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공포와 기적, 나를 구할 말씀.

노인들이 사는 곳

by 박규동

교회의 문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희미한 빛이 보였다.


혹시 지금 목사가 있는 건 아닐까. 그날 밤처럼, 아니, 그날 꿨던 꿈처럼 폭우에 젖어 교회 담벼락에 몸을 숨겼다. 딸깍. 이번에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믿는다는 게 무엇입니까? 여러분, 믿는다는 것은 모른다는 겁니다. 우리가 눈으로 보고, 두 손으로 만지고, 과학이란 이름으로 검증하고 주시하면, 그게 믿음입니까? 믿음이 아니라 앎입니다. 지금 제 주머니에 뭐가 들어 있는지 모르시죠? 제가 여러분에게 이 작은 주머니에 만 원이 있다고 하면, 여러분은 믿을 겁니다. 왜? 보지도, 만지지도 않았는데 왜 믿는 걸까요? 심지어 지금 내 주머니에 수천억이 있다고 해도 믿을 겁니다. 여러분은 바보가 아닙니다. 이 작은 주머니에 수천억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는 걸 알고 있죠. 여러분은 상식인입니다. 그럼에도 이 작은 주머니에 수천억 현찰이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왜 믿습니까? 내가 당신들의 우상이 되어서? 믿지 마십시오.”


교회에서 들려오는 설교를 들으며 바닥에 편히 앉아 기댔다. 노인들의 무서운 눈빛과 의심에서 잠시나마 마음의 평안을 얻었다. 그의 말을 경청했다.


“믿지 마십시오. 이제는 듣고, 만지고, 목격하십시오. 믿음이란 눈에 보이지 않고 가볍기 짝이 없어 수많은 거짓을 낳습니다. 유대교든, 기독교든, 이름과 상징에는 그 어떤 신성함도 없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말뜻을 깨닫는 자는 절대 죽음을 맛보지 않으리라.’ 죽지 않는 법을 아십니까? 죽지 않는 사람을 보았습니까? 장담하건대, 이 마을에는 주님의 뜻을 믿는 자가 아니라, 진정으로 목도하고 이해한 자가 태어날 것입니다.”


‘아멘.’


그 단어는 나도 모르게 마음 깊은 곳에서 새어 나왔다. 공포로부터 도망쳐온 나였다. 서울이라는 도시, 그 올가미와 뜨거움으로부터. 시골 노인들의 의심과 살기, 태풍으로부터. 이제야 말씀을 찾았다는 안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에 젖은 머리를 뒤로 넘기고, 바지에 묻은 진흙을 털었다. 진정제를 과다복용한 탓에 얼굴이 무감각했다. 눈물이 흐르는지, 태풍이 낳은 비바람의 흔적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저 얼굴을 한번 닦아내고 빛이 새어 나오는 교회의 문에 손을 올려 힘주어 밀었다.


그곳엔 마을 노인들이 모두 모여있었다. 만수 할아버지는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자네, 이 시간에 우산도 안 쓰고, 얼굴은 왜 이렇게 피골이 상접해, 괜찮은가?”


공포로 나를 내쫓은 무당 할머니도 교회 의자에 앉아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나는 목사를 찾아 단상으로 향했다. 그곳엔 아무도 없었고, 누가 서 있던 흔적조차 없었다. 단상 아래, 의자 밑, 커튼 뒤까지 살폈다. 그날 밤도, 꿈에서도, 지금 이곳 문 앞에서도 들었던 목사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렸다. 단상 위에 선 나는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노인들을 내려다보았다.


젖은 몸을 이끌고 만수 할아버지에게 걸어가자, 할아버지는 나를 두려워하는 눈을 굴렸다.


“어딨어요?”


“뭐, 뭐가?”


“방금 설교하던 목사님 말이에요.”


“이 새벽에 무슨 설교야, 자네 괜찮나?”


“밖에서 다 들었어요. 방금까지 설교하고 있었잖아요.”


“자네, 혹시 술이나 약 같은 거 먹었나?”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분명히 들었어요. 그러면 여기 교회에 있는 인간 중에 목사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입니까? 나보고 그 말을 믿으라고요?”


자리에서 일어난 철학관 할아버지가 천천히 단상 앞으로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자네, 뭐가 문제인지는 몰라도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네.”


“그럴 때가 아니긴, 뭐가 아니에요? 지금 당신들이 다 나한테 거짓말하고 있는데. 목사 목소리 들었다고요. 그러면 당신들은 여기 왜 모여있는 건데? 이 시간에?”


마을 노인들 얼굴에는 분노와 두려움, 혼란이 뒤섞여 있었다. 그중 무당 할머니의 눈빛만은 분노로 가득 차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나도 더 이상 두려울 게 없었다. 어떤 짓을 할지 몰랐다. 무당 노인네를 향해 걸어갔다. 등 뒤 철학관 할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그는 지금 이럴 때가 아니라고 말했던 이유를 설명했다.


“고추밭 할머니 동생, 그 할머니도 이틀째 보이지 않아. 마지막으로 산속으로 들어갔다는 말이 있는데, 이 폭우에 산에 오르는 게 말이 되나?”


“이틀이라고요? 무슨 말씀이에요? 아까 저녁에….”


철학관 할아버지가 실종된 할머니의 뺨을 때렸다는 이야기를 꺼낼 수 없었다.


“뭐? 내가 때린 거? 그게 이틀 전 얘긴데, 자네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예? 아까, 제가 거기 고추밭에서….”


“미안하지만, 우리 모두 걱정돼서 모인 거야. 조금이라도 빨리 찾으려고. 찾는 데 도움 줄 생각이 아니라면, 돌아가 주게.”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머리가 어지러웠다. 단상 위 촛불을 바라보며 흐려지는 시야를 겨우 붙잡았다. 만수 할아버지는 교회 안 노인들을 이끌었다.


“자, 그럼 2인 1조로 찾아봅시다. 비가 와서 위험하니까 산은 일단 올라가지 말고….”


마을 사람들은 하나둘 우산을 챙겨 교회 밖으로 나갔다. 그들이 내게 보낸 눈빛은 분노보다는 안쓰러움에 가까웠다. 단상 앞에 서서 멍하니 머리를 긁적였다. 무엇으로부터 도망쳐 이곳에 서 있는지, 분명 설교 소리를 들었는데. 다들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혼란스러웠다.


노인들이 챙겨가던 우산들을 바라보다 익숙한 우산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래, 나는 사탄 같은 눈빛을 피해 도망쳤다. 푸른 지붕 집 대문에 두고 온 내 우산. 그 우산을 잡는 주름진 손을 바라보았다.


“잠시만요.”


문밖으로 나가려는 무당 할머니를 붙잡았다.


“아까 저녁에 왜 그러셨어요.”


“저녁에? 우리가 저녁에 만났나?”


“아니, 문틈으로 저를 노려보셨잖아요. 그때 저한테 어떤 무속 행위를 하셨죠? 그것 때문에 며칠째 잠을 못 잤어요.”


“며칠? 아까 저녁에 왜 그랬냐고 하지 않았나?”


할머니의 말이 맞았다. 나의 말엔 모순이 있었다. 혼란스러움은 나의 이해를 넘어섰다. ‘며칠’이란 단어에 갑자기 배가 고팠다. 처음엔 마을 사람들을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 가장 믿을 수 없는 존재는 나 자신이었다. 더 이상 논리로는 할머니에게 원하는 답을 얻을 수 없었다. 아니, 내가 원하는 답이 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며칠 전이든 어제저녁이든, 문틈으로 저를 노려보면서 저주 같은 무속 행위를 하셨잖아요. 제가 지하드하고 이야기하는 걸 보고 화난 눈으로.”


무당 할머니의 공포와 분노의 시선이 이제는 안쓰러운 시선으로 바뀌었다. 그 눈은 나를 도망치게 했던 눈이 아니었다. 더는 할 말이 없었다.


“총각, 정신 차려. 젊어서 왜 그래. 술을 먹든 뭐든 남에게 피해는 주지 말아야지. 처음엔 아들 같아서 안쓰러워 도우려 했는데 말이야.”


서럽고 화가 나 눈물이 났다. 얼굴에 감각이 돌아오고 있었다. 분노의 방향은 길을 잃었다.


“제 우산 돌려주세요.”


“뭐?”


“그거 내 우산이잖아요. 왜 마음대로 가져가고 그래요?”

“참나. 그래, 우산도 가져가.”

무당 할머니는 우산을 내려놓고 등을 돌렸다. 노인은 문을 열기 전 나를 돌아보며 나의 뇌를 찌르는 말을 꺼냈다.


“서울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겠는데, 정신 좀 차려.”


졸음과 혼란, 분노를 참기 위해 깨문 입술에서 피가 흘렀다. 상상 속의 나는 노인의 등을 향해 빠르게 다가가 뒤에서 강하게 목을 졸랐다. 머릿속에서 그려낸 발자국을 따라 무당에게 달려갔다. 목을 조르기 전 머리카락을 잡으려 손을 올렸다. 그때 교회 문이 반대편에서 열렸다.


만수 할아버지였다. 그는 분명 뒤에서 무당 할머니를 향해 손을 올리는 나의 모습을, 분노 가득한 내 얼굴을 보았다. 그는 문밖으로 나가는 무당 할머니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건네고 교회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단상 아래 서랍에서 조명을 꺼내 툭툭 치며 고장을 확인했다. 강한 입김으로 단상 위 촛불을 끄고 손전등을 켰다. 촛불이 꺼지는 순간 꿈에서 깨는 기분을 느꼈다. 만수 할아버지는 손전등으로 나를 비추었다.


“문 잠그려고, 자네도 나가야지. 무슨 일이 있었든 일단 집에 들어가 푹 자는 게 어때?”


어둠 속 그의 손전등 불빛과 목소리가 내게 최면을 거는 듯했다. 나의 약해진 정신은 그의 최면을 이겨낼 수 없었다. 내 육체는 그의 말에 살아있는 시체처럼 폭우를 맞으며 집으로 돌아갔다. 마당에 서서 거실문을 열기 전 닭이 있던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닭은커녕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거실문을 열고 집에 들어서니 문을 잠글 필요를 느낄 수 없었다. 그렇게나 거부했던 졸음을 받아들였다. 나무가 쓰러지듯 나의 지친 몸은 거실 바닥 위로 쓰러졌다.



아침이겠지. 하루가 지났는지, 이틀이 지났는지 알 수 없다. 아침인지도 모를 아득한 시간 속에서 눈을 떴다. 거실 바닥에 엎드린 채로 잠이 들었던 나는 천천히 굳은 몸을 일으켰다. 마치 술이라도 마신 듯 숙취를 느꼈다. 머리는 깨질 듯 아팠고 속은 끓는 듯 텅 비어 있었다. 어지러움에도 본능은 확실했다. 갈증과 허기는 나의 몸을 주방으로 옮겨 놓았다. 허리는 굽고, 시야는 탁했다.


냉장고 문을 열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음식들을 망설임 없이 손으로 집어 먹었다. 당장 음식을 입에 넣지 않으면 죽을 듯한 허기. 음식을 데우거나 그릇에 담을 여유 따윈 없었다. 손이 떨려 음식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더러운 바닥에 떨어진 음식을 집어 먹는데 망설임은 없었다. 물도 병을 삼킬 듯 들이마셨다.


냉장고엔 시골 사람들이 챙겨준 음식이 대부분이었다. 병에 든 물조차도 그들이 준 것이었다. 나는 귀신 들린 사람처럼 음식들을 털어 넣고는 주저앉아 멍하니 허공을 바라봤다. 야만스러운 아침 식사에는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이제 뭐지? 다음은? 대충 손을 닦고 방 안에 놓아둔 핸드폰을 향해 달려갔다. 메일함을 확인해야 했다. 심장 박동과 긴장은 고통스러웠다. 숨을 들이켜 핸드폰을 들어 올렸다. 도착한 메일도, 문자도, 어떤 연락도 없었다. 방에는 흩어진 진정제와 엉망이 된 이불이 보였다. 내가 나를 망쳐놓은 증거들. 머리가 울리고 세상이 빙빙 돌았다. 알약들을 주워 담고, 헝클어진 이불을 간신히 정리했다.


장롱을 열었을 때, 아버지의 성경이 눈에 들어왔다. 사이비 교단의 성서 예문을 번역할 때 참고한 후 던져 놓았었다. 성경을 펼쳐 빠르게 훑어보았다. 성경 속 구절들은 어릴 적 익숙했던 그 목소리로 내 머릿속에서 다시 울려 퍼졌다.


시골 목사의 낮고 느린 목소리처럼. 말씀이 필요했다. 허탈하게 방을 정리한 뒤 거실문을 열었다.


비는 그쳤고, 햇살은 마을을 적신 물기 위에 내려앉았다. 눈앞의 풍경이 지겨웠다. 서울에서 도망쳐 온 이곳. 긴 시간이 흐르지도 않았지만 나는 이미 새로운 파라다이스를 꿈꾸고 있다. 주님이 진정으로 기도를 들어주는 곳. 나를 불쾌하게 만드는 인간들이 없는 곳.


어지러움을 이겨내기 위해 눈을 부릅뜨며 평상으로 맨발로 걸어갔다. 마당에 내팽개쳐진 슬리퍼를 한 짝씩 신었다. 평상에 앉아 그대로 뒤로 쓰러지듯 누웠다. 평상 위의 빗물은 기억처럼 마르지 않았다. 옷과 머리카락이 젖고 차가웠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이제 노인들에게 더 이상 얻어먹을 생각도 없고, 이곳에 더 머무르고 싶지도 않았다. 기도하기 위해 가볍게 두 손을 모았지만, 힘이 빠졌다. 힘없는 손은 핸드폰을 향했다. 기도 대신 선택한 통장의 잔액은 만족스럽지 않았다. 시골을 향한 나의 환상은 무엇이었을까? 돈 문제가 마법처럼 사라지고 그 어떤 걱정도 없는 낙원? 어떤 표정도 짓지 않은 채 아침은 계속해서 흘러갔다.

다시 메일함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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