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이 사는 곳
‘지하드. 네가 죽였지?’
어두운 날씨 탓에 평소보다 늦게 잠에서 깼다. 이젠 나도 시골 사람이 다 된 것 같다. 빗소리에 잠들고, 빗소리에 깼다. 태풍이 언제쯤 지나갈지 감이 오질 않았다. 마지막으로 뜨거운 햇볕에 닿은 게 언제였더라. 아마 악몽 속의 햇살이 마지막이겠지.
아침에 눈을 떠 가장 먼저 한 일은 역시 메일함을 확인하는 일이었다. 새로운 메일은 없었다. 사이비든 아니든 상관없다. 한 줄이라도 적어낸 답장이 와 있어야 한다. 답장 한 통이 뭐 그리 어렵다고. 몇 번이고 고심해서 번역한 문장을 들여다보며 기도까지 했는데. 기대는 실망으로, 실망은 한숨과 분노로 변해갔다.
벽에 걸린 예수님의 조각상은 여전히 벽을 향해 매달려 있었다. 필요할 때만 주님을 찾는 버릇이 나에게 도와달라고 말하는 노인들과 다름이 없었다. 우상을 다시 똑바로 돌려놓고, 무릎을 꿇었다. 조용히, 나직하게 속삭였다.
‘주님. 찾는 자에게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두드리면 열린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지금 찾고, 두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당신 뜻을, 아니… 최소한의 계시라도. 불확실한 미래에 제가 언제까지 그들의 답장을, 아니 주님의 답을 기다려야 합니까. 제가 무엇을 하길 원하십니까.’
기도하는 도중, 고추밭의 실종된 할머니 얼굴이 문득 떠올랐다. 계시임이 분명하다. 아니, 계시라고 믿었다. 노인의 실종은 나를 위한 시험이다.
‘좋습니다. 선을 원하신다면 제가 행하겠습니다. 제가 옳은 일을 할 테니, 이번엔 제 차례입니다. 그들이 답장을 보내게 해주세요.’
아멘이라는 단어를 발음하기 망설여졌다. 아멘.
부엌 구석에 비스듬히 놓인 낡은 우산을 들고 거실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비바람이 집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슬리퍼를 허둥지둥 갈아 신고 문을 닫았다. 우산을 펴고 집을 나서며, 오늘의 꿈이 불쑥 떠올랐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의미 없는 하나의 꿈일 뿐인가. 아니, 그 이전부터 나 역시 그에게 편견을 갖고 있었다. 어느새 무의식 깊은 곳에 박힌 꺼림칙한 의심. 나는 이미 지하드를 의심하고 있었다.
‘고추밭에 다녀온 날, 분명 그의 손목엔 핏자국이 있었어. 그날 나는 무당 할머니 집에 갔지. 지하드는 항상 그 노인네를 두려워했어. 그렇다면, 고추밭의 그 할머니들도 그 무당을 두려워했던 걸까…’
할머니들. 그래, 둘이었다. 고추밭엔 항상 닮은 두 할머니가 계셨다. 정확히는, 늘 혼잣말로 욕을 하고 계셨다. 나와 실랑이를 벌였던 분이 아닌, 다른 분은 아직 그곳에 계실지 모른다.
마당을 나서 왼편으로 향했다. 집 앞의 교회 건물을 지나쳤고, 무당 할머니의 집도 힐끗 훔쳐봤다. 마당에선 지하드가 혼자 큰 천막을 들고 기계 위에 씌우려 애쓰고 있었다. 비바람 속에서 천막이 뒤틀려 말을 듣지 않았다. 혼자 감당하기엔 버거운 상황이었다. 고추밭에 먼저 다녀온 후에 도와주는 게 옳다고 판단했다. 내가 아니라면, 다른 노인들은 누구도 그를 도와주지 않을 것이다.
조금 더 걷자 내가 칠한 철학관의 대문이 눈에 들어왔다. 평소 항상 열려 있던 문이 오늘은 굳게 닫혀 있었다. 철학관의 맞은편, 고추밭의 할머니는 폭우에 짓눌린 채 노동을 반복하고 있었다. 우비도 우산도 없이. 어르신은 마치 태풍이 없는 날씨처럼 평소와 같이 일하고 계셨다. 비바람은 할머니의 얼굴을 강타하고 있었다. 나는 그 비어 있는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어떤 감정도 생각도 없어 보이는 공허한 회색빛 얼굴. 나는 쉽게 다가갈 수 없었다.
처음 이 밭을 지나던 날이 떠올랐다. 욕을 중얼거리며 고추를 따던 두 할머니의 모습. 나는 우산을 든 채 할머니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비에 젖은 검은 머리카락이 얼굴을 덮고 있었다. 옷도, 어깨도, 등도 모두 흠뻑 젖어 있었다. 그저 기계처럼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다시 한번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일을 멈추고 바닥을 응시하던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물기를 머금은 머리카락 사이로 그녀의 입술이 움직였다. 비바람에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입 모양은 또렷했다.
‘네가 죽였지.’
어디서 그런 의심이 생겨났는지 이해는 할 수 있었다. 평화롭기만 하던 마을에 내가 나타났고, 나와 실랑이를 벌인 후, 할머니는 증발해버렸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가 짐승도 아니고, 조금 화가 났다고 해서 사람을 죽일 수 있나?
나는 흙탕물을 피하던 발끝을 밀어 넣고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뭐라고요?”
“자네가 죽였지?”
“어르신, 걱정되는 건 알겠는데요.”
“됐어. 시체나 어딨는지 알려줘.”
“시체라니요. 어떻게 그런 말을 쉽게 하세요.”
“우리 언니 시체 돌려달라고!”
말이 통하지 않았다. 비바람에 젖는 얼굴과 옷, 슬리퍼 속을 파고드는 흙탕물. 더 이상 불쾌할 수 없었다. 노인의 입에서 나오는 의심의 불개미들이 몸을 타고 오르는 것만 같았다. 대화를 시도했다. 언니? 실종된 그분이, 이 노인의 언니였구나. 할머니는 다시 혼잣말처럼 욕을 중얼거리며 고추를 땄다.
“오늘 같은 날은 좀 쉬셔야 하지 않겠어요?”
“자네가 천막 안 쳤잖아. 어떻게 쉬어?”
그래. 언니가 사라졌으니 내가 밉겠지.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왜 항상 이해하는 건 나의 몫인가? 분노에 심장이 뛰었다. 얽힌 감정선 위로 말 하나만 얹어도 터질 듯했다. 이곳에 더 있어봤자 서로에게 좋을 게 없었다.
“저는 그럼…”
“손 고쳐져서 좋겠어?”
“…예?”
“누군 하루가 백 년처럼 늙어가고, 기도는 소용도 없고, 농사는 망하고, 몸은 썩어가는데… 주님이 자네 손 고치느라 바쁘셨나 보지.”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손 고쳐줬더니, 돌아온 건 욕질이고, 화났다고 사람을 죽이고.”
고추를 따던 손이 멈췄다. 그녀는 허리를 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흙밭 위에 무심하게 던져져 있는 낫에 눈이 갔다. 나를 향한 노인의 전진이 두려웠다. 화가 난 노약자가 나에게 다가오는 것이 두려웠다. 화를 내야 할 대상은 내가 아닌데.
“어르신.”
천둥이 하늘을 찢는 소리가 울렸다. 두 번째 천둥은 그녀의 입에서 터졌다.
“네가 죽였잖아! 네가! 다 아는데 왜!”
“어르신, 그만 하세요.”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그녀의 분노 섞인 고함은 천둥과 섞여갔다. 질척이는 밭을 밟으며 나를 향해 다가오는 걸음과 빗소리는 그녀가 이미 이성을 잃었음을 보여줬다.
세 번째 천둥이 울렸다. 철학관의 대문이 큰소리를 내며 열렸다. 젖은 삼베옷을 입은 철학관 할아버지가 쏜살같이 달려 나와 할머니의 뺨을 갈겼다. 얼마나 강하게 때렸으면 타격음이 천둥과 구분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강하게. 그렇게 갑작스럽게.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나는 현실 감각을 잃고 있었다.
믿을 수 없었다. 할머니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마치 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움직일 수 없었다. 그저 철학관 할아버지의 뒷모습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길바닥 위 주저앉은 할머니를 향해 소리를 내질렀다.
“어디 썅년이, 손님한테!”
손님.
그 단어 하나에 나의 시야는 점점 넓어졌다. 마치 하늘에서 이 작은 마을을 내려다보는 기분이 들었다. 이곳에서 나는 대체 어떤 존재인지, 어지럽기만 했다. 할아버지는 돌아서며 젖은 머리칼을 넘겼다. 믿기지 않을 만큼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미안하네. 언니가 실종됐다니까 정신이 없었나 봐. 다치진 않았지?”
다치진 않았냐고? 그렇게 친절한 미소와 함께? 그 말보다, 그 미소보다, 더 생생히 남은 건 방금 전 울려 퍼진 소리였다. 내 귀에 아직도 할머니의 뺨을 때리는 소리가 남아 있었다. 허무하게 주저앉아 있는 할머니, 그 앞에서 고개를 기울여 나를 확인하는 친절한 남자.
나는 입을 열 수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상황을 이해해야 할지, 반응해야 할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멍하게 서 있던 나는 대답 대신 본능처럼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메일함을 확인했다. 아직도 교단에서 메일이 오지 않았다.
‘엄청난 계약금을 제시했잖아. 나를 구해준다고 했잖아. 제발 답장을 보내라고.’
‘그래. 이 마을을 떠나고 싶다. 절이 싫어 떠나는 중에겐 돈이 필요하다. 어서 답장을.’
우는 노인과 웃는 노인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저는, 그럼 먼저 들어가 볼게요.”
우산을 쓴 채 빠른 걸음으로 집을 향해 걸었다. 머릿속 모든 생각이 흐트러져 있었다. 기도와 계약금, 실종된 노인과 지하드의 손목에 있던 피. 진실은 여전히 침묵했고, 내 머릿속은 소음뿐이었다.
당장이라도 짐을 싸서 마을을 떠나고 싶었다. 집 마당에 닿기 전, 푸른 지붕 집 앞에 멈춰 섰다. 지하드는 여전히 거대한 기계 위에 천막을 씌우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나는 우산을 접어 무당 할머니네 대문 옆에 세워두었다. 실례한다는 말도 꺼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어차피 이 비바람 속에서 집안의 할머니가 내 목소리를 들을 리도 없을 것이다.
나는 말없이 천막의 끄트머리를 양손으로 잡았다. 지하드는 고개 숙여 인사했고, 나도 미소를 지었다.
“하나, 둘, 셋 하면 기계 위에 천막부터 올려봐요. 알았죠?”
우리는 함께 천막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거센 바람에 저항을 받는 천막은 바위처럼 무거웠다. 결국 둘 다 한 번씩 손에서 천막을 놓쳤고, 그럴 때마다 우리는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괜히 무당 할머니가 밉기도 했다. 이런 날씨에 지하드 혼자서 이런 일 하게 만들었다는 게. 본인은 따뜻한 집 안에서 쉬고 있으면서.
철학관 어르신이 말했던 ‘손님’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지하드를 더 돕고 싶어졌다. 외지인의 마음은 외지인만이 안다고 해야 할까.
“저기, 우리 그냥 천막 구긴 채로 기계 위에 올려요. 그러고 나서 끄트머리부터 찾아 펴는 게 나을 것 같아요.”
“네.”
지하드는 내 눈치를 살피며 천막을 구겼다.
“왜요? 뭐 할 말 있어요?”
“하비브는 어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