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하나님을 위한 굿.

노인들이 사는 곳

by 박규동

내가 원치 않는 기도였지만, 그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 현실과 수면의 경계의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누워있을 뿐이었다.


손을 다친 후 둘째 날 아침이 밝았다. 다시 노크 소리. 배은망덕하더라도 할 말은 해야 했다. 기도를 멈춰 달라고. 발로 문을 열었다. 마당 끝을 빠져나가는 푸른 지붕 할머니의 등이 보였다.


“어르신!”


내가 부르는 소리에도 어르신은 돌아보지 않았다. 거실에 놓인 밥그릇을 바라보다, 열린 문 앞에 멍하게 앉았다. 시골의 아름다운 자연도, 맑은 공기도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발로 문을 닫고, 개처럼 엎드려 밥을 먹었다. 빨대가 꽂힌 물을 마셨다. 식사를 마치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볼까 생각이 들었다. 슬리퍼에 발을 꾀며 맞은 햇살에 온몸이 축축 처졌다. 햇살이 독처럼 느껴졌다. 햇빛을 맞을수록 우울감이 짙어졌다. 슬리퍼를 벗어 던지고 어두운 방으로 돌아왔다.


지루함이 주는 고통은 나의 두 손보다 아팠다. 고통도 무기력도 아무 변화 없이 흐르기만 했다. 미친 듯한 지루함 속에서 발끝으로 핸드폰을 만져 은행 앱을 열어봤다. 내가 돈을 보는 것이 아닌, 계좌 잔액이 나를 바라보았다. 계좌의 숫자들을 읽어가니 귀신이라도 본 듯 심장이 뛰었다.


시끄러운 기도 소리가 가득 찼던 밤은 다음날의 태양에 녹아내렸다. 아침의 무기력, 눈곱은 팔뚝으로 겨우 닦아냈다. 머리는 기름지고 가려웠다. 저녁은 먹지 않았다. 그들이 내 실루엣을 보며 비웃는 게 분명하니까. 어쩌면 이 모든 상황 자체가 그들의 계획이었을까.


내가 그들의 기분을 상하게 한 적이 있는 걸까. 복수인가. 어쨌든, 그들이 원하는 것을 줄 마음은 없다. 그들의 기도를 멈추게 하는 건 어렵지 않다. 문을 열고 나가서, 자는 데 방해가 되니까 기도를 멈춰달라는 한 마디면 나는 편히 잠들 수 있다. 그뿐이다. 그런데, 부서지고 망가진 손가락이 사흘 만에 붕대 안에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감각이 돌아오고 있다. 이런 회복 속도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기도 말고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넷째 날 새벽 2시.


어두운 거실에 뜬 눈으로 누워있었다. 기도 소리는 여전히 들려왔다. 길었던 낮잠 때문에 잠이 오지 않았다. 문밖의 세상이 검은색에서 푸른빛, 다시 주홍빛을 거쳐 밝아지는 걸 지켜봤다. 빛이 들고 나서야 기도는 멈췄다. 한참 뒤, 미닫이문이 열리고 철학관 영감님이 들어왔다.


“안 자고 있었구먼. 아침은 먹고, 점심 저녁은 잘 안 먹는다는데 괜찮은겨?”


“할아버지. 마을 분들한테 기도 이제 그만하라고 전해주세요.”


“기도하면 손이 더 빨리 나을 텐데…”


“알아요. 믿기진 않는데, 손이 진짜 빨리 낫긴 하네요. 혹시 밥에 뭐 타신 거예요?”


“손 빨리 나는 약이 어딨겠어.”


노인들을 향한 감정은 미움이나 정이라는 단순한 단어로는 표현하기 어려웠다. 처음 이 마을에 왔을 때 느꼈던 불쾌한 기분은 제자리이지만 말이다. 그 기묘한 열정, 불청객을 향한 기도, 일방적인 친절. 이들을 계속 이상하다고 부르기엔, 내가 이곳에서 보낸 시간이 꽤나 길어졌다.


“아무튼, 밤에 잠 좀 자야 하니까, 기도는 이제 그만해달라고 전해주세요.”


“그래. 말해줄게.”


잠시 그를 지켜보다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그래서 말인데, 기도는 멈춰도 손은 나아야 하잖아요? 저기… 저번에 굿 이야기하셨잖아요.”


“응?”


“그러니까… 기도보다 그게 더 효과가 있다고 하셨던 거 같은데.”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그의 얼굴이 기쁨에 환하게 밝아졌다. 그와 달리 나는 피폐해져 있었다. 머리는 냄새나고 기름졌다, 셔츠는 걸레 같았고, 양손은 여전히 불편했다. 계좌 잔액은 줄고, 일거리는 끊기고 있었다. 억울하게 계약이 끊기고, 프로젝트는 사라지고, 외롭고, 분노하고, 지쳐 있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았지만, 이제는 그의 시험을 거부하고 싶다.


어쩌면 내가 아는 하나님은, 이 마을 사람들이 말하는 하나님과는 다른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굿, 돈은 얼마나 드나요?”


“우리가 자네한테 어떻게 돈을 받겠어.”


“공짜요?”


“손 다친 것도 우리가 잘못한 건데.”


“그럼 내일 당장 가능할까요?”


“내일? 당장?”


“아직 아침 8시잖아요. 준비할 시간 충분하잖아요.”


내 오른손 붕대로 감긴, 냄새나는 그 손을 그의 어깨 위에 올렸다. 허탈한 웃음과 진심이 쏟아져 나왔다.


“더는 이렇게 못 살겠어요.”


그는 잠시 침묵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최대한 빨리 준비해볼게.”


“아, 그리고 저번에 그러셨잖아요. 굿하면 손만 낫는 게 아니라 일도 잘 풀린다고. 그 말, 맞는 거죠?”


“그럼. 맞지.”


나 자신을 향한 비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는 기쁜 표정으로 문을 닫았다. 밥을 먹기 전, 나는 문틈으로 그가 정말 돌아가는지 확인했다. 그가 나에게 그랬듯이. 문을 닫고, 다시 엎드려 밥을 먹었다. 개처럼 엎드려, 개처럼 밥을 먹었다. 그래도 이제는 달라질 것 같았다. 이왕 개처럼 살아야 한다면, 희망이라도 있는 개가 되는 편이 낫겠지.


내일이 오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나의 마음 깊은 곳 어딘가에서는 굿이 내 인생도, 손도, 계좌 잔액도 모두 되살려줄 거란 믿음을 품고 있었다. 그 믿음과 섞인 광기 그리고 신앙의 경계는 얕아졌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나의 마지막 남은 선택이었다.


시간을 앞당기기 위해 나는 평소보다 많은 양의 진정제를 입으로 털어 넣었다. 억지로 잠을 청했다. 잠드는 것조차 일이었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익숙한 도시. 뜨거운 태양 아래 광인이 질주하고 있다. 그가 지나가는 자리에는 피가 흘렀다. 쓰러진 시체들을 지나, 그는 피 웅덩이 위를 걷는 기적을 보이고 있었다. 나는 그의 뒷모습만 바라볼 뿐이었다. 너무나 많은 양의 진정제 때문일까?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나의 귓등 멀리서 북소리가 들려왔다. 나의 떨리는 심장의 박동이라 착각했던 북소리가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도시를 덮는 그 박자의 행렬은 점점 가까워졌고, 북이 쉬는 박자의 공백을 징 소리가 채웠다. 이어서 재빠른 꽹과리 소리. 그 사물놀이 소리 속에 광인은 마치 망나니가 춤을 추듯 칼을 휘두르며 도시를 베고 있었다.


순간 모든 음악이 멈추었다.


나의 귓불을 스치며 지나가는 높은음의 휘파람 소리. 광인이 춤을 멈췄다. 두 번째 휘파람 소리에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세 번째 휘파람 소리가 내 귓등을 스치고, 광인의 등 뒤로 날아들었다. 피로 젖은 셔츠와 칼날, 그는 천천히 나를 향해 뒤를 돌았다. 그의 얼굴을 보았다.


“하나님, 아버지…!”


나는 숨을 멈췄다.



놀라서 눈을 떴을 때, 온몸은 식은땀에 젖어 있었다. 진정제의 여운 때문인지, 현실 감각이 돌아오는데 꽤 긴 시간이 걸렸다. 무의식의 시간은 끝이 났다. 그런데 꿈에서 들리던 북소리가 현실에서도 들려오기 시작했다. 거실을 지나 문을 열었다. 이미 해가 높이 떠 있었고, 마을 전체를 울리는 사물놀이 소리가 공기를 찢고 있었다. 하얀 삼베옷을 입은 철학관 할아버지가 부채질하며 마당으로 들어섰다.


“몇 시간을 자는겨. 아니지, 아프면 많이 자야지. 준비됐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뭐 원래는 몸을 깨끗이 하면 좋은데. 손이 그 꼴이니 어쩔 수 없지. 따라오더라고.”


그를 따라 마당을 나섰다. 그는 마당에서 나와 왼편으로 기계처럼 몸을 돌렸다. 음악이 흘러나오는 곳은 푸른 지붕의 집. 그는 대문을 밀어 열었다.


처음 이 마을에 왔을 때, 이 집 창고에서 낡은 굿거리 도구들을 본 기억이 떠올랐다. 하지만 지금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은 그보다 훨씬 기괴했다. 마당 한복판에 커다란 돗자리가 깔려 있었고, 그 위에 상이 놓여 있었다. 상 위에는 뿔 대신 나무 십자가가 박힌 돼지머리가 놓여 있었다. 돼지머리 옆에는 목이 잘린 닭의 사체가 엎어져 있었다. 닭의 사체에서 흘러나온 피를 담는 그릇, 철학관 할아버지는 그 그릇을 발로 밀며 정확한 위치를 맞추려는 듯했다.


그는 닭 피 안에 담겨 있던 십자가를 꺼내 피를 털어냈다. 흰 삼베에 손의 피를 닦은 그는 십자가를 온갖 음식이 놓인 상 위에 던져 놓았다.


돗자리 옆에서 장구, 꽹과리, 징을 두드리는 할머니들은 모두 흰 천으로 머리를 푹 눌러쓰고, 박자에 맞춰 고개를 흔들며 연주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 소리는 단순한 리듬이 아닌 무엇인가를 부르는 의식이었다. 푸른 지붕 할머니는 무당의 모습도, 수녀의 모습도 아니었다. 흰색과 오색이 뒤섞인 삼베옷을 입고, 한 손에는 낡은 식칼을 들고 있었다. 그녀는 입에 머금어 놓았던 닭 피를 식칼에 뿜어냈다. 피가 잔뜩 묻은 치아와 입술, 그 미소로 친절한 인사말을 건넸다.


“자네 왔는가? 돗자리에 십자가 보이지? 위에 대충 앉아.”


나는 돗자리에 놓인 나무 십자가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주위엔 유과, 과일,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음식들이 쌓여 있었다. 무엇보다도 내 눈을 사로잡은 건 상 아래에 빼곡히 놓인 예수님의 초상화 액자들이었다. 초라한 액자가 여섯 개는 되어 보였다. 예수님은 모두 다른 자세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할머니는 주기도문을 읊으며 성경을 펴더니, 찢기 시작했다. 찢긴 성경 조각을 내 머리 위로 흩날렸다. 마치 부적을 던지듯 성경을 흩뿌리며 그녀는 하늘을 향해 외쳤다.


“오셨는가! 죽은 자도 살리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 이곳에 오셨는가! 물 위를 걷고, 빛 속에 숨을 두는 그분, 우리 아이의 손도 고치러 오시지는 않으려나! 이 아이 앞날도 밝혀 주시려나!”


기도 소리를 따라 다른 노인들도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마을의 노인들은 모두 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눈을 뜨기 전 아침부터 굿은 이미 진행되고 있던 것이다.


“아직도 안 오셨는가? 바리새인 눈깔을 파먹고, 귀를 막아야만 오시는가? 성전에 앉아 굿판을 벌여야 그제야 귀 기울이시는가?”


나는 여전히 십자가 위에 무릎 꿇은 채, 눈앞에 놓인 예수님의 초상화를 바라보았다. 그림 속의 그분은 자애롭게 웃고 있었지만, 나는 그 얼굴을 바라볼 면목이 없었다. 이 모든 것이 신성모독임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의 광기에 나조차 한 발을 들여놓고 있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할머니가 피 묻은 식칼을 액자 하나에 내던졌다. 유리가 깨지며 파편이 튀었고, 예수의 얼굴이 산산조각이 났다.


“이래도 안 오시나!”


죄책감에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다만 고개만 숙일 뿐이었다. 할머니는 또 하나의 식칼을 액자에 내던졌다.


“이래도 안 오시나!”


이번에는 예수의 눈 부분이 깨졌다. 나를 바라보던 시선이 하나 또 사라졌다. 나는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한 채, 숨만 삼켰다. 나 역시 작은 기도를 읊조렸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어쩔 수 없었다는 건 알고 계시잖아요.”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식칼이 던져졌다. 부서진 예수님의 초상화는 유리조각과 함께 흙바닥으로 기울어졌다. 주님, 죄송합니다. 그 말이 목울대에서 맴돌았다. 입술의 무게는 사과가 나오지 못하게 소리를 짓눌렀다.


기도가 멎고, 악기 소리도 사라졌다. 할머니는 조용히 나를 향해 다가왔다. 한 손에 피 묻은 식칼을, 한 손에 찢긴 성경을 들고서. 움직이지 않는 할머니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소리. 그녀는 복화술 하듯 읊조렸다.


“당신의 피로 우리 아이를 씻겨주소서. 우리 아이 부서진 양손도, 우리 아이 부서진 마음도, 우리 아이 인생도.”


나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다만 바닥을 바라보며 그녀의 하얀 버선을 응시했다. 그때 나는 분명히 보았다. 그녀의 발이 땅에서 조금 떠 있었다. 아주 조금. 그러나 분명히. 그녀가 입을 열었다. 익숙한 목소리. 아니, 익숙해야만 했던 목소리. 아버지의 목소리.


“아들...”


“이게 뭐야, 씨발. 당신들 다 뭐야!”


나는 비명을 지르며 일어섰다. 내게 남은 유일한 표현 수단은 분노뿐이었다. 기괴한 기적을 목도 한 나의 감정은 욕설로 터져 나왔다. 분노와 함께 마을의 노인들을 향해 뻗은 두 손을 바라보았다. 붕대를 뚫고 나와 멀쩡하게 움직이는 손가락. 욕과 분노는 멈추었고, 나는 움직일 수도 없었던 손을 바라보았다.


“이게 뭐야...”


나는 자유롭게 움직이는 열 손가락으로 양손의 붕대를 뜯어냈다. 흉터 하나 없이, 때 하나 없이 나아 있는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목도 돌려보고 손등과 손톱 하나하나 바라보며 손가락을 움직여봤다.


“이게 무슨...”


할머니를 다시 바라봤을 때, 그녀의 발은 다시 땅을 딛고 있었다. 마을의 노인들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침묵을 지키고 나를 바라보았다. 나의 두 눈동자는 해가 기울듯 넘어갔다. 세상이 천천히 기울어졌다. 쓰러지는 그 과정에도 나는 손을 바라보았다. 깨끗했다. 아주 멀쩡하게 움직였다. 시야가 어둠에 잠기고, 나의 등과 뒤통수가 땅에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것이 내가 기절하기 전 마지막 기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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