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폭우.

노인들이 사는 곳

by 박규동

장대비는 거실문을 거세게 두드렸다. 그 소리를 들으며 축축한 거실 바닥에 누워있을 뿐이다. 태풍이 온다고 그렇게 호들갑들을 떨어대더니, 거짓말은 아니었다. 이렇게 강한 태풍이 마을을 덮친 게 오히려 다행이기도 했다.


노인에게 욕을 뱉은 그 날 이후, 마을 사람들과의 어색함은 견디기 힘들 만큼 깊어졌다. 거실 문틈으로 스며드는 빗방울과 뒤섞여, 그날의 기억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자네 지금 뭐라고 했어? 욕한 것 맞지? 어린놈이 배은망덕도 정도가 있지.”


거실 밖에 울리는 천둥소리에 그날 노인들의 혼란스러운 목소리들이 섞여 있다.


“무슨 일이래?”


“이놈의 새끼가 나한테 지금 쌍욕을 했다니까.”


“일단 진정하고. 욕을 했다니 뭔 소리를 하는겨”


“일 좀 도와달라고 했더니, 그동안 고마웠던 건 다 잊고 욕을 퍼부었다고. 죽일 듯이 눈을 땡그랗게 뜨고.”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며 천둥소리를 되새겼다. 천둥에 섞인 그 날의 소리. 시끄럽기만 했다.


“할매요. 뭘 도와줬는데?”


“이런 호로자식 보소. 애비 반은 되는 놈인가 했더니.”


“뭐? 애비? 그래, 말해 봐. 우리 아버지가 여기서 뭘 했는데?”


거실문이 번개의 섬광으로 반짝였다. 빛을 향해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비교적 힘없는 천둥이 울려 퍼졌다.


어색했던 마을회관에서의 화해가 떠올랐다. 마을 노인 모두 그곳에 있었다. 모두 힘없이 벽에 기대어 거실 중앙의 나와 할머니를 구경했다. 만수 할아버지는 유치원 선생님처럼 나와 고추밭 할머니의 악수를 강제로 이끌었다. 서로를 향한 유치한 사과도 잊을 수 없다.


“그래, 내가 자네 사정을 몰랐어. 마음대로 일 시키고 함부로 대해 미안하네.”


“저도 욕해서 죄송합니다.”


“서울에서 그런 일을 겪고 예민한 상태인 걸 누가 알았겠어.”


“그 얘긴 그만하죠.”


“아니야, 정말 미안해서 하는 말이야. 이 시골에선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없으니까 마음 편히 지냈으면 해. 나 같아도 그런 일을 겪었으면 사람이 제일 무섭다 했겠지. 약 먹는 것도 필요하면 말만 해. 만수 할아버지가 보건소도 대신 다녀올 테니까.”


만수 할아버지의 만족스러운 미소가 천둥소리에 묻히며, 빗물이 집 안으로 스며들었다. 스스로 마르겠지. 닦을 힘이 없었다.


“그럼 이제 정말 서로 오해는 없는 거지? 그래도 젊은 총각이 아버지를 닮아서 용감하고 속이 깊어.”


‘자기들 편할 때만 아버지 얘기네...’


장대비는 거실문을 쉬지 않고 두드렸다. 일주일 내내 메일만 확인하며 집에 숨어 지냈다. 사이비 교단에서 내 자질을 평가 중인지, 아니면 메일 확인을 까먹은 건지. 누굴 놀리는 건가? 눈앞에 거금을 들이밀고 답장이 없다니.


고추밭 할머니에게 욕을 한 뒤로 마을 노인들은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다가가면 겁을 내는 눈치였다. 그들은 항상 나를 지켜봤다. 내가 눈길을 돌리면, 그들은 모르는 척 고개를 돌렸다.


철학관 할아버지는 그나마 따뜻하게 대해주셨다. 그러나 그 친절조차 믿기 어려웠다. 나의 악몽과 트라우마, 아버지, 군 시절 사고까지 내가 말하지 않은 것 모두 알고 있다는 기분이었다. 기분이 아니겠지. 그래. 기분이 아닐 것이다. 이제는 내 사소한 이야기까지 마을 노인 모두가 아는 듯했다. 아버지도 내 사정을 모르셨을 텐데. 하긴, 내게 큰 의미가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주님이 다 보고 있으니, 착하게 살아야 한다.’


어린 시절 들은 뻔한 몇 마디 말 빼곤 그의 목소리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주님이 보지 않을 때는? 그때는 내 마음대로 해도 되는가? 태풍이 몰고 온 폭우가 거실에 스며드는 밤, 나는 생각의 홍수에 잠겨 가라앉고 있었다. 집 안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으려 했지만, 밖에 나가지도 못하는 현실 위에 누운 채 담배에 불을 붙였다.


조금은 솔직해진 나 자신에게 말했다. 진정제에 의존이 심해지고 있다. 금단 증상에 대한 인터넷 검색 결과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꽤 정확했다.


‘피해망상, 정서적 충동, 무기력, 피로, 공격적 언행.’


중독 앞에 완전히 무릎 꿇은 것은 아니다. 진정제가 나를 부를 때면 담배를 하나씩 피우며 견뎠다. 철학관 할아버지는 담배 한 보루를 선물로 주셨다. 나를 읍내에 못 가게 하려는 친절일까? 약은 필요한 만큼 가져다주겠다는 만수 할아버지의 약속도 나를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계획처럼 느껴졌다. 천장에 퍼지는 담배 연기는 조명을 가린 안개가 되어 방을 어둡게 했다. 밖의 빗소리는 거센 서리 같았다. 노크 소리가 빗소리와 섞여왔다. 빗방울 사이에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자네 있는가?”


거실문을 열었다. 초록 우비를 입은 만수 할아버지가 불안한 얼굴로 서 있었다. 폭우를 뚫고 목소리를 높이는 그의 표정보다, 거실에 흘러 들어오는 빗물에 눈이 갔다.


‘아이 씨... 비 들어오게.’


그제야 그의 큰 목소리가 들렸다.


“고추밭 할머니가 없어졌어.”


“뭐라고요?”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데, 할머니가 집에 없다는 거야.”


“읍내에 나갔겠죠.”


“차도 없는 노인네가 이런 비에? 어제, 엊그제도 집에 없었다는데.”


“교회나 마을회관에 있진 않을까요?”


“그거야 확인 안 했겠나, 이 사람아.”


‘나를 의심하는 건 아니겠지? 왜 여기에 온 걸까?’


우산도 없이 비를 맞는 그를 바라보았다. 내 표정이 이미 말하고 있었다.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제가 도울 일이 있으면 말씀하세요.”


“마을 뒤쪽 산도 한번 둘러봐 줬으면 좋겠는데, 비가 너무 심해서. 우선은 푹 쉬게. 특이사항 있으면 꼭 알려줘.”


“알겠습니다.”


거실문을 살짝 닫아 남은 틈새에 눈을 들이밀었다. 만수 할아버지가 마당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우비에 장화, 조명을 든 그는 교회 쪽으로 향했다. 나는 정신을 가다듬었다. 사이비 교회에서 답장이 없다는 불안, 약에 의존하는 현실, 손가락 부상과 굿판까지 모든 것이 나의 머릿속을 차지해 주인행세를 하고 있었다.


이제 진실을 밝혀야만 속이 풀릴 것 같았다. 굿판에서 본 기적은 무엇일까? 폭우 속 만수 할아버지가 교회로 향하는 이유는? 그곳의 목사는 누구이며, 노인들은 교회에서 무엇을 하는가? 그리고 고추밭 할머니가 실종되었다고? 그 노인이 치매가 있는 건 아닌가? 모르겠다. 관심도 없다.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몸을 풀고 거실 불을 끄려 벽 스위치에 손을 뻗었다. 어두워지는 나의 집. 벽에 걸린 예수님의 모습이 흐려져 갔다. 왜 나는 점점 그와 멀어져 가는 것만 같을까. 아버지의 목소리가 다시 떠올랐다. 나는 주님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살아본 적이 있나? 주님이 보지 않는 나는 어떤 모습일까? 눈이 감겨올 뿐이다.



전봇대에 앞으로 기대 눈을 가리고 숫자를 셌다.


하나, 둘, 셋…. 찾는다!


어렸을 때의 나는 지금처럼 예민하거나 불만에 가득 찬 인간은 아니었을 것이다. 꿈속에서라도 나는 그때의 나를 찾아 헤맸다. 숫자를 세고 뒤돌았지만, 내가 뛰놀던 동네는 보이지 않았다.


정겨운 동네 대신 펼쳐진 지옥 같은 도시 풍경. 더는 뜨겁지도 않은 태양 아래, 비명을 흩뿌리며 사방으로 도망치는 사람들. 노인이 아닌 사람들. 그 모습이 오히려 반가웠다. 그래, 이제야 알 것 같다. 이곳 시골에서 나는 미친 듯이 외로워하고 있다.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 흐르는 붉은 피가 아름다웠다. 흙이나 풀 대신, 차갑고 딱딱한 콘크리트가 그리웠다. 눈앞에 서 있는 남자도 반가워할 수 있을까. 새로운 목표를 찾아 방황하는 그의 뒷모습.


오늘 꿈에 나타난 그는 익숙한 운동복을 입고 있었다. 꿈은 나의 무의식을 비추는 거울이다. 생각이 현실이 되는 곳.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나? 고추밭 할머니가 사라졌다고 했다. 눈앞의 광인, 칼을 든 남자의 손목은 피에 젖어 있었다.


내 무의식은 이미 그가 누구인지 정해버렸다.


‘숨지 마. 뒤를 돌아봐.’


지하드는 천천히 몸을 돌려 나를 응시했다. 꿈속 그의 얼굴엔 겁에 질리거나 불편한 기색 따위 없었다. 당당했고, 즐거워 보였다. 그런 모습이 오히려 보기 좋았다. 그는 나에게 다가왔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데?”


“우리 아버지와 마을 사람들은 무슨 관계야?”


“그게 진짜 문제는 아니잖아.”


“...그래, 인간들이 싫었어. 미칠 듯이. 학연, 지연으로 내 기회를 빼앗는 인간들이 싫었어. 부모님은 관심 한 번 주지 않았고, 그래서 쉽게 외로움을 타는 나 자신이 싫었어.”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그는 칼을 든 손으로 흘러내리는 코를 닦았다.


“아침 소리가 들려오네. 너는 외지인이야. 도시에서도, 시골에서도. 외롭고 괴롭다고? 그게 진짜 문제가 아니야. 나한테 말해, 네가 진짜 두려워하는 게 뭔지.”


“말했잖아. 되는 일 하나 없고, 인생이 꼬여서 싫다고. 인간을 혐오하면서도 외로움을 견딜 수 없다고.”


“그럼 이 악몽은 뭐야? 왜 매일 밤 여기서 겁을 먹는 거야?”


그래, 겁나지 않는 악몽은 없다. 진짜 공포가 나에게 다가올 차례다. 공포와 아침, 무엇이 먼저 올지 알 수 없다.


“말해. 너는 알고 있잖아. 네가 진짜로 두려워하는 게 뭔지.”


“너야. 바로 너. 눈앞에서 사람들을 죽이는 너.”


“장난하지 마. 너도 마을 노인들처럼 겁쟁이야?”


“난 사실을 말했어.”


“아니, 진짜 사실을 말해.”


점점 가까워지는 사이렌 소리가 내 목을 조여왔다. 아침이 오고 있었다.


“말해!”


어쩌면 그에게 고백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랐다.


“미칠 듯이 외롭고 인간들이 싫었으니까, 네가 그들을 죽이는 모습을 보며 행복했고 기뻤어. 그게 두려웠어. 그래, 너의 살육이 만족스러웠어. 네가 내 꿈을 이루어준 것 같았어. 그래서 두려웠어. 두려워서 바깥에도 나가지 않았고, 두려워서 거울도 보지 않았지. 두려워서 이 지긋지긋한 악몽을 피하고 싶었던 거야.”


지하드는 인자한 웃음을 지었다.


“내가 어떻게 널 죽일 수 있겠어. 걱정하지 마. 넌 네 생각보다 특별하고 소중한 존재야. 우리 모두에게 내려온 천사, 선물과 같은 존재.”


그는 칼을 놓고 내 어깨를 부딪치며 지나갔다. 나는 뒤를 돌아 무릎을 꿇은 채 수갑에 채워지는 그의 모습을 바라봤다. 그는 끝까지 나를 노려봤다.


“너는 악마가 아니야. 중요한 존재야.”


경찰은 나를 향해 역겨운 눈빛을 던졌다. 마치 그를 보는 내 시선처럼. 경찰은 그의 머리를 경찰차 안으로 밀어 넣었다. 차 문이 닫히는 순간, 그 모습은 완벽한 그림으로 남았다.


‘지하드. 네가 죽였지?’


이전 12화12. 시골에 흘러가는 분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