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시골 공기.

노인들이 사는 곳

by 박규동

상쾌한 아침. 문을 열자 태양의 빛은 뜨겁게 날 환영했다. 마당을 가득 메운 햇빛에 나는 기분 좋게 인상을 찡그렸다. 태풍이 온다고들 했지만, 날씨는 도리어 선선해졌다. 한 손에 아이스커피를 들고, 고무 슬리퍼를 끌며 마당으로 나섰다.


영혼의 갈증을 해결할 커피를 단숨에 들이켜고, 평상으로 향했다. 평상에 앉아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라이터의 숫돌이 굴러가는 소리에 기분이 좋아졌다. 이제는 손가락으로 라이터를 굴리는 묘기까지 가능해졌다. 기적과 신성모독을 한 번에 목격한 지, 일주일이 흘렀다.


내가 내뱉는 담배 연기 속엔 씁쓸함도, 후회도 없었다. 담배를 이로 물고, 열 손가락을 펼쳐 천천히 내려다봤다. 아침 햇살 아래 손가락 하나하나를 또박또박 움직여보았다. 후회는 없더라도 호기심은 숨길 수 없었다. 기적의 근원은 어디일까? 호기심은 집 앞 교회로 향했다. 교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이제는 알아야 한다.


온갖 신성모독과 어긋난 기적이 두렵거나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진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굿판이 끝나고, 나는 내 방에서 깨어났다. 누군가가 내 몸을 다시 내 집, 내 방으로 옮겨놓은 것이다. 눈을 떴을 때, 철학관 할아버지가 곁에 앉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네. 이제 다시 건강해졌으니까. 그걸로 된 거 아닌가?”


겨우 그 한마디에, 마치 최면이라도 걸린 듯 그날의 공포는 가라앉았다. 그 후로 꼬박 일주일을 매시간 메일함만 들여다보며 살았다. 마을 노인들은 나에게 약속했다. 손가락만이 아니라, 하는 일도 술술 풀리게 해주겠다고. 푸른 지붕 집 할머니가 공중에 떠오르며 아버지의 목소리를 내는 걸 직접 보고 들었다. 붕대에 갇혀 있던 손가락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움직였다. 이제는 번역 계약이 잘 풀려 돈 걱정 없는 삶이 찾아올 차례일지도 모른다.


지난 일주일 동안 기도는 하지 않았다. 주님의 뜻 같은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가 사랑하는 방식이 시련과 시험을 주는 것이라면….


담배 연기를 내뱉었다. 메일을 확인할 차례다. 새 메일 하나가 도착해 있었다. 긴장감에 담배를 강하게 깨물었다. 제발. 제발.


떨리는 손으로 메일을 클릭했다. 그러나 보낸 사람의 이름을 보는 순간, 실망감이 밀려왔다.


‘안녕하세요. 번역가님. 이삭 전도사입니다.’


전에 메일을 보낸 같은 사이비 교회였다.


“하긴, 성공이 옆집 개 이름도 아니고.”


혼잣말을 내뱉으며 메일을 읽어 내렸다.


‘안녕하세요, 번역가님. 지난번 메일을 드렸는데 답이 없으셔서 다시 한번 정중히 연락드립니다. 저희는 대형 교회에서 독립해 새로운 목사님과 함께 새 출발을 하게 된 작은 교회입니다. 국내 거주 외국인뿐 아니라, 해외의 모든 동포에게도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뜻을 품고, 진정한 기독교 신자인 번역가님을 찾고 있습니다.


저희가 원하는 건 단순히 한국어를 영어로 옮기는 기술자가 아니라, 오늘날 우리의 언어로 복음을 해석할 수 있는 신자분입니다. 그런 분을 찾던 중, 선생님보다 더 적합한 인재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지난번 답이 없으셨던 이유가 혹시 계약 조건 때문일까 하여, 이번에는 정확한 액수와 함께 제안드립니다…’


“뭐야, 이거.”


노트북 화면에 적힌 계약금 숫자의 0을 세고 있었다. 이게 말이 되는 금액인가? 고작 성경 번역에 이 정도의 돈을? 헛웃음에 담배 연기가 섞였다.


“이거, 미친 새끼들일세?”


분명 사기일 것이다. 누가 번역 금으로 저만큼의 돈을 제시하나. 의심은 피어올랐다. 그러나 피어오르는 의심의 불씨를 짓누르는 생각이 떠올랐다. 지난주의 굿판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노인들이 말한 ‘성공’이란, 바로 이런 모습일까. 다시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저희가 새롭게 시작하는 교회인 만큼, 번역 업계의 시세나 계약 방식에 대해 미숙한 점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양해 부탁드리며, 아래, 교회에서 사용하는 성경의 예문을 첨부합니다. 해석본을 보내주신다면, 목사님과 함께 판단한 후, 계약금 전액을 선지급하는 조건으로 계약서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주의 손이 나의 손을 짓누르시니, 내 뼈는 마르고 내 심장은 떨리며, 나는 종일토록 슬픔 속에 지냈나이다.


내가 침묵하매, 나의 뼈가 삭고, 나의 병이 심해졌나이다.

내 속에 죄가 숨겨져 있으므로, 주께서 얼굴을 돌리셨나이다.

내가 입을 열지 않으니, 주께서 나를 징계하시고,

내 날들은 사라지는 연기 같고, 내 기도는 흙에 묻혔나이다.

그러나 내가 죄를 앓고서야 고개를 들었고,

나의 입술을 열어 주의 이름을 부르니

주께서 들으시고, 다시 나의 뼈에 힘을 주셨나이다.’


“간단하네? 시편 어딘가에서 본 것 같은데… 괜히 기분 나쁜 구절이네.”


예문을 자세히 읽지도 않았다. 이 정도의 돈을 거부하는 미치광이는 없을 것이다. 답장 버튼을 누르고 간단하게 영어로 번역하는 과정에 양심의 가책은 느끼지 못했다. 아니, 나의 양심은 무뎌졌다. 주님의 양으로 옳은 길만 걸어 내가 얻은 게 대체 뭐가 있나.


답장을 쓰려던 찰나, 마당 너머로 낡은 고무 슬리퍼의 마찰음이 들려왔다. 만수 할아버지였다.


‘하… 이 양반. 또 자기 집 안방처럼 들어오네.’


그는 말도 없이 평상 가까이 다가왔다. 나는 억지로 미소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어서 오세요. 무슨 일이세요?”


“뭐, 시골에 별일이 있나. 그냥 자네 손은 어떤가 해서 와봤지.”


“예, 덕분에 괜찮습니다.”


“그 시골 보건소 말이야. 허술해 보여도 거기 수술해준 양반, 원래 대학병원에서 교수도 하고, 다 한 사람이야.”


굿판에서 있었던 일 따위는 머릿속에서 지워진 듯, 그는 보건소 이야기만 꺼냈다.


“이제 일도 다시 하는구먼. 보건소장한테 고맙다고 전화 한 통 해야겠어.”


말을 마친 그는 평상 모서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내 담배 연기가 퍼지는 자리에, 그의 부채질이 시작됐다. 손바닥 크기의 부채에서 일어난 바람이 나의 얼굴을 때렸다. 그 바람은 그의 침과 체온, 땀 냄새를 실어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부드럽지만 또렷하게 말했다.


“그 부채질, 다른 쪽으로 해주실래요?”


“참, 젊은 사람이…”


“젊은 사람이 왜요? 바람맞기 싫어서요.”


이 집은 내 집이다. 마당도, 평상도, 공중의 담배 연기까지 모두 내 것이다. 그리고 지금, 노인은 내 허락 없이 들어와 내 얼굴에 바람을 퍼붓고 있다.


담배를 깊게 빨아 그의 얼굴 쪽으로 연기를 뿜었다.


“그래서, 무슨 일로 오신 건데요?”


“자네 손도 다치고, 굿도 하고… 뭐 다들 어수선했잖아. 그런데 하비브가 없어졌어. 알지? 옆집에 있던 외국인. 마지막으로 본 게 우리 셋이 보건소에 같이 갔던 날이니까… 그날 도망간 게 아닌가 싶어서 말이지.”


“도망이요?”


나는 불쾌한 헛웃음을 뱉어냈다.


“어르신, 그 사람 정당하게 일하던 노동자예요. 무슨 노예도 아니고, 도망은 무슨 도망입니까.”


“내가 그런 뜻으로 말했겠나. 참, 굿하고 나서 왜 이렇게 예민해졌는지… 아무튼, 자네 군대에서 장교도 했다면서?”


‘내가 장교였다고 말했었나?’


“그래서요? 집 나간 군견 찾듯 수색하라고요?”


나는 팔꿈치를 테이블에 얹고, 노인의 속내를 들여보려 했다. 그가 뱉어내는 말들에 몸이 무겁게만 느껴졌다. 노예니, 도망이니, 같은 말을 듣는 것도, 말도 안 되는 부탁을 듣는 것도. 할아버지는 머쓱한 듯 어깨를 움찔하더니 갑자기 말을 돌렸다.


“아니야, 그래. 찾긴 뭘 찾아. 그나저나 나도 군에 있었는데. 내가 말했나? 월남에서 내 두 손으로 베트콩 빨갱이 새끼들 때려잡은 게 열 손가락이 넘는다니까.”


첫날엔 일제 군인의 기개를 보이시더니, 오늘은 월남전 영웅이 되셨다. 게다가 입에 붙은 단어들이 하나같이 거슬렸다.


“저번엔 황국 군인이시더니, 월남까지 다녀오셨어요? 와, 어르신 연세가 몇이세요?”


“말해도 안 믿을겨. 하비브 그놈도 소련 출신이지? 빨갱이 나라에서 와서 우리가 얼마나 잘해줬는데. 잔치도 열어주고, 돼지고기도 삶아주고. 다들 아들처럼 대해줬어.”


“어르신, 무슬림이 돼지고기를 먹습니까? 그게 대접입니까? 고문이지. 그리고 소련 해체된 지 30년이 넘었습니다. 무슨 아직도 소련 타령이야. 어쨌든 정당하게 퇴사한 사람을 저한테 따지지 마세요.”


“그냥, 자네가 마지막으로 같이 있었으니까 뭔가 알 줄 알았지.”


그의 말투엔 은근한 탐색과 권위가 섞여 있었다. 나는 미소를 지었다. 웃음이 아닌, 경계와 조롱이 섞인 미소. 먹구름이 마당 위를 덮었다. 회색빛 그림자가 평상에 드리워졌고, 공기가 묘하게 싸늘해졌다. 나는 손가락으로 담배꽁초를 튕겼다.


“그래서, 하비브 말고 다른 얘긴 없으세요?”


“아, 맞다. 태풍 오는 거 알지? 고추밭 할매들이 비닐 걷어야 한다는데, 자네가 좀 도와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


‘하비브가 없으니까 내가 대체인 거지. 아주 자연스럽네.’


“예. 도와드려야죠. 그럼요.”


대답과 함께 평상에서 일어났다. 말투에 얹힌 얄궂은 정중함을 그가 눈치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내 기준에서 나는 꽤 점잖게 대응했다. 그가 뱉은 말들에 비하면.


“비가 오려나 봐요. 얼른 들어가야겠네요. 어르신도요.”


노인의 얼굴에 미세한 떨림이 일었다. 자신이 쫓겨나고 있다는 걸 눈치챈 눈빛이었다.


“비 오는 데 여기 계속 앉아 계시려고요?”


“아니, 들어가야지.”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등을 돌렸다. 그의 힘 있는 걸음이 만든 발자국에 괜한 불쾌함이 투영됐다. 그의 굽은 등이 천천히 마당을 빠져나갔다.


그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씁쓸한 미안함도 느껴졌다. 그가 사용한 단어는 무례했지만, 어쩌면 속마음은 달랐을지 모른다. 상투적이지만, 그냥 세대 차이일 수도 있다. 찝찝함에 못 이겨 떠나는 노인의 등을 향해 말을 건넸다.


“아, 어르신! 이번 주 일요일에 교회 가보려는데, 가도 괜찮을까요?”


그의 발걸음이 멈췄다. 돌아서지 않아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공기가 얼어붙었다는 건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교회 오는데 허락받아야 하나?”


“아뇨. 철학관 어르신이랑 얘기했었는데, 좀 불편해하시는 것 같아서요.”


“교회에 새로운 손님 오는 걸 누가 불편해해?”


“그럼, 일요일에 갈게요. 아니지, 바로 앞이니까 수요예배든 뭐든 시간 맞으면 가죠.”


“자네 좋을 대로 해. 교회는 모두 다 환영하는 곳이니까.”


“그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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