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무서워. 도와줘.

노인들이 사는 곳

by 박규동

“하비브는 어딨어요?”


나는 얼어붙었다. 비바람은 당황한 나의 표정을 조금이나마 가려 주었다. 거짓말을 꾸며내는 시간의 정적은 빗소리가 채워주었다.


“글쎄요, 다른 마을에 갔나? 새로 일자리 구해서?”


“다들 선생님이 뺏어갔다고 해요.”


“뺏어요? 무슨 말이에요, 뺏어가다니?”


그의 서툰 한국말 중에서 가장 두려운 단어는 ‘다들’이었다. 내가 하비브의 탈출을 도운 걸, 노인들이 알고 있는 걸까?


“할머니랑, 만수 할아버지랑, 다들 선생님이 하비브를 내보냈대요.”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네요. 자, 일단 이거 들어서 기계 위 중앙에 올려봅시다.”


구겨진 천막을 다시 들어 올렸다. 비에 젖은 천막은 바람이 없어도 무거웠다. 천막을 기계 위로 들자, 옷에 가려졌던 하비브의 손목이 드러났다. 피가 묻었던 바로 그 자리. 둥글고 길게 베인 흉터가 남아 있었다. 가장 먼저 떠오른 무기는 낫이었다.


나는 그를 쳐다보지 않고 천막의 끄트머리를 찾으며 말했다.


“손목 다쳤네요. 저번에 피 났던 그곳인가요?”


“네.”


“제가 이 집 할머니 빨래 도와준 날 다친 거죠? 고추밭에서?”


“네.”


“어쩌다가?”


“고추밭 할머니가 빨리 도와달라고 잡아당겨서 피났어요.”


“손으로 잡아당겼는데 그렇게 크게 흉터가 나요?”


“손톱에 베여서요.”


“...이쪽은 끄트머리 찾았어요. 저는 내려서 잡고 있을게요. 지하드도 찾아서 내려요.”


나는 허리를 숙여 기계 밑단에 천막을 고정하고 있었다. 기계가 시야를 가려 지하드의 표정이나 동작은 볼 수 없었다. 손톱에 베여서 그 정도의 흉터가 생겼다는 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빗소리 탓에 목소리를 높여야 했다.


“그런데, 그 지하드 손목 할퀸 할머니가 사라졌다는 얘기 들었어요?”


기계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에 그의 답을 들을 수 없었다.


“뭐라고요? 잘 안 들려요.”


천막을 고정하고 허리를 폈다. 지하드는 어느새 내 옆에 와 있었다. 그 역시 노인들과 비슷한 표정을 지었다. 먹구름은 그의 얼굴을 회색빛으로 물들였다. 그는 나에게 한 발 더 다가왔다. 마치 비밀이야기를 하려는 사람처럼.


“저 의심해요?”


“네? 아니요, 지하드. 그런 뜻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은 다 선생님이 그랬다고 하던데요. 선생님은 저한테 그러면 안 되죠. 노인들이야 저를 발로 차고, 묶고, 물도 붓지만, 선생님은 그런 사람 아니잖아요.”


“지하드, 무슨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그는 비에 젖은 몸을 더 가까이 밀어붙였다. 그의 몸에 떨어져 튀기는 빗방울이 나에게 닿을 만큼. 코앞에 서 있는 그의 숨소리에선 체온과 긴장이 느껴졌다. 고추밭에서처럼 뒷걸음질 칠 수밖에 없었다. 기계는 여전히 무당 할머니의 집과 나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다. 그제야 알 수 있었다. 그가 왜 이렇게 가까이 다가왔는지. 나는 한 발짝 물러나 기계의 사각지대에서 벗어났다. 트인 시야에 자연스럽게 할머니가 있는 집을 바라보았다. 언제부터 있었을까.


문틈의 눈동자.


비에 젖은 마루 위의 낡은 문. 그 좁은 문틈 사이에 할머니의 눈이 있었다. 두려움이 만든 확증 편향 때문일까, 그것은 인간의 눈빛이 아니었다 문틈의 눈동자는 나와 눈을 마주친 채, 피하지 않았다. 문을 닫지도, 고개를 돌리지도 않았다.


그 눈빛은 내 발끝과 손끝을 얼어붙게 했다. 코앞에 서 있는 지하드의 존재조차 잊은 채 굳어버렸다. 마루에 튄 물방울이 눈동자에 닿아도, 깜빡이지 않았다. 그 눈은 내 영혼까지 꿰뚫으려 했다. 노인의 동공에 도시의 광인이 서 있었다. 비에 젖은 마당이 기울어지는 듯 어지러웠다. 눈빛에 붙잡힌 나의 시야는 좁아지고 초점을 잃었다.


“지하드… 나, 먼저 가볼게요. 나중에 얘기해요.”


우산도 챙기지 못한 채, 무당 할머니의 마당을 빠져나왔다.


집에 도착해 마당에 슬리퍼를 대충 벗어 던지고 급하게 거실로 기어들어 왔다. 떨리는 손으로 문을 이중, 삼중으로 잠갔다. 아직 눈빛이 나의 온몸을 훑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온몸이 비에 젖은 채 거실에 주저앉았다.

바닥은 흙과 빗물로 엉망이었다. 젖은 옷을 아무렇게나 벗어 던지고, 안방으로 향했다.


겁에 질린 나는 나체로 이불에 들어가 기도를 외웠다. 기도를 위해 눈을 감으려 할수록, 그 눈빛이 더욱 선명해졌다. 흙먼지가 섞인 빗물이 튀어도 깜빡이지 않던 그 눈동자. 그 눈알이 나의 뇌를 대신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기도하고 싶었지만, 눈을 감을 수 없었다. 결국 나는 기도 대신 진정제를 택했다.


젖은 몸에 추위에 떨며, 아니면 공포에 떨며 마약중독자처럼 알약을 손바닥 위로 쏟아냈다. 물을 가지러 주방으로 나가는 것조차 두려웠다. 구역질을 참기 위해 코와 입을 막고, 수많은 알약을 물 없이 억지로 삼켜냈다. 혹시 그 눈동자가 나를 쫓아오진 않았을까. 마당에 또 어떤 노인이 서 있는 건 아닐까. 나는 방문에 귀를 기울였다. 공포와 추위만이 가득한 바깥은 주님을 농락하는 천둥 번개가 활개 쳤다.


진정제가 몸속에 퍼지며 공포는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메일함을 껐다 켜는 것을 계속해서 반복했다. 그저 ‘계약하자’ 메일 하나만 온다면, 노인의 눈빛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비합리적인 믿음이 내 졸음을 눌렀다. 하지만 오늘 밤만큼은, 절대 잠들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위장에는 진정제가, 머릿속엔 혐오스러운 노인의 눈빛이 선명했다. 나는 나체로 거실을 서성였다. 공포는 외면하고 싶었지만, 잠들기엔 두려웠다.


‘오늘 밤은, 분명 메일이 올 거야. 주님께서 내 손에 금을 가득 쥐여 주고 이 지옥에서 날 건져주실 거야.’


거실문 앞에 멈춰 섰다. 잠긴 문 너머 마당에 누군가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비바람이 만들어내는 소음에 바깥에 귀를 기울일 수 없었다. 창문 너머 시야도 흐릿해졌다. 하지만 마을 노인들이 그랬듯이 문을 열어 작은 틈새로 밖을 볼 용기는 없었다.


‘노인들도 나처럼 공포를 느낀 걸까? 그래서 나를 노려본 걸까?’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았다. 문 앞에 가만히 서서 벌써 한 시간이 흘렀다니 믿기지 않았다. 혹시 잠들었던 건 아닐까, 불안감이 밀려왔다. 주방으로 향해 냉장고 문을 힘껏 열었다. 졸음에 냉동실 문에 머리를 부딪쳤지만,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커다란 병에 담긴 차가운 커피를 숨도 쉬지 않고 들이켰다. 카페인은 위에 남은 진정제와 섞이며 신경을 자극했다. 헛구역질과 어지러움이 밀려왔다. 위장 속에 무당 할머니의 눈빛이 가득 들어차 있는 듯했다. 그 눈동자를 토해내야 할 것 같았다. 참아야 했다.


잠들어선 안 된다. 문밖의 노인들이 내 집에 언제든 침입할 수 있다. 그들이 침입한 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손을 다쳤을 때, 굿을 했을 때도, 내 허락도 없이 내 집에 들어왔던 노인들. 분명 지금도 마당에 있을 것이다.


카페인이 진정제를 녹이며 속은 더 쓰려왔다. 거실로 돌아가 같은 자리를 걷고 또 걸었다. 졸음을 참는 일은 쉽지 않았다. 문에 잠시 기대면 어느새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더 많은 커피를 마셨다. 노인의 눈빛이 분명 경고했다. 내가 바라본 노인의 동공에 광인이 서 있었다.


‘네가 고추밭 노인을 죽였구먼.’


‘지하드랑 대화하는 것도 다 봤어.’


‘다음은 누구를 죽이려고? 그렇게 둘 것 같아?’


그깟 눈빛이 뭐라고 내가 이렇게 두려움에 떨고 있는 건지. 공포라는 현상을 부인할 수는 없었다. 눈빛은 어느새 머릿속 소리가 되어 귀를 찔렀다. 감정과 생각이 꿈이 되는 과정, 나는 서서히 잠들고 있었다. 허겁지겁 주방으로 달려가 인스턴트 커피 가루를 물 없이 씹어 삼켰다.


‘생각하자. 생각. 다들 고추밭 할머니를 내가 죽였다고 생각하겠지. 지하드도 사람들이 나를 의심한다고 말했어. 노인의 눈빛, 그 의미가 제일 중요해. 무당이라 초자연적인 힘이 있을 수도 있고, 혹은 내가 의심에 휩싸이길 바라고 노려본 걸지도 몰라. 아니, 그럴 리 없지. 노인이 심리학 전문가도 아니고. 합리적으로 생각하자. 마을의 모든 노인이 나를 살인범으로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이 문제야. 내가 본 그 눈빛은 인간의 것이 아니었어. 노인들이 모여서 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을까? 누가 먼저 공격하느냐의 문제일까? 하지만 나는 그들을 공격할 마음이 없어. 노인들도 나처럼 생각할까? 노인들이 음습한 대화를 나누는 곳은 어디일까.’


그때 거실 밖에서 소리가 들렸다.


늙은 여자의 웃음소리였다. 반복되는 웃음 뒤로 쇠를 가는 듯한 소리도 섞여 들렸다.


‘결국 찾아왔구나. 아니면 경고하러 온 걸 수도 있어. 그렇다면 왜 노크도 없이 밖에서 웃고 있지? 경고한다고? 뭘 경고하는데? 내가 뭘 잘못했는데? 내가 안 죽였다고. 다른 용무일지도 몰라. 아니면 경고 없이 바로 공격할 수도 있어. 그런데 쇠 가는 소리는 뭐지.’


따뜻한 방에 들어가면 금방이라도 쓰러져 잠들 것만 같았다. 거실에 대충 널브러진 젖은 옷을 주워 입었다. 빗물에 젖어 있어야 할 옷이 마른 것이 불쾌했다. 시계를 바라봤다. 시간을 읽을 수 없었다. 마치 시계를 볼 줄 모르는 아이가 된 것 같았다. 시침이 숫자를 가리키지만 지금 몇 시인지 알 수 없었다. 거실에서 또다시 늙은 여인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래, 해보자. 해보자, 그래.’


옷을 입은 후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팔만 집어넣어 진정제 약통을 꺼냈다. 두세 알 입에 털어 넣고 메일함을 다시 확인했다. 새 메일은 없었다.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3:00


새벽인지 오후인지 알 수 없었다. 시간은 중요하지 않았다. 핸드폰을 뒷주머니에 넣었다. 다시 젖어 있는 바지가 신경 쓰였다.


‘내가 어딜 다녀왔나? 아니면 일부만 덜 마른 거겠지.’


강하게 거실문을 열었다. 밖은 어두웠다. 태양을 삼킨 먹구름이 만든 어둠인지, 평소와 다름없는 새벽의 어둠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마당을 샅샅이 뒤졌다. 늙은 여자의 웃음소리와 쇠 가는 소리는 환청이 아니었다. 마당 한구석, 자전거를 고정하는 곳에 닭 한 마리가 작은 울음을 냈다. 빗소리와 섞여 노인의 웃음소리로 오해하기 충분했다. 닭은 고개를 움직이며 쇠를 쪼아댔다. 칼을 가는 소리와 다를 바 없었다.


차가운 비가 잠을 깨는 데엔 효과적이었다. 닭을 그 자리 그대로 내버려 두고, 비를 맞으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하늘에 눈길이 닿기도 전에, 교회 첨탑 위 십자가가 보였다. 폭우 탓일까, 십자가가 쓰러질 듯 위태로웠다. 바람에 흔들리는 십자가가 교회 지붕 위로 쓰러질 듯했다.


‘어어... 저러면 안 되는데.’


하늘로 손을 뻗으니 내 두 발은 어느새 교회 앞에 서 있었다. 군대에서 삼일 밤을 자지 않고 행군했던 기억이 있다. 걸으면서도 잠들고, 달리면서도 졸았다. 3일째엔 돌아가신 할머니가 보였다는 동기들도 있었다.


‘잠든 채 여기까지 걸어왔나.’


다시 십자가를 바라보니, 아까의 위태로운 모습은 사라지고 단단히 고정된 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잠시 눈을 붙일까 생각이 들 때마다, 노인의 눈빛이 떠올랐다. 그 눈빛은 나에게 말했다. 나는 눈빛과의 싸움을 이어갔다.


‘너를 죽일 것이다. 네가 살인범이니까, 복수할 것이다.’


‘고작 그 눈이 뭐라고.’


눈을 감으면 머릿속에 눈빛이 떠올라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잠들지 않고 거닐며 헤매는 이 상태 또한 괴로웠다. 잠든 사이 사이비 교단에서 전화가 올까 걱정도 됐다. 자느라 그들의 전화를 놓치고, 계약금을 놓친다면 다시는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 것이다. 생각이 꼬리를 물며, 얼마나 오랫동안 십자가를 바라봤을까.


교회에서 사람들의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이제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으로부터 두려움을 느끼는지조차 알 수 없다. 나의 발이 왜 교회로 향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쏟아지는 졸음은 힘을 잃은 두 발을 교회의 문 앞으로 인도했다.


교회의 문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희미한 빛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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