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믿음이란 장미, 말씀이란 가시.

노인들이 사는 곳

by 박규동

끝없는 추락에 심연에 닿았을까. 눈을 뜨기 두려웠다.


나의 앞에 펼쳐진 꿈이 어떤 형상일지 알고 있다. 뜨겁게 달궈진 아스팔트 위로 도시의 태양이 내리꽂히고, 칼을 든 광인은 나를 반길 것이다. 눈을 뜨지 않았다. 두려움에 눈을 뜰 의지가 없었다.


그러나 뭔가 이상했다. 내가 그 도시에 있다면, 감은 눈 속으로 보랏빛 열기가 들이쳤을 텐데, 지금은 어둠만이 가득했다. 아무런 빛도 열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비명 섞인 도망치는 발소리도, 살점을 찢는 쇳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실눈을 떠보았다. 불이 꺼진 내 방과 똑같은 어둠. 진정제는 나를 꿈으로, 어쩌면 현실로 던져 놓는다. 도착한 곳이 어디인지 알려주지 않을 뿐. 정신을 차리려는 찰나, 바깥에서 낮게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주문 같기도 하고, 경을 읊는 듯도 했다. 마을 사람들의 목소리였다. 지난번처럼 교회에서 무언가가 벌어지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런데 한 가지가 나를 더욱 혼란스럽게 했다. 그때의 일, 잠에서 깼던 그 밤, 그건 꿈이었나? 지금, 이 순간처럼? 아니, 지금, 이 순간은 꿈인가? 의식은 안개처럼 흩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곳이 꿈이라면 나는 그 꿈에서 하고 싶은 일이 하나 있다. 무당 할머니. 교회에 들어가 그 노인의 머리끄덩이 한 번이라도 잡아당기고 싶었다.


두려움과 슬픔은 늘 내게 눈을 감고 조용히 누워있으라고 말했지만, 분노는 그러지 않았다.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돌아온 낮의 모습이 화에 불을 지폈다. 분노는 나의 두 눈을 번쩍 뜨게 하고, 몸을 일으켜 세우게 했다. 무겁게 느껴지는 팔과 다리를 억지로 움직이며 방을 나섰다. 진정제 때문인지, 꿈속의 중력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거실문을 열고 폭우를 헤치며 밖으로 나왔다. 교회 앞에 섰을 때, 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무기가 될 만한 것을 찾았다. 그때 왼쪽 귀에서 속삭임이 들려왔다.


진짜 노인들을 때리기라도 할 건가?

동시에 오른쪽 귀에서는 다른 목소리가 반문했다.

산송장 같은 노인들에게 복수하는 데 무기가 필요해?


머릿속에서 두 목소리가 만드는 화음은 두통과 어지러움을 빚어냈다. 나의 분노는 목소리들의 길잡이가 되어주었다. 교회의 문을 발로 차 부숴서라도, 안으로 들어가라고 말했다.

그때였다. 마을 사람들의 목소리가 한 남자의 설교로 바뀌었다. 나는 숨이 멎은 것처럼 움직임을 멈췄다. 그 목소리, 아니, 정확히 말하면 말투가 익숙했다. 익숙한 말투의 근원을 찾기엔 정신적 여유가 부족했다. 설교를 이어가는 남자는 이 교회의 목사가 분명했다. 교회의 벽, 창문 밑에 쪼그려 앉았다. 비가 얼굴을 때리자 젖은 앞머리를 넘기며 귀를 기울였다. 빗소리는 설교를 엿듣기에 시끄럽기만 했다.


숨은 건 겁나서가 아니었다. 단지 그가 어떤 말을 내뱉을지 듣고 싶었을 뿐이다.


“우리는 근원으로부터 너무나 멀리 와 있습니다. 이 성경을 읽어도, 여기에 쓰인 단어를 봐도, 도무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잘못이 아닙니다. 단어들의 의미가 닳아버린 겁니다. 성경을 읽어도 이해가 안 됩니다. 이해란 무엇입니까? 바로, 여러분과 이 글자들 사이의 상호작용이죠.”


“여러분이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이 대답해줬습니까? 주님이, 이 글자들의 뜻을 알려주셨습니까? 예를 들어볼까요? ‘두드려라, 열릴지어다.’ 무엇을, 어디를 두드리라는 겁니까? 기도하면, 그 기도를 들어주시겠다는 뜻입니까? 우리는 두드렸습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열리지 않았습니다. 주님, 도대체 무슨 뜻입니까?”


“주님과 우리는, 다른 언어를 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중요한 말이라도 그 단어의 근원에서 멀어지면, 우리 귀에 들리지 않는 법입니다. 심연을 바라보면 심연도 우리를 바라본다고요? 심연이 뭡니까? 저는 모릅니다.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온 지 너무 오래되어서 우리는 그게 뭔지도 모르죠. 두려워하지 않으니, 바라보는 게 어려울 리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심연이 우리를 바라보지 않는 건 아니죠.”


“어쩌면 주님은 이미 알고 계셨을지 모릅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소통할 수 없는 날. 그래서 주님은 ‘로고스’를 만들었습니다. 신성한 삼위일체. 마치 오늘날 코카콜라의 로고처럼, 로고스는 근원의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그것을 바라봅니다. 믿음이란 어쩌면,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로고스를 해체해야 할 때입니다. 신성한 삼위일체를 해체하고, 그 진짜 뜻을 이해해야 할 때입니다.”

비를 맞으며 웅크린 내 몸은 마치 길 잃은 시골 개처럼 떨고 있었다. 다리는 저려 왔고, 온몸이 축축하고 불편했다. 그러나 목사의 말은 내 귀를, 내 가슴을 흔들었다. 그가 내뱉는 말 대부분에 동의할 수 있었다. 그는 평소 내가 갖고 사는 신념을 설명하고 있었다.


나는 자세를 고쳐 앉고, 더욱 귀를 기울였다. 자세를 고치는 과정에 난 소음 때문인지 잠시 침묵이 흘렀다. 긴장감에 흐르는 땀과 빗물은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딸깍 소리가 났다. 이내 남자의 설교가 다시 이어졌다.


“주님의 진짜 뜻을 찾는 것이 잘못된 겁니까? 주님 말씀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여보자는 데 반대하는 자가 있습니까? 왜 우리는 주님의 말 한마디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게 되었습니까? 잘못된 교육, 잘못된 소통 때문이죠. 우리는 단어의 모양, 발음, 용례만을 암기해왔습니다. 우리가 걸어온 교육의 길은 어떻습니까? 반복, 또 반복. 우리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래. 맞아. 그런 이유로 내가 뛰어난 번역가라고 믿었고, 실력도 없이 인맥으로 계약을 따내는 번역가들을 혐오했다. 심지어 주님을 향한 신앙의 모습까지 비슷했다. 진정한 뜻을 찾는 것이 진짜 신의 말씀에 가까워지는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님이 거짓말을 하신 겁니까?”


아니지.


“그러면 단어들의 의미들이 모두 증발해버린 겁니까?”


당연히 아니지.


“아니죠, 여러분. 성경에 적힌 모든 기적은 진실입니다. 우주의 첫 번째 법칙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 어떤 것도 새로 생기지 않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본질을 둘러싼 모습과 껍데기만이 변할 뿐입니다. 여러분은 주님의 기적을 직접 보고 싶습니까? 껍데기뿐인 복음이 아니라, 진짜 기적을 원합니까? 아니면 심지어 기적을 행하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그에 맞는 대가를 저에게 가져오십시오. 주님이 원하는 것을 가져오십시오. 아니면 죄인을 데려오십시오. 내가 그들을 십자가에 못 박고, 심장을 씹어먹어 생명의 가치가 얼만지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장수와 건강? 120살? 140살? 부와 명예? 30억? 60억? 무엇을 원하십니까?”

그의 말에 설득당하던 나의 입안엔 이상한 쓴맛이 돌았다. 불편했다. 기적이나 과격한 단어들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그의 말이 이단이어서? 아니, 나 역시 기적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액자를 부수고, 굿판을 벌이고, 기적을 팔며 설교하는 교회. 그들은 이단이 분명하다. 그러나 합리화와 섞인 다짐은 나를 붙잡았다. 번역 계약만 끝내고 나서 다시 생각해도 늦지 않다고.

저린 다리를 붙잡고 천천히 일어섰다. 무례하기만 한 이단들. 하지만 주님은 폭력을 원치 않을 것이다. 저들은 상대할 가치도 없는 부류일지도. 저리는 왼발의 합리화와 오른발의 다짐은 천천히 움직여 내 집 방향으로 향했다.


“여러분, 저에게 죄인들의 육체를 가져오십시오. 나는 그 죄인에게 벼락을 내리고, 십자가에 걸린 심장을 씹어 먹겠습니다. 죄인은 누구입니까? 주님의 말씀을 왜곡하는 자들입니다. 위선자들을 희생양으로 나는 여러분의 기도를 하늘에 닿게 할 것입니다. 나는 죄인들의 피를 여러분께 돌려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의 기도가 원한 모습으로.”

교회 문 앞을 지나던 순간 들린 그 말은 마치 나에게 들으라는 듯 나의 심장을 찔렀다. 허리를 낮추고 큰 걸음으로 도망치듯 마당을 향해 걸었다.


젖은 옷자락이 교회 문손잡이에 걸렸다.

끼익, 낡은 문이 열리는 소리.


문이 열렸다.


문이 열린 왼편을 차마 보지 못했다. 아니,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호기심을 남겨둔 채 도망치고 싶지도 않았다. 목사가 누구인지 알아야만 했다. 익숙한 말투의 근원. 왼편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려 교회 안을 바라보았다.


줄지어 앉은 노인들이 일제히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단상 위, 목사가 서 있어야 할 자리는 비어있었다.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노인들의 눈빛만은 진하고 강렬했다. 무당, 만수 할아버지, 고추밭의 할머니들, 철학관 할아버지, 마을회관의 노인들. 그들이 하나같이 같은 방향으로, 같은 시선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달렸다. 집 마당에 닿자 신발을 대충 벗어 던져 문을 열고 뛰어 들어갔다. 거실문을 이중으로 잠그고, 다시 방의 문까지 잠갔다. 비에 젖은 옷 그대로, 머리칼 그대로 이불 속으로 들어가 눈을 감았다. 솜이불은 서서히 젖어 들었고, 나는 젖은 짐승처럼 떨며 다시 더 깊은 심연으로 추락했다.

심연에도 바닥이 있을까. 그 끝없는 낙하와 추락. 추락과 동시에 울리는 진동은 머릿속 세계를 흔들었다.

진동을 울리는 핸드폰의 울음에 잠에서 깼다. 두통에 눈을 찡그려 화면을 확인했다. 서울에서 친하게 지내던 번역가 형이었다.


“여보세요?”


“어. 잘 지내냐?”


시골집 안은 전파가 잘 잡히지 않았다. 눈곱을 떼며 마당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잠시만요. 통신이 안 좋아서요.”

몸을 일으켜 내가 누웠던 자리를 돌아보았다. 식은땀에 젖은 이불. 이젠 익숙했다. 광인이 나오지 않은 새로운 악몽, 그 공포는 더 컸을까. 이번엔 배게마저 공포의 부산물에 젖어 있었다. 땀 냄새 밴 이불을 뒤로하고, 목을 한 번 가다듬은 뒤 거실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섰다. 화창한 아침 햇살이 평상 위로 쏟아졌다. 빗물이 마르지 않은 평상 위에 앉아 통화를 이어갔다. 젖은 바지가 불편했다.


“야, 저번에 네가 맡기로 했다가 뺏긴 번역 있지?”


“예. 왜요? 수입사 회장님이 마음 바꾸셨어요? 사위가 형편없다고?”


뼈가 섞인 농담을 던지며 웃었다.


“그 형편없는 사위가 차에 치였단다.”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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