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이 사는 곳
괜한 농담이었다. 담배를 찾기 위해 주머니를 더듬었다. 잠옷 바지 주머니에 담배가 없다는 당연한 사실에 신경질이 났다. 다시 거실로 들어가 담배를 챙겨 나오며 선배의 말에 집중했다.
“별일이 다 있지. 그냥 차에 치인 거였으면 내가 굳이 말도 안 꺼냈어.”
“뭔데요?”
“태풍 온다는 얘기 들었지? 그 기압 차이가…. 아니, 됐다. 벼락을 먼저 맞고, 그다음에 차에 치였대.”
“벼락이요?”
안개 쌓인 듯 잘 보이지 않는 악몽의 기억. 악몽의 누군가가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죄인을 향한 벼락 이야기. 숨을 죽이고 물었다.
“... 살았대요?”
“살았지. 그게 기적이지. 벼락에 맞고, 차에 치여도 사는 사람 봤냐? 그 인간은 평생 운 다 쓴 거다.”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나는 그 웃음이 전화기 너머로 들리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면... 그 번역은 다시 제가 맡게 되는 건가요?’
차마 입 밖에 낼 수 없는 질문이었다.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사람과 나의 기회. 누군가의 불행을 기뻐하지 않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사이비 교회의 계약 제의가 아니었다면 나는 그 질문을 입 밖으로 꺼냈을 것이다. 그러나 이단이 건넨 여유 덕분에 품위를 지킬 수 있었다. 선배는 내 침묵의 뜻을 들은 듯 말을 이었다.
“그래서 번역은 일단 보류래.”
“아. 그게 맞죠.”
“응. 실력 있는 가난한 번역가들보다 오늘내일하는 자기 사위가 우선이래. 뭐 어쩌겠냐.”
아침부터 죽을뻔한 사람의 얘기를 오래 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선배는 대화를 돌렸다.
“근데, 이제 일어난 거냐? 목소리가 아주 그냥 우울해.”
“형 전화 받고 일어났어요. 우울은 무슨, 아침이라 그렇지.”
“밥은 잘 챙겨 먹고? 시골에선 뭐 먹냐?”
괜히 마당을 둘러보며 목소리를 낮췄다.
“마을 노인들이 챙겨주세요.”
“와, 완전 좋으신 분들인데? 그게 진짜 시골의 정이지.”
“좋긴 뭐가 좋아요. 가만 보면 읍내에 장 보러 가지 못하게 하려는 것 같아요.”
“그게 말이 되냐. 누가 시장 못 나가게 하려고 밥을 해줘. 어르신들한테 잘해라.”
“형은 알지도 못하면서 뭘 잘하래요.”
굿 이후로 화를 참지 못하는 일이 늘었다. 손가락은 나았고, 몸은 한결 가벼웠지만, 머릿속 분노 제어장치가 고장 난 듯했다. 화를 참는 병도 함께 고쳐진 것일까.
“왜 짜증을 내냐. 원래 시골 어르신들은 다 자식 같아서 그러시는 거야.”
“알았어요. 그냥 사사건건 간섭하니까. 짜증이 좀 나서요.”
“노인들이 원래 그렇지 뭐. 정이 많으신가 보다.”
‘형, 시골 살아본 적도 없잖아요.’
“그래서 읍내는 한 번도 못 가봤어요. 머리도 잘라야 하는데. 아, 한 번 가보긴 했구나.”
“한 번? 뭐 때문에?”
“손가락을 다쳐서요.”
발소리가 들렸다. 담벼락 너머에서 들려온 소리였다. 허리 높이도 안 되는 담벼락 너머. 누군가 숨어 듣는 느낌이었다.
“형, 내가 이따 다시 전화할게요.”
“응. 건강 잘 챙기고.”
핸드폰을 주머니에 밀어 넣고 마당 끝으로 천천히 걸어 나갔다. 화창한 아침. 평화로운 시골 골목엔 아무도 없었다.
‘분명 소리가 났는데.’
이번엔 반대편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흰 삼베옷을 입은 철학관 할아버지. 그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팔자걸음으로 다가왔다. 나는 직감했다.
‘또 뭐 시킬 게 있구나.’
“잘 잤어?”
“예. 어르신은요?”
“너무 잘 자서 탈이야. 어제는 저녁 뉴스도 못 보고 잠들었어. 몸이 고단해서 그런가. 늙으면 잠이 없어진다는데 나는 점점 늘어. 죽을 때가 돼서 죽는 연습이라도 하나 봐.”
그리 유쾌하지도 않은 농담인데, 웃음이 났다.
“그래서, 무슨 일이세요?”
“시골에 뭐 큰일이 있나. 근데 자네 아직 밥도 안 먹었지?”
“예. 막 일어났어요.”
“그럼 우리 집에 와서 같이 한술 뜨지. 어제 읍내 다녀오면서 서울 사람 입맛에 맞는 음식들 좀 사 왔거든. 내 입엔 안 맞더라고. 와서 아침도 먹고, 작은 일 하나만 좀 도와주면 좋겠네.”
그의 식사 제안도, 부탁도 거절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에게 선택이라는 게 있기는 한가? 그는 내가 따라올 것을 이미 아는 듯,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등을 돌려 천천히 걸어갔다. 아직 졸린 눈을 비비며, 그 뒤를 졸졸 따라갔다. 걸음을 맞추지 못해 뒤처졌고, 그는 먼저 철학관의 대문을 열고 들어갔다. 내가 칠한 대문 앞에 멈춰 마을 입구의 십자가가 꽂힌 묘지를 바라보았다.
‘계속 이렇게 노동만 하다간 나도 저기에 묻히겠네.’
생각할 틈도 없이 옆 고추밭에서 할머니가 고함을 쳤다. 이 마을에선 부탁도 소리를 지르며 한다.
“총각! 시간 있지? 고추밭 좀 도와줘!”
“지금은 철학관 어르신을 도와야 해서요.”
대문 안에서 또 다른 호통이 날아들었다.
“안 들어오고 뭐 해!”
급히 고추밭 할머니에게 인사를 하고 마당으로 들어섰다. 마루 앞에는 삽이 꽂혀 있었고, 그 손잡이에는 장갑이 걸려 있었다.
‘설마 아침부터 땅 파라는 건 아니겠지?’
마루에 앉아 부채질하는 노인의 허벅지 아래로, 익숙한 섬광이 내 눈을 찔렀다. 서울에서, 그리고 계속되는 악몽 속에서 보았던 그 섬광. 할아버지는 은빛 가위를 살짝 깔고 앉아 있었다. 태양은 그 위에 반사되어 나를 향해 경고를 보냈다. 콧등을 긁던 나는 가위를 보지 못한 척했다. 노인을 등지고 조용히 삽 앞으로 다가갔다. 등 뒤에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해하지 말고 들어.”
가위가 거슬렸다. 무서웠다. 장갑을 끼고 삽의 손잡이를 잡았다.
“자네가 이 마을에 온 뒤로, 몇 가지 변화가 있었어. 뭐, 전부 자네 탓이란 건 아니니 걱정은 말고.”
땅에 박혀 있던 삽을 뽑아 들 준비를 했다. 공격적인 행동을 할 생각은 없었다. 그저, 그가 깔고 앉은 은빛 가위가 불길할 뿐이었다.
“그 삽 꽂힌 자리 말이야. 거기서 안 흐르던 수맥이 흐르더라고. 수도관 때문이겠지만. 자네가 땅 좀 파서 확인해주면 좋겠네. 어때?”
“이 아침부터 땅을 파라고요?”
“무리한 부탁인가?”
그는 내가 가위를 보는 걸 알았을 것이다.
“아뇨. 도와드려야죠. 어르신 허리도 안 좋으신데.”
“고맙네. 일 끝나면 진수성찬 차려줄게.”
삽을 들고 흙을 파기 시작했다. 악몽으로 흘린 식은땀이 마르기도 전인데, 이번엔 노동으로 땀을 흘렸다.
적막하게 흙을 퍼내는 소리에 생각이 짙어졌다.
‘나는 왜 이 노인을 의심하지? 왜 나를 공격할 거란 생각을 하고 있지? 노인은 왜 가위를 갖고 있는 거야.’
머릿속을 스쳐 가는 생각들을 지우고 싶던 나는 말을 꺼냈다.
“어르신, 동양 철학에선 수맥이 중요한 거죠?”
“그렇지. 정확히는 땅이 중요하지. 마루 위에서 가끔 자는데, 아래에 수맥이 흐르면 되겠어? 물이 흐르는 자리는 묫자리로도 못 쓰잖아.”
“수맥 위에서 자면 안 된다는 말, 들어본 것 같아요.”
“사람을 왜 물가도 아닌 땅에 묻겠어.”
노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무심한 척 계속 땅을 팠다. 마루 위에 선 그는 내 뒤통수를 넘어 내가 판 땅을 내려다봤다.
“이 정도면 잘 팠네. 젖은 흙은 안 나오는구먼.”
“그만 팔까요?”
“아니. 계속 파.”
그는 내 귀 가까이 다가와 속삭이듯 말했다.
“내가 머리 잘라줄까?”
나는 그대로 뒤를 돌았다. 마루 위의 그는 은빛 가위를 들고 서 있었다. 내 시선을 읽은 그는 말을 이었다.
“예전에 이발 자격증도 따볼까 했었어. 마을 사람들 다 나한테 와서 잘랐거든. 자넨 머리가 산신령처럼 길더만.”
선배와 했던 통화를 떠올렸다. 읍내에 머리를 자르러 가야 한다고 말했었다. 그때, 담장 너머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고, 급히 전화를 끊었다. 물론 아무도 없었지만.
“갑자기 머리는 왜요?”
“계속 안 파고 뭐 해?”
“아니요. 갑자기 왜 머리를 잘라 주시고 싶은데요.”
“그렇게 특별한 말도 아니잖아. 머리가 길어 보여서 잘라준다는 게 뭐?”
그의 말이 맞았다. 과민 반응일지도 몰랐다. 그런데 왜 하필, 내가 그 얘기를 꺼낸 날, 그는 가위를 들고 있었을까. 그를 몰아세우기엔 근거가 부족했다. 그는 여유로운 미소로 나를 바라봤다.
“계속 파.”
‘그래, 내가 잘못됐을 수도 있지.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거지. 그런데 중이 떠나려면 돈이 필요하잖아.’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사이비 교단에서 메일이 왔는지 확인해야 했다. 정확히는 계약금을 기대하고 있었다. 새 메일은 없었다. 짜증이 올라왔다. 노인은 나의 가슴 속 응어리를 압박했다.
“계속 파라니까.”
화를 담아 일부러 강하고, 빠르게 삽을 퍼냈다. 흙이 사방에 튀었다. 노인을 바라봤다.
“젖은 흙은 하나도 안 나오네요. 그만 팔까요?”
“자네 요즘 예민하지?”
다시 돌아봤을 때, 은빛 가위는 사라진 상태이었다. 깊게 파인 땅, 눈 부신 태양, 조용히 닫혀 있는 마당 문.
‘아까 내가 닫았던가?’
“머리 자르기 싫은가 보네. 오늘은 말고, 나중에 자르자고. 굿을 하고 나면 혈기가 돌아서 예민해지는 때도 있거든.”
구덩이에 삽을 내던지고 장갑을 벗었다. 내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오가는지 나도 알 수 없었다. 그는 부채질하며 말했다.
“악몽도 꾸고 그러지? 그런 건 힘든 일이 있고 난 뒤에 당연한 거야. 걱정하지 마.”
“무슨 악몽이요?”
“내가 자네가 꾸는 악몽을 어떻게 알아?”
“그러면 무슨 힘든 일이요?”
“자네, 힘든 일이 있어서 여기 와서 사는 거 아냐? 내 추측이 틀렸나?”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다시 구덩이 속 삽을 손에 쥐었다.
‘내가 어떤 악몽을 꾸는지 네가 어떻게 알아. 내가 힘든 일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네가 뭘 안다고 그래. 왜 아침부터 남 불러다 놓고 땅을 파게 하고 지랄이야.’
입 밖으로 소리 내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이를 꽉 깨문 채 강하고 신경질적인 삽질을 멈추지 않았다. 노인은 놀란 듯 조용히 내 모습을 지켜볼 뿐이었다. 그는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수맥 없네요. 가볼게요.”
노인의 대문을 거칠게 밀치며 나왔다.
‘기분 나쁜 노인네. 단순히 무례하기만 한 무당 할매나, 무식한 만수 할배랑은 달라. 아니, 다 똑같아. 전부다. 다 같이 무례하기만 해.’
그때, 옆에서 들려오는 호통이 지친 나에게 닿았다.
“총각! 아, 도와달라니까!”
그대로 고추밭으로 향했다. 분노 섞인 큰 걸음. 밭에서는 할머니가 거대한 푸른 비닐과 씨름 중이었다.
“자네, 다음 주에 태풍 오는 거 알지? 이걸 덮고 고정해놔야 하거든? 그 정도는 알지? 저 끝 좀 잡아봐.”
아무 말 없이 천막 끝을 들었다.
“아니, 거기 말고!”
노인이 원하는 위치로 옮겨 잡고 천막을 당겼다. 덩치 큰 천막은 마음처럼 움직여지지 않았고, 뜨거운 햇살 아래 노인의 이마에는 땀이 맺혔다. 노인의 입에서 짜증 섞인 한숨이 새어 나왔다.
“아휴, 천막 하나 못 치는 손에 무슨 굿을 한다고. 그냥 내 농사나 잘되게 해주지”’
나는 천막을 놓았다. 입가는 굳게 닫혔고, 시선은 바닥만을 응시했다.
“아, 뭐해! 들어야지!”
철학관 어르신이 물어봤지. 힘든 일 있었냐고. 힘든 일 있었지. 그래. 힘든 하루를 보내고 있다.
진짜 힘든 하루를 보내는 게 어떤 느낌인지 모르는 걸까.
알려줘?
나는 고장 난 기계처럼 서 있었다.
고추밭 할머니가 천막을 밟으며 거침없이 다가왔다.
팔 토시, 장갑, 햇빛 가리개, 주름진 얼굴에 얹힌 짜증까지, 그녀는 달려들 듯 어깨로 나를 밀쳐냈다.
“돕기 싫으면 가! 그냥.”
노인을 바라보는 눈시울이 분노에 붉어졌다.
“...야. 이 씨발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