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이 사는 곳
“자네 좋을 대로 해. 교회는 모두 다 환영하는 곳이니까.”
“그럼요.”
그는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마당을 빠져나갔다. 남겨진 나는 노인이 떠난 빈 마당을 둘러보았다. 내가 너무했나? 아침부터 내 집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던 내가? 멀리 타향에 와서 일하는 노동자를 막 대하지 말자고 말한 내가? 그리고… 왜 그토록 교회 얘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굿판 이후, 나는 교회에 관한 궁금증을 멈출 수 없었다.
방금 그의 반응을 보아하니, 말을 꺼내지 말았어야 했다.
그들이 숨기고 있는 것들이 있다. 공중에 떠서 다른 목소리를 내던 푸른 집 할매. 그 신비하고 섬뜩한 기적의 이면엔 반드시 무언가 있다. 나는 그것이 교회에 있다고 확신했다. 노트북을 들고 거실문을 열었다. 답장을 써야 할 메일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일과 생활의 공간을 구분하고 싶었다. 비가 그치면, 그때 다시 평상으로 나가 답장을 보내면 된다.
다만, 그들이 보낸 예문이… 성경의 어느 부분에서 나왔는지 궁금증에 머리가 가려웠다. 빠르게 방으로 들어가 옷장을 열었다. 그 안엔 성경 두 권이 이불 위 얌전히 누워있었다. 아버지가 사용하던 성경, 서울의 목사님이 주신 성경. 아버지가 사용하던 성경을 꺼내 혼잣말을 읊조리며 사이비 교단이 보낸 예문을 찾았다.
‘시편... 시편... 잠언? 시편...’
찾았다. 나의 예상과는 달랐다. 지난번과 달리 이번에는 성경의 구절을 왜곡해서 보내지 않았다. 나의 마음 한구석 죄책감이 덜어졌다.
“총각!”
집 거실문이 큰소리를 내며 열렸다. 옆집 할머니의 목소리가 폭우처럼 밀려들었다. 놀란 나는 성경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첫 번째는 심장이 철렁했고, 두 번째는 한숨이 나왔다. 입술을 깨물고 웃는 얼굴을 만들어 거실로 나갔다.
“무슨 일이세요?”
‘노크 좀 하고 살자는 게 그렇게 어렵나.’
“손은 어때?”
“멀쩡합니다.”
‘생색내는 것도 적당히 합시다. 나도 힘들다고. 비도 오겠다, 오늘은 좀 쉬자고.’
“총각, 천둥소리 들었지? 비 오려나 봐. 하늘도 그냥 시꺼멓고. 마당에 빨래를 널었는데, 지하드 이 멍청한 놈이 내 손 안 닿는 높은 줄에다가 옷을 널어놨어.”
“그럼 지하드 씨한테 걷어달라고 하시지 그랬어요?”
‘이제 자기 집 빨래까지 시키나?’
“지하드 그놈은 지금 고추밭에 가서 일 도와주고 있으니께, 자네가 좀 도와줘야겠어.”
“예… 뭐, 빨래 걷는 게 대단한 일도 아니고.”
슬리퍼를 고쳐 신으며 따라나섰다. 앞서가는 노인네는 고함을 쳤다.
“빨리 와!”
욕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화를 참느라 눈이 빨개졌다. 나 자신을 진정시켜야 했다.
‘이 양반은 무슨… 지가 부탁하는 입장에 소리 지르고, 명령질이야.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나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 대문을 나섰다. 푸른 지붕 집 할머니는 뒷짐을 지고 앞서 걸었다. 그 마당의 흙엔 검붉은 닭 피가 굿판의 흔적으로 남아 있었다. 전깃줄인지, 빨랫줄 위에 옷들이 널려 있었다. 딱 봐도, 노인의 손에 닿을 높이였다.
“어르신, 이건 손 닿으실 것 같은데요?”
“그럼 내가 허리를 펴야 하잖아! 허리 아프다니까.”
‘하...’
“그래요. 걷어서 마루에 올려드릴게요.”
“그려. 아이고 죽겠다.”
할머니는 마루에 앉아 콧노래를 부르며, 빨래를 걷는 나를 노려보았다. 노인은 사소한 것 하나까지 트집을 잡았다.
“그렇게 빨래집게에서 뜯으면 옷 늘어나지 않겠어, 총각?”
“…주의할게요.”
지하드의 옷까지 반쯤 걷었을 무렵, 빨래를 마루에 올려놨다. 그러자 할머니는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소리쳤다.
“이렇게 다 구겨서 던져 놓으면 어떡해? 빨래 한 번도 안 해봤어? 개야지, 개!”
“걷는 것만 도와달라 하셔서 걷은 건데요.”
“그래도 할 거면 제대로 해야지.”
입가가 떨렸다. 진심이 섞인 한숨을 토해냈다.
“하… 씨발, 진짜 너무하시네.”
“뭐? 지금 뭐라고 했어? 지금 나한테 욕한 거 맞지?”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랐지만, 웃음이 먼저 나왔다. 머리가 간지럽고, 눈 밑이 미세하게 떨렸다.
“무슨 욕이요. 안 했어요. 그럼 다 걷고 나서 그때 개어놓을게요.”
“그동안 옷이 다 구겨질 텐데?”
“나머지 걷는 데 3분도 안 걸려요. 이게 훨씬 빠르잖아요.”
“어휴, 손을 고쳐주면 뭐 하나. 쓸 줄을 모르는데. 자기 일은 어떻게 제대로 하는지 몰라.”
눈이 뒤집혔다. 그 말은 이성의 끈을 끊는 칼과 같았다. 입을 열려는 찰나, 광대뼈에 차가운 빗방울 하나가 툭 떨어졌다. 천둥소리가 이어졌다. 정신 차리라는 차가운 빗방울. 천둥은 나에게 이성을 붙잡으라는 호통 같았다. 나는 말없이 남은 빨래를 마구 뜯어 걷었다. 비에 젖은 옷을 대충 마루에 던졌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입가에 미소를 걸었다.
“비 오네요. 저 먼저 돌아가 볼게요.”
할머니의 찌그러진 인상을 뒤로한 채 대문을 열자, 바로 옆에 서 있는 지하드가 눈에 들어왔다. 놀란 나는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그는 조용히 입술 앞에 검지를 세우며 속삭였다.
“할머니 화났어요?”
“왜요?”
“밖에서 소리 들리는데, 화난 것 같아요.”
지하드의 운동복엔 흙이 묻어 있었고, 장갑 위로 핏물이 번져 있었다.
“손목에 피나요. 이거 왜 그래요?”
“작업하다가… 다쳤어요. 근데, 할머니 화났어요?”
“그깟 노인네가 화를 내든 말든,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해요?”
노인을 향한 욕을 내뱉은 순간, 지하드의 얼굴에 혈색이 싹 가셨다. 그의 눈빛은 동공을 잃은 채 떨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숙여 흙바닥만 응시했다. 뒤를 돌아보니, 대문 옆 기둥에 할머니가 기대어 서 있었다.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굿을 할 때와 같은 눈빛이었다. 날카롭고, 무표정하게 모든 걸 보고 있는. 지하드는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의 모습은 혼나기 직전 아이의 모습 같았다.
나는 그 등을 멍하니 바라보다 집으로 돌아왔다. 문을 잠그고, 노트북을 켰다. 일에라도 집중해 화를 삭여야 했다. 예문을 번역해야 했다. 사이비 교단의 계약 제안은 나에게 희망의 동아줄과 같았다. 짧은 예문에 작업은 30분이면 끝날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몇 시간을 그 짧은 문장에 쏟아부었다.
‘그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떡하지?’
‘다신 이런 기회는 없을 거야.’
‘이번 기회를 놓치면 나는 뭐 먹고 살아?’
걱정은 불처럼 머릿속에 번졌다. 두 눈은 그 불을 비추듯 붉어졌다. 성경 구절이 머릿속에서 어지럽게 튕겼다. 인터넷으로 예문에 적혀 있는 성경을 검색했다.
‘뭐야. 비슷한 구절인데 다 다르게 써놨네?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그들의 마음에 들게 만들어야겠지.’
걱정과 짜증에 입술이 말라갔다. 내 기분이 어떻든 간에 번역은 정확해야 했다. 그들이 언급한 계약금을 다시 떠올렸다. 그 돈만 있으면…
다시 한번 번역을 수정하고, 띄어쓰기를 고치고, 단어를 바꾸고, 문장을 가다듬었다. 강하게 전송 버튼을 눌렀다. 어느새 바깥엔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서울이었다면 나가기에도 늦지 않은 시간. 불빛도 없는 작은 시골 마을, 여기선 자야 할 시간이다. 잠이 오지 않았다. 눈을 부릅뜨고 천장을 응시했다. 머릿속의 목소리를 잠재우기가 쉽지 않았다.
‘그들이 계약서를 보낼까?’
‘입금은?’
‘기회가 사라지면?’
‘그들이 원하는 대로 번역한 게 맞나?’
모든 생각은 걱정이 되었다. 걱정은 가지를 치고 가지에 돋은 가시는 나의 영혼을 찔렀다. 결국 진정제가 담긴 약통을 꺼냈다. 굿을 하고 일주일 동안은 약 없이도 잠을 깊이 잤다. 악몽조차 꾸지 않고. 그 일주일 동안 나는 악몽의 원인이 진정제에 있지 않을까, 의심하고 있었다. 통을 손에 쥐고, 다리를 떨고, 손톱을 씹으며 버텼다. 머릿속 걱정들을 더 이상 버틸 수가 없다. 자고 싶다. 약 세 알을 손바닥에 털어놨다. 물 없이 입에 털어 넣었다. 목구멍을 따라 쓴맛이 흘러내렸다.
‘이런 게 중독이겠지. 그래. 약이야 더 타오면 그만이야. 고작 이딴 게 중독이라면 중독자가 되어도 상관없어.’
벽에 걸린 십자가의 예수님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괜한 죄책감이 느껴졌다.
‘나도 알아요.’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십자가를 뒤로 돌려 걸었다. 그 눈빛이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하게. 자리에 누운 나는 솜이불을 목까지 끌어당기고, 베개를 끌어안은 채 옆으로 누웠다.
계약금, 번역, 비, 할머니, 교회, 약, 피, 노인들, 성경, 교회, 교회, 교회…
진정제는 머릿속 목소리들을 조용히 시켰다. 베개를 안은 몸은 굳어가며 점점 꿈속으로 추락하고 있었다.
끝없는 추락에 심연에 닿았을까. 눈을 뜨기 두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