통해 빠져나갔다. 철학관 어르신은 내 허벅지를 장난스럽게 쳤다.
“걱정하지 말아.”
장난기 어린 웃음을 지으며 그는 밖으로 나갔다.
‘뭘 걱정하지 말라는 거지.’
식은땀이 흐를 새도 없이, 만수 할아버지는 강단에서 내려와 내게 다가왔다.
“자네도 나가야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군대 이야기하며 장난치던 그의 모습은 사라졌다. 진지한 그의 눈빛이 나를 위축시켰다. 나는 교회 밖으로 나가는 어르신들의 등을 보며 뒤따랐다. 교회 마당에 발을 딛기 전, 궁금증을 묻어둘 수 없었다.
“저, 그런데… 일요일인데 목사님은 안 오셨어요?”
“상황이 이런데, 어찌 모시겠어.”
“그렇죠…”
등 뒤에서 교회 문이 닫혔다. 문 안엔 만수 할아버지가 홀로 남았다. 밖으로 나온 사람들은 푸른 지붕의 마당에서 일하고 있는 지하드를 향해 의심의 눈길을 던지며 각자 집으로 흩어졌다.
집으로 돌아와 사이비 교단에게 답장이 왔는지 확인했다. 어쩌면 나는 가장 합리적인 해결책을 이미 알고 있다.
‘메일만 오면, 계약금을 받고 새로운 마을로 향하는 거야. 여기서 일어난 일들은 다 잊고 떠나는 거야.’
서울에서 광인이 날뛰었을 때처럼, 군대에서 병사가 지뢰를 밟았을 때처럼, 다시 도망치는 것이다. 이번에는 도망치는 과정이 힘들 뿐이다. 방에 누워 핸드폰만 바라보며 시간을 죽였다. 이중, 삼중으로 문을 걸어 잠근 채 방에만 있는 게 더는 낯설지 않았다. 서울에서의 삶과 다를 게 없었다.
‘사람들이 지하드를 의심하게 놔두는 게 나을지 몰라.’
무당을 향해 손을 뻗은 그 밤이 떠올랐다. 만수 할아버지가 문을 열지 않았다면, 무당 할머니를 죽인 건 지하드가 아니라 내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천둥소리가 창문을 흔들었다. 침대에서 일어나 문지방에 앉았다. 불안한 마음에 거실문만 바라보며 다리를 떨었다. 나도 이젠 노인들보다 지하드가 더 두려웠다. 아니, 불편했다. 그는 외지인이니까. 나처럼.
세 번째 천둥이 울렸다. 이번엔 섬광도 없이.
거실 유리문 너머로, 푸른 실루엣 하나가 서 있었다.
‘또 만수 할아버지겠지...’
노인들은 밤낮 가리지 않고 찾아온다. 겁에 질린 가슴이 두근대는 걸 억지로 누르며 문을 열었다. 익숙한 푸른 우비를 입은 지하드, 그가 술병을 들고 서 있었다. 폭우가 푸른 우비를 때리고, 그 물이 튀어 내 얼굴을 적셨다.
“같이 술 마실래요?”
“어떡하죠, 제가 약을 먹어서 술을 못 마시는데요.”
“저번에는 술 마신 것 같던데.”
“그게 언제죠?”
분명히 내가 꺼냈어야 할 말이 있었다.
‘비 오는데 밖에서 뭐 해요, 들어와요.’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 말이 빗속에 여백을 만들었다. 그는 그 침묵을 읽은 듯 보였다. 이상하게도, 소주병을 들고 서 있는 살인자에게 동정심이 피어올랐다.
“잠시만요.”
낡은 우산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그와 함께 마당 평상에 나란히 앉았다. 우산은 하나뿐이었다. 이미 폭우에 젖은 그와 우산을 함께 쓸 의미를 찾지 못했다.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라이터를 켜려 했지만, 손이 떨렸다.
“쌀쌀하네요.”
내리는 폭우에 평상에 앉아 있는 상황이 자연스럽지 않음은 그도 알고 있을 것이다. 지하드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까, 비 내리는 시골의 침묵은 커다란 소음이었다. 그는 소주를 병째로 들이킨 후 나를 바라보았다.
“형이라고 불러도 되죠?”
“…예? 아, 네.”
“형. 무당 할머니 진짜 무섭죠.”
“왜요?”
“그 할머니,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해요.”
그 말에 나는 굿판에서 떠 있던 그녀의 발을 떠올렸다. 아버지의 목소리를 내던 그녀. 굿판을 벌인 후 기적처럼 나은 손. 그녀가 내 눈을 바라보던 순간도 잊히지 않는다. 초현실적인 공포를 주입하던 눈빛. 인간이 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그러나 지하드는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가족 못 만나게 하고, 때리고, 욕하고. 인간이 할 수 없는 짓들을 해요.”
“가족이 있어요?”
“네, 고향에.”
그의 눈엔 그리움이 담겨 있었다. 손의 떨림이 멎었다. 담배에 불을 붙이고, 하나를 건넸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할머니가 담배 냄새를 싫어해요. 그래서 못 피워요.”
할머니가 아직도 살아 있다는 듯 이야기했다. 괜한 죄책감이 새어 나오듯 조용히 물었다.
“지하드, 미안한데… 돈이 있었으면 주고 다른 마을로 가라고 했을 거예요. 근데 지금 거의 따낸 번역 계약이 있거든요. 큰 건이에요. 답장만 오면, 내가 도와줄게요.”
“저는 못 가요.”
“왜요?”
“고향이었으면 그랬을 수 있어요. 이곳이 무서우면 저곳으로. 저곳이 무서우면 이곳으로. 그런데 여기는 어디를 가도 무서운 곳이에요.”
그의 눈빛에서 결심을 읽을 수 있었다. 그가 자수하게 둘 수 없었다. 이곳 마을 사람들은 경찰에 신고하지 않을 것이다. 외지인에게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그에게 내가 무엇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모든 수를 보여줄 수 없었다. 신뢰와 동정은 다른 개념이다. 지하드는 어느새 소주 한 병을 다 비워냈다. 그는 나를 바라본 후 조용히 말했다.
“형이 그런 거 맞죠?”
심장이 뛰었다. 나는 떨리는 이를 깨물며 되물었다.
“뭘요?”
그는 다른 한병의 뚜껑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