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선명해지는 농촌의 공포.

노인들이 사는 곳

by 박규동

다시 메일함을 확인했다. 기적은 없었다.


억울함에 번역가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


“여보세요?”


“원래 그 영화 번역은 내가 하기로 했잖아요.”


“응? 갑자기 무슨 소리야? 수입사 회장 사위 얘기하는 거야?”


“그 인간 아직 살아 있어요?”


“…응. 왜?”


“그 인간이 키보드도 못 칠 상황이면, 원래 하기로 했던 내가 맡는 게 맞지 않아요?”


“그게 우리 맘대로 되는 건 아니잖아.”


“그 인간, 살 것 같아요?”


“…말을 왜 그렇게 해?”


“형도 그 인간 죽길 바랐잖아요.”


“야, 말조심해. 난 누구 하나 죽길 바란 적 없어. 너 괜찮아? 술 마셨어?”


“왜 다들 나한테 술 마셨냐고 묻는지 모르겠네.”


태양을 마주한 채 누워 젖은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처음 이곳에 왔던 날이 떠올랐다.


“형.”


“응.”


“그 인간 죽으면, 그 영화 번역은 내가 하는 거죠?”


전화기 너머로 침묵이 흘렀다. 그 사위가 싫은 게 아니다. 단지 그 사위가 실력이 있는 번역가라며 거짓말을 토해내는 세상이 역겨울 뿐이다. 정말로 실력 있고, 뼈가 부서지게 열심히 일한 번역가는 나다. 누구보다 이번 영화의 번역을 맡을 자격이 있는 건 오직 나 뿐이다. 뭐가 그렇게 소중한지 모르겠지만 죽어가는 회장의 사위가 아닌, 내가 맡았어야 할 일이다. 이 불공평함이 모든 일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선배 역시 알고 있을 것이다. 침묵이 흐른 후 선배는 말을 돌렸다.


“거기 마을은 어때.”


“별일 없어요. 노인 둘이 실종된 것 말고는요.”


“…노인이 둘이나 실종됐다고? 그게 별일이 아니야? 경찰에 신고는 했어?”


‘경찰’이라는 단어에 잠시 죽어있던 이성이 꿈틀댔다. 나는 왜 당연히 마을 사람들이 신고했으리라 생각했을까?


“…했겠죠? 마을 사람들이.”


이제 더는 선배에게 기대할 것도, 대화를 이어갈 힘도 없었다. 전화를 끊었다. 하늘의 밝은 점, 태양을 바라보았다. 태양이 신이라면, 내 기도를 들어줬을까. 담배를 입에 물고, 나는 눈을 감은 채 두 손을 모았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 당신이 언제 한번 인간들의 기도를 들어주신 적이 있기는 합니까? 당신이 진정 기도를 들어줬다면, 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은 하나도 없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귀찮아도 세상을 한번 둘러보십시오. 전쟁과 기아로 가득합니다. 이제 저는 그리스도의 구원보다, 실재하는 기적을 구하려 합니다. 믿음으로는 제 지갑도, 삶도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생각해보니, 어려서부터 저는 기도가 아닌 부탁을 해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마지막 부탁 하나만 더 드리겠습니다. 그 인간, 제 계약을 가로챈 그 인간. 벼락도, 차에 치이는 것도 만족하지 못합니다. 그놈을 죽여주십시오. 마지막 부탁입니다. 세상이 이렇게 된 건, 그 새끼 같은 기득권들이 모든 걸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 사위 놈, 그자와 같은 인간들을 다 데려가 주세요.

아멘.’


살면서 많은 기도를 해왔다. 감사와 용서, 간절한 도움을 청한 기도들. 하지만 오늘처럼 진심으로 기도한 적은 없었다. 만약 진심이 기도의 본질이라면, 나는 오늘 처음으로 ‘진짜 기도’를 했는지도 모른다. 쏟아지는 햇살 아래,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처음으로 진실한 신앙을 맞이한 듯했다. 기도를 마친 뒤 일어나니, 두통도 어지러움도 사라졌다. 이게 제대로 된 기도이며 기적이라 느꼈다.


담벼락 너머 골목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빠르고 강한 발걸음. 나는 그것이 만수 할아버지임을 알 수 있었다. 아침부터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다. 나는 밖으로 나가 그에게 공손히 인사를 건넸다. 어르신은 내 갑작스러운 등장에 살짝 놀란 듯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 잘 쉬었는가?”


“예. 푹 잔 건 아닌데, 좀 나아졌습니다.”


“그래. 약은 조심해서 먹어야 해.”


“그런데 어르신, 할머니들은 찾으셨습니까?”


“아니. 비도 그쳤고, 해도 쨍쨍하니, 지금 산에 올라가 보려던 참이야.”


“경찰은 뭐라던가요?”


“…경찰?”


노인은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헛기침하며 대화로부터 도망치듯 걷는 그의 뒤를 조용히 따라 걸었다.


“그게 말이야… 우리 마을 노인네들은 다 독실한 신자잖아. 그렇지?”


“예.”


“목사님께서, 이런 일에 경찰을 부르거나 큰 병원 가는 걸 좋아하지 않으셨어. 기적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일을 왜 그렇게 하냐고, 언성을 높이셨지.”


“…그럼 실종 신고를 안 하셨단 말씀입니까? 참, 그런데 목사님은 언제쯤 뵐 수 있을까요? 항상 목소리만 듣고, 매번 간발의 차로 못 뵈어서요.”


불편한 대화로부터 도망치는 그의 걸음이 빨라졌다. 아침부터 그를 불편하게 만들 생각은 없었다. 경찰에 신고하든 말든. 되돌아보면, 고추밭의 할머니들이 나에게 따뜻하게 대해준 적도 없었다. 누군가의 죽음이나 고통에 점점 둔해지고 있었다. 나는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말했다.


“그러면 굿을 해보는 건 어때요? 제 손도 굿을 하고 말끔히 나았잖아요.”


노인과 함께 마을 입구의 무덤가까지 걸었다. 그는 십자가가 박힌 무덤 위에 한 발을 올린 후, 산을 올려다보셨다.


“자네도 같이 올라가서 찾는 것 좀 도와줄 수 있겠나?”


“그러죠, 뭐.”


뜨거운 햇빛은 땀을 짜내듯 몸을 덮었다. 산속 벌레들은 보기만 해도 피부가 가렵고 따가웠다. 만수 할아버지는 가파른 산길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 씩씩하게 걸었다. 그의 한 박자 느린 대답이 이어졌다.


“굿이라는 게 신을 부르는 건데, 자주 할 수가 없는 법이지. 고추밭 노인네들이 자기들 굿 한번 해달라고 난리를 피웠는데, 그때 자네 손가락 다쳤었잖아.”


산 중턱에 올라서자 마을이 발밑에 내려다보였다. 이곳까지 오는 길에 사람의 발길이 닿은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할머니들이 이곳에 왔다 하더라도 폭우가 발자국마저 쓸어갔을 터였다. 내가 목이 마른 것을 아는 듯 그는 작은 물병 하나를 내밀었다. 물을 받아 마신 나는 병을 돌려주며 물었다.


“근데, 마지막으로 산으로 가는 걸 봤다는 말은 누가 한 거예요?”


“지하드.”


그날이 떠올랐다. 지하드 손목에 묻었던 피. 그를 의심한 내가 부끄러웠다. 하지만 지하드와 실종된 할머니들 사이에 연결고리는 적지 않았다. 내 근심이 얼굴에 드러나진 않을까 고개를 돌려 담배에 불을 붙였다. 외지인인 그가 의심받는 이 상황이 불편했다. 설령 지하드가 범인이라도, 실종된 할머니들보다 그에게 더 큰 동정심이 생겼다. 그가 덜 의심받았으면 하는 바보 같은 마음이 새어 나왔다.


“고추밭 어르신들이 굿을 하고 싶어 했는데, 제가 먼저 해버려서 많이 화가 나셨을 거예요.”


말을 하고 나서야 후회가 밀려왔다. 후회는 담배 연기와 함께 허공으로 흩어졌다.


“산불 나, 여기서 담배 피우면 안 돼.”


“여기 흙이랑 나무 다 비에 젖었는데 뭐 어때요.”


담배꽁초를 멀리 풀숲에 던졌다. ‘산불’이란 말에 그날이 떠올랐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산의 모습. 지뢰가 터져 젊은 병사가 발목을 잃던 날. 그의 녹은 군화가 풀숲에 떨어졌었다. 나는 무력하게 서 있었다. 갓 스무 살이 넘은 아이들이 어찌하냐고 묻는 상황에도, 나는 그저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발자국도, 아무것도 보이는 게 없지?”


“그렇네요.”


그날의 기억에 산불이란 단어가 신경 쓰였다. 불씨를 완전히 끄기 위해 꽁초가 떨어진 풀숲으로 다가갔다. 등 뒤 만수 할아버지는 쭈그려 앉아 산 입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 저길 통해 올라왔다면 어디로 갔을지 고민하는 듯 보였다.


풀숲에 다가서자 뱀과 눈이 마주쳤다. 꽃뱀 한 마리가 고무장화 위에 똬리를 틀고 앉아 있었다. 지뢰에 날아간 군화가 떠올랐다. 불안한 예감이 스쳤다. 예감은 장화 안에 부패한 채 담겨 있었다. 누군가가 장화 주인의 발목을 잘라냈다. 몸 나머지는 산속 어딘가에 묻혀 있을 게 분명했다. 노인의 발이 담긴 고무장화 한 짝은 폭우에 이곳까지 내려오게 되었겠지. 폭우에 시체가 드러날까, 범인은 극도의 불안을 느꼈을 것이다. 이제 범인은 시체를 산에 토막 내어 버리는 같은 수법을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뱀은 혀를 날름거리며 나를 노려봤다. 만수 할아버지를 부르려던 순간, 그가 먼저 나를 불렀다. 쭈그리고 앉은 그의 등 뒤에 서서 입을 열 타이밍을 찾고 있었다. 그러나 노인의 말에 나는 침묵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하비브도 도망가버렸고, 마을에 남은 건장한 청년은 자네랑 지하드 둘뿐이야. 나는 자네를 절대 의심하지 않아, 알지? 내 부탁 하나 들어줄 수 있겠나?”


“...무슨 부탁이요?”


“혹시라도, 만약에 지하드가 무슨 짓을 했다고 밝혀지면, 그때도 지금처럼 경찰에 신고 안 하고 가만히 있어 줄 수 있겠나?”


그 부탁에 나는 뒤돌아봤다. 뱀은 이미 떠난 뒤였다. 고무장화 안에 든 그것이 선명히 보였다. 아무것도 나와 장화 사이를 가로막지 않았다. 노인의 부탁을 제외하곤.


‘가만히 있으라고?’


군대에서 그날처럼, 눈앞에서 칼을 든 광인이 날뛴 그 날처럼. 노인의 부탁이 귀에 박혔다. 그는 이미 지하드가 범인이라 확신하는 듯했다.


마을 노인들이 고향을 멀리 떠나온 힘없는 외지인을 괴롭히는 모습은 늘 내 속을 갉아먹는 불안이었다. 그러나 살인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무엇이 옳은 선택인지 할아버지의 등과 풀숲의 고무장화를 번갈아 보았다. 만수 할아버지는 내가 답을 머뭇거림을 귀신같이 알아챘다.


“그날 교회에서, 무당 노인네하고 왜 다툰겨?”


“예?”


그래. 그는 분명히 목격했다. 비바람 치던 날, 교회 노인들이 하나둘 사라진 뒤 나와 무당 할머니만 남아 있었다. 그날 내 공포는 혼란으로, 혼란은 분노로 변해 무당 할머니를 향해 마수 같은 팔을 뻗었다. 만수 할아버지가 교회 문을 열고 들어오지 않았다면, 나도 무슨 짓을 했을지 모른다. 한계까지 밀어붙인다면 누구라도 살인자가 될지 모른다. 힘든 밤이었다. 누군가는 나를 살인자로 몰았고, 할머니의 뺨을 때리는 할아버지를 보기도 했다. 지하드에게 모두가 날 의심한다는 말을 들은 날이기도 하다.


무당의 눈빛에 공포로 떨던 밤이 떠올랐다. 쭈그려 앉아 있는 만수 노인의 등을 바라봤다. 나를 여기까지 몰아붙인 건 당신들 아닌가? 내가 하비브의 탈출을 도와주지 않았다면 마을 늙은이들은 아직도 그를 부려 먹고 학대했을 것이다. 번역 일이 풀리지 않아 힘들어하는 나에게 심부름시키고 예의 없이 대한 것도 모두 마을의 노인들이다.


만수 할아버지는 앓는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사로운 감정으로 남을 다치게 하면 안 되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지?”


그는 천천히 산에서 내려갔다. 나의 등 뒤에 있는 발목, 무당의 눈빛에 쫓겼던 밤. 나는 늘 그래왔듯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가 꺼낸 마지막 말이 나의 발목을 붙잡았다. 그는 나 역시 그들의 의심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협박하고 있었다. 군대에서 그날처럼, 서울에서 그날처럼, 오늘처럼, 가만히 있으라는 말. 마을의 모든 갈등을 중재 해온 만수 할아버지는 어쩌면 비합리적 생각을 품고 있을지 모른다. 이곳 노인들이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가져본 적이 있기는 한가. 그는 죄 없는 지하드에게 모든 죄를 덮어씌울지 모른다. 상관없다.


어차피 나는 가만히 있어야 할 존재니까.


뜨거운 태양 빛에 자괴감을 태우며 산 중턱 아래 펼쳐진 마을을 바라보았다. 평소 볼 수 없던 마을회관의 지붕도, 무당 할머니 집의 작은 뒷마당도 선명했다.


‘평소에 저곳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긴 했는데.’


푸른 지붕 아래, 푸른 우비를 입은 지하드가 뒷마당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뒷문을 열고 무당 할머니를 질질 끌고 나왔다.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의 몸은 마네킹처럼 굳어 있었다.


나와 지하드, 하비브가 함께 옮겼던 기계와 닮은 무거운 기계가 뒷마당에 놓여 있었다. 낙엽과 장작도 쉽게 갈아버리는 은빛 기계 덩어리. 그 심연 같은 입구를 향해, 지하드는 할머니를 들어 올렸다.


이전 16화16. 공포와 기적, 나를 구할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